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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마법 포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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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후
작품등록일 :
2023.01.26 19:26
최근연재일 :
2024.04.15 16:4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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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7
추천수 :
564
글자수 :
219,792

작성
23.11.25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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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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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DUMMY

노크에서 이어지는 울림은 더없이 사악했다.


-배달이요.


단 네 글자에 비닐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더해지자, 내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개무시로 일관하던 녀석이 주인 발소리를 들은 치와와마냥 튀어나가려고 했다. 그 뒷덜미를 잡아서 도로 소파에 던져놓고 음식을 받아오는 것까지가 오늘 내내 반복된 콩트의 한 단락이었다.


혹시나 이 문장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까 우려돼서 다시 말하건대, 이 짓거리는 ‘오늘 내내’ 반복됐다.


쿵쿵거리는 저 노크 소리. 저 빌어먹을 노크는 한 번 들릴 때마다 내 통장에서 며칠 치 식비를 뽑아갔고, 그게 오늘 하루에만 벌써 7번째였다. 그건 고쳐 말하자면 지금 내 연약한 대가리가 노크라는 행위 자체에 PTSD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이란 뜻이지.


창문 타령하며 발작하던 소설 주인공이 떠오르는군. 하지만 그놈의 해양생물도 배달비를 음식값 절반만큼 받아가는 만행을 저지르진 않았을 테고,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저 노크 소리는 신화 속 괴물의 습격보다도 끔찍했다. 그것도 훨씬.


이게 참 곤란한 노릇이었다.


저 깜찍한, 생겨 먹은 모양새가 조금 동정심을 유발할 뿐인 식충이는 자본주의가 얼마나 차가운지 모르는 걸까. 빙하기보다도 냉혹한 이곳에서 나는 분류상 자영업자였다. 그리고 자본주의 치하에서 자영업자의 사전적 정의는 ‘고정수익이 보장되지 않은 하루살이’지.


세상에는 사악한 자영업자도 잔뜩 있건만, 그중에서도 하필이면 나처럼 선량한 자영업자를 갈취하다니. 세상에 또 저리 악독한 년이 없으리라. 아주 벼룩 간을 뽑아먹고 디저트로 모기 피까지 빨아먹을 년 같으니.


“?”


내가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자 녀석은 스윽 한 번 쳐다보고 개무시를 재개했지만, 이건 결코 비유나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네 지능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네가 지금 페이스대로만 쳐먹으면 금방 나까지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단 말이니까.


······하여간.


나는 분명히 매번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쳐먹였을 터다. 그런데 저 빌어먹을 녀석은 아무리 쳐먹여도 쳐먹여도 두 시간이면 꼬박꼬박, 아득바득, 당장 내게 먹을 걸 내놓지 않으면 널 죽여버리겠다는 듯이 배곯는 소리를 냈다.


그러는 걸 보면 정말로 배가 고프기는 한 모양이다만, 나로서는 도대체 저 쬐끄만 몸뚱어리의 어느 구석에 그만한 음식물이 쑤셔박히는지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내장은 아니겠지. 나는 질량 보존의 법칙이 그 정도로 타락하진 않았으리라 믿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나 해가며 그 블랙홀 같은 복부를 관찰하고 있었더니, 저 배은망덕한 짐승은 화들짝 놀라는 척 배를 가리며 나를 사납게 꼬나보기 시작했다.


“······ ······.”


그래, 이건 또 새로운 패턴이군.

방금 건 과연 무슨 의미를 내포한 제스처일까.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저 기묘한 짓거리에 담긴 의중을 절대로 파악해내지 못했겠지. 하지만 이 내가 누구겠는가. 나는 저 녀석을 ‘무려’ 며칠씩이나 찐득하게 돌봐온 당사자였다.


이제 이 세상에서 나보다 요정을 오래 관찰한 인간은 없는즉─, 나는 이미 세계제일의 요정 전문가를 자청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 나 자신의 권위에 대고 맹세컨대, 저건 더도 덜도 ‘배고프니까 빨리 나가서 음식이나 가져오지?’라며 꼽을 주는 눈깔이었다.


하여간 싹퉁바가지 없는 애새끼 같으니.


“좀 기다려 봐라, 인마.”


이래저래 투덜거리면서도 나는 이미 몸에 익은 내 사명을 완수했다. 배달 온 음식을 식탁까지 재배달하기. 물론 그것만으로 내 사명이 완수되는 건 아니었다. 포장까지 일일이 벗겨줘야 했으니까.


그렇게 내가 보모 노릇을 하는 동안, 녀석은 냉큼 식탁 앞에 앉아서는 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기분 나쁘게 실실 쪼개가면서.


요정 생태학의 최고 권위자로서 확신컨대 저 녀석은 스마트폰을 ‘두드리면 음식이 나오는 도깨비방망이’쯤으로 이해한 모양이로군. 실로 자본주의조차 터득하지 못한 사악한 지능의 소유자다웠다.


그런 지능으로 저 첨단 문명의 이기를 제대로 다루려면 천 년은 족히 걸릴 터. 내친김에 유아용 영상이라도 틀어줄까 했다가, 녀석의 실제 나이를 가늠해본 다음 그냥 멋대로 가지고 놀게 뒀다.


그래, 저게 생긴 건 저래도 정말로 유아는 아니지.


흔해 빠진 이야기를 몇 개쯤 떠올렸다가 흘려보냈다.


그런 다음 비닐 포장을 뚫고 올라오는 냄새를 맡곤 확신했다.


이건 좀 짜릿할 거라고.


아닌 게 아니라, 이번에는 머리통 속에서 물장구치고 놀던 아저씨가 유레카를 외쳤단 거다. ‘정신병도 병이고 소주병도 병이다. 그렇다면 캡사이신도 신이 아닐까?’라는 기적의 논리를 창제하는 동시에 말이지.


그래서 나도 그 아저씨랑 같이 유레카를 외쳤다.


어찌 됐든 사람의 신체 구조는 더럽게 매운 걸 쳐먹으면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게 되어있지 않던가. 화생방과 같은 구조다. 같잖은 의지력 따위로는 이겨낼 수 없는 생리학적 작용이란 소리지.


그렇게 눈물만 뽑아내고 나면, 저런 상도덕 없는 애새끼쯤이야 어디 보육원에라도 던져주면 그만이었다. 저 반-자본주의적 대재앙을 떠맡은 보육원은 몇 달 안에 파산하겠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라는 부분까지 포함해서 완벽했다.


그렇게 나는 지옥의 내장처럼 시뻘건 무언가를 녀석에게 대령했다.


“자, 먹어라.”

“!”


너는 또 새로운 메뉴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지만, 안타깝게 됐구나. 매운맛은 사실 맛이 아니라 통증이다. ‘매운 음식’이라는 건 음식의 모양을 흉내 낸 고문 기구에 불과하지. 과연 그 튼튼한 눈물샘이 자해 성애자들이 발명한 최고의 자해 도구에도 이기나 볼까.


마침내 녀석이 수저를 집어 드는 순간, 한 신격과 요정의 신화적인 결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차마 그 장엄한 전투를 전부 옮기기에는 지면이 좁아터진 고로, 결과만 읊자면 캡사이신도 신이긴 했다.


병신.


녀석은 저 시뻘건 걸 아무렇지도 않게, 심지어는 맛있게 쳐먹었다.


······그래. 저 녀석한테는 나를 애써 쿨한 척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나는 ‘어차피 결과가 이럴 줄은 알고 있었다. 애초에 저 몸에 남아있던 상처들부터가 온갖 고문의 성과 아닌가?’ 생각하려고 노력하다가 때려치웠다.


솔직히 말하면 기왕 꽁돈 나가는 거 신이라도 내보고 싶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별로 신나지도 않았고, 그래서 더 우울해졌다. 나는 발작적으로 기다란 스틱 봉지를 대여섯 개 집어서 컵에 털어 넣고 뜨거운 물을 받아 휘휘 저었다.


그걸 단숨에 절반쯤 들이키니 카페인이 실시간으로 오장육부에 스며들었다. 설탕과 프림이 손에 손을 맞잡고 패륜아 호르몬들을 혼내주는 게 느껴졌다. 이제 좀 살 것 같군.


점점 뚜렷해지는 삶의 감각을 만끽하고 있으려니, 금방에라도 끓어오를 듯 정열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녀석이 그런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엄청나게 맛있다는 듯이 마셨던 믹스커피가 든 컵을.


나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한 다음 말했다.


“뭐.”

“······.”

“뭔데.”

“······.”

“이거?”


끄덕끄덕끄덕끄덕.


요정 생태학에 맹세코 저 모가지가 저토록 맹렬하게 움직일 수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하지만 나쁜 반전은 아니군. 오히려 나와 저 녀석 사이에 처음으로 소통 비슷한 게 성립하는 모양새인지라, 예상외로 썩 괜찮은 기분이 들었다.


이건 정말이다.


저 천진난만한 반응을 보고 있노라면 진즉에 꽝꽝 얼어붙은 내 가슴 한구석에서조차 뜨끈 미적지근한 물줄기 하나가 샘솟을 지경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물줄기의 이름은 유열이었다.


“응, 내 거야.”

“···, ······!”


녀석은 마치 세상의 저변이 무너져 내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한테 ‘세상에 무상의 사랑 따윈 없단다. 그걸 아직도 몰랐니?’라는 소리를 들은 다섯 살 애새끼 같군.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은 애새끼가 정확히 어떻게 행동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

“어림도 없지.”


딴에는 기습적으로 덮친다고 덮친 걸 테지만, 나는 진즉에 대비하고 있었다. 녀석이 덮치는 순간에 맞춰 컵을 높이 들어 올리자 녀석은 자진해서 내 품에 안긴 모양새가 됐다.


“─, ──!”


녀석은 내 몸을 밀어내듯 떨어지고는, 오로지 내 손에 들린 컵만을 겨냥하고 이리저리 깡충깡충 뛰어댔지만──, 저 난쟁이 똥자루 같은 신장으론 닿을 리가 없지.


하하, 저 세상 억울하단 표정을 봐라. 낑낑대다 지쳐 나가떨어지곤, 꽉 움켜쥐어 파들파들 떨어대는 저 주먹을 봐라.


이건─, 하!


정말이지.


이 이상 없을 만큼 통쾌하군.


이 통쾌함을 망치로 빚어서 복수 따윈 허무하다고 떠드는 놈들의 머리통을 으깨주고 싶었다. 이렇게나 달콤한 걸 자기들끼리만 즐기겠다고 개소리로 포장하다니, 그 괘씸한 개새끼들은 응당 부당이익을 자기네 머리통으로나마 반환하는 게 사회적으로 옳으리라!


저 녀석을 주워오고 요 며칠. 수발이란 수발은 다 들어주고 개무시는 개무시 대로 당해온 비참함이 얼마던가? 그 상상도 못 할 액수가 단박에 씻겨나갔다! 이건, 이제는 통쾌한 걸 넘어 가히 행복하다고 말해도 좋았다!


할 수만 있다면 더 괴롭혀서 울려버리고 싶을 정도군. 그런 다음에는 엉엉 짜는 꼬락서니마저 놀려서는, 아예 그 눈물 속에서 헤엄을 치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거기까지 애새끼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기어이 새 컵을 꺼내서 그놈의 커피를 타주고 말았으니.


“자.”

“······?”


한창 억울해하던 녀석은 의아해하면서도 넙죽 컵을 받았지만, 그 시선은 여전히 내 커피에 꽂혀있었다. 애들이란. 말을 더했다.


“넌 이거 마시면 밤에 잠 못 자.”


녀석은 그제야 제 몫의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 다음, 뭐가 그리 좋은지 헤실거렸다. 그 모양을 보고 있었더니 이번에는 정말로 내 가슴 한구석이 뜨뜻해지려고 했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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