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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마법 포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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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후
작품등록일 :
2023.01.26 19:26
최근연재일 :
2024.04.15 16:4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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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85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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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9,792

작성
23.04.1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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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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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글자
11쪽

EP2. 하얀 말, 검은 말

DUMMY

아혈亞血이라고 한다.


늑대인간, 흡혈귀 등을 비롯한 신화적 괴물들의 피가 섞인 비인간들. 선천적으로, 혹은 후천적으로 그 피에 감염되어 마법에 부적합한 종족을 통틀어 그렇게 부른다.


이 시대의 소시오패스이자 KKK단 저리 가라 할 수준의 차별주의자인 마법사들은 그들이 ‘열등해서’ 그렇다 싸잡아 비하하지만, 본래 도구가 도구를 다루기란 대단히 어려운 법이다. 그들이 마법에 부적격한 것은 혈관에 흐르는 피가 이미 마법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탐구, 세피로트의 나무 최정상까지 스스로 수양으로 기어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는 마법사들과는 그 근본을 달리한다. 아혈들은 말하자면 태생부터가 그 나무에서 삐쭉 뻗은 잔가지 같은 존재였다.


승천을 절대의 가치로 삼는 마법사들로서는 선천적으로 도전권을 거세당한 아혈들을 길바닥에 꿈틀거리는 버러지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버러지를 생명으로 존중하고 대우하는 사람은 없듯, 보편적으로 마법사들은 아혈을 인격 없는 마물과 동격으로 대했다.


그게 이 세상의 상식이다.

상식이었다.


마녀 수배는 어지간한 마법사에게는 내려지지 않는다.


‘사회에 지대한 해악을 끼쳤거나, 끼칠만한 마법사.’라는 지정 기준을 고려하면 그 수준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완성되면 지구째로 인류사회를 파탄 낼 위대한 상식인들이었다.


그리고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 수준에 이른 마법사들 또한 죽으면 죽었지 결코 자신의 가치관을 틀렸다며 부정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백진우는 그렇게 했다.


환부작신換腐作新. 태어나 죽은 후에는 썩어 회전하는 생명의 굴레.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기초이자 진리라 여기며, 그것을 전 인류를 대상으로 실현코자 했던 그는 어느 날 한 통의 소환장을 받았다.


협회에서 날아온 것이다. 서면상으로는 마탑의 교수로 임명하고 싶다는 말을 번지르르 써놓았지만, 실제로는 협회가 성당과 붙어먹고 자신을 잡아다 바치려는 속셈이 적나라했다.


연구가 새어나간 것이다.


백진우, 그 시절에는 이름도 얼굴도 달랐던 마법사는 그 소환장을 받은 순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제자를 찾아갔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가 아닙니다.’ 젊다 못해 어린 제자는 비명을 질렀지만, 잔뜩 겁을 집어먹고 성당의 관할 구역에 틀어 박혀있던 정황만으로도 증거는 차고 넘쳤다.


냉정하고도 간략한 주문 한 소절에 제자의 여린 몸뚱어리가 한 줌 진흙으로 녹아내렸다. 그다음 공방으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철통같이 유지되는 결계를 확인하고 실소했다.


재확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단지 심증만으로 애지중지하던 제자를 파묻었다. 그 과정에서 잠시도 주저하지 않은 자신에게 환멸하고, 이에 환멸하는 자신을 배신한 제자에게 분노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모든 감정의 소모를 마쳤다.

우수한 마법사는 이제 오로지 이성으로 자문한다.


‘자, 그러면 이제 어쩔까.’


순순히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폭력의 화신들이 들이닥친다. 그 무뢰배들은 지금껏 내가 일궈놓은 모든 것을 불태우고, 비웃으며,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조롱하리라.


그들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것 따윈 불가능하다.


하지만 소환에 응하면, 모든 연구성과를 협회 늙은이들에게 가져다 바친 뒤 성당에 팔려가 십자가에 매달릴 뿐이다.


순서의 차이가 있을 뿐 결과는 같았다.


환부작신. 남을 썩혀 새것으로 만드는 쪽이 아니라, 썩어서 새것의 양분될 차례가 드디어 백진우 자신에게도 돌아온 것이다.


배신과 복수, 그리고 종말. 인류 역사상 수만 번은 반복되어왔을 과정에 불과했다. 분명 그랬을 테지만, 그 과정을 수만 번 곱씹은 끝에 마법사의 뇌리에서는 갑자기 인간성이 꽃피었다.


죽고 싶지 않다.


생명과 너무나도 밀접한 연구를 해왔던 탓일까. 그렇지 않으면 제자를 직접 죽이는 과정에서 머릿속 무언가가 뒤틀린 것일까. 혹은 남들보다 조금 더 겁이 많았던 탓에, 공포로 미쳐버린 걸까.


필시 본능일 터였다. 생에 대한 집착이다. 마법사의 머릿속에서는 탐구욕과 아집보다 한참 뒤떨어지게 설계된 그것은 순식간에 부상해 머리 꼭대기에 눌러앉았다.


이미 이유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생존욕. 살아남고 싶다는 욕구 단 하나만이 백진우 자신의 모든 이성적 판단 위에 군림한 채, 외마디 명령을 내렸다.


살아남아라.

존엄을 잃고 길바닥에 꿈틀거리는 버러지로 영락할지라도.


백진우는 그 명령에 거스르지 않았다.



*



요컨대 이런 소리다.


이사야를 위시한 성당 측 인간들, 급작스레 편입한 백진우를 감싸줬을 아혈 사회의 구성원들, 여타 마법사조차도 그 늑대인간이 어떤 인물인지, 어떤 인물이었는지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가 인간을 포기하면 그때까지 쌓은 것들, 마력이나 마법은 인간의 꼬리뼈처럼 흔적기관만 남기고 사라지는 수준이었다. 직접 마법이라도 부리는 게 아니라면 알아볼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바꿔 말해보면 마법사로서의 내 수준이 백진우의 꼬리뼈보다 못하단 말이 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무슨 대단한 마법사가 되겠다며 공방에 틀어박힌 채 허송세월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든 햇빛에 칼날이 번쩍인다.


스치기만 해도 살결이 찢겨나가겠지만 전혀 위협적이진 않았다. 어차피 내게 해를 끼칠 리도 없는 물건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필요에 의해 두려움을 내비쳐야 했다.


나는 겁먹은 표정으로 셋까지 세고, 잠깐 생각하는 것처럼 눈을 끔벅거리다가 이번에는 미간을 모았다. 쥐어 짜내듯 성대를 좁히는 것도 잊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백···? 뭐요? 그게 누굽니까.”

“백진우. 얼마 전에 실종된 늑대인간.”

“예? 아니, 실종······?”

“왜, 좀 더 정확하게 말해드릴까요? 당신, 혹은 당신 패거리한테 납치당한 늑대인간이요.”


범인은 바로 당신이야, 선언하듯 어린이용 탐정 만화처럼 의기양양하게 지껄이는 이사야의 모습은. 아무리 포장해서 말해줘도 쪽팔렸다.


못 해도 스물은 넘을 텐데 탐정 역할 맡고 으스대는 꼴이라니. 저 말에 놀라주기로 마음먹었던 나조차도 유치함에 웃어버릴 뻔했으니 말 다 했지.


“납치라니, 제가 말입니까?”

“네. 수법이 아주 깔끔한 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시던데요?”


설마 그럴 리가. 나는 납치 같은 특급 범죄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소시민이다. 게다가 저 인간, 원작 주인공이 백진우를 담갔을 때는 나타나지도 않은 주제에 납치 운운이라니. 뚫린 입이라고 못 하는 말이 없다.


“하하, 기사님. 저처럼 심성 곱고 바르게 살아온 사람이 또 없어요. 그런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라고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젓자, 후웅, 급작스레 불어닥친 풍압에 머리칼이 휘날렸다.


눈을 깜빡인 기억은 없는데. 프레임을 건너뛰며 날아온 날붙이가 내 모가지 솜털을 면도해주고 있었다. 이사야가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헛소리는 거기까지만 들을게요. 저도 바쁜 사람이라. 이제부터는 진술만 해주셨으면 하는데.”


울대의 가죽에 차디찬 금속의 온도감이 서늘했다.


하지만 침착하자. 좆된 것 같지만 좆된 것 같을 뿐이다. 여기서 예예 그러시군요, 굽히면 그때야말로 정말로 좆이 된다. 진짜로 억울한 사람은 모가지에 칼이 들어와도 억울함을 성토하는 법이지.


나는 진짜로 억울했다.


“···헛소리는 그쪽이 하는 게 헛소리 아닙니까.”


일생 살아오며 쌓인 억울함을 모조리 담아 한숨을 내쉬듯 항변하자 이사야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녀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진술이 아닌 말씀은 그만 듣는다고 말씀-,”

“애초에, 그쪽 뭡니까?”

“···네?”


순수하게 황당함을 표시하는 ‘···네?’였다. 그 꼬락서니가 퍽 아니꼬웠다. 아닌 게 아니라 한참 아래 말단 직원이 벌이는 하극상이라도 본 듯한 종류의 반응이 아닌가.


나는 그 아니꼬움에 힘입어 목에 칼이 들어온 사실을 잊으려 노력하며 몸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대체 뭔데 남의 업장에서 행패냐는 말입니다.”

“읏,”


내 몸이 나아간 만큼 칼도 뒤로 물러서 내 몸에선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실제로 상해를 입히면 개인의 징계 따위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 조심하는 것일 테지만, 그녀가 나를 찾아온 이유에 조금이라도 확신이 있었다면 내 안전 따윈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덕분에 백 퍼센트의 확신을 얻었다.


“그래, 이성적으로 한번 따져봅시다.”


맥락을 짚어보면 간단하지만 이사야의 목적은 성물의 탈환이다. 성인의 유해. 단 한 조각만으로도 살신성인 같은 흉물을 빚어낼 수 있는, 여의주나 요정의 눈물에 비견되는 지고의 보물.


그것이 현대에 이르러선 고작 수십여 점밖에 남지 않았으니, 성당으로서는 성물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협회와 마찰을 빚는 것쯤은 사소한 해프닝으로 여길 터였다.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 소리다.


“성당에서 나오셨다고요. 그러면 지금 이거 협회에는, 아니. 그쪽 윗분들께는 인가받았습니까? 제가 지금 바로 연락 넣어서 확인해볼까요. 웬 폭력배가 목에 칼 들이밀고 협박하는데 이거 뭐냐고?”


제발 신사적으로 합시다. 신사적으로. 대체 목에 칼 들이밀고 협박부터 하는 게 성직자는 무슨 성직자입니까? 조곤조곤 덧붙이자 이사야의 기세가 확 누그러들었다.


세상만사 날로 먹으려 드니 체하는 거지. 나는 진짜 날먹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가르치는 심정으로 이어 말했다.


“게다가 말입니다. 고작 1위계 나부랭이가 늑대인간 같은 괴물을 무슨 수로 감당하겠습니까? 말씀대로 저한테 그럴싸한 패거리가 있으면 전 재산 다 끌어다 양지에서 개업하진 않았겠죠. 안 그래요?”

“그건,”


이사야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듯 잠깐 머뭇거리다가, 이내 머릿속 어딘가에 쳐박혀 썩어가던 이성을 발견했는지 조심스레 말을 맺었다.


“네. 제가··· 성급했던 것 같네요.”


성급했던 ‘것 같은’ 게 아니라 성급했던 거지만 굳이 정정해주진 않았다. 사소한 실수쯤은 눈감아주는 게 성숙한 문화시민의 소양이니까. 대신 나는 산뜻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러면 이제 사업 이야기합시다.”


장사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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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2. 하얀 말, 검은 말 23.04.14 429 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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