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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마법 포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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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후
작품등록일 :
2023.01.26 19:26
최근연재일 :
2024.04.15 16:4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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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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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
글자수 :
219,792

작성
23.04.1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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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EP2. 하얀 말, 검은 말

DUMMY

나는 눈앞의 이사야라는 인물에 대해 모른다. 정확히는 잘 몰랐다. 원작에서의 언급도 ‘그런 성당 기사가 있다.’ 수준이었고, 특별히 그 인간상을 추측할 단서도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사업이요?”

“백진우 씨. 그 늑대인간 찾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이 대화가 오갈 즈음에는 이사야라는 개인에 대한 파악이 어느 정도 끝나있었다. 웬걸, 나는 젊은 나이에 좋은 자리 꿰찬 인간의 전형에 관해서라면 정말로 전문가였으니까.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 났다고 생각하는 이런 인간들은, 요컨대 세상에서 제일 등쳐먹기 쉬운 부류였다.


“그렇기는 한데···. 방금 본인 입으로 백진우 씨 납치 사건하고는 무관하다 주장하지 않으셨나요?”

“예, 뭐 그렇긴 합죠.”

“본인 입으로 본인이 ‘고작 1위계 나부랭이’라고도 주장하셨고요. 방금 일은 분명 사과를 드렸을 텐데요?”


얕게 한숨을 내쉰 이사야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저기요 하이안 씨. 혹시 제가 호구로 보이시나요?”


합리적인 대꾸였다. 제 입으로 아무것도 모른다던 1위계 나부랭이가, 갑자기 흐름 좀 타더니 봉 잡았다는 식으로 굴면 저런 태도를 취하는 게 일반적으로 옳으니까.


여기서 예, 라고 말하면 저 여자는 어떤 식으로 발작할까. 그 반응도 보고 싶기는 했지만, 이런 부류에게는 내 스승이 가르치길 ‘세련되게 말하는 법’이 훨씬 더 효과적인 법이었다.


“에이, 호구는 무슨. 그냥 마침, 참으로 우연히! 제 전문이 사람 찾기라는 말씀을 드리려던 것뿐인데.”

“전문이고 뭐고. 애초에 하이안 씨 당신 실력이-,”

“얼마 전에 직장 동료 한 분 실종되셨죠?”

“-···?”


이사야가 한순간 멈췄다. 지금까지의 문맥에서 벗어난 대사에 잠깐 뇌가 고장났다가, 방금 들은 대사를 머릿속에서 재생하겠지. ‘얼마 전에’ ‘직장 동료’ ‘실종’. 그 의미의 해석을 마치고 나면······,


-쾅, 싸구려 합판 테이블이 그녀의 손길 한 방을 버티지 못하고 박살 나버렸다. 나는 이사야의 굳은 얼굴을 조용히 쳐다보다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업 이야기, 하실까요.”



*



핵보유국은 핵무기를 잃어버려도 우리나라 핵무기가 사라졌다고 광고하지 않는다. 성당 기사, 즉 성물 사용자의 손실이 일어난 경우 성당에서 그 사실을 은닉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까발렸고, 그리함으로써 이사야에게 내가 최소한의 능력이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당신이 부린 행패를 덮고 넘어가 줄 테니 돈 내놓으라는 썩어빠진 수작질이 아니라, 어느 정도 합리적인 거래라는 명분을 제시한 것이다.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후에 변명할 일이 생겨도 변명할 거리가 생긴다. 결국 내가 내민 손을 쳐낼 이유가 없게 된 이사야가 이야기한 사건의 정황은 이렇다.


─모월 모일, 백진우라는 늑대 인간이 납치당했다.


현장의 CCTV에는 누군가가 마법을 사용해 그를 납치하던 장면이 그대로 찍혀있었다. 마력흔을 추적해보니 그건 의태 계열의 마법을 전공한 어느 공인 마법사의 것이었는데, 그는 사건 이전 시점에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수법의 깔끔함으로 보건대 더 따져보지 않아도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였다. 필시 범인이 세상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리라 여긴 성당은 이 사악한 마법사를 추적하던 도중 어떤 폐공장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라, 거기에는 한참 예전에 종적을 감춘 마력범죄자의 마력흔이 또 떡하니 찍혀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다른 한쪽의 마력흔은 남지 않은 걸 보면 둘은 한패라고 보는 게 타당했다.


즉, 마력범죄자의 조직이 암시되는 것이다.


마법사들이란 본디 지독한 개인주의를 지향하지만, 당신이 말했듯 얼마 전 소식이 끊긴 성당 기사 한 사람의 건도 있겠다. 이 건과 그 실종 건은 분명히 연관이 있으리라.


과연, 마력범죄자 나부랭이들이 성당 기사씩이나 되는 인재를 해치우려면 뭉치기도 엄청나게 뭉친 게 틀림없다.


그렇게 확신하던 중, 조사를 진행하다 보니 얼마 전 그놈의 폐공장 부지 가격을 알아보던 청년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거기서 나한테 이어졌구나 싶었다.


“그 청년이 하이안 씨, 당신이었다는 거고요.”


말을 맺은 이사야는 이제야 나를 아주 약간 믿어주기로 했는지, 새로 타준 믹스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곤 ‘윽,’ 하는 표정을 지었다.


기껏 열심히 타줬더니 저런 반응이라니. 나는 최대한 침울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입을 뗐다.


“예, 잘 들었습니다.”


은퇴하면 소설가를 해보는 건 어떠세요, 덧붙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사야는 진상을 전부 말한 게 아니다. 이 상황에서 나를 신뢰하고 모든 사정을 털어놓았다면 ‘나는 병신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완벽하게 같은 말이니 이해는 간다만.


그래도 도와준다는데, 구라를 더 많이 섞은 건 조금 괘씸했다.


“물론 그 밖엔 단서도 없으셨다니 참 막막하셨겠죠. 하지만 고작 그 정도 증거로···,”


이어서 뱉을 단어에 웃음이 터질뻔했다.


“무고한 시민을 그리 박해하시면 씁니까.”


내 개그에 이사야는 폭소를 터트리는 대신 “윽.”하고, 이번에는 입으로 소리를 내서 반응했다. 뭐가 양심에 찔리기는 하는 모양이지. 본인 입으로 늘어놓은 쥐꼬리만 한 증거로 나한테 칼을 들이민 건이든, 그 밖에 무언가든.


“아니, 그런데 애초에 그 부지를 알아본 게 이상하잖아요. 사무실 개업할 사람이 뭐하러 그런 외진 땅을 알아봐요?”

“낭만 있잖아요?”

“···낭만이요?”

“예, 결국엔 너무 비싸서 포기했지만요.”


이사야는 내 낭만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나는 신에게서 낭만을 느끼지 못한다. 따져보면 피차일반이라 그녀에게 이해를 강요하는 대신 악수를 권했다.


“아무튼, 저를 믿고 맡겨주셨으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네, 뭐···. 저도 잘 부탁드려요.”


떨떠름하게 악수를 받는 이사야에게,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한마디를 덧붙여줬다.


“아, 그러고 보니 이걸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네.”


그리고서는 계산기를 두들겨 내밀었다.


“액수는 이렇게 되겠습니다만.”

“······계산, 잘못하신 것 같은데요?”


거기 적힌 숫자를 본 이사야는 말만 점잖았지 눈으로는 쌍욕을 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대놓고 사기라도 친다는 것처럼 쳐다보는데, 청렴한 소상공인인 나로서는 대단히 억울할 따름이다.


“아니죠. 맡겨주신 의뢰가 총 네 건이라서 그런 건데.”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가며 풀어주자면.


“하나가 백진우라는 늑대 인간, 둘이 그 늑대 인간을 납치한 마법사, 셋이 그 패거리, 마지막으로 실종된 동료분까지. 총 네 건, 그러니까 액수도 통상금액의 네 배가 됐다는 말씀입죠.”


내 말이 거듭될수록 이사야의 시선이 점점 썩어가더니, 이내 쓰레기를 보는 눈깔이 되어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았다. 나는 이사야의 입술에서 ‘개소리 말라’는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재빨리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첫 손님이시고 하니까, 현금으로 결제하시면 특별히 눈 딱 감고 20퍼센트 빼 드립죠. 콜?”



***



한참 동안 버러지를 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이사야는 결국 특가 80퍼센트로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돌아갔다.


정말이지 돈 따위는 썩어 넘칠 텐데 더럽게 쩨쩨하게 굴더라.


부자들이 소비를 펑펑 해대야 경제가 굴러간다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지. 성당에서 신학은 가르쳐도 시사 상식은 알려주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람이 저런 수전노로 자랄 수 있을까.


물론 아무리 돈이 썩어난들 생돈을 하수구에 갖다 버리는 건 아깝긴 할 거다. 백번 양보해 이사야의 입장을 헤아려주자면, 대충 그런 비슷한 감정이었겠지.


그럼에도 이사야가 내게 사정을 조금이나마 설명한 것은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감 때문이고, 애초에 내게 기대 같은 건 요만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저 입장이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웬 생판 듣도 보도 못한 신인이 ‘나 이거 할 수 있어요!’ 하면서 나대고 있으면 나 같아도 못 미덥다. ‘어, 그래 해봐.’ 하면서 이상한 일을 대신 던져주는 게 맞긴 하지.


뭐, 그게 맞기는 하다.

맞기는 한데.


그런 이사야에게도 하나 알아줬으면 하는 건 있다.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말만은 빈말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가족이 사라져 있었다. 친구였던 사람들, 지인, 다녔던 학교, 회사를 비롯한 모든 사회와의 연관점이 사라졌다. 밖에 나가보면 비슷한 풍경인데 이질적인 것들이 눈에 꽂혔다.


하루아침에 나 혼자 별세계에 떨어져서 얼마간 열심히도 살아왔다. 나 같은 소시민이 주제에도 안 맞는 일들을 꽤 여럿 벌였다. 결국 나를 위해서지만, 다 너희 세상까지 구해주겠다고 하는 일이다.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원작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제는 웃긴, 이 세계의 미래에 부단히도 날갯짓을 해댔다. 그 날갯짓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오늘 미풍이 되어 불어왔는데, 어처구니없게도 그 덕분에 실감이 들었다.


내가 일으키려는 게 태풍이긴 하다는 실감이.


“죄송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시는데요.”


······그런데 지금 그 날개가 꺾이려고 하고 있었다.


“절대, 안 되세요.”


비중 있는 주연이나 악역, 하다못해 조연조차 아닌 마탑 행정실 직원의 손에 의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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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33 ijason05
    작성일
    24.02.04 16:29
    No. 1

    ㅋㅋㅋㅋㅋ 재밌네요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부분이요. 또 갑작스레 비행기가 뜨지 못하게 하는 타지에서 낙오되어 살아가는 설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니 그 공감도 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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