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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456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08.11 22:00
조회
763
추천
10
글자
20쪽

박상혁 쟁탈전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94화



“그래서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에요?”

“네가 말해줬잖아. 첫날엔 가게, 둘째 날엔 학교에 갈 거라고. 가게는 너무 바쁠 거 같아서 학교로 온 거야.”


생각해보니 그랬다. 우리는 모처럼 받은 휴가에 들떠서 서로 휴가 계획을 들려주고는 했다.


그런데 만나기로 약속한 적은 없지 않았나?


분명 누나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그랬던 거 같은데.


내가 왜 여기 있냐는 눈빛을 담아 건네자, 그녀가 찔끔하며 시선을 피했다.


설마...


“누나 혹시 친구 없어요?”

“있어! 나랑 친구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부터 만나기 시작해도 다 만나는데 3년은 걸릴 걸?”


상당히 억울했는지 바로 반박을 하며 가슴을 두드리고 땅을 밟았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한별이 심호흡을 하더니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재미가 없어서.”


훗. 아무래도 평소에 나와 같이 있다 보니 유머의 수준이 너무 올라간 모양이다.


어느새 또래와의 대화로는 웃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던가.


내가 콧노래를 부르자 한별 누나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러면요?”

“음... 너도 알겠지만 나는 연기를 되게 소중하게 생각해.”


그렇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연기 연습을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나 역시 그녀에게 많은 부분을 배웠고.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았잖아. 그게 나한테는 너무 기쁘고 소중한데 다른 사람들하고는...”

“온전히 그 감정을 나눌 수 없다?”

“맞아! 그래서. 그래서 너한테 온 거야.”


대충 이해는 갔다. 저래 보여도 한별 누나의 커리어는 대단한 편이다.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에 인기작이 아닌 게 없으니까.


그런데 이번 나비효과의 성공은 경우가 다르다. 그녀가 연기자로써 처음으로 무언가를 보여준 드라마다.


댓글의 흐름만 봐도 알 수 있다.


요즘은 한별 누나의 연기를 까는 글은 찾아보기 힘들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팬들에 의해서 금방 묻혀버리고.


그래서 기쁜데, 한별 누나의 친구들은 이를 몰라주는 것이다. 그냥 이번에도 성공을 했다고 축하를 해줄 뿐.


그녀의 고충과 성장을 알아주는 건 나밖에 없으니, 쉬는 날에 나를 만나러 왔다는 소리였다.


“그럼 이번에는 내가 물어볼 차례지? 도대체 위원장은 무슨 소리야? 너 북한 사람이야?”

“어... 그게...”


음.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내가 너무 잘난 존재이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칭송을 받는다고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한별 누나라면 분명 코웃음을 치고는 ‘어머~ 그런 놀이나 하고 상혁이도 아직 아기였네?’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능력을 보여줄 수도 없고.


잠시 전전긍긍하다가 때려 치기로 했다. 고민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으니까.


“백문이불여일견! 제가 왜 그렇게 불리는지 보여드릴 게요. 따라와요.”


그녀의 손을 붙잡고 이끌려던 찰나, 제지가 걸렸다.


“응? 나도 수업 같이 들어도 돼?”

“엥? 그럼 뭐할 생각이었어요?”

“수업 끝날 때까지 기다리려 그랬지.”


그것도 방법 중 하나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학교의 결정권자에게 허락을 받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꺼두었던 핸드폰을 다시 켰다. 그동안 부재중 문자가 많이 쌓였다.


한별 누나로부터 온 문자도 있었다.


“연락 했었네요?”

“기본이잖아.”

“그건 그렇죠.”


고개를 끄덕이고는 교장의 이름을 찾아 문자 버튼을 눌렀다.


‘상혁 – 학교에 외부인 한 명 들어올 예정. 수업 듣고 갈 듯.’


이번에도 답장은 빨랐다.


‘교장 – 아니! 역시 학교에 있는 거 맞지 않니? 세미나를 당장 끝내고 돌아가도록 하마!’

‘상혁 – ㄴㄴ. 촬영장. ㄱㅊㄱㅊ.’


그 문자를 끝으로 다시 핸드폰을 꺼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이번에야말로 한별 누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교장 선생님한테 허락도 맡았으니까 같이 수업 듣죠? 심심하지는 않을 거에요.”

“... 응!”


아이들과 선생님은 얌전히 오와 열을 맞춰서 기다리고 있었다.


“상혁아! 뭐하다 지금 왔어?”

“옆에는 누구야? 헉! 나비효과 주인공 아니야?”


궁금한 게 많은 친구들을 위해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아아. 일단 조용히들 하고. 소개할게. 이 분은 나랑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고 계신 유한별 누나라고 해. 특별히 오늘 수업을 같이 듣게 되었어.”

“와아아아아아! 대박!”

“진짜 예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는 선생님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10살 꼬마를 보는 눈빛이 아닌, 연예인을 보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단 한 명, 승윤이만은 표정이 좋지 않았는데.


평소 모습이 순한맛 너구리였다면, 지금은 이빨을 드러내고 그르렁 거리는 매운맛 너구리 같았다.


쟤가 왜 저러는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학교에서도 나랑 한별 누나가 함께 있으니 경계를 하는 것이리라.


한별 누나는 유유히 손을 흔들어 성원에 답을 해주었다.


조금은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턱을 치켜세우고 있다.


“내가 이 정도야. 그런데 너를 만나러 온 거라고.”

“네네. 영광입니다요. 여기 앉아 계셔.”


근처 단상의 계단에 앉아 있으라고 안내를 해 주니, 그녀가 멈칫거렸다.


“어... 이거 바지 비싼 거라 더럽히면 안 되는데.”


비싼 거면 어쩔 수 없지. 보통의 남주인공이었다면 여기서 자신의 체육복을 벗어주겠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짝짝.


손바닥을 두 번 부딪히자 다빈과 그 휘하 정보부대가 뽈뽈거리며 집결했다.


“누가 담요 같은 거 하나만 구해다 줄 수 있어?”

“예스! 마이 로드!”


녀석들. 예쁜 누나 앞이라고 잔뜩 힘이 들어갔다.


덕분에 한별 누나도 조금은 놀란듯하다.


“와... 너 뭐야?”

“반장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무슨 반장이 박수를 치면 부하가 모여...”


굳이 대답하지 않고, 애들에게로 향했다.


“애들아! 오늘은 예쁜 배우님이 구경을 하고 있으니 멋진 모습을 보여주자!”

“응!!!”


의도치 않게 버프를 사용한 셈이 되었다. 애들의 의욕이 하늘을 찌를 것 같다.


운동회는 ‘단체 율동’과 ‘종목별 경기’로 나뉘어진다.


나는 지금껏 연습에 참여하지 못했기에, 일단은 애들이 얼마나 준비가 되었는지를 지켜보기로 했다.


선생님과 다빈이가 나서서 애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애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에코! 야! 똑바로 안 하니?”

“내가 잘못한 거 아닌데? 너나 잘해!”

“너 지금 화낸 거야?”


손발이 안 맞는 건 물론이요, 그 때문에 싸우기까지 한다. 담합이 안 되니 성과도 안 나올 수밖에.


그쯤 하면 되었다 싶어 지휘소로 향했다.


“상혁아 율동은 다 외웠니?”

“네. 한 번 봤으니까요.”

“할 수 있겠어?”

“당연하죠.”


상황은 알았다. 해결 방법 역시 명백했고. 못하는 부분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


애들이 명령을 듣기 싫어하는 게 문제다만, ‘누가’ 지휘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테고.


애들끼리 다툰다? 다투지 못하게 통솔하면 그만이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게 흠인데. 불가능하지는 않다. 강한 약으로 빠르게 병을 다스리면 된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자 처음부터 다시 가보자!”

“응!”


일단은 율동부터 합을 맞출 생각이다. 율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


칼군무 마냥 동작까지 맞출 필요는 없다. 대충 비슷한 동작을 하는 것만으로도 큰 일체감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단상에 서서 타이밍이 늦는 아이들을 지적했다.


“순호야 방금 동작 조금만 더 빠르게.”

“응. 노력할게.”


지적받은 순호는 부끄러운 모양이다만, 반발을 하지는 않았다.


지휘를 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어쩌면 선생님이나, 어머니회보다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이 몸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점이라고나 할까?


지적을 당한다고 해서 부정하거나 이빨을 드러낼 수 없다. 그저 다음 지적을 피하기 위해 노력을 할 뿐.


때문에 아이들의 합은 빠른 속도로 맞춰져 갔다.


군기가 바짝 들린 게 꼭 북한의 열병식 같았지만 말이다.


“헤엑 헤엑.”

“열심히 해야 해!”


집중하다 보니 애들의 퍼포먼스는 나아지고 있지만, 빠르게 체력을 소모하는 모양이다.


적절하게 조였으니 이제 한 번 풀어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소리쳤다.


“일 열심히 안하는 간나 새끼들은 모두 아오지 탄광에 보내버릴 거니까! 알아서 하라우!”

“푸흐흐. 아오지 탄광이래.”

“야! 너 그러다가 탄광 간다?”


아까 하던 위원장 놀이의 연장선이라는 걸 깨닫자, 아이들에게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오지, 탄광. 모두 입에 쩍쩍 달라붙는 말이다.


‘반복적인 연습’이 ‘하나의 놀이’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탄광에 가지 않기 위해 키득거리며 순순히 율동을 따랐다.


“아새끼들. 잘 하고 있으니 내가 운동회 당일에 단체 티를 사다 주갔어! 그 뿐이야? 빵도 간식으로 지급할 거니까. 열심히들 하라우!”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폈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만세를 부르며 나를 칭송했다.


“위대하신 령도자 박상혁 위원장께 영광을!”

“영광을! 영광을!”


동기부여가 제대로 된 모양이다.


몇 주 동안이나 잘 풀리지 않았던 단체 율동 문제가, 단 몇 시간 만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좋아. 율동은 되었고. 다음은 종목 별 경주네.”


복주머니 던지기, 줄다리기, 장애물 경주, 부모님과 2인 삼각, 단체 줄넘기에 이어달리기까지. 아주 전통적인 종목들이다.


“다빈아 애들 참여 종목은 어떻게 결정한 거야?”

“하고 싶다는 거 우선 채웠는데. 문제 있을까?”

“문제는 아닌데. 전체적으로 갈아엎으려고.”


옹기종기 서 있는 애들의 신체를 눈으로 훑었다. 정점에 이른 두뇌가 빠르게 분석 데이터를 리스트화했다.


그들 중 팔 힘이 좋은 아이, 다리 힘이 좋은 아이를 구분한 뒤.


그들 중 그나마 교우관계가 있는 애들끼리 한 조로 묶었다.


애들끼리 손발이 안 맞는다? 그럼 손발이 맞는 애들로 팀을 구성하면 그만이다.


자. 내가 할 수 있는 응급처치는 거의 다 끝났다. 이제는 이 멤버로 나가서 대회를 치르기만 하면 된다.


솔직히 우승하리라고 장담하진 못하겠다. 나를 제외한 애들은 특별한 능력이 없으니까.


고만고만한 싸움이니 조직력이 좋은 팀이 이길 확률이 높다. 우리 팀은 조직력이 약하고.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조치를 취해야겠다. 조직력을 높일 수 있는 비장의 수단을.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소리쳤다.


“나는 3반의 지도자이자 위대한 위원장 박상혁이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못하는 게 없지!”


갑작스런 선언에 애들의 눈이 점이 되었다.


그러나 연설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혼자서 운동회를 우승시킬 수는 없다! 드라마 때문에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지도 못하겠다!”


아이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구심점이 빠진다는 선언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그러니! 도와다오! 나는 3반이 우승하길 희망한다! 3반이 위대해지길 원한다! 이는 내가 아닌 너희들만이 이루어낼 수 있다!”


여기서 한 번 끊고, 아이들의 면면을 마주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분명 힘들겠지. 쉽지 않을 거다. 그래도 친구를 믿고! 싸우지 않고! 힘을 합치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위원장인 내가 장담하지! 너네는 이길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니 나가서 승리를! 쟁취해라!”


내 말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우리들 사이에는 기이한 두근거림과 열망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3반을 위대하게!”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슬로건을 외쳤다. 상대적으로 머리가 돌아가는 다빈이 빠르게 후창을 맡았다.


“3반을 위대하게!”


그러자 나머지 반 애들도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3반을 위대하게!!! 와아아아아!”


크으. 내가 생각해도 요즘 연기력이 물이 오른 것 같다.


안 그래도 선동은 내 주특기였는데 더 호소력이 짙어졌다.


애들은 이대로 적군을 섬멸하라고 하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도륙을 내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3반을 위대하게!!!”


왜 다른 반인 지훈이가 저렇게 신나서 구호를 외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조직력은 문제가 없겠지. 내가 없어도, 아니 오히려 내가 없으니 더 의욕을 낼 터.


운동회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 그들이라는 연설을 들었으니, 싸우지 않고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불태우리라.


나는 애들에게 각 종목에 대한 팁들을 전수한 뒤, 지휘를 마무리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애들이 얼마나 터득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모르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하교할 시간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은 일렬로 정렬하여 나에게 경례를 건넸다.


깜찍하기는.


나 역시 그들에게 경례를 하며 위원장 놀이에 끝을 맺었다.


한별 누나에게 돌아가려는데 다빈이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운동회에는 못 오는 건가요?”

“존댓말 좀 쓰지 말라니까.”

“어찌 주인에게...”

“정보부대 수장 바꾼다?”

“... 핫! 시정할게.”


운동회에는 관심이 있다. 학창시절의 꽃 아닌가. 그러니 갈 수 있으면 가고 싶은데 일정이 될는지 모르겠다.


“최대한 시간을 내 볼게. 제일 마지막 종목에 이름만 올려둬.”

“넵! 아니 응! 맡겨둬!”


다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한별 누나는 그 사이 조금 진정한 듯하다. 내가 돌아가자 히죽 미소를 짓는 걸 보아하니 말이다.


“이열. 이래서 위원장이라는 거구나. 일반적인 반장이라는 말로는 표현을 다 못하겠어.”

“뭐 그런 거죠.”

“역시! 박상혁 위원장 동지!”

“놀리지 마요.”


한별 누나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위원장 동지라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다.


부디 촬영장에만 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 가볼까? 나 이 동네 소개 좀 시켜줘.”


자연스럽게 동네 투어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난입으로 출발이 제지당했다.


“안 돼!!! 상혁이는 나랑 놀 거야!”


날씬한 너구리가 날렵하게 뛰어와서는 나와 한별 누나 사이를 갈라 버렸다.


그리고는 나한테 찰싹 붙어서 그르렁거리기 시작했다.


한별 누나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설명을 요구했다.


“제 친구에요.”

“하나뿐인! 첫 번째 친구 장승윤이에요!”


그 말을 들은 한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이.


그리곤 팔짱을 끼고 고개를 치켜 올렸다.


“안녕. 나는 유한별이라고 해. 유명 드라마 나비효과의 여주인공이고, 동시에 상혁이랑 친밀한 관계이기도 해.”


너구리의 눈에 불길이 타올랐다. 한별도 질세라 눈을 크게 뜨쳤고.


만약 눈으로 레이저를 쏠 수 있었다면 이미 두 힘의 충돌로 인해 시공간이 붕괴되었을 것이다.


“상혁이는 오랜만에 학교에 왔어요! 저랑 놀 거란 말이에요!”

“이런 이걸 어쩌니. 나도 소중한 휴가를 쓰고 온 건데. 설마 상혁이가 멀리서 온 손님을 내치겠니?”


두 사람은 열렬히 내 시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그리고 나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내 말이 맞지 상혁아?”

“그렇지 상혁아?”


어째서 다투는 건 두 사람인데 부담은 나의 몫인 걸까.


차마 여기서 내가 잘난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랬다간 정말로 반으로 갈라질 것 같아서.


다행히 중간에 생각할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눈치를 살피던 선생님들이 한별 누나에게 싸인을 받기 위해 접근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동안 나는 침착하게 행동지침을 정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은 최대한 공정하게 처리하는 게 좋다.


“어? 나까지만 해주면 안 될까?”

“죄송해요. 원래는 소속사랑 상의를 해야하는 문제여서요.”


한별 누나는 싸인 요청이 끝이 없을 것 같자 적절히 선을 그었다. 그 모습이 전문가 같아서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선택할 시간이 다가왔고 장시간의 고민 끝,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승윤이랑 노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아자! 상혁이 최고!”

“어째서?”


한별이 정말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기에 빠르게 이유를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승윤이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거든요. 누나랑은 내일도 볼 수 있잖아요.”

“그럼, 그럼!”


승윤이가 옆에서 거들먹거리며 뻣댔다.


저러고는 있어도 그동안 울면서 기다린 아이다. 숙제도 열심히 하고 착한 아이로 있었고.


그런 아이에게 한 때의 즐거움마저 빼앗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


“어른인 누나가 양보해주세요.”

“흥. 오늘 엄마가 너랑 통화하고 싶다고 했는데. 차기작 관련 이야기 하자면서.”


명분에서 밀리자 실리를 들이미는 한별이다.


그리고 차기작은 중요했기에 대충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금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상혁아!”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불렀다. 또다시 들이닥친 선택의 시간.


승자는 의외의 인물이었다.


저 멀리에서 거구의 남자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전력을 다해서.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최근에는 별로 못 본 얼굴인 것 같기도 하고.


“상혀그아아아아!”


아 생각났다. 저 탐욕에 찌든 눈동자.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고 공부 기계로 보는 남자. 교류회 회장이었다.


“주니어 올림피아드 나가러 왔구나아! 오늘인데 답이 없어서 걱정하고 있었다아!”


맙소사. 어쩐지 부재중 전화가 이상하리만치 많이 찍혀 있더라니.


생각해보니 그런 대회에 나가기로 했었다. 그게 8월이었던 것 같고.


사전에 약조한 거라 거절한 명분이 없었다. 하필 휴가인 날에 이렇게 겹치냐. 운도 지지리도 없지.


촬영이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아쉽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자세한 이야기는 소속사를 통해... 끄악!”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이미 공부에 눈이 돌아간 교류회 회장은 나를 옆구리에 끼고 차로 향하는 중이었다.


“하하. 이렇게 온 걸 보면 그동안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자신감이겠지?”

“공부는 자신 있긴 한데... 꼭 가야 하나요?”

“크하하 나는 오늘만을 기다렸다고!”

“사람 말 좀 들어요!”


동문서답을 하는 걸로 보아 시험이 끝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대화가 안 통할 것 같다.


아마 교장이 정보를 뿌리지 않았을까 싶다. 나중에 복수를 하고 말리라.


결국 치열한 상혁 쟁탈전의 승자는 교류회 회장이 되고 말았다.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어벙하게 있는 승윤과 한별 누나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어떻게든 2시간 안에 돌아올게요!!! 갔다 오면 세 명이서 같이 놀아요!!!”


두 사람이 뭐라고 대답을 하고 있지만 이미 너무 멀어진 상태라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아무런 반발 없이 사이좋게 약속을 잡을 수 있었으니 이득일지도 모른다.


그래. 까짓 거 수학 대회. 관우 운장의 마음가짐으로 빠르게 끝내고 돌아와야겠다.


전국 대회라고? 우리나라에서 잘난 꼬맹이가 다 모인다고?


그래봤자 꼬맹이에 불과하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


다 썰어버리고 복귀하자. 두 사람의 어색한 사이가 풀리기 전까지.


* * *


상혁이 떠나고 남은 두 사람이 시선을 교환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연장자인 한별.


“주니어 올림피아드...? 그거 큰 대회 아니니? 2시간 안에 돌아오는 거 맞아?”


승윤은 여전히 매운 너구리 모드였지만 눈을 흘기면서도 대답은 해주었다.


“그럴 거에요. 상혁이는 천재니까.”

“아무리 그래도...”

“상혁이가 한다고 선언한 일 중에 이루지 못한 건 없어요.”


단호한 대답. 그러나 이어지는 질문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럼 우리 2시간 동안 뭐하지?”

“...”


어색한 바람이 두 사람을 훑고 지나갔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관심을 보내주시는 독자님들 덕분에 오늘도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54 so****
    작성일
    22.12.16 03:31
    No. 1

    내가 만약 저 초등학교 지나가다 위원장 놀이 하는거 봤으면, 해당 반의 교사를 간첩으로 신고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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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가만히 있어도 22.08.23 711 13 19쪽
102 운이 좋은 날 22.08.20 745 13 19쪽
101 외양간을 고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1 22.08.19 745 11 17쪽
100 돈이 삭제가 된다니 +4 22.08.18 745 9 18쪽
99 투자는 계획적으로 22.08.17 771 10 28쪽
98 돈이 복사가 된다 +1 22.08.16 755 11 18쪽
97 대역전극 +1 22.08.13 722 11 11쪽
96 역전의 서막 +1 22.08.13 713 10 12쪽
95 구설수 22.08.12 731 12 18쪽
» 박상혁 쟁탈전 +1 22.08.11 764 10 20쪽
93 위대한 령도자 박상혁 동지를 맞이하라! 22.08.10 789 13 22쪽
92 지금까지 이런 판매는 없었다. 이것은 팬미팅인가 판매인가. 22.08.09 763 12 20쪽
91 광고를 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2 22.08.07 798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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