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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마법 포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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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후
작품등록일 :
2023.01.26 19:26
최근연재일 :
2024.04.15 16:46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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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8
추천수 :
564
글자수 :
219,792

작성
23.12.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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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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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0쪽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DUMMY

주름이 자글거리는 면상이었다. 그 주름의 사이사이로 검은 그늘이 드리웠는데, 당연히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덥수룩한 회백색 머리칼이 그 절반쯤을 가리고 있었다.


다른 것은 볼 필요도 없었다.


머리칼에 가려지지 않은 한쪽 눈이 내 돌발행동에 찢어지도록 크게 뜨여있었다. 거기에 담긴 감정은 깊은 증오였다. 따라서 이번에는 나도 굳이 웃음을 참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다.


곧 라이터의 여린 불이 꺼졌다. 나는 지독한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 뱉으면서 말했다.


“고견은 잘 들었습니다. 저희끼리 상의를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예, 부디. 말들 나누고 오세요.”


그리하여 이 늙은 마법사는 순순히 우리가 이 우중충한 폐가에서 나가도록 허락했다. 그는 우리가 이대로 이 의심스러운 장소에서 떠나버리는 거 아닐까, 방금 그 주둥이로 나불댄 요사한 계획을 협회에 고발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암귀에 사로잡혀 덮치지 않았다.


이 늙은이는 지금 이 순간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믿을 테니까.


내가 곧 이 우중충한 폐허로 돌아오리란 사실을 믿을 테니까.


응당 나는 그 ‘믿음’에 답해줄 생각이었다. 두 어린놈을 데리고 지저분한 폐가를 나오자마자 담뱃불을 비벼 끄곤 말했다.


“어땠지?”


아신한테 묻는 말이었다. 자기한테 하는 말이란 걸 곧장 알아차리고는 입을 열었다.


“글쎄요. 말 자체는 사실이고, 설득력도 있었는데···.”

“그랬는데?”

“좀, 전체적으로 음습했다고 해야 하나. 그렇던데요.”

“음, 그래?”


하지만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었다.


유감스럽게도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말이 있었다. 가려두지 않으면 창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이 투명하게 비쳐 보인다는 요지의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양지에선 주로 남한테 보여도 떳떳한 일을 벌였다.


다시 말해 거기에 커튼을 쳐둔 놈들은 항상 남한테 떳떳하지 못한 일을 벌이고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그 커튼이 물리적이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딱 한 가지 의문을 던져야 했다.


다 늙어서 죽기 직전인 노친네가 부끄러울 게 있어봤자 얼마나 있을까?


내 생각하기에는 몇 개 없었다.


“신아, 아까 네가 이 녀석이 뭐냐고 물어본 건 기억하지?”

“네. 그랬더니 사연 있는 영혼이라고 하셨···. 아니, 그러면-,”


아신이 도중에 뭔가 눈치챘다는 듯이 말을 고쳤다. 그랬음에도 확신은 없는 모양이라 내가 그 말을 가로채서 맺어주었다.


“물론, 네 말마따나 세상에 사연 없는 영혼은 없지.”

“······설마.”


이러한 문맥에서 ‘설마’라고 중얼거리는 건 ‘정답!’하고 외치는 행위와 똑같았다. 나는 꽤 유쾌해진 기분으로 종을 울렸다.


“방금 그놈이 이 녀석의 사연이야.”


녀석은 여전히 나한테 착 달라붙은 채였다.


나는 그 머리통 옆에 달린 기다란 귀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선 거기 걸린 가느다란 끈에 손가락을 걸고 튕기며 읊었다.


“그 마법사가 이렇게 했다.”


새하얀 거즈 안대가 툭, 하고 벗겨지며 녀석의 텅 빈 눈구멍을 드러냈다. 따사로운 가을볕 아래 매끈한 안와가 적나라했다.


그 늙은 마법사는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 눈이 박힌 방향은 공교롭게도 녀석의 눈깔이 뽑힌 방향과 같았다. 왼쪽.


아신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이 의문에서, 당혹을 지나, 혐오로 그라데이션하고 있었다. 나는 멈추지 않고 음울하게 지껄였다.


“처음 발견했을 때는 더 심했어. 손발은 진작에 괴사해서 떨어져 나간 채였지. 혀는 뿌리부터 뽑혀있었고, 귀에는 피고름이 들어차서 썩어있었거든.”


“목부터 아래로는 깔끔하게 양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거기에서 구불구불한 줄에 달린 각양각색의 고깃덩어리들이 흘러나왔어. 그리고 그 안에서는.”


“······그래. 그 안에서는, 요령 좋게 뽑아놓은 갈비뼈 너머로 조막만 한 게 꿈틀거렸지. 생긴 게 사람하고 별 차이는 없어 보이던데, 어쩌면 그걸 확인하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그리해도 죽지 않는 불사성을,

그 은혜의 편린을 탈취하기 위해서.


“그 늙은 마법사가, 그렇게 했다.”


거기에는 실수도, 오해도 여지조차 없었다.


있는 거라곤 한없이 담백한 사실 뿐이다. 오직 소름이 끼칠 만큼 명백한 사악함 뿐이다. 이 세상에 명백한 것 따윈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되레 우아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저기에는 준비된 악당이 있었다.

여기에는 준비된 주인공이 있다.


단지 사실을 읊으면, 그게 진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정의의 주인공이. 쓰러트릴 적이 필요한 주인공에게 해줘야 할 일이라곤 그저 그 등을 살짝 밀어주는 것뿐이었다.


그러한 내 역할이 막 끝난 참이었다.


이내 이 세상의 주인공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가라앉은 눈으로, 아신은 녀석의 텅 빈 동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야 물론 다른 사정도, 그러니까 제가 모를 사정도 많겠지만···,”


무언가가 괴로운 듯 한차례 말을 끊었다가.


“지금은 여기 계세요.”


그 양손에는 어느새 쇳덩이들이 들려있었다. 한 쌍의 길고 짧은 칼, 불요와 불굴. 그 흉기들에 쓸모라고는 하나뿐이다. 아신이 그것을 꺼내든 이유는 조금도 복잡하지 않았다.


“치고받는 건, 아마 제가 더 잘할 테니까.”


각오를 다진 걸까. 그도 아니면 겨우 다진 각오가 무너질까 무서웠던 걸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아신은 말을 맺기가 무섭게 방금 나온 폐가로 발을 들였다.


나는 그 등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문득 내 안에서 한 줄기 감정이 매섭게 소용돌이치고 있음을 느꼈다.


감탄.


방금 아신이 보여준 장면은 실로 경이로웠다.


완벽하게 사악한 것으로 보이는 악당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면 그건 세상이 이상한 거라고. 그러니 남을 위해 다른 남을 죽여주겠다고. 그리 말했을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까지 옮기고 있었다.


이 어찌나 완벽하게 정의롭고, 동시에 초월적으로 사적인가.


그야말로 덜 여문 정의란 낱말의 의인화였다. 이지가 거세된 집행은 저만큼이나 순수하다. 저 멍청한 놈한테 죽을 늙은이한테는 사과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작 정의로, 그것도 저딴 정의관으로 죽을 운명이라니.


나중에는 나아지겠지만 지금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저따위 이유로 사람을 죽여나가다 보면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이 별에는 저 애새끼 혼자만 남게 될 거다.


내가 알던 아신은 저 늙은이를 죽이고 그걸 깨우쳤다. 그렇다면 지금 저 아신은 어떨까. 이다음에도 여전히 ‘나쁜 놈들은 모조리 죽여야 돼요!’ 따위 일차원적 개소리를 짖어대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일이었다.


나한테는 그 전까지 다른 종류의 감탄도 끝내놓을 의무가 있었다.


저 늙은 마법사의 집념에 대한.



*



‘마법사.’


나는 이 요정을, 그런 예언을 주절거린 이 녀석을 구해낼 때만 해도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 쥐방울만 한 애새끼가 실험실에 갇혀 지내는 데서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저 덜떨어진 구원자가 나타날 때까지 하루라도 더 아파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다 쳐죽이고 이 녀석을 데려왔다.


주인공의 중요한 서사를 빼앗았으니, 내가 알던 앞날의 흐름도 틀어졌겠지. 하지만 그딴 건 이미 뒤틀릴 만큼 뒤틀린 후였다. 그대로 따라가면 전부 뒈지는 마당이니 애시당초 틀어야 하기도 했다.


그저 어디선가 벌충하면 될 거라 여겼다.


다행히 그러기 어려운 세상은 아니었다. 남들보다 우월함을 자처하고 또 실제로도 우월한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쓰레기들이 넘쳐났으니까. 그저 쓰러트릴 적이 필요한 아신한테는 적당한 다른 쓰레기를 던져주면 될 일이었다.


그럴 터였다.


그런데 가능성조차 짐작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그날 죽인 사람의 수는 분명 서른일곱이다. 소설에서 아신이 썰어 죽인 수와 일치했다. 그중에는 한쪽 눈에 요정안을 박아넣은 늙은 마법사도 있었다. 시험 삼아 그의 마법을 다뤄봤을 땐 차마 형태를 이루기도 전에 바스라졌다.


기억하는 묘사와 일치했다.


그랬다.


‘묘사’와, 일치했다.


저 폐가 안에 도사린 늙은 마법사의 얼굴은 내가 죽인 마법사와 달랐다. 그리고 소설에는 이 요정을 노린 마법사가 하나 더 등장했다. 홍혜아에게 녀석의 신변을 요구한 의뢰주.


······그리고 ‘영원’의 마법.



그러니까,


그런 거다.


영원의 마법사와 의뢰주는 처음부터 뒤바뀌어 있었다.


‘영원’을 인식하고 미래를 본 그는 자신과 같은 이상을 바라보는 다른 마법사에게 연구를, 시설을, 요정을 양도했다. 영원을 이어주는 매개는 응당 아신이었을 테고, 따라서 아신이 나와 만난 시점에 효과를 가졌을 테다.


영원은 시공간에 복속되지 않으므로.


소설 속 아신에게 사용된 마법이, 나라는 관측자를 통해, 조건을 만족하여 그의 영원성을 충족했다. 지금 저곳에서는 무려 세계 하나를 뛰어넘은 집념이 불살라지고 있었다.


한낱 남의 눈물방울에 기대 이룬 게 아니라 스스로 연찬을 통해 이뤄낸 영원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감탄하기로 했다. 이 조잡하게 만들어진 세상에 한 번이라도 엿을 먹여 준 그의 집념에. 단지 그것만큼은 폄훼할 수 없는 가치일 터였다.


다만 딱 하나, 전체적으로 걸리는 점이 있었다.


그만한 위업을 이뤄냄으로써 그는 무엇을 추구한 걸까, 하는 의문이다.


분명 저 마법사가 이뤄낸 바는 대단하지만, 물리적으로 아신을 당해내지는 못한다. 그저 영속하기 위한 마법과 그저 무언가를 죽이기 위한 마법은 태생부터가 상극이기 때문이다.


굳이 아신을, 그리고 나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을까. 기껏 쟁취한 영원으로 호가호위를 하는 대신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었을까.


저 마법사가 훔친 눈알로 얼마나 먼 미래의 사건까지 내다봤을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그리 현명한 판단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 부분을 고민해보려고 하던 차였다.


녀석이, 아래아가 내 소매를 꽉 잡아당겼다.


눈앞에 사람이 우글거렸다.

어림잡아 서른여섯쯤 되는 머릿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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