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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마법 포식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헌후
작품등록일 :
2023.01.26 19:26
최근연재일 :
2024.04.15 16:4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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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27
추천수 :
564
글자수 :
219,792

작성
23.11.3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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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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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DUMMY

-철컥.


나직하게 문고리 돌리는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열리진 않는다. 그저 문고리를 잡고 돌리는 것만으로는 열릴 리가 없다. 저 현대적인 방범 장치는 제 나름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철컥.


그럼에도 문고리는 한 번 더, 마치 확인하듯 돌아갔다. 절대로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누가? 그리고 왜. 빌어먹게도 어느 쪽이든 짚이는 바가 전혀 없었다. 잽싸게 카페인을 집어 들고 내 게으른 머리통에 채찍처럼 휘둘렀다.


강도, 집주인, 포교, 택배, 층간소음, 그 외에도 몇 가지가 곧장 떠올랐지만 하나같이 터무니없었다. 혹시 이 녀석이, 이 야만적인 지성의 소유자가 그새 배달 어플의 비밀을 깨우치고 주문에 성공했던 걸까, 하는 실낱같은 가능성 역시 떠오르기 무섭게 지워졌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앞서 열거한 모든 상황에서 우선 노크를 하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라면 초인종을 누르거나 용건을 간략하게 설명해가며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라도 하지.


그런데 지금 저 밖에서 문고리를 돌려대는 누군가는 그러지 않았다.


저 순서는 순수하게 비정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달리기 시작한 내 머리통이 주정뱅이라는 가능성에 가 닿았지만, 곧이어 들려온 소리에는 그마저도 무너져내렸다.


-삑.


귓가를 꿰뚫는 전자음. 도어락이라는 명칭의 그 작고 견고한 쇳조각은, 분명 어떤 숫자를 눌러도 같은 소리가 난다. 하지만.


-삑.


그 소리의 간격은 일정하지 않다. 넘버 패드에는 필연적으로 가까운 숫자와 먼 숫자가 존재하고, 일반적으로 자택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간격은 귀에 익어 절대로 헷갈릴 수 없다.


-삑.


그리고 그 간격은 세 번째 숫자를 누를 즈음이면 확신할 수 있다. 저 밖의 누군가는 내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어떻게’ 따위는 고민할 시간조차 없었다. 사태는 현실로 닥쳐오는 중이고, 저 다음 숫자가 들려온다면 경쾌한 음성과 함께 문이 활짝 열릴 테니까. 내게 주어진 유예는 딱 거기까지였다.


-삑.


그리하여 마지막 숫자가 눌리기 직전. 나는 녀석의 손에서 반쯤 빈 컵을 빼앗은 다음, 녀석을 식탁 아래로 던져넣었다. 빼앗은 빈 컵은 귀찮아서 설거지를 미뤄둔 것처럼 보이게끔 식탁 구석으로 밀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서.


그렇게 내가 만반의 대비를 마친 찰나였다.


-띠리리리.


마침내 종말이 도래했다.



*



평범한, 달리 말해 ‘정상적인’ 사람들은 화가 났다면 그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신체 구조상 당연한 일이었다.


분노를 마시고 태어나는 아드레날린이란 놈이 뇌수와 지독하게도 사이가 나쁜 탓이다. 그놈은 머리통이 헛짓거리를 벌이고 있으면, 곧장 뇌에 돌아야 할 산소를 몽땅 근육으로 훔쳐가 버렸다.


그런 다음 분노에 대고 쓸데없는 이유나 변명 따위나 찾고 있을 멍청한 뇌수 대신, 직접 몸뚱어리에 대고 우아하게 명령한다.


‘지금 당장 널 화나게 만든, 눈앞에 있는 악당을 패 죽여라’하고.


그 단순하고도 간명한 작업에 복잡한 논리 따위는 필요 없다. 펜은 분명 칼보다 강하지만, 눈앞의 칼보다는 약하니까.


강한 것을 두고 굳이 약한 걸 고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노의 해소법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오히려 건전하고, 적극적으로 권장해 마땅하다. 그것만이 오롯하고도 명백한 감정의 해소법이므로.


장담컨대 21세기 인류 태반이 미쳐있는 까닭은 순전히 눈앞의 악당을 쳐죽이는 게 불법이라서다. 언젠가 우리가 전 인류를 좀먹는 만성 우울증의 원인을 인정해낸다면 세상은 한층 평화로워지겠지.


요컨대 자각의 문제였다.


우리는 수백만 년 전부터 물건을 던지면 땅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기원전 수백 년에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지구가 돈다는 걸 증명하기까지는 다시 수천 년이 걸렸고, 그 모든 세월을 겪은 다음에도 여전히 중력의 법칙을 깨우치지는 못했다.


대단히 우스운 일이다.


현대적인 윤리관에 세뇌당한 문명인들은 쓸데없이 복잡하게 빙빙 돌아가는 방법을 선호했다. 자신을 화나게 했다면 그 범인은 당연히 악당일 텐데, 온갖 미사여구를 총동원해 악당을 심판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마치 전 인류가 멍청해지는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그리하여 여기 이 인물이 보기에 그러한 비효율이 발생하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러는 편이 더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니까.’


하나 진정한 탐구자라면 고작 그런 이유로 눈앞에 놓인 간단한 진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정상적’. 그 잔털 같은 궤변을 직관의 칼날로 매끈하게 밀어 버리면 드러나는 실체는 명료했다. 분노는 휘두르지 않으면 서서히 주인의 숨통을 조이는 독이라는 것.


──그러니.


말하자면, 그런 종류의 신념을 품고 살아온 이미르는 지금 화가 났다. 그것도 굉장히 아주 몹시 무척 많이.


이미르는 분노에 대한 본인의 철학을 꾸준하게 관철해왔고, 그럴 능력이 있었던바 수많은 '현대적인' 정신질환들로부터 자유로웠다.


큰 힘에는 책임이 아닌 권리가 따른다고 믿었다. 만약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커다란 힘이 아니기 때문이라고도 믿어왔다.


비정상적이었고, 같은 말로 비범했다.


그러한 연유에서 이미르는 그토록 화가 났음에도 그녀 자신이 화가 난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


단적으로 말하자면 하이안이다.


복잡하게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런 모양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사실을 굳이 듣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쌔앵, 하고. 어디서 북풍이라도 불어오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나는 소름이 끼쳤다. 내 집 문을 마치 제집인 양 따고 들어온 이미르는 현관에 가만히 서서 정적인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응시가 조금 길게 이어졌다.


5초에서 10초, 이어서는 분 단위에 이르기까지 이미르는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고 조용히 나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마치 네 죄를 네 주둥이로 하여금 소상히 고해보도록, 명령하듯이.


그런데 나 같은, 소위 정상적이며 사회적인 사람들은 스스로 구상해놓지 않은 대화문을 입 밖으로 꺼내는 법을 잘 모른다. 언제 누군가와 만나기로 예정되어있으면 그 사람을 대할 방식이나 그때 꺼낼 대화 따위를 준비해놓고 기계적으로 꺼낼 따름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나와 같은 선량한 사람들이 미친 사람들을 무서워하는 이유였다. 그 치들은 자꾸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등장해서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한다. 암묵적이지만 엄정한 사회의 약속에 무자비한 돌팔매질을 가해버리는 것이다!


다만 위대하신 선현들께선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머리만 챙기면 살아는 온다셨지.


고양잇과 맹수는 사냥감을 잡는 즉시 목덜미부터 물어뜯는 습성이 있을 텐데 어찌 우리 조상들께선 그딴 묘기를 부리셨는지는 차치하더라도, 하여간 좆됐다 싶으면 정신머리 바짝 챙기란 뜻이리라.


나는 철두철미하게 그 가르침을 따랐다.


자, 그러면 과연 저 아가씨는 갑자기 왜 저렇게 심술이 잔뜩 나셨을까. 말이라곤 한 마디도 꺼내지 않은 마당이니 단서는 오직 제스처에서만 찾아야 했다. 나는 가까스로 이미르가 내 집에 침범하자마자 그 눈깔을 어디에 뒀는지 떠올려냈다.


내 왼손.


그리고 내 왼쪽 소지에는, 여전히 새빨간 보석 하나가 박힌 반지가 끼워져 있다. 그걸 확인하자마자 이미르는 시선을 살짝 위로 올렸다. 그다음부턴 쭉 그대로였다.


좋아. 그것만으로 어느 정도의 추론이 가능해졌다.


이미르가 아무렇지도 않게 선물한 이 반지의 이름은 옥염이라고 한다. 붉은 저택의 마법사를 상징하는 기물이지만, 내 손에 끼워진 지금은 그 의미를 거진 상실하고 위치추적기 따위로 영락해있지.


말하자면 조금 고상한 전자발찌였다.


한데 전자발찌를 채우는 건 예외 없이 사법기관이요, 그런 흉물을 차는 건 세상에 용납 못 할 극악무도한 범죄자뿐이다. 말인즉 이미르는 내가 요상한 동태를 보인 까닭에 직접 감찰을 나왔다는 소리였다.


딱 그런 식으로 자의적 비유를 더하다 보니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 출근했다. 일이라곤 들어오지도 않는 사무실에 앉아 천장의 얼룩이나 새다가 집에 돌아왔지. 그게 내 일상의 루틴이었다.


그랬던 게, 요 며칠은 살짝 달랐다. 애완돼지를 하나 임시로 떠맡는 중이라 그놈의 사무실에 출근도 못 하고 있던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겠지.


철저하게 지켜오던 루틴이 틀어졌다.


사법기관으로서는 ‘아니, 이놈이 기어이 발목이라도 자르고 도망쳤나?’ 싶을 수 있는 상황이다. 사회에 그저 풀어놓기 두려운 전과자가 이상 행동을 보인다면 응당 조지러 가는 게 옳았으니까.


하지만 웬걸, 막상 들이닥치고 보니 달랑 잘린 발모가지는커녕 사지육신 멀쩡하게 붙은 전과자가 농땡이나 피우고 있는 거다.


남편의 외도를 의심한 아내가 불륜현장인 줄 알고 덮쳤더니 방구석에 틀어박혀 게임이나 하고 자빠져있는 것과 진배없다.


그러면 저 아가씨가 저기서 저러고 있는 게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십중팔구. 쪽팔리는 거겠지.


내 입으로 미친년이네 뭐네 실컷 지껄여대긴 했지만, 무얼. 이미르도 한창 감수성이 여릴 연령대다. 딱딱하게 정의하자면 소녀와 아가씨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무언가였다. 즉 지금은, 절대로 아저씨라 불릴 정도는 아닐지언정 살짝 더 어른인 내가 포용력을 보일 때였다!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이미르가 말문을 열었다.


“암컷 냄새가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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