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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마법 포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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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후
작품등록일 :
2023.01.26 19:26
최근연재일 :
2024.04.15 16:4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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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28
추천수 :
564
글자수 :
219,792

작성
24.02.1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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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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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9쪽

EP6. 구두장이

DUMMY

40.



「선생님은, 죄가 설탕과 같다고 하셨다.


한 방울의 물에 한 스푼의 설탕을 끼얹으면 지나치게 달다. 한 컵의 물에 한 스푼의 설탕을 끼얹으면 그만큼 덜 달아진다. 같은 양의 설탕을 대해에 끼얹은들 아무런 맛의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희석하면, 옅어진다.


어쩌면 죄는 소금과도 같다. 짓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저지른 죄의 농도는 바닷물과 같다. 모두가 제 입으로 삼키는 대신 바다에 내다 버린 끝에 아무도 삼킬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정하루에게 일어난 일은 전부 나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책임을 지는 사람은 오롯이 나여야만 했다. 그게 최소한의 도덕일 테니까. 그런 이유에서 나는 내 목덜미에 박히는 송곳니의 감촉을 느끼며 안도했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제대로 벌을 받고 있었다.


단지 그 사실에 안도하며, 멀어지는 시선을 자유로이 놓아주려던 찰나였다.


──하늘에서 색채가 내려왔다.

새하얀 세상이 붉게 타오른다.


아지랑이로 녹아내리는 풍경의 한가운데. 눈에 익은 불길 너머로 누군가가 정하루의 머리를 밟고 서 있었다.


“상머저리, 나 좀 납치해줘.”」



그런 장면이 있었다.


이상론자들의 흔한 착각으로 빚어진 오차다. 가슴팍에 품은 이상이 확고할수록 곧잘 현실과의 경계를 혼동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내가 읽었던 아신은 그 결과로 희생하지 못해 안달이 난 정신병자이기도 했다.


자기 잘못은 아무리 작아도 외면하지 못하고 무슨 수로든 감당하려 들었다. 그래서 보기 좋았지만, 멀리서 보기에만 좋았다. 막상 옆에서 보고 있자니 위태롭기 짝이 없는 놈이 따로 없었다.


물론 내가 알던 것보다는 살짝 나아진 것도 같았지만···, 전체적인 평가를 뒤집기에는 아직도 행실이 심히 수상쩍었다. 세간에서는 자기 목에 칼 박아 넣으려는 사람 역시 정신병자라고 평가했으니까.


하여간.


나는 지금 그런 감상 나부랭이를 주절거리기보다 우선해서, 반드시 외쳐야만 하는 대사가 있었다.


“바다다!”

“···바다네요.”

“···그러게요.”


그런데 뭘까.

이 미적지근한 반응들은.


혹시 이 녀석들은 이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핏덩이들인데, 한 놈은 아까 전까지만 해도 사경을 헤맸고 이 계집애도 나름대로 복잡한 사정이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어른인 내가 관용을 발휘해야겠지. 하지만 두 번의 실수는 용납하지 않으리라 맹세하며 다시 한번 외쳤다.


“바다다-!”

“······바다네요.”

“······그러게요.”


쯧.


바다에 오면 ‘바다다!’하고 외친다. 옆에서는 ‘우오오!’하며 바닷물에 뛰어든다. 이건 상식이다. 이런 간단한 상식조차 공유되질 않는다니. 이게 바로 현대 교육체제의 슬픈 실체가 아니고 뭐겠는가.


역시 요즘 애들은 글러 먹었다.


“내가 너희 나이 때는 물만 보면 뛰어들고 그랬는데.”

“······지금 겨울인데요.”

“청춘의 심장, 뜨거운 피. 뭐 그런 건?”

“······글쎄요. 선생님은요?”

“나는 식었고.”

“저도 식었는데요.”

“······그래.”


차가운 청년들 같으니.


떨떠름하다 못해 입안에 쓴맛이 돌 지경인 와중이었다. 반대쪽에서 입을 여는 사람이 있었다. 우중충하게 시꺼먼 코트를 걸친 이미르.


“그래서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물론 나는 저 말의 의미를 조금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뭐가?”

“저게 왜 있죠.”


‘저거’란 물건을 지칭하는 대명사다. 이건 상식이다. 하지만 이미르는 그 어휘를 사용하며 아신을 향해 눈짓했다. 이상한 일이지 뭔가.


저 계집애가 제정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말의 용법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쓰는 바보는 아니었다. 그게 참 이상해서 되물었다.


“온다고 했잖아?”

“하사장님이 날 속였어······.”


물론 그런 식으로 믿었던 사람한테 칼이라도 맞은 것처럼 말해도 딱히 감흥은 없다. 심지어 약관에는 다 적힌 내용이었다. 본인이 동의한 주제에 다른 소리를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날 속였어······!”


이래서 말은 신중하게 뱉어야 하는 법이다.



*



이미르는 꽤 여러 사람에게 협조를 받아내고 있었다.


그 계집애 본연의 놀라운 사회성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도자는 적당히 우수한 편이 전체에게 편리하므로.


이가람이 자기 자식을 쳐내려는 이유가 정말로 더 나은 후계를 발견해서라면 처리를 돕는 편이 자기한테 유리하다. 동시에 다음 세대 지도층에게 빚까지 지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 않겠는가.


놀랍게도 그들은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한다.


지나치게 단순한 정치관을 보고있노라면 오한이 다 들 지경이지만, 마법사란 종족들은 원래부터 좀 그랬다. 그네들한테 이건 지나치게 복잡하게 굴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남의 후계자를 담글 작당을 꾸미면서 보복을 우려하기보다는, 되레 ‘이딴 협잡질 하나 못 이겨내서야 장래에 어찌 의원으로 우리를 대표하겠냐?’는 식으로 받아칠 논리를 준비해놓는다.


그리고 그딴 개소리가 진짜로 들어 먹히는 게 이들의 세계였다.


보다 우아한 사회를 구축해낸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아혈들을 출생만으로 깔아뭉개며, 누구보다 고매한 척을 떨어대는 괴물들의 사회란 딱 그만큼 야만스러웠다.


그런 사정을 대강 일러줬더니 튀어나온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그런 개인사를 저한테 알려주셔도 돼요?”


지나치게 상식적인 소리라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이러면 마치 내가 이 애새끼보다 비상식적이고 야만적인 인간으로 타락해버린 것 같지 않은가. 순순히 믿기 어려운 가정이었다. 천만에 하나라도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로 혹시나 싶어 되물었다.


“안 될 거 있나?”

“없긴 하죠?”


그러면 그렇지.


애초에 이건 나 정도의 상식인이 비상식을 저지르면서나마 일러둬야 하는 내용이었다. 자의는 아니겠지만 여기 있는 시점에서 아신도 이미 당사자가 되어버린 셈이니까.


게다가 저 계집애도 자기 이야기 좀 했다고 불평하진 않겠지. 어쩌다 보니 우연의 일치로 이미르가 저기 터미널 입구에서 누군가와 대화할 때 말이 나오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보다는 저를 여기 왜 데려오셨는지가 더 듣고 싶은데요.”


이건 나를 쳐다보며 꺼낸 말이었다. 소심하게나마 나를 추궁하겠다는 의사의 표현이겠지. 그렇다면 정말로 궁금한 건 질문의 대답이 아닐 테고, 녀석에게 때늦은 반항기가 찾아온 이유는 뻔했다.


“그 계집애가 걱정돼서?”

“네.”


단호하기는. 만약 정하루가 여기서 저 말을 듣고 있었으면 감동의 눈물이라도 질질 흘려줬을 텐데. 아쉽게 됐다.


“그럴 것 같아서 믿을만한 사람한테 맡겨뒀지.”


백한영은 퍽 속이 좋은 사람이었다. 동족에게는 더욱 그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그를 믿을만하다고 생각한다.


“곧 만날 수 있을 거다.”


곧 나를 쳐다보던 황금색 눈깔이 저리로 치워지고 나직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고맙습니다. 항상.”

“뭐 이런 걸 가지고.”


바닷바람이 계절감을 과시하며 차갑게 불어왔다. 수평선 위로 우중충하게 깔린 하늘을 올려보다가, 나는 다시 시선을 내려 이미르가 대화하는 상대를 쳐다봤다.


천서진은 우리가 이제부터 우리가 올라탈 크루즈의 선주였다.


잘나가는 마법사들이 으레 그렇듯 대단한 자본가인 셈이지만, 마법사들한테는 속세의 영화보다 마탑의 명예교수라는 직함이 더 먹혀서 그리 불렸다.


마땅히 할 말도 떠오르지 않겠다, 한가한 김에 열심히 조잘대는 그 상판을 쳐다보고 있었더니 아신이 툭 하고 말을 뱉었다.


“누군지 아세요?”


어째 그걸 나한테 묻나 싶었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자기가 다닌 학교 교수들 관등성명을 모조리 외우던 건 머리가 좀 어떻게 된 놈들밖에 없었다. 하물며 명예직이면 더 그렇겠지.


“너희 명예교수님이시지. 천서진.”

“아, 어쩐지. 유명할 만하게 생기셨네요.”


교수의 외모를 품평하는 행위가 상식적으로 어떠한가는 제쳐두고, 녀석은 내가 기억하던 것과 꼭 같은 평가를 내렸더랬다. 눈 대신 옹이구멍이 뚫린 이놈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그게 참 이해하기 어려웠다.


“뭐,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걸로?”


막상 마주한 천서진의 실물은 딱 그런 모양새였다. 아무래도 이 세상 사람들은 모조리 눈이 이상한 모양이었다. 내가 솔직한 평가를 내리자, 아신은 무척이나 야릇한 눈깔로 나를 꼬나봤다.


“뭔데.”

“······아니에요.”


대답의 간극에서 복잡미묘한 감정이 전해졌다.


게다가 저 표정이라니. 저건 내가 담시우를 쳐다볼 때 지은 표정과 완벽하게 닮아있지 않은가. 추하게 질투하는 소년을 쳐다볼 때의 안타까운 눈깔이 바로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함이 치솟는 가운데였다. 이미르가 대화를 마치고 뚜벅뚜벅 이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신은 그 뒷모습을 향해 미소짓는 천서진을 쳐다보더니, 어딘가 맥이 빠진 목소리로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예, 아무것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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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EP6. 구두장이 +2 24.02.04 46 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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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EP5. 어차피 이 세상은 +1 24.01.15 65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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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EP4. Libra +2 24.01.10 110 13 12쪽
31 EP4. Libra +1 24.01.08 94 12 11쪽
30 EP4. Libra 24.01.06 85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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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2.28 96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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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P2. 하얀 말, 검은 말 23.05.12 206 14 9쪽
12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05.05 221 16 12쪽
11 EP2. 하얀 말, 검은 말 +2 23.05.02 226 18 10쪽
10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04.27 249 1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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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04.17 371 1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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