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재

소설 속 마법 포식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헌후
작품등록일 :
2023.01.26 19:26
최근연재일 :
2024.04.15 16:46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8,867
추천수 :
564
글자수 :
219,792

작성
23.04.12 14:10
조회
1,501
추천
46
글자
7쪽

EP1. 은사

DUMMY

지금보다 한참 어릴 적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세상은 빌어먹었다고. 그러니까 너도 빌어먹어야 할 거라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참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른들 말씀이 늘 그렇듯 절반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그야 이 세상은 틀림없이 빌어먹지 않았던가?


그런데 나머지 절반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뒤의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왈왈’이나 ‘멍멍’으로 음차해도 아무런 의미 차이가 발생하지 않았으니까.


도대체가. 세상이 빌어먹었다고 나까지 빌어먹으리란 법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당연히 그딴 법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당시 꽤 명석한 아이였던 나는 모든 반박에는 눈에 보이는 근거가 필요하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증명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를 부정하기 위해 좋은 대학 졸업장을 따냈다. 남들 놀 때 공부해서 번듯한 대기업에도 취직했다. 그리하여 합격 통지가 날아온 날에는, 아예 본가에 쳐들어가 당당하게 선언했다.


자, 보라고. 이래도 내가 빌어먹겠느냐고.


그랬더니 웬걸, 아버지는 조용히 미소만 지으시더랬다.


당시의 나는 그 미소를 한 가장의 자존심이 허락하는 최대한의 패배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일생일대의 쾌감을 만끽하며, 참 열심히도 출근해 대단히 의욕적으로 업무에 임했다.


그리고 딱 한 달 지나 깨달았다.

세상은 빌어먹었고, 그래서 나도 빌어먹어야 한다는 걸.


통장에 찍힌 입금 내역 세후 304만 5천원.


학자금 대출에 월세, 공과금에 통신비 카드빚을 떼고 나면 딱 입에 풀칠할 만큼 남았다. 배불러 터진 소리를 지껄인다기엔, 내가 들인 노력과 이뤄낸 성과가 개차반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아니, 실제로도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조리했다. 남들보다 세 배는 열심히 살았는데 월급은 두 배에도 한참 못 미치다니? 빌어먹기 싫어서 어금니 악물고 살았건만, 직장 근처에 번듯한 집 한 채 마련하려면 15년은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질 않았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나는 결국 빌어먹음의 굴레에서 탈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상이 소설이 되지만 않았다면, 정말로 그랬을 거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어른이었고, 어른인 아버지의 말은 다른 어른들 말씀처럼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소설과 하나가 되어버린 다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빌어먹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들어맞은 건 절반뿐이었다.


나는 그 소설 애독자였던 고로 더 이상 빌어먹지 않아도 될 미래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국립국어원에서 내 사례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의 표본으로 삼자 제안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도 어른들 말씀 아닌가? 그것도 딱 절반만 들어맞아야지?”

“대충 사사오입, 하십쇼.”

“쯧, 벌써부터 편의주의에 찌들었으면 어쩌려는 건지.”


다시금 오징어 타는 냄새가 나더니 머릿속에서 팝콘이 튀겨졌다. 울대에서 괴성이 흘러넘쳤지만, 나는 고통에 저항하지 않고 눈깔을 까뒤집으며 거품을 물었다.


“참을성도 없군. 청춘 아닌가, 이 정도로 아픈 소리 내면 이 험한 세상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이토록 속 편한 소리를 지껄여가면서 내 온몸 신경을 이리 뜯고 저리 지지는 이 중년은 소시오패스였다. 뒤바뀐 세상에서는 조금 다르게 불러 마법사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좀 따끔할 거야···. 자, 따끔.”


어느 쪽이든 반사회적이란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정의를 정면에서 반박하는 괴물들. 이기심과 탐구욕으로 빚어져 끝내 자기밖에 모르는 족속.


이야기에서나 등장할 법해 실제로도 등장한 종족의 일원은, 진리의 탐구라는 숙원과 모순되게도 이 세상이 소설이 됐다는 간증을 헛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가려는 모양이었다.


물론 나 같아도 입에 거품 물고 눈깔 돌아가서 침 질질 흘리는 놈이 하는 말은 뭐가 됐든 한 귀로 흘리겠지만.


“기운도 좋지. 아직도 비명 따위를 질러 댈 기력이 남았나? 성량도 좋은데 차라리 가수를 하지 그랬나?”


어쨌든 이 양반은 정진정명 미친놈이었다.


어떻게 눈앞에서 사람이 ‘으그으륽끄륵끄르라으아악으우그가가그아가아악!’따위 괴성을 내고 있는데 돌잔치 추임새 같은 소리나 지껄일 수 있는 걸까?


당장 감옥에서 아무 흉악범이나 골라 지명해도 이 양반보다는 인간성 면에서 우월할 게 분명했다.


“어이쿠, 우량아군. 우량아야. 아주 우렁차.”


다 쉰 목으로나마 꼭 한 마디 뱉고 싶은 말이 생겼다. 그래서 뱉었다.


“···씨발.”

“이거 보시게. 욕은 왜 하고 그러나, 욕은? 누가 보면 오해하겠어. 마치 내가 악의적으로 괴롭히고 있는 것 같지 않나?”


행위의 잔혹성과는 별개로 괴롭힘이 주목적은 아니긴 하겠지. 하지만 세상에는 맥락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이 마법사에게는 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꼴을 보며 입가를 비틀 만큼의 맥락이 있었다.


“사실, 괴롭히는 것도 맞긴 해.”


까드득, 날붙이가 직접 뼈를 긁었다. 한 차례에 한 획씩. 요골과 척골에 번갈아가며 룬을 새겨나간다. 한참 전부터 과분비 중이던 아드레날린이 소름 끼치는 감각에 반응해 미쳐 날뛰었다.


“마안도 없고, 마법사도 아니며, 하물며 다른 피가 섞인 것도 아닌 흔해 빠진 인간. 그런 인간이 나를 콕 집어 찾아와서는 마법을 전수하라던 순간만 해도 그저 미친놈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미친놈이 곧 성당 기사가 당도하리라 지껄이더군? 그러고서는 내가 당신을 살린 셈이니, 대금은 당신 목숨으로 선결제한다 주장했을 적엔 그 미친놈을 어느 실험에 쓰면 좋을지 고민했다.”


“혹시나. 혹시나 하지만 않았다면 그 정신 나간 실험체는 기생형 마물의 모체로나 쓰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실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가증스런 광신도 놈들한테 목을 따였겠지.”


“글쎄, 놈들이 내 목을 들고 가서 어쨌을지까지는 장담하기 어렵군. 하지만 그 미치광이들이라면 성전의 증거물이랍시고 벽난로 위에 걸어뒀을지도 몰라. 이게 바로 해학이라는 것 아니겠나?”


폐공장의 판넬 가벽, 한구석에 일부러 가져다 놓은 벽난로 위에는 몸통 잃은 머리가 하나 놓여있었다. 장난이라도 치듯 입에 물려놓은 묵주가 인상적인 그 오브제는, 굳이 그 의미를 추측할 필요도 없을 만큼 적나라했다.


“······생명의 은인. 참 거창한 말이다. 동시에 마법을 아는 놈이 마법사한테 마법을 요구하며 그 근거로 제시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말이야. 내가 아니었다면 계약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너는 원하는 걸 얻지 못했을 거다 애송아.”


“그런데 소설이라고. 골계구나. 이 마당에 이르러서도 숨기는 걸 보면 대단한 정신력이다만, 제자야. 얼버무리는 말치고는 멋이 없었어. 기회가 된다면 세련되게 말하는 법도 가르쳐주마.”


이것이 내가 열일곱 번째로 정신을 잃기 전에 들은 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소설 속 마법 포식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4 EP6. 구두장이 24.04.15 10 1 9쪽
43 EP6. 구두장이 24.04.08 11 2 13쪽
42 EP6. 구두장이 24.03.21 19 2 9쪽
41 EP6. 구두장이 24.02.16 23 4 9쪽
40 EP6. 구두장이 +1 24.02.11 31 5 9쪽
39 EP6. 구두장이 24.02.06 45 7 14쪽
38 EP6. 구두장이 +2 24.02.04 46 9 9쪽
37 EP6. 구두장이 24.01.27 45 7 9쪽
36 EP5. 어차피 이 세상은 24.01.20 55 10 11쪽
35 EP5. 어차피 이 세상은 +5 24.01.16 78 13 9쪽
34 EP5. 어차피 이 세상은 +1 24.01.15 67 10 11쪽
33 EP4. Libra +3 24.01.13 85 12 12쪽
32 EP4. Libra +2 24.01.10 113 13 12쪽
31 EP4. Libra +1 24.01.08 94 12 11쪽
30 EP4. Libra 24.01.06 86 12 11쪽
29 EP4. Libra 24.01.02 90 10 13쪽
28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2.30 98 13 9쪽
27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2.28 97 8 10쪽
26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2.26 99 8 11쪽
25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2.21 91 11 10쪽
24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23.12.20 100 8 10쪽
23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2 23.12.16 110 9 11쪽
22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2 23.12.11 133 13 14쪽
21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23.12.08 123 11 12쪽
20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2 23.11.30 128 11 10쪽
19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1.25 136 10 10쪽
18 EP3. 먼저 아는, 미리 아는 +1 23.11.21 145 12 11쪽
17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11.20 151 12 8쪽
16 EP2. 하얀 말, 검은 말 +2 23.06.30 183 12 13쪽
15 EP2. 하얀 말, 검은 말 +2 23.06.09 200 8 9쪽
14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05.25 196 14 10쪽
13 EP2. 하얀 말, 검은 말 23.05.12 208 14 9쪽
12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05.05 223 16 12쪽
11 EP2. 하얀 말, 검은 말 +2 23.05.02 228 18 10쪽
10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04.27 250 19 10쪽
9 EP2. 하얀 말, 검은 말 +2 23.04.25 244 15 9쪽
8 EP2. 하얀 말, 검은 말 +3 23.04.20 268 16 12쪽
7 EP2. 하얀 말, 검은 말 +4 23.04.19 281 15 18쪽
6 EP2. 하얀 말, 검은 말 23.04.18 337 20 14쪽
5 EP2. 하얀 말, 검은 말 +1 23.04.17 372 19 10쪽
4 EP2. 하얀 말, 검은 말 23.04.14 429 25 11쪽
3 EP2. 하얀 말, 검은 말 +2 23.04.13 607 23 15쪽
2 EP1. 은사 +6 23.04.12 1,022 29 19쪽
» EP1. 은사 +2 23.04.12 1,502 46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