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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마법 포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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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후
작품등록일 :
2023.01.26 19:26
최근연재일 :
2024.04.15 16:4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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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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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9,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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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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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EP2. 하얀 말, 검은 말

DUMMY

“현장을 한 번 보고 왔습니다.”


그러자 이사야가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소주병을 거꾸로 잡고 한 바퀴 돌리며 따는 움직임에 맞춰 고개가 갸우뚱 기우는 꼴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다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저 인간은 혹시 지금 내가 둘이서 오붓하게 술이나 먹자고 부른 줄로 착각하는 걸까?


그걸로도 모자라, 내 입에서 ‘현장’이란 단어가 왜 튀어나왔는지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면 내 착각인 걸까?


“현장이요?”


······착각이었으면 했는데.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받기는커녕, 꼴꼴거리며 차오른 이사야의 소주잔은 넘실거리다 못해 표면장력의 묘리를 선보이고 있었다. 나는 ‘크으’하고 그 잔이 텅 비는 꼴까지 구경하다가 이어서 말했다.


“예, 그 폐공장 말입니다.”

“아···, 그거? 정말로 뭘 하시려는 거였어요?”

“그야 물론입죠. 기사님을 호구로 보지는 않았으니까요.”


이사야가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 그에 맞춰 과격하게 신문지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셈 치고 이어 말했다.


“정확히는 ‘하이안 씨, 혹시 제가 호구로 보이시나요?’라고 하셨었는데, 저는 그때도 분명 아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남자가 쪼잔하게 그런 걸 다 기억해요?”

“주 안에 있으면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하나라던데. 그런 말씀 하셔도 됩니까?”

“오, 공부 좀 했나 봐요?”


공부씩이나 했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오밀조밀하게 생긴 인간이 입술을 씰룩거리는 게 영 보기 나쁜 것도 아니라 어깨만 으쓱하고 말았다.


“뭐, 아예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이대로 신학 탐구나 하자는 건 아니실 테고, 하던 말씀이나 계속해봐요. 무게 잡는 거 보니까 뭐라도 성과가 있었던 모양인데?”


말해 뭐할까.


“없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품에서 묵주 하나를 꺼내 보였다. 올리브 나무로 만들어진 5단 묵주. 흔하다 못해 일반적이라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하나쯤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물건을.


“지극히 평범한 묵주네요. 그게 뭐 어때서요? 아, 혹시 하이안 씨도 성당에 다니기 시작, 하셨······?”


그 말은 채 맺어지지도 못했다.



*



이 세계의 소시오패스 대표주자인 마법사들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소통 욕구를 타인이 아닌 스스로 내면세계에서 해결한다.


예를 들자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게 그 대표적인 수단이었는데, 그 작태란 하늘 아래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음에도 ‘소통’ 그 자체에는 목이 마른 미치광이들의 말로였다.


내 스승 천진효 역시 그런 갈증에 시달리는 환자였다.


대단한 마법사는 대단한 소시오패스이기도 하며, 천진효는 굉장히 대단한 마법사였다. 그런 내 스승이 품은 갈증은 일종의 강박이었고, 어쩌면 성벽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은 것이었다.


정말이지 조금도 과하지 않았다.


그날 내 스승은 내가 고해바친 성당 기사의 습격에 대비했다. 정확한 시일과 별들의 흐름마저 맞춰, 몇 달 내내 완벽하게 짜낸 마법들은 간단히도 폭력의 화신이라 칭송받는 성당 기사를 요격해냈다.


몇 달 내내 나를 가둬두었던 우리가 열리는 순간이었고, 천진효가 나와의 계약 내용을 이행해 내 스승이 되던 순간이었다. 내 스승은 우리에서 풀려난 나를 다시 몇 달 동안 유닛체어에 묶어놓았다···.


길고도 길었던 회로 각인 작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과정은 어지간한 외과 수술이 우스울 지경이었지만, 내 스승은 내게 지혈 이상의 조치를 해주지 않았다. 직접 그 탄생을 인지하지 못한 회로는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미심쩍은 지론이 그 이유였다.


그리하여 내 스승은 마취 하나 없이 사랑스러운 제자의 살결을 도려내고 뼈를 깎았다. 내장을 조각했으며, 신경을 드러내고 그 자리에 마력을 심었다. 그딴 짓거리를 하는 주제에, 앞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내가 기절했을 때는 시술을 중단해버리곤 했다.


그럴 때면 천진효는 내가 깨어나기 전까지 본인의 세상을 향한 소통 작업을 진행했고, 나는 매번 눈을 뜰 때마다 내 스승의 예술세계가 발전한 모습을 보아왔다.


그 변화의 과정은 흠잡을 데 없이 ‘아틀리에’의 본질에 충실했다.


작품 하나가 완성될 적이면 내 스승은 매번 본인의 작품세계를 내게 강론하곤 했는데, 나는 몸뚱어리를 저당 잡힌 마당에조차 그 작품들을 보고 아름답다거나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내 스승은 사람으로 오브제 만들기를 즐겼다.


세세한 풍경에 관한 묘사쯤은 얼마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괜히 늘어놓아봤자 반감만 사고 불쾌하기만 할 이야기겠지. 나처럼 배려심 가득한 소시민은 그런 말을 입에 담지 않는 게 철칙이다.


다만 최대한 부드러운 선에서 그 광경을 전달하자면, 그래. 내 시술이 끝날 즈음에는 묵주를 물고 있는 성당 기사의 머리통 따위는 어딘가에 파묻혀서 보이지도 않았다고 줄일 수 있을 테지.


······하여간 요는 이거다.


내가 이사야에게 보여준 묵주는 어느 말라비틀어진 혓바닥 위에서 찾아낸 물건이었다는 것.


자그마한 십자가에 잔류한 성력을 알아본 이사야의 눈에 여러 감정이 스쳤다. 놀람, 의문, 의심, 마지막에는 결국 분노. 그럼에도 그것을 향할 대상이 ‘이제는’ 없음을 깨닫곤 빠르게 지워버리는 눈치였다.


나는 그 감정의 소용돌이가 잦아들 때까지 잠깐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부터 말씀드리는 게 순서라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이사야가 입술을 달싹이려고 했지만, ‘그걸 어디서 났냐’ 같은 종류의 실례되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재빠르게 이어서 말했다.


“이 묵주는 그 폐공장 어느 한구석에 마법적 탐지를 피하는 수단으로 묻혀있었습니다.”


여기서 그 수단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넘기면서 이사야에게 그 유품을 건네주었다.


“아마 전에 실종되신 동료분의 물건이겠지요.”

“···네. 그래요.”


취기는 이미 흩어버렸을 텐데, 조심스레 묵주를 건네받은 이사야는 살짝 목소리를 떨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 물건의 원래 소유자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지.


친애하던 이의 유품을 제삼자에게서 건네받는다. 당사자가 아니라도 적잖이 애절함을 느낄법한 장면이었다. 하마터면 나까지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 먹먹함은 어디까지나 착각이다.


나는 내 착각을 애써 수정하는 대신, 그 결과로 피어난 감정마저 듬뿍 담아 평소보다도 우울하게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시신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만···.”


한 가지.


“그 흔적을 더 면밀하게 살펴봤더니, 이 건에 대한 저희 견해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던 것으로 보여서 말입니다.”


이야기를 여기까지 끌고 온 이상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건수가 하나 있었다.


“──마력흔의 종류와 시간대가, 확연하게 다르더군요. 그 묵주의 소유자는 기사님이 제게 던져주신 것처럼 백진우 씨를 납치했다는 ‘조직’에게 희생당한 게 아닙니다.”


그러자 이사야의 동공이 숨겨지지 않을 정도로만 떨렸다.


고작해야 그 정도였다. 표면상으로나마 일을 맡긴다고 한 주제에, 제대로 된 단서와 정황을 던져주지 않은 기만행위를 까발렸음에도 이사야는 그 이상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에 대한 존중이라곤 딱 그만큼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상대방을 그리 존중하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관계가 얼추 수평적이란 사실을 확인한 나는 한층 편해진 마음으로 말을 맺었다.


“별개죠. 그렇지 않습니까?”


백진우를 납치했다던 마력범죄자들의 패거리와 성당 기사의 실종 건은 완전히 다른 건이다. 단지 같은 장소를 공유할 뿐이고, 사건의 발발 시점과 주체는 완전하게 다른, 별개의 건이다.


그런 의미를 담아 어린이용 추리만화 속 탐정처럼 선언하자, 이사야는 입가를 쓰게 비틀었다. 그러고서는 아주 약간도 부정하지 않고 시원스레 나를 속였다고 인정했다.


“말씀하신 대로예요.”


짐짓 눈을 피했다가 다시 내게로 향한 이사야는, ‘솔직히 말하면 정말로 진지하게 임하실 줄은 몰랐다’는 구절로 재차 운을 뗐다.


“실종된 성당 기사, 그러니까 제 선배 되는 분을 해쳤으리라 추정되는 용의자는 이미 ‘처분’이 끝났어요. 전에 저희가 이야기 나눴을 때는, 네. 일부러 말을 꼬았고요.”


왜냐고 물을 것도 없이 알아서 그 이유를 읊었다.


“그때는 제대로 알려드린들 일을 맡을 능력이 되실지도 의심스러웠거든요. 게다가 그럴 능력이 되신들 실제로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었어요. 어찌 됐든 위계부터가-, 신뢰를 사기에는 영 그러시잖아요?”


요컨대 조금도 기대할만한 상대가 아니라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구태여 제대로 된 단서를 건넬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 세련된 변명은 아니었지만, 그리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나는 떨떠름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합니다.”


1위계라는 위치, 실적 하나 없는 초짜 마법사라는 현실은 그런 취급을 받아도 불평할 수조차 없었다. 색안경을 끼고 보나 벗고 보나 수준이 거기서 거기인 게 우리 1위계 떨거지들이다.


이 실력주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그 궁색한 숫자를 보고도 조금이라도 존중을 보이는 편이 별종이었다. 나라고 한들 당연한 사실에 꼬투리를 물고 늘어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대신 이사야가 언급한 신뢰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내 경험상, 자기 신뢰에 무언가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대개 그 단어를 미끼 삼아 상대를 시험하곤 했다. 과연 이사야는 어떨까.


“그런데 하이안 씨는 유능했어요. 현장에서 제가 놓친 단서를 발견하고, 그로 인해 어느 정도 진상까지 꿰뚫어 봤죠. 기대는 한 적이 없으니 기대 이상은 아니고, 아예 상상 이상이었다고 해야겠네요.”

“해서, 이제는 제대로 믿고 맡겨주시겠다는?”

“충분히 유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실 수 있다면, 말이에요.”


아니나 다를까, 전례대로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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