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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482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08.10 22:00
조회
789
추천
13
글자
22쪽

위대한 령도자 박상혁 동지를 맞이하라!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93화



삼길초등학교 1학년 3반은 특별한 반이다.


원래도 삼길초등학교는 나름 유서 깊고 명망이 높은 걸로 알려져 있지만 그 중에서도 3반은 더욱 특별하다.


가장 뛰어나고, 높은 성과를 내며, 그러면서도 가장 담합이 잘 되던 반. 그것이 3반이었으니까.


그런데 요즘 그런 3반이 예전과 같지 못하다는 소리가 교사들 사이에서 자주 나오곤 한다.


처음엔 드라마 나비효과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신나하던 아이들이 1달이 지나고 2달이 자나자 추욱 쳐져 시무룩해 졌다고.


특히 승윤이라는 아이는 등교할 때 맨날 눈물 자국을 달고 다닌다고.


이런 상황에선 담임이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3반 담임 공아린 선생은 임신 때문에 인수인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니.


어쩌면 3반의 흔들림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8월의 어느 아침.


이 날은 수업마저도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아침 조례 시간이 10분가량 지났음에도 공아린 선생이 들어올 생각을 안 했기 때문이다.


“흐으... 이제는 선생님도 안 오는 거야? 다빈아 확인 좀 해 봐.”

“1학년 교무실에도 안 계시는데 어디서 찾아.”


어머니회와의 연줄로 반장을 맡은 이다빈이 그나마 바쁘게 움직여 보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최근 반의 분위기가 좋지 않음을 알고 있고, 그 역시 나름대로 노력해보았으나 역부족일 뿐.


애들은 왜 이렇게 찡찡거리고, 스스로 할 생각을 안 하는 건지.


그동안 자신이 잘나서 반이 잘 돌아갔던 게 아님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다빈은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떠올렸다.


박상혁. 비범한 재능으로 삼길초를 자기 앞마당마냥 휘어잡던 같은 반 친구.


지금 3반이 이리 무력하게 뒹굴고 있는 것도 그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상혁이 돌아오려면 아직 몇 달이 더 남았다. 나비효과는 이제 막 중후반에 들어갔으니까.


게다가 언제 돌아올 거라고 자신할 수도 없다. 지금 한창 잘 나가는 배우였으니 바로 차기작 촬영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다.


이전에 상혁 휘하 정보부대의 수장으로써 용기를 내어 개인 문자로 알아낸 정보이니 틀릴 리는 없다.


상혁은 분명 차기작을 고민하고 있었다.


다빈은 머리카락을 쥐어뜯고만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곧 1학년 체육대회가 열린다. 반끼리 대항하는 몇 안 되는 행사인데, 이러다가 나가서 못난 꼴만 보여주게 생겼다.


애들은 축 쳐져 있지, 선생님은 곧 떠나지, 박상혁은 안 돌아오지.


“나보고 도대체 어쩌라고!”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어... 아냐. 아무것도 아냐.”


머쓱해 하며 어떻게든 수습을 하려던 찰나, 앞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왔다.


다부진 신체, 이전보다 잘생겨진 외모, 어른스러운 분위기, 세상에서 제일 잘난 것만 같은 표정.


이 모든 걸 다 갖추고 있는 8살 꼬맹이. 박상혁이었다.


“다들 안녕? 좋은 아침이야.”


그는 오랜만에 왔으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마치 어제도, 그제도 여기에 있었다는 듯.


그 자연스러움 때문에 3반 아이들은 이게 상상인지 현실인지를 분간하지 못했다.


그저 숨을 쉬는 것을 깜빡하고 그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


“다들 왜들 그러고 있어?”


상혁이 이상하다는 듯 손을 흔들자, 그제야 하나 둘 눈을 깜빡이며 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상혁이다.”

“상혁이가 돌아왔어!”


시든 꽃에 물을 주듯, 반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긍정적인 떠들썩함이 발생했다.


“와!!! 드디어 돌아왔어!”

“상혁아! 배우는 어때? 재밌어?”


이미 다빈이 일으켰던 어색함은 날아가버린지 오래였다.


불현듯 등장해서 던진 단 두 마디 말로, 몇 개월 동안 쌓인 불안감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어느새 다빈의 입가에도 호선이 그려져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산하 정보부의 수장으로써 주군의 복귀를 칭송해야만 했다.


그래서 목을 가다듬고 앞으로 나서려던 차에,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무언가에 부딪혀 옆으로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쌍혁아아아아아아아!!!!!!!!!!!”


흡사 날렵한 야생동물과 같은 몸놀림을 보이는 그 아이는 바로 승윤이었다.


그녀는 학교 밖에 있는 사람에게도 들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질주한 뒤, 곧바로 상혁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상혁아. 흐에에에에에엥. 상혁아!”


웬 괴생물체가 갑자기 육탄공격을 시전한다 싶더라니 승윤이었다.


그동안 많이 외로웠는지 꼭 매달려서 쉼 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그럴까봐 촬영장 사진도 몰래 찍어서 보내주곤 했는데. 그래도 신경을 많이 못쓰긴 했지.


나는 승윤을 달래줄 생각으로 그녀의 양 볼을 꼬집었다.


“으휴. 우리 볼빵빵 너구리가 그동안 많이 외로... 응?”


무언가가 이상했다. 평소 폭신하던 볼은 어디 가고 거적데기 수준의 가죽만이 남아 있다.


“엥? 볼따구 살 다 어디 갔어?”

“크흡. 상혁이가 학교에 안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흐흑 밥이 맛이 없어서 우에에엥.”


아이고 두야. 나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떠나기 전에 돌아올 거라고 말을 했는데 얘는 왜 이럴까.


운다고 밥을 못 먹은 걸까? 그렇게 뇸뇸 맛있게 먹던 밥을? 그렇다면 심각한 일이었다.


“내가 돌아온다고 했잖아. 걱정 말라고.”

“후이잉. 그치만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 애랑 너무 잘 어울려서. 다시는 안 오는 줄 알고. 흐에에엥.”


끄으응. 나는 침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8살은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를 나이다.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을 보고 마법 주문을 외울 때다.


그러니 드라마를 보고 내가 한별이와 알콩달콩 평생 살 거라는 착각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실제로 얼굴을 자주 보지도 못하니 더욱 그런 마음이 커져만 갔을 테고.


이건 성인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건 불변의 진리이다.


아닐 걸 알면서도 걱정하고 고민하게 된다. 아마 승윤이 상상 속에서 나는 그녀를 잊고 즐겁게 살고 있었으리라.


그 애타는 마음에 연민을 느껴, 승윤의 머리를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돌아왔잖아.”

“흐윽. 이제 다시는 안 갈 거야?”

“아, 그건 아니고. 내일은 또 촬영 가야해.”

“후에에에에엥. 그럼 어떡해!”


결국 그녀를 달래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앞으로는 승윤이와 일정을 온전하게 공유하기로 약속을 맺었다. 10밤 자면 온다는 말보다는 구체적인 기간이 안심이 될 테니까.


이미 수업을 시작할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공아린 선생님과 새로 오신 선생님은 이쪽을 지켜만 보고 있다.


아마 오랜만에 회포를 풀 시간을 주는 거겠지.


선생님의 허락을 받은 아이들이 주위에 모여 질문 세례를 쏟아냈다.


“나비효과 주인공들이랑 친해?”

“그럼! 나도 주연인데 친하지.”

“우와아아아아아!”


아이들은 TV를 동경하는 만큼 격한 환호성을 터트렸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님에도, 들려주는 이야기만으로도 콧김을 내뿜으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상혁아, 그럼 되~게 유명해졌겠네?”

“어. 좀 그렇더라. 요새 마음 놓고 거리를 못 다니겠어.”

“이요오오올. 대단하다 상혁이!”


그동안 누구에게 인기를 자랑한 적은 없다. 안 좋게 보일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녀석들 앞에서만큼은 마음 놓고 자랑을 해도 된다. 원래 초등학생은 이런 법이었으니까.


한창을 와~ 와~ 떠들던 중, 다빈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럼 학교는 어떻게 도착한 거야? 이동하기 불편했을 텐데.”


호오. 생각보다 날카로운 질문이다.


학교에 가는 게 알려지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 게 뻔했다. 나는 그런 사태를 바라지 않았고.


하여.


“새벽 5시에 나왔어.”

“5시?”

“응.”


아무리 교육열이 심하다곤 해도 등교를 5시에 하는 미친 초등학교는 없다. 출근하는 사람도 드물었고.


덕분에 조용히 학교에 진입할 수 있었다.


참고로 교문은 닫혀 있었지만 그냥 담을 넘었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 뒤 수업이 시작할 때까지 공부방에 짱박혀 있었다.


아린 쌤을 몰래 불러내어 쌓였던 이야기, 작별 인사를 마쳤고 그러다보니 수업 시간이 다 되었다.


“우우우우우!”


일의 전말을 들은 아이들이 선생님께 야유를 보냈다. 오랜 만에 학교에 온 나를 독점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선생님도 억울하다는 듯 발을 굴렀다.


“선생님은 이제 상혁이 얼마 못 보는 걸?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하루 상혁이는 선생님이랑...”

“안 돼요!”

“나쁜 교사 물러가라! 우우우우우.”


승윤이는 내 앞에 서서 장판파의 장비마냥 두 팔을 벌렸다.


그르렁 소리를 내며 절대 못 넘긴다고 경고를 하고 있다.


“이잇! 그럼 선생님도 휴직 안 해! 상혁이랑 계속 있을 거야!”


결국 아린 쌤은 휴직신청서를 찢으려 들었는데, 이미 후임 교사가 온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모두를 다독이고는 자리에 앉혔다.


그래도 오늘은 수업을 들으러 온 것이었으니까.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는 건 좋지 않다.


나 역시 오랜만에 내 책상, 의자로 향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내 좌석이지만 계속 사용한 것처럼 깨끗하다. 반짝 광이 나기까지.


내가 없음에도 공을 들여 관리했음이 틀림없다. 다빈이가 엄지를 치켜세우는 것을 보니 녀석이 신경을 써준 것 같다.


나 역시 녀석을 향해 엄지를 세워 주었다. 어째서인지 다빈은 그대로 책상에 고개를 쳐박고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뭐 슬픈 영화라도 생각이 난 거겠지.


책상 서랍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오랜만에 공부를 하려니 싱숭생숭하면서도 설레는 감정이 들었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안 보고 모두 나를 보며 히죽거리고 있지만, 선생님도 크게 신경을 쓰는 것 같지는 않다.


공아린 선생님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수업을 시작하...


“그럼 수업 시작...”

“상혁이가 왔다고오오오오!!!!”


지 못했다. 갑자기 교실 앞문이 벌컥 열리며 자칭 라이벌인 지훈이가 난입했기 때문이다.


이 쯤 되면 조금 무서울 정도다. 나 몰래 어디에 센서라도 달아 놓은 게 아닐까?


선생님이 민망해 하시기 전에 상황을 수습하기로 했다. 지훈에게 다가가 녀석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나 온 줄은 어떻게 알고 왔어?”

“반에 앉아 있었는데 들리던데?”


음. 아무래도 승윤이의 고함이 너무 컸던 것 같다.


그럼에도 사람이 모이지 않았던 이유는 아직 수업 시간이기 때문이겠지. ... 응?


“야. 김지훈. 너는 어떻게 나왔냐.”

“지금 수업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동안 얘도 참 많이 변했다 싶다. 옛날에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던 아이였는데.


근처에 멘토이자, 초등학생의 귀감이 되는 내가 있고만.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반항적인 꼬마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일단 녀석의 머리에 꿀밤을 날렸다.


“아얏! 왜 때려!”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한테는 말씀을 드려야지!”


지훈을 질질 끌고 가서 그의 반 선생님께 양해를 구했다.


얘가 평소에는 참 괜찮은 아이라고. 가끔 이런다고.


그렇게 설명을 마치고 인기인으로써의 퍼포먼스를 마친 후, 반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지훈이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같이 공부하자!”

“뭔 소리야?”

“같은 반에서 공부하고 싶어!”


흠... 평소였으면 가차 없이 거절했을 텐데. 오랜만이라 내치기가 좀 뭐했다.


또 다음에 언제 또 올 지도 확실하지 않고.


그래서 그냥 녀석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핸드폰을 꺼내 교장의 번호를 찾았다.


상혁 – 지훈이 3반에서 공부한대요. 알아두셈.


그러자 5초가 지나기 전에 답장이 돌아왔다.


교장 – 상혁아! 너 지금 학교니? 학교야? 어디에 있길래?


이러다간 바이브레이터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진동이 울릴 게 뻔했기에 짧게 답변했다.


상혁 – ㄴㄴ. 신경 안 써도 됨.


그리고는 그대로 전화기를 꺼버렸다.


“야! 가자. 허락 받았어.”

“응! 고마워 히히.”


정말. 손이 많이 가는 라이벌이다. 빨리 무럭무럭 성장해서 1인분을 해주길 바란다.


* * *


수업은 아직 시작하지 않고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까닭이다.


반에 돌아오자마자 또 한 번 자리 쟁탈전이 열렸는데, 영광의 내 옆자리는 승윤이와 지훈이가 차지했다.


한 명은 친구 버프, 한 명은 권력 버프를 사용한 덕이다.


뭐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수업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린 쌤은 분필을 잡고도 한동안 수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무언가 기이한 열망을 담은 눈으로 나를 보고만 있다.


아. 수업 전 인사. 그게 있었지. 너무 오랜만의 일이라 까먹고 있었다.


원래 수업 전 인사는 반장인 다빈이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실권은 나에게 있었기에 학교에 나오는 날은 내가 인사를 하곤 한다.


오랜만에 재미있을 것 같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애들을 둘러보았다.


“떠들지 않고! 집중 잘 하고! 열심히 하자! 차렷! 선생님께 인사!”

“안녕하세요오오!!!”


아이들은 절제된 모습을 보이면서도 모두 의욕을 드러내었다.


새로 오셨다는 차예란 선생님의 표정에 당혹이 떠올랐다.


아마 지금껏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학생들의 이러한 호응은 받은 적이 없었던 게 아닐까?


“이게 원래 3반의 모습이에요!”


아린 쌤이 팔짱을 끼고 자랑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 * *


몇 달 만에 듣는 수업이지만 어려움은 없었다.


갑자기 초등학교 수업에서 대학교 과정을 가르칠 리는 없으니까.


그냥 체험한다는 생각으로 수업을 듣다보니 나름 즐거웠다.


다만 주변이 조금 시끄러울 뿐이었다.


“후후후. 상혁아 그동안 상승한 내 실력을 봐 주겠어?”


오른쪽에서는 지훈이가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고 있었다.


6학년 문제집을 막힘없이 풀어낸 것이다.


지금이 초등학교 1학년 수업시간만 아니었다면 칭찬을 해주었을 텐데.


그래서 딴 짓 하지 말라고 딱콩 꿀밤을 한 대 더 때려주었다.


왼쪽도 조용하지는 않았다. 승윤이가 자신의 노트를 보라며 팔을 당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 외로 노트가 깔끔했다.


내가 없었던 기간만큼의 핵심 내용이 앙증맞은 글씨로 정리가 되어 있었다.


“나 보라고 만들어 준 거야?”

“응. 똑똑해도 안 배운 부분은 모를 수 있으니까.”


크으.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기분이다.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승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우리 너구리가 벌써 이렇게 다 컸구나.”


원래 공부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는데 이렇게 신경도 많이 쓰고, 남을 배려해 줄 줄이야.


잠시 손길을 즐기던 승윤은 변화의 이유를 밝혔다.


“엄마가 숙제를 열심히 안 하면 상혁이 너가 안 돌아올 거라고 그랬어.”

“어머니께서?”

“응! 그래서 나 공부도 열심히 했다? 드라마도 많이 봤고! 댓글도 달았어!”


딸의 걱정을 볼모로 삼아 공부를 시키다니. 승윤이의 어머니는 생각보다 상당한 수완가이신 듯하다.


그래도 긍정적인 변화였다. 이를 계기로 승윤이가 더 나아진다면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니까 나랑 계속 친구해 줄 거지?”

“물론이지.”

“응! 응응! 나 앞으로도 열심히 할게!”


응원하는 승윤의 모습이 귀여웠다. 나랑 드라마 이야기를 하겠다고 잘도 모르면서 열심히 준비해 온 것만 봐도 그렇다.


거기에 살이 홀쭉 빠져 경국지색의 테가 나기까지.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지훈이가 시샘어린 시선을 보냈다.


“뭐야! 왜 나랑 차별해!”

“너를 웃으면서 쓰다듬을 수는 없잖아.”

“너무해!”

“안 너무해.”


그런 식으로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게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게 아닐까.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차예련 선생님이 주도하던 사상교육 시간에 작은 소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만 해도 사상 교육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김일성이 죽고 김정은이 정권을 차지한지 2년 정도 된 시점이었으니까. 한창 북한도 이념 공격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때문에 학교 측에서도 이렇게 사상에 대한 점검을 하는 것이다.


북한은 허무맹랑한 프로파간다를 통해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공산당은 나쁜 거라고.


사상 교육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잡혀갈만한 건덕지가 있는 건 더더욱 아니었고.


다만 수업을 들은 애들의 반응이 문제였다.


“북쪽의 김씨 일가는 태어나자마자 두 다리로 세상을 뛰어다녔다고 해요. 3살에 전차를 몰았고, 5살에 바위를 부쉈다는군요.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죠?”


김씨 일가 우상화를 비꼬며 공산당을 욕하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아마 다빈이가 말 한 마디를 툭 던지지 않았다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저 정도는 상혁님도 할 수 있지 않나?”


다빈도 내 측근이라면 측근이었기에, 내 비범함을 어느 정도는 눈치 채고 있다.


그렇다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 녀석은 아니었는데, 내가 오랜만에 학교를 나온 탓인지 조금 신난 것 같았다.


김일성이 어떻고 김정은이 어떻냐고. 우리에겐 상혁이가 있다고.


다빈이가 던진 화두는 들판에 불이 번지듯 빠르게 번져 나갔다.


“상혁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상혁이가 바위를 부수는 걸 봤던 것 같기도 한데.”


애들끼리의 대화가 원래 이렇다. 근거 없는 한 마디 말이 스케일이 커진다.


유일하게 진상을 알고 있는 승윤이는 눈치껏 입을 합 다물었고, 누구보다 나를 인정하는 녀석인 지훈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다.


나의 최측근 두 명이 나서지 않았음에도 소문은 기세를 더해만 갔다.


“애들아.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니? 어떻게 초등학생이 그런 일들을 하겠어. 다 지어낸 이야기지.”


차예련 선생님이 다급하게 진압을 시도했으나 불가능했다.


애들이 끝까지 고개를 저으며 선생님의 말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상혁이는 못하는 게 없어요!”

“그는 신이야! 무적이고!”

“진짜지 상혁아?”


결국 내가 키우지도 않은 소문이, 덩치를 부풀려 나에게 돌아왔다.


일단 질문을 받았기에 답변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뛰어 다녔다라... 나도 6개월인가에 걷기 시작했으니 이미 이룩한 업적이었다.


3살에 전차? 전차는 모르겠지만 운전면허는 있다. 브레이크까지 발이 닿는다는 가정 하에 운전도 할 수 있을 게다.


마지막으로 5살에 바위를 부순다라. 힘이야 3살 때부터 있었고, 맷집은 8살 때 갖추었다. 평균을 내면 5.5세.


음... 북한에서 지도자를 위해 준비한 영웅적 일대기, 어쩌면 그 주인공은 나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잠시 대답이 없자, 아이들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만세 삼창을 시작했다.


“장군님 만세!”

“아니야! 여기 봐봐! 위원장 동지라고 써져 있어!”

“그럼 위대하신 박상혁 위원장 만세!!!”


아이들은 학습 자료를 토대로 나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그러라고 나눠준 자료가 아닐 텐데 말이다.


“애들아! 이제 다시 수업 들어야지!”

“끼야하핫! 박상혁 위원장 만세!!!”


한 번 시동이 걸린 초등학생은 엔진이 다하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는다.


설령 선생님이 무서운 척을 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


이 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나뿐이다.


“에휴. 내가 못살아 정말. 크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평소의 꼬마 목소리에 권위가 깃들도록. 그리고 소리쳤다.


“일동 조용!”


그 말 한 마디에 시끄럽던 교실에 정적이 내렸다.


“동무들은 모두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권위를 세우기 위해 없는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아이들의 눈에 새로운 열망이 깃들기 시작했다.


“넵! 위원장 동지!”


이미 상황극에 빠진 애들을 다루는 법은 단 하나 뿐이다. 나도 그 상황극에 동참하는 것.


3반 꼬마들은 금세 명령을 수행하는 당원들이 되어, 군기를 유지했다.


허리도 쫙 피고, 눈빛을 형형히 빛낸다.


대충 정리가 되었으니 다시 수업을 재개해도 좋을 것 같다.


나 역시 자리에 앉아 선생님께 시선을 던졌다.


“선생 동지도 수업을 재개하라우!”

“엇.. 으음.”


어찌할 바를 모르는 차예련 선생님을 뒤로하고, 공아린 선생님이 한 걸음 나왔다.


“예! 위원장 동지!”


역시, 그래도 짬바가 있는 만큼 장난을 잘 받아주는 것 같다.


그래도 혹시나 애들이 불온한 사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집에 돌아가기 전 추가 교육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어찌 저찌 수업이 끝이 났다. 점심을 먹고, 이제는 체육대회 준비를 할 시간이다.


대회 당일까지 일주일이 남았는데 그동안 준비를 제대로 못해 갈 길이 멀다고 한다.


“위원장 동무와 함께라면 못할 게 무어냐!”

“흐하하하! 체육대회는 3반이 접수한다!”


꼭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고.


이 기세로 준비하면 금방 준비를 끝마칠 수 있으리라.


나는 자연스레 지휘소로 향하며 궁시렁거렸다.


다 좋은데 북쪽의 돼지와 비교를 당하니 뭔가 기분이 찜찜하다.


우리 둘의 공통점이라곤 정점에 이를 사람이라는 것뿐인데.


흐음. 그래도 드라마 관계자나 내 팬한테 이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만약 보였다면 지금까지 쌓아올린 이미지가 와장창 무너질 뻔 했다.


“상혁아?”


그래. 저렇게 당황해서 입을 떡 벌리고 있는 한별 누나처럼.


...응?


“한별 누나가 삼길초등학교엔 왜 있어요?”

“음. 이야기하자면 긴데, 위원장? 이라는 건 북한의 그 사람 이야기 하는 거지? 저게 무슨 소리야?”

“... 그것도 이야기하자면 길어요.”


갑작스럽게 한별 누나가 삼길 초등학교로 찾아왔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좀 많이 길어질 것 같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호작도 댓글도 추천도 언제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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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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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대적자 22.09.15 577 10 17쪽
119 빛이 나는 사람 22.09.14 583 7 26쪽
118 천재는 약점을 극복한다 22.09.13 578 11 19쪽
117 합창 22.09.10 620 9 18쪽
116 별에 관한 고찰 22.09.09 620 10 16쪽
115 아빠 새끼를 만나다 22.09.08 661 9 25쪽
114 가족들이 호강하다 +1 22.09.07 626 11 24쪽
113 가족끼리 왜 이래 +1 22.09.06 596 10 18쪽
112 러시안 룰렛 22.09.03 585 10 20쪽
111 혀어어업상 22.09.02 587 9 18쪽
110 오스틴의 연구실 22.09.01 596 8 17쪽
109 공항에서의 기싸움 22.08.31 606 8 17쪽
108 숨바꼭질 22.08.30 614 9 17쪽
107 제왕과 정점 22.08.27 645 9 20쪽
106 정중지와 22.08.26 630 9 18쪽
105 피와 살육, 대환장의 주주총회 22.08.25 671 8 25쪽
104 유성아의 연구실 22.08.24 682 11 21쪽
103 가만히 있어도 22.08.23 711 13 19쪽
102 운이 좋은 날 22.08.20 745 13 19쪽
101 외양간을 고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1 22.08.19 745 11 17쪽
100 돈이 삭제가 된다니 +4 22.08.18 745 9 18쪽
99 투자는 계획적으로 22.08.17 771 10 28쪽
98 돈이 복사가 된다 +1 22.08.16 755 11 18쪽
97 대역전극 +1 22.08.13 722 11 11쪽
96 역전의 서막 +1 22.08.13 713 10 12쪽
95 구설수 22.08.12 731 12 18쪽
94 박상혁 쟁탈전 +1 22.08.11 764 10 20쪽
» 위대한 령도자 박상혁 동지를 맞이하라! 22.08.10 790 13 22쪽
92 지금까지 이런 판매는 없었다. 이것은 팬미팅인가 판매인가. 22.08.09 763 12 20쪽
91 광고를 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2 22.08.07 798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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