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재

소설 속 마법 포식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헌후
작품등록일 :
2023.01.26 19:26
최근연재일 :
2024.04.15 16:46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8,787
추천수 :
564
글자수 :
219,792

작성
24.01.08 21:38
조회
93
추천
12
글자
11쪽

EP4. Libra

DUMMY

물론 단박에 고개를 끄덕여주거나 그러진 않았다.


저게 지당한 반응이다. 자기 삶에 기의를 세워둔 사람은 기표로서 나아간다. 그러지 못한 사람은 부표처럼 파도에 휩쓸려 다닐 뿐이라, 스스로 삶에 방점을 찍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었으니.


이베라가 한참 괴로워하다 꺼내놓은 말이란 건 이 모양이었다.


“······나는 왜 이런 걸까.”


내 귀에는 이 말이 ‘왜 내 인생만 이 모양 이 꼴인 걸까’라는 소리로 들렸다. 저런 소리를 할 줄은 알았지만 정말로 할 줄은 몰라서 웃음을 참느라 입 안쪽을 깨물었더니 비릿한 쇠 맛이 돌았다.


그야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자기 인생이 특별하게 힘든 건 순리 아닌가. 최빈국 애새끼들이 얼마나 굶어 죽든 종이에 손가락을 베이면 마음보다 손가락이 더 아프다. 나처럼 정상적인 사람들은 10대 중반쯤엔 그 이치를 깨우치게 되어있었다.


다만 무얼.


나는 이 대화에서 꽤 진솔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지만, 모든 방면에서 솔직해질 필요는 없었다. 정직함이 미덕으로 취급받는 데에는 필요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지분을 차지한다.


“이도 저도 못 고르는 스스로가 한심한가요?”

“아니라고 하면 믿게?”

“설마요.”

“······솔직해서 좋으시겠네.”


나는 잠깐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솔직한 게 딱히 좋지는 않습니다. 솔직함이 좋게 평가되는 이유는 그런 사람들을 양산하기 위해서니까요. 그게 왜겠습니까?”

“써먹기 편해서?”


정말이지 그랬다.


“하여간.”


나는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화제를 돌렸다. 나도 당신과 비슷하게 괴로움을 껴안은 사람이라고 과시하는 간단한 수사법이다.


“저는 베라 씨가 처한 사정을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알 만큼은 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쪽이 아는 만큼만, 그렇게 단편적으로만 봐도 나는 죽는 게 낫다는 거고?”

“맞습니다.”


그러자 이베라는 꽤 울적한 투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아마 정말로 그렇겠지.”


‘우울하고 절망적인 자기 자신’에게 취한 사람 특유의 주정이었다. 참 듣기 좋았다. 모름지기 사람이 맨정신에 못 하는 일을 하려면 취하기라도 해야 하는 법 아닌가.


따지고 보면 자살이나 고백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누가 옆에서 잔 채워가며 부추기면 결국 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말이야, 진짜로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요?”

“좀···, 이상한 것 같아.”


나는 그 음침한 눈빛 아래 번뜩이는 광채를 보고 한순간 식겁했다.


방금까지 ‘그런가? 그런 것 같아!’하던 애가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설마 이 단시간에 본인의 정신병리학적 재앙을 극복해낸 걸까. 마법사란 종 고유의 드높은 지성은 진정 이 정도였나···!


물론 전혀 아니었다.


“그쪽은 그냥 나를 집에 보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왜 나한테 그런 식으로까지 말해주지···?”


이베라는 처음으로 온전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소리를 했지만, 그마저도 정도 이상으로 복잡하지는 않았다. 요컨대 남한테 삶의 결정권을 양도하려는데 막상 그러자니 망설여지는 것뿐 아닌가.


나는 짐짓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야 물론 당신을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나를? 그러니까, 어? 왜?”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말이 있죠. 실제로 잘 지키는 사람은 잘 없지만, 다들 아무렇게나 주워섬기는. 저는 단지 그 말을 지키고 싶을 뿐이에요.”

“내가, 나 같은 인간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당연히 없다.


“당연히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저는 당신을 존중해요.”


이 말을 듣는 이베라는 안절부절못하고 이리저리 눈깔을 돌렸다.


매사에 비관적인 사람이 생애 최초로 자기를 긍정 받았을 때 흔히 보이는 반응이었으니, 참으로 판에 박힌 우울증 환자가 아닐 수 없다.


뭔가 혼자서 열심히 생각해대는 것 같던 그녀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입술을 꽉 깨문 다음 우물쭈물 말했다.


“나는 말이야···. 그러니까,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런 말까지 하는 것도 조금 그렇긴 한데······.”


설마 그런 걸 따질 줄도 알았단 말인가. 나는 내 안에서 이베라의 지적 수준을 한 단계 상향 조정하며 사람 좋게 말을 받았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내가, 뭔가를 선택하는 게 무서워.”


음, 그렇군. 아무래도 이 계집애가 내 말을 한 귀로 흘렸던 모양이다. 맹세컨대 나는 방금까지 그러니 내가 대신해 주겠다는 말을 삼억 번쯤 지껄인 참이다.


“그런데 그 선택을 누군가한테 맡기는 것조차 무섭다고 하면···, 아무래도 경멸스럽겠지?”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이지 이건 진심이었다.


내 경멸 따위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존중이라는 게 무에서부터 저절로 생겨나며, 사람끼리는 당연히 주고받아야 한다는 개소리에 반박하지 않은 데서부터 나는 이베라를 더 경멸할 수도 없었으니까.


그도 그럴 게 존중은 쟁취의 대상이다. 세월이 흘러서 그것들이 이제는 돈이나 명예, 권력이라는 옷을 입고 다니긴 하지만, 한 꺼풀만 까봐도 그 정체가 존중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모든 인간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말은, 뒤집어 읽으면 존중할 가치가 없는 건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구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게 존중을 향하지는 않는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아는 문제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멸받아 마땅한 건 오히려 행동하기 전에 조금도 고민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고민한다는 건 뭔가를 더 좋게 만들고자 노력한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


이베라의 음습한 만면에 화색이 돌았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같은 생각이라도 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뻔한 심리였다. 행동하지 않고 괴로워만 하는 사람들은 죄다 저런 식으로 생각한다.


행동하지 않는 자신에 대한 방어기제다. 저토록 뻔뻔하게 합리화를 수행해내다니, 사람의 뇌라는 건 참 편리하게 설계된 도구 아닌가.


“다만 베라 씨, 고민을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고민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충분한 숙고를 거쳤더라도 결코 쉬울 수는 없어요.”

“맞아···, 그렇지. 그러니까-,”

“그걸 제가 돕겠습니다.”

“······!”


이베라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잘 보니 조금 촉촉하게 젖어있기도 했는데, 어째서인지 감동이라도 느낀 모양이었다. 나는 앵무새처럼 죽어달라고만 말한 것 같은데 이상한 일도 다 있다.


하여간 의도한 맥락은 대강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슬슬 괜찮겠지.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벤치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마침 시간도 적당하네요. 더 늦기 전에 가 볼까요?”

“어, 어디로?”


당신이 죽었던 자리로.



*



선인이 있으면 악당도 있다. 선악은 절대적인 잣대가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인에게 존재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악당이다. 빛과 그림자 담론이다.


세상만사에는 그처럼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그리 주장하는 ‘균형’은 지극히 합리적인 이상이 담긴 마법이었다.


보이는 모든 것에 가치를 매기고, 보이지 않는 것에도 가치를 매겨 저울에 올린다. 저울의 눈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한다. 그리하여 어느 쪽으로도 편향되지 않은 세계를 구가하는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세계는 그들에게 신과 같다.

신은 편재하지 않으므로.


······문면으로만 정리하면 퍽 온건해 보이는 마법이다.


얼핏 보면 아무한테도 해를 끼치지 않도록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훌륭한 재판관에게나 어울리는 마법 아닌가. 적어도 거기에 사적인 감정이 개입해 이상한 것으로 변질될 우려는 없어 보인다는 말이다.


‘균형’이라는 마법을 창안한 사람이 의도한 바는 그것이 아니었을까. 아마 그랬을 테다. 지독한 이상주의자나 만들어낼 법한 마법이었고, 모든 이상주의자가 그렇듯 가장 중요한 현실을 간과했으니.


그 마법의 문제는 다루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것이다.


선악이 상대적이듯 다른 모든 가치도 상대적이다.


‘균형’은 한 사람의 궁핍한 뇌에 담기기에는 넘치는 광의를 포함하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신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에야 상대적인 것을 절대적으로 치환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베라의 아버지는 어느 날 불현듯 그 당연한 진실을 깨우쳤다.


그러고서는 이 잘못된 마법을 후대에 더 전수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절대로 딸이 중학교에 입학한 첫날, 중학교에 올라와서도 괴롭힘을 당했다고 우는 그녀의 교복 차림에 욕정해서는 아니었다.


‘저런, 그런 나쁜 일이 있었구나? 학교는 그만두렴.’


어린 이베라는 아버지의 자상함에 기댔다.


학교라는 기관의 설립목적이 사회화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베라의 사회성이 파탄하는 건 시간의 문제였다. 그녀는 집안에 틀어박혀 적당히 마법을 배우다가 몇 년 지나서는 그마저도 관뒀다.


사회성이 마모되어가는 한편에서도 이성은 성장해갈 따름이라, 곧 이성과 자아의 균형이 무너지면 비가역적인 비대칭이 탄생하는 게 순리였다. 그 결과 이베라는 자기합리화에 통달한 비관주의자라는 괴물로 우화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아버지는 늘 물심양면으로 그녀를 어루만져주었다. 그런데 물심양면에서 ‘물’이라는 글자에는 물질이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우연히 사람의 몸도 물질에 해당했다.


‘그러다 몇 년쯤 더 지나니까 그냥 만지던걸.’


전부 이베라가 스스로 입으로 털어놓았던 사연이다.


‘처음에는 그게 너무 소름 끼쳤지.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어.’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회피는 지병이다. 그것이 중증으로 발전하면 환자는 회피하는 것조차 회피하게 된다. 행동이 거세된 의지만이 거기에 남아, 식물처럼 그저 존재할 뿐인 유기물로 전락한다.


저항하지 않는 식물을 쓰다듬는 건 대단히 쉬운 일이었다.


금기는 무겁지만 그 무게가 유효한 건 처음뿐이다. 한 번 범한 다음부터는 마중물의 역할만을 수행하는즉, 배덕에서 비롯되는 쾌감은 저버린 도덕의 가치만큼 커다란 것이니.


어찌 보면 그녀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훌륭한 ‘균형’의 마법사였다.


‘그러고는, 그저 그뿐인 반복작업이었지.’


해가 지면 창살이 쳐진 방에 그가 찾아온다. 그는 사랑을 속삭이며 그녀를 범한다. 만족하고 돌아가면 하루가 끝난다. 해가 뜨면 같은 하루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말이어서야 이베라는 주인공 앞에서 이러한 대사를 늘어놓을 수 없었다.


반전의 말머리는 흔히 그렇듯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베라를 가둔 감옥에는 매끈한 비늘을 가진 용 한 마리가 찾아왔다. 그 새하얀 용은 동화 속 악마처럼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힘을 원하나?’


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을 학살한 마녀 이베라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아직 용을 만나지 않은 ‘그냥 이베라’는 지금.


“끼아아아아──아악!”


140도 경사로 지면을 향해 쳐박는 롤러코스터 위에서, 신명나게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살려줘어───어!”


살려달라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소설 속 마법 포식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4 EP6. 구두장이 24.04.15 8 1 9쪽
43 EP6. 구두장이 24.04.08 10 2 13쪽
42 EP6. 구두장이 24.03.21 19 2 9쪽
41 EP6. 구두장이 24.02.16 23 4 9쪽
40 EP6. 구두장이 +1 24.02.11 30 5 9쪽
39 EP6. 구두장이 24.02.06 38 7 14쪽
38 EP6. 구두장이 +2 24.02.04 43 9 9쪽
37 EP6. 구두장이 24.01.27 44 7 9쪽
36 EP5. 어차피 이 세상은 24.01.20 54 10 11쪽
35 EP5. 어차피 이 세상은 +5 24.01.16 76 13 9쪽
34 EP5. 어차피 이 세상은 +1 24.01.15 65 10 11쪽
33 EP4. Libra +3 24.01.13 83 12 12쪽
32 EP4. Libra +2 24.01.10 109 13 12쪽
» EP4. Libra +1 24.01.08 94 12 11쪽
30 EP4. Libra 24.01.06 85 12 11쪽
29 EP4. Libra 24.01.02 88 10 13쪽
28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2.30 98 13 9쪽
27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2.28 96 8 10쪽
26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2.26 99 8 11쪽
25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2.21 90 11 10쪽
24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23.12.20 97 8 10쪽
23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2 23.12.16 108 9 11쪽
22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2 23.12.11 133 13 14쪽
21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23.12.08 121 11 12쪽
20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2 23.11.30 125 11 10쪽
19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1.25 134 10 10쪽
18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1.21 143 12 11쪽
17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11.20 151 12 8쪽
16 EP2. 하얀 말, 검은 말 +2 23.06.30 182 12 13쪽
15 EP2. 하얀 말, 검은 말 +2 23.06.09 199 8 9쪽
14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05.25 195 14 10쪽
13 EP2. 하얀 말, 검은 말 23.05.12 205 14 9쪽
12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05.05 219 16 12쪽
11 EP2. 하얀 말, 검은 말 +2 23.05.02 225 18 10쪽
10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04.27 248 19 10쪽
9 EP2. 하얀 말, 검은 말 +2 23.04.25 244 15 9쪽
8 EP2. 하얀 말, 검은 말 +3 23.04.20 266 16 12쪽
7 EP2. 하얀 말, 검은 말 +4 23.04.19 280 15 18쪽
6 EP2. 하얀 말, 검은 말 23.04.18 336 20 14쪽
5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04.17 370 19 10쪽
4 EP2. 하얀 말, 검은 말 23.04.14 429 25 11쪽
3 EP2. 하얀 말, 검은 말 +2 23.04.13 606 23 15쪽
2 EP1. 은사 +6 23.04.12 1,012 29 19쪽
1 EP1. 은사 +2 23.04.12 1,499 46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