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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마법 포식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헌후
작품등록일 :
2023.01.26 19:26
최근연재일 :
2024.04.15 16:4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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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89
추천수 :
564
글자수 :
219,792

작성
23.12.20 14:32
조회
97
추천
8
글자
10쪽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DUMMY

영원히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전성기의 육체와 정신으로, 영원히 풍화되지 않은 채 생을 지속하고 싶다고.


스스로 내면에서 존재와 죽음에 대한 고민이 대두되는 사춘기 무렵 흔히들 하는 상상이었다. 사람들은 대개 그쯤 그런 허무맹랑한 욕구를 품고,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강물에 흘려버렸다.


분명 이유는 제각각일 테였지만, 여러 사람의 낯간지러운 감상을 한데 수집한 결과는 놀랍게도 비슷했다.


영생은 삶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표현이 서투른 사람들은 보통 ‘말도 안 되고 불가능하니까’라고 포장하지만, 그건 요컨대 이런 의미였다. 선분이 아닌 것을 삶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말이 지저분해졌는데, 극단적으로 깎아내면 좀 깔끔하다.


언젠가 사람은 죽는다. 모두 죽는다. 행성도 죽고 은하계도 죽는다. 영원히 산다는 건 그다음에도 살아있어야 한다는 거다. 영원이란 낱말은 따라서 낭만적이지도 고상하지도 않다. 단지 끔찍할 뿐.




늦은 오후, 나는 오늘 놀랍게도 출근이란 걸 했다.


밤새 머리를 싸매고 있느라 피곤하긴 했지만, 오늘마저 쉬어버리면 사무실을 일주일 통으로 비워두는 꼴이었으니까.


일주일이라니.


출근을 하나 자체적 무급휴가를 보내나 소득 자체는 같겠지만, 월세가 아까워서라도 나오기는 해야 했다.


그런데 왜 시간대가 ‘늦은 오후’인고 하면, 여기에도 사연이 있었다. 정확히는 녀석한테 ‘나가자’고 한 게 원인이었지.


녀석은 외출을 시사하는 말을 듣자마자 ‘산책가자’는 소리를 들은 반려짐승 마냥 파닥거리더니, 끝내는 구석에 수북이 쌓인 쇼핑백 내용물들로 패션쇼를 시작했다.


유독 즐겁게 보던 사악한 킬러 영화 하나에서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는데, 그걸 같이 본 내게는 그 속내가 너무나도 투명하게 보여서 더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사무실에 오긴 왔다만, 한동안 새로운 공간을 열심히 탐험하던 녀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를 잃고 다시 내 무릎 위를 점거하고 있었다.


덕분에 내 머릿속 사전에는 요정이란 단어에 ‘개돼지와 고양이를 융합한 짐승’이라는 정의가 추가됐지.


생물학은 언제 봐도 참 신비로운 학문이었다. 고작 그뿐인 생물이 퍽 쓸모있는 눈물을 뱉는 키메라가 된다는 점까지 포함해서.


“?”


혼자 실실 쪼개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더니 녀석이 고개를 팍 들어서 뭐가 그리 재밌냐는 듯 꼬나봤다. 하지만 저 표면적인 의사표시는 녀석의 본의가 아니다. 자기한텐 지금 이 공간이 미치도록 지루하니 당장 나를 이 지루함에서 해방시키라는 뜻에 가깝겠지.


빌어먹을 녀석 같으니.


“······.”


요것 봐라.


이 배은망덕한 게 이제는 눈살까지 찌푸리고 자빠졌군. 심지어 쬐끄만 볼따구 안에는 혁명의 불씨마저 활활 태우고 있었다.


나는 그 헛바람만 잔뜩 차서 복어처럼 부푼 볼을 쫙 눌러 공기를 빼낸 다음, 적당한 영상물을 틀어줘서 가볍게 제압했다.


그렇게 녀석이 로봇이 공룡으로 변신하는 정신 나간 영화를 보느라 신경이 팔린 동안, 나는 슬쩍 일어나서 소파로 도망쳤다.


마음 같아서는 아예 사무실 밖으로 나가서 숨을 돌리고 싶었다만, 이미르처럼 든든한 경호원이 24시 붙어있는 것도 아닌 마당이다.


녀석을 납치-감금했던 사악한 악당 집단도 이제 없으니 잠깐쯤 눈을 떼도 별일이야 없겠지만······.


‘마법사.’


세 글자가 거슬렸다.


그 판타지스러운 단어는 단적으로 마법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가리킨다. 하늘 아래 모든 마법사를. 하지만 그리 광범위한 대상이라면 굳이 언급해야 했던 의미가 없다.


내가 알기로 예지라는 것은 고작해야 인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고로 합리적인 추찰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 마법적 권능이 더해졌다고 한들 전지에 닿는 기적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녀석이 아는 마법사라고는 나와 이미르, ‘영원’을 표방했던 한 집단뿐이다. 그나마 맨 마지막은 이제 세상에 없으며, 스스로 경계하라는 종류의 교훈적 경고였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거기에는 귀여운 척을 떨어대는 갈색 털짐승이 가증스럽게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이모티콘이 잔뜩 올라와 있었는데, 특히 맨 마지막 곰은 온몸에 불길을 휘감은 채 화를 내고 있었다.


“······ ······.”


그래.


하여간 그렇다.


나라고 모든 변인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곤 처음부터 생각일랑 않았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머리에 열이 올랐다. 그 열은 내가 아직도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단 사실만을 환기했다.


거기까지 자각하자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자기가 탐험가가 된 줄로 착각하는 사람과, 자기개발서 한 권 읽고 자기 가문이 로스차일드였던 줄 아는 사람을 동시에 지칭하는 단어가 하나 떠올랐다.


병신.


한숨이나 한번 푹 쉬고 알록달록한 현대 의학의 정수를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한결 맑아진 머리로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다.


이 시점의, 하지만 활자였던 이 세상을 떠올렸다.


이때 아신은 홍혜아의 견습 직원이었다. 악의 조직을 괴멸하고 요정을 ‘구출’하는 건 홍혜아가 받은 의뢰였으며, 그녀는 그 의뢰를 통해 아신을 시험했다.


결과적으로 아신은 쓸만한 직원이었다.


그런데 그 일의 의뢰주가 그놈의 조직과 비슷한 부류의 쓰레기였다. 대면하여 요정의 눈물이 이미 소모됐음을 알게 된 의뢰주는 격노하며 둘을 덮쳤고, 홍혜아는 간단하게 의뢰주를 죽여버린다.


그런 서사였다.


······명확하게 떠오르는 상은 없었지만, 진전은 있었다. 문제가 나한테 있는 게 아닌 이상 그 의뢰주나 홍혜아가 단서겠지.


저 녀석의 미래시가 무슨 수로 어디까지 내다봤을지는 모를 일이어도 어느 쪽이든 찾아내면 그만이다. 그러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명확해지겠지.


거기까지 정리하고 계획을 세우던 참이었다.


“-우읍.”


차갑고 말랑말랑한 게 양쪽에서 내 면상을 무자비하게 압박했다. 배은망덕한 걸로도 모자라 장유유서 및 공맹의 도리마저 잊은 애새끼의 마수가 내 면상을 주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은에(뭔데).”

“······ ······.”


당연하게도 대답 따위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녀석은 북극의 추위마저 따사롭게 느껴질 법한 눈깔로 나를 쏘아봤다. 내 눈에는 그게 내 죄를 내가 알리라는 제스처로 보였는데, 나는 지금 녀석한테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이건 정말이다!


-라는 시선을 돌려주자, 녀석은 기어이 내 면상을 붙들었던 손을 놓고는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영화를 틀어준 모니터가 놓인 방향이었다. 로봇이 공룡으로 변신하는 영화였다. 그다음에는 그 손가락을 사납게 돌려 구석에 놓인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녀석은 그러고서 팔짱을 꼈다.


“!”


······그건 그렇지.

나는 빠르게 사죄했다.



*



자 그럼, 하고 누가 뇌내 토론장에서 의제를 던졌다.


Q. 사는 곳도, 만나는 법도, 심지어는 호의를 살 방법까지 아는 홍혜아를 찾아가는 것과 제대로 서술된 적조차 없는 악역을 찾아내는 것. 둘 중 뭐가 더 어려울까?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한심한 의제였다. 그야 명백한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가.


A. 전자.


이게 이 세상의 상식이었다.


비단 그 여자가 엑스트라부터 악역까지 죄 정신병자로만 이루어진 소설에서 꽤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단적으로 수준의 문제다.


모든 마법사가 영리한 건 아니지만, 어느 직종에서나 그렇듯 수준 높은 마법사는 모두 영리하다. 개중에서도 6위계쯤 되는 대마도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여간 나 같은 놈이랑은 비교도 못 할 만큼 똑똑하다.


다만···, 내 스승은 형편이 안 좋았다.


칼 든 개들한테 쫓기고 있었으니까.


제아무리 지능지수가 드높아봤자 사람이란 건 전기신호와 호르몬의 화학작용에 지배당하는 생물이었고, 그게 요상한 방향으로 뒤틀리다 보면 빛나는 인지능력도 다소 희석되기 마련이었다.


내 스승, 천진효의 경우에는 그랬다.

나한테 형편이 굉장히 좋았다.


그런데 홍혜아는 아니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그러면 나한테 형편이 안 좋은 거다. 아주 굉장히 많이 몹시 무척 대단히 안 좋은 거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무섭도록 상대의 의도를 잘 읽으니까. 스스로 읽어낸 의도에서 그 근거까지 추론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니까.


아마 나처럼 불순한 종자가 말을 걸면,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명확한 위화감을 감지하고 서서히 목을 죄어오지 않을까.


대단히 불합리하지만 지능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사람을 주먹으로밖에 제끼지 못한다. 그런데 그 고지능자가 주먹마저 나보다 매콤하면? 평생 상종하지 않는 게 낫겠지.


물론 그리 비중 있는 인물과 정말로 상종하지 않을 생각은 아니다.


그저 가능하다면 직접 마주하는 건 그 여자로부터 날 온전히 지킬 수단을 마련한 다음으로 미루고 싶었다.


적어도 어떤 뚜렷한, 원래대로라면 내게 없어야 할 근거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그녀와 마주하는 건 명백한 오류다.


해서 결론은 일단 아신을 부르는 것이다. 그놈을 홍혜아한테 붙여놓을 예정이다. 그러면 두 가지 일이 한꺼번에 해결되니까.


소설보다는 조금 이른 시점에 녀석을 구해오기는 했지만, 슬슬 그놈의 의뢰주가 홍혜아한테 연락을 넣을 즈음이기도 했고. 어쨌든 ‘요정을 회수해달라’는 의뢰를 곧이곧대로 받든 그 여자가 평화주의자인 나를 습격하는 것만은 일어나선 안 될 일 아니겠는가.


다행히 아신이라면 홍혜아와 접촉할 이유가 뚜렷했다. 그놈의 죽은 아비가 그 여자와 친분이 있었으니까.


정리를 마친 내가 아신을 사무실로 불러내려던 차였다.


똑똑, 하고.

때맞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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