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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마법 포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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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후
작품등록일 :
2023.01.26 19:26
최근연재일 :
2024.04.15 16:4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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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26
추천수 :
564
글자수 :
219,792

작성
24.04.1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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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EP6. 구두장이

DUMMY

민트와 초콜릿의 결합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위험하다.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단히 위험하다. 그 둘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을 본다면 그 즉시 도망쳐야 한다.


이건 상식이다.


마치 몇 세기 전까지 피부가 까만 사람은 악마의 자식이며, 따라서 노예로 부려 마땅하다는 논리와 같은 수준으로 극단적이지만. 그런 극단성과는 하등 상관없이 이 둘은 상식이었다.


상식은 딱 이 정도 무게를 가지는 낱말이다. 하면 이 저울의 반대편에 개념이라는 낱말을 올리면 어찌 될까. 답은 간단하다. 그저 수평을 이룰 뿐이다.


예컨대 오늘날 인권은 짐승들에게까지 적용되며, 그리하여 마침내 흑인들에게도 영혼의 소유가 허락되었다. 독과 약은 그 경계조차 희미하고, 왕과 노예는 사멸한 지 오래다.


그리하여 민주공화주의가 옥좌의 공백을 대신하게 되었지만, 이 첨단의 시대에 이르러서도 역시나 이전처럼 소수가 다수를 지배한다. 이 구조를 지탱하는 건 공통적으로 소수에 의해 독점된 폭력이다.


그렇다면 가장 우월한 개념은 폭력일까?


만약 정말로 그런 사상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한들, 어디 가서 당당하게 떠들지는 못하겠지. 그게 가장 멍청한 소리라는 것쯤은 당사자부터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천서진이 늘어놓은 건 딱 이런 수준의 이야기였다.


‘완벽하게 좋은 개념이란 누구에게나 좋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완벽함은 너무나도 완전해서 이 불완전한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추려냈다.’


‘내 마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야말로 본인이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마법사들의 태도였다. 적당히 회의적이고, 적당히 차갑고, 적당히 매력적이지만, 그래서 발전의 가능성을 거세해버리는.


요즘 말로는 자기합리화라고도 하는데, 바로 그러한 특징이 종족의 전반에 깔린 까닭에 나는 마법사들이 싫었다. 힘세고 머리 회전 빠른 애새끼들이 그대로 나이만 쳐먹은 꼴 아닌가.


아무리 마법이란 요술이 주관에 객관을 종속시키는 작업이라지만 한번 경계를 혼동하면 그리 되어버리고 만다. 천서진의 주장도 거기에서 크게 진보하지는 못한 형태였다.


······그런 셈 치기로 했다.


“하사장님, 여기가 우리 방이에요.”


다시 들려온 그 대사에 의식적으로 손목시계를 확인했지만, 고장이라도 난 모양인지 요상한 시간에서 멈춰있었다.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이번에도 이렇게 말했다.


“그렇구나?”

“네, 그리고 상-, 너는 저쪽.”

“어-, 어.”


이미르는 태연하게 다른 방의 카드키를 내밀고 있었다.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아신이 내 눈치를 보려고 들자, 감히 머리를 굴릴 시간 따윈 주지 않겠다는 듯 빠르게 쐐기를 박았다.


“뭐해? 안 가?”


그리고 그 말에, 이번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신은 대단히 불경하게, 마치 ‘아, 그런 거였어?’하는 식으로 눈깔을 고쳐 뜨더니.


“···아, 가야지. 그럼. 반드시 가야지.”


이딴 소리를 내뱉으며 멀어졌다.


“흐.”


그 뒷모습을 쳐다보던 빨간 머리 계집애의 입에서는 이런 소리가 튀어나온 것도 같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



*



일반적으로 우리는 상식과 사회성의 틀을 크게 벗어난 사람들을 미쳤다고 한다. 누군가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때, 그저 미쳤다고 치부하면 단순해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미친 사람들에게도 마음은 있다.


저마다의 기분도 있고, 나름의 논리도 있다. 단지 제정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질타하거나 무시하는 게 오히려 광인의 소행이다.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떠올릴 뻔도 했다.


“하사장님, 여기 욕조 넓네요? 둘이 들어가도 되겠어요.”

“···미르야,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니.”

“둘이 들어가도 되겠어요.”


욕실에서 머리만 빼꼼 내민 채 지껄인 소리였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 위대한 선현께서 내려주신 가르침이지만, 여기에는 사소한 오류가 묻어있었다. 사람은 고쳐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덜 고친 사람은 쓰는 게 아니다.


“농담이에요.”


괴담이겠지.


“···어른 놀리면 재밌냐?”

“아저씨 소리는 그렇게 싫어하시더니?”

“그야 나는 아직 그리 불릴 나이도 아니고, 애초에 너랑 나이 차도 그렇게 막 심하게 나지는-,”

“그럼 이제부터 오빠라고 불러요?”

“······그것만은 참아다오.”

“네, 오빠.”


그러고는 저 혼자 배시시 웃고 자빠진 꼴이었다.


급격하게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그래. 누가 말한다고 들으면 저 계집애 이름이 이미르가 아니었겠지. 당연한 사실을 재차 깨우친 내가 후회와 절망과 비탄에 빠지려던 차였다.


두어 번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문 건너편에서 누가 말했다.


-“교수님이 찾으십니다.”


나직하니 사무적인 목소리. 거기 담긴 내용은 저 계집애의 헛짓거리를 잠재우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결국 이미르도 또래 계집애들처럼 실실거리다 말고 비슷하게 사무적인 투로 답했다.


“······금방 간다고 전해요.”


나는, 이걸 빈정거려야 할지 고마워해야 할지 갈피를 잡긴 어려웠지만, 결국 고마워하기로 했다. 저 계집애가 하는 농담을 듣고 있으면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었으니까.


물론 내 혈중 수분농도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이미르는 얌전히 밖으로 나가다가 이런 소리나 지껄였지만.


“그렇게 됐으니까 이따 이어서 해요?”

“······뭘?”

“그걸 내 입으로 말하라고요? 음흉해.”


도대체 뭘 어떻게 왜 이어서 하는데. 게다가 음흉할 건 또 뭐라는 말인가. 이 나이 먹고 계집애처럼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이미르는 이미 방에서 나가버린 뒤였다.


빌어먹을.


나는 굳게 닫힌 문을 잠시 쳐다보다가 습관적으로 안주머니에 손을 쳐박았다.


그런데 늘 거기 있어서 부스럭거려야 할 무언가가 잡히지 않았다. 내 약. 그걸 놓고 왔을 리는 없다. 알약들에 발이 달려 도망이라도 간 게 아니라면.


······아니라면.


발작 증세가 올라오는 가운데 가만히 기다려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내 목을 조르는 사람이 없었다. 내 이름을 부르며 시끄럽게 떠들어대지도 않았다.


손목시계는 여전히 같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천서진이 적힌 활자들을 잠시 떠올리다가 관뒀다. 어차피 불모한 소리다. 이미르가 돌아오면 나눌 대화나 정리하는 편이 낫겠지.


내가 쓸데없이 커다란 침대에 몸을 맡기고 눈을 잠깐 감았다 뜬 순간이었다. 영 낯설지만은 않은 얼굴이 코앞까지 와서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뭡니까.”


분명 우리를 객실까지 안내한 하얀 머리 승무원이었다.


한쪽에 커다란 청소기가 세워진 걸 보면 이미르가 방을 비운 사이에 청소라도 하러 온 셈이겠지만-, 글쎄.


“흐음.”


저 여자는 방에 멀쩡하게 사람이 있는데. 나가거나, 사과를 하거나, 하다못해 대답이라도 하는 게 아니라 ‘흐음’ 이러고 있었다.


이쯤에서 익숙하디 익숙한 정신병자의 냄새가 코를 푹푹 찔렀지만, 초면에 사람을 정신병자로 의심하는 건 엄연히 무례한 행동이다. 그리고 나는 굉장히 예의가 바른 사람이지.


한동안 나를 관찰하던 승무원은, 이내 고개를 떼더니 비로소 말다운 말을 뱉었다.


“여기는 이미르 님의 객실로 아는데. 제가 착각했을까요.”


그 입에서 튀어나온 건 감동스러울 정도로 평범한 대사였다. 비록 행실은 아주 약간 이상했지만, 이 정도면 의심할 여지 없이 정상인의 범주였다.


세상에, 이렇게 정상적인 사람을 정신병자로 오해할 뻔하다니. 역시 사람은 선입견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아니요. 맞습니다.”

“그럼-, 아. 아하.”


발음 사이사이의 간격이 미심쩍기는 했지만, 정상인인 만큼 정상적으로 짐작하고 정상적으로 이 상황을 이해한 거겠지. 과연 내 예상이 옳았는지, 이어지는 대사마저 아래와 같이 깔끔했다.


“실례했습니다.”


공손하게 허리까지 숙인 다음. 그녀는 주섬주섬 챙겨온 청소 용구를 챙겨 나가다가 뭔가를 깜빡했다는 듯.


“아.”


하고, 말했다.


“시트는 깨끗하게 써주세요.”

“그거야 물론-,”

“피는 지우기 힘드니까 조심해주시고, 모쪼록 부산물은 변기에 버리지 말아 주시면 좋겠네요. 그럼 이만.”


······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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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EP6. 구두장이 24.01.27 45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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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EP5. 어차피 이 세상은 +5 24.01.16 77 13 9쪽
34 EP5. 어차피 이 세상은 +1 24.01.15 65 10 11쪽
33 EP4. Libra +3 24.01.13 84 12 12쪽
32 EP4. Libra +2 24.01.10 110 13 12쪽
31 EP4. Libra +1 24.01.08 94 12 11쪽
30 EP4. Libra 24.01.06 85 12 11쪽
29 EP4. Libra 24.01.02 90 10 13쪽
28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2.30 98 13 9쪽
27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2.28 96 8 10쪽
26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2.26 99 8 11쪽
25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2.21 91 11 10쪽
24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23.12.20 100 8 10쪽
23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2 23.12.16 108 9 11쪽
22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2 23.12.11 133 13 14쪽
21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23.12.08 122 11 12쪽
20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2 23.11.30 126 1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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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P2. 하얀 말, 검은 말 +2 23.06.09 199 8 9쪽
14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05.25 195 14 10쪽
13 EP2. 하얀 말, 검은 말 23.05.12 206 14 9쪽
12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05.05 221 16 12쪽
11 EP2. 하얀 말, 검은 말 +2 23.05.02 226 18 10쪽
10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04.27 249 19 10쪽
9 EP2. 하얀 말, 검은 말 +2 23.04.25 244 15 9쪽
8 EP2. 하얀 말, 검은 말 +3 23.04.20 266 16 12쪽
7 EP2. 하얀 말, 검은 말 +4 23.04.19 281 15 18쪽
6 EP2. 하얀 말, 검은 말 23.04.18 336 20 14쪽
5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04.17 371 19 10쪽
4 EP2. 하얀 말, 검은 말 23.04.14 429 25 11쪽
3 EP2. 하얀 말, 검은 말 +2 23.04.13 606 2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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