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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남녀

결혼 후 愛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완결

이설理雪
작품등록일 :
2012.05.02 22:52
최근연재일 :
2012.05.02 22:52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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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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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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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02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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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終.청첩장

DUMMY

終.청첩장


“으음.”

“정신 들었어요? 그거 하나 맞고 무려 5시간을 뻗어 있냐.”

“5시간이나? 정말이야?”

“시계 봐요, 지금이 몇 시인가.”

부인의 질문을 받은 남편은 시계를 슥 봤다. 온천여행을 마치고 집에 온 게 밤 10시이고 새벽 3시를 가리키는 지금의 시계 바늘. 딸아이가 던진 블록에 느닷없는 공격을 받아서 강력한 통증을 못 이기고, 5시간 기절해 있었던 게 맞다. 부인 혜리의 품에는 쌍둥이 중에 둘째인 딸 사랑이가 잠이 들어 있다. 쌍둥이 오빠가 보이지 않는다. 몸을 일으킨 준은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손으로 매만지며 베개를 세우고 몸을 당겨서 앉는다.

그런데, 맞은 것 때문에 준에게 큰 딸 바다는 무려,

“영원이는? 그리고 가해자 바다는?”

가해자다.

“어머니께 가 있어요. 바다는 옆방에서 자고요. 슬슬 오줌 마려운 반응에 대해 아는 거 같아요.”

“오줌을 가려?”

“어머니한테 들으니까 화장실 앞에서 보채더래요. 옷 내려주니까 오줌 누더라고 하더라고요. 기저귀를 빼도 괜찮을 거 같아요.”

“좀 있으면 두 돌이지? 벌써 가릴 때가 되었나?”

“세 살 조금 넘으면 화장실 가려요. 기저귀 빼도 되는 나이가 된 거지요.”

“세살밖에 안 됐는데 벌써?”

준은 정신이 번쩍 드는 모양이다. 그러다 혜리가 품에 안고 있는 사랑이를 보게 된다.

“여태 못 잔 거야?”

“애들이 다 손을 타서 큰일 났어요. 바다가 걸을 줄 아는 게 어디야.”

“내가 사랑이 안고 있을게, 눈 좀 붙여.”

“정말이에요?”

솔깃해진 혜리는 얼른 남편에게 아이를 넘기고는 베개를 끌고 와 눕는다.

“먼저 잘게요, 고생 좀 해요?”

“응. 푹 자.”

고개를 끄덕인 준은 익숙한 손짓으로 사랑이를 다독여준다. 아이는 아빠의 품이 잘 맞는지 깨지도 않고 잘 잔다. 얼굴을 조금씩 뒤척일 뿐이다. 푹 잠이 든 듯 그대로 여덟 시까지 한 번도 깨지 않는 사랑이가,

‘예쁘다, 예뻐.’

아들 영원은 자신을 그대로 빼다 박았고 바다는 엄마를 완전히 스캔해 갔더니 사랑이는 반반이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뭐라 할 수는 없지만 바다도 영원이도 사랑이도 두 사람 자녀라는 것을 외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 푹 자라고 잘 도와주네.’

준은 혜리 자는 동안 쭉 깨어 있었지만 휴직 중인데 뭐 어떤가.

그렇게 다음 날. 2014년 4월 3일 목요일. 혜리는 강 경장의 연락을 받고 급히 나가게 되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지라 혜리는 반가운 마음에 해석과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시작했다. 그 동안의 얘기를 간단히 주고받은 둘은 음료를 앞에 두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못 본 시간 동안 강 경장은 어느새 승진해서 경사가 되어 있었다. 오 순경은 큰 사건 하나 해결하고 같은 경사로 작년 초 특진했단다.

“이거 주려고 보자고 했어요.”

“이건, ……청첩장?”

“네. 5월에 결혼합니다. 오 경사랑.”

“!! 정말요? 축하드려요! 오 선배, 아니, 오 경사님이랑 언제부터 사겼었어요?”

“재작년부터. 난 몰랐는데 오 경사가 오랫동안 짝사랑했더라고요. 감격의 순간이었지요.”

혜리는 두 사람의 좋은 소식에 잘 됐다는 인사와 함께 청첩장을 바라봤다. 3년 전 자신과 준이 같이 뽑은 청첩장이 생각났다.

“최 선생이랑 같이 와요.”

“꼭 갈게요.”

“당연히 와야죠! 근데 커피 좋아하면서 왜 커피를 안 마시고?”

“애기는 커피 못 먹으니까요.”

“애기? 아니, 벌써 넷째를?”

직접 만나지는 못 해도 그래도 연락은 종종 하면서 서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오 순경에게 전화를 하거나, 아니면 오 순경에게서 전화가 오거나, 하는데 물론 그럴 때마다 해석과도 안부를 주고받았었다. 마지막으로 연락했었던 3개월 전에는 넷째 얘기는 없었는데 그 때는 혜리가 아직 임신을 몰랐던 모양이다.

“올해로 결혼 3년차 아닌가? 근데 벌써 뱃속에 넷째가 있는 겁니까?”

“네. 나중에 결혼식 보러 갈 때 우리 세 애기 사진 몇 장 찍어서 갖고 갈게요.”

“부모의 외모를 닮았으면 굉장히 예쁘겠네요.”

“네, 예뻐요!”

순간 해석은 혜리에게서 엄마 미소를 봤다.

“……어?”

문 쪽을 보고 앉은 해석은 이윽고 카페에 들어서는 어느 여자를 보게 됐다. 남자와 함께 들어선 그녀를 보던 해석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연유빈 씨?”

“네? 강 경사님?”

“잠깐만요.”

비번이라 편한 옷차림의 해석은 고개를 갸웃대면서도 방금 들어온 여자에게 다가갔다.

“실례하겠습니다, 연유빈 씨 맞죠?”

“네, 맞습니다만……잠깐만! 강 순경님?”

“오랜만입니다, 연유빈 씨! 그 때는 남자였는데 지금은 여자로 돌아오셨네요?”

“네에, 돌아왔어요!”

흑색의 긴 머리카락을 높이 올려 묶은 그녀에게선, 약 7년 전 부산은행에서 만난 피해자 일행의 모습이 얼핏 남아 있었다.

“돌아오신 거 축하드립니다! 그 때 친구 분한테 아버지에 대한 비화(=험담)를 상당히 세게 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이제.”

“!! 그 바에 계셨었어요? 저는 바에서는 잘…….”

“제가 그 때 비번이라 사복 차림이었어요. 저는 그 때 두 사람의 이름을 들은 게 있어서, 그리고 부산은행에서 만난 적이 있어서 아는 체를 살짝 했었는데, 유빈 씨는 그 때 제가 사복이라서 몰라봤었지요.”

그렇게 들으니까 알겠다! 유빈은 박수를 한 번 치고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기억났어요. 정말 오랜만이에요, 강 순경님!”

“하하, 이제는 경사 계급 달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축의금 안 내도 되니까 이것도 줄게요. 청첩장이에요. 5월에 새신랑이 되거든요.”

“축하드려요! 남편이랑 꼭 갈게요. 그 때 뵐게요.”

“예.”

유빈은 해석이 건넨 청첩장을 받고서 남편 되는 사람과 인사를 한 뒤 안쪽으로 향했다. 좋아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내심 흐뭇해하던 해석은 혜리가 기다리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미안해요! 아는 사람을 너무 오랜만에 봐서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튀어나갔네요.”

“누군데요?”

“혹시 혜리 씨, CF라는 회사 아시나요?”

“네. 파티가 있을 때마다 그 회사의 연 사모님께서 직접 나오시잖아요. 잠깐만, 설마 방금 그 여자 분이?”

자세히 안 봤는데 맞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경찰관인 해석이 카페를 대량으로 갖고 있는 회사 CF의 안 사모님을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 연 사모님이라……연유빈, 연유빈…….

“제가 대전 가기 전에 부산에 있었어요. 원래 대전 출신이라서 가족이 다 대전에 있고, 대학을 부산으로 오면서 혼자 부산에서 살았지요. 그렇게 부산남부경찰서에서 근무를 시작했었는데, 2008년에 대전에 인력이 딸리면서 자원해서 대전 잠깐 갔다가, 그 잠깐이라는 시간 동안 혜리 씨를 만났었지요. 물론 재현을 잃었고요. 그리고 대전에서 인력 충원이 됨과 동시에, 2009년 경장 달고 이윽고 어떤 사건에 대한 추적을 발각되었고, 그로 인해 오 순경과 함께 부산으로 쫓기듯이 내려와 복귀했지요. 그 전이에요. 유빈 씨를 남자 모습으로 만났던 게.”

“남자요?”

“네. 현재 70대 후반의 나이 많은 아버지 때문에 강제적으로 남장을 해야 했던 가련한 인물이지요. 불쌍하기로 따지자면 두 사람 비슷하네요. 그 아버지가 나이 탓인지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부산 사람답게 고집도 엄청나고, 고정관념이 도통 깨지지를 않지요. 현대에서 완벽하게 빗겨간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아버지를 둔 탓에 유빈 씨는 어린 나이에서부터 이미 남장을 해왔어요. 2007년 12월 술집에서 친구랑 같이 있는 걸 본 게 마지막인가 싶은데 이렇게 오랜만에 카페에서 보다니, 와아, 역시, 세상은 넓고 사람도 많다 하지만 필연이라는 게 있기는 있네요. 혹시 그런 말 아나요, 혜리 씨? 한 번 만나면 우연, 두 번 만나면 인연, 세 번 이상 만나면 필연이라 하잖아요. 저와 혜리 씨, 그리고 최 선생과 윤 선생이 필연인 것처럼요.”

그러면서 웃었다. 혜리는 연신 고개를 갸웃댔다. 머리 한 쪽은 연유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고, 다른 한쪽은 해석과의 대화에 여념이 없다. 연 사모님, 즉 유빈이라는 사람이 남장을 했었다고? 그럼 해석은 그녀가 남장을 했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알았을까? 혜리가 눈동자에 의아함과 호기심과 함께 그런 질문을 담았다는 것을 해석이 알아차렸는지 빙그레 웃었다.

“남녀의 골격은 딱 정해져 있어요. 근육이 늘어나거나 줄어들어도 기본적인 게 있어서, 어느 정도 무술 수련이나 운동을 한 사람은 상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하는 게 가능해요. 그래서 2007년 12월 초에 부산은행에서 처음 만났을 때 바로 알아봤지요. 그래도 아무 말은 안 했었어요. 뭔가 사정이 있어서 남장을 하고 있겠거니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의 강요 때문이더라고요. 그 어르신, 완전 조선 시대 사람이에요. 고정관념으로 꽉 차서 현대 문명을 받아들일 생각이 도통 없는 어르신이더라고요. 요즘도 그렇지만 2000년 들어서부터는 여자 CEO가 얼마나 많이 늘었는데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 거 있죠?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바깥 생활을 하는 여자들에 대해 집안에서 애나 돌봐야지 여자가 되가지고 무슨 일이냐며, 그러니 세상 말세라며 혀를 쯧쯧 차는데, 답답하기가 하늘을 뚫고 있었어요. 그러니 본인인 유빈 씨도 말싸움하기가 싫어서 할 수 없이 남장을 했었던 거겠지요.”

“유빈 씨 아버지가 되는 사람은 또 어떻게 알아요?”

“남장하고 있는 게 불쌍해서 남몰래 찾아가 봤었지요. 씨도 안 먹히는 건 그 아줌마랑 어찌나 똑같던지.”

“네? 아줌마, 라니요?”

“그런 아줌마가 있었어요!”

해석은 손을 살짝 저으면서 얼렁뚱땅 넘어갔다. 다행히도 혜리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고, 해석은 안도의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휴우! 말실수 할 뻔 했다. 혜리 씨 어머니 얘기가 입 밖으로 나올 뻔 했잖아, 어이쿠야! 최 선생이 친모에 대해 얘기를 안 했으면 싶은데. 그랬겠지?’

해석이 저 혼자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혜리는 저 혼자서 이제는 두 개의 뇌로 한꺼번에 연유빈이라는 이름을 기억 속에서 더듬어보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아! 기억났다!

“맞다!”

“……?”

“작년까지 우리 갤러리에 왔었어요!”

라고 말한 혜리는 벌떡 일어나 쪼르르르 걸어서 유빈과 그녀의 남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여인은 혼자였다. 그녀가 편한 얼굴로 어딘가를 보고 있는데, 시선을 쫓아가보니 남편이 주문을 하고 있었다. 시선을 원래대로 돌린 혜리는 유빈을 보며 싱긋 웃었다.

“유빈 씨!”

“……응? 아, 배혜리 씨! 레인보우 갤러리 점장님!”

유빈도 벌떡 일어나서 혜리에게 인사를 꾸벅 했다. 길게 늘어진 포니테일이 크게 흔들렸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네, 잘 지냈어요. 혜리 씨도 잘 계시죠?”

“잘 지내고 있어요. 도련님은 같이 안 왔네요?”

“유치원 갔죠. 혜리 씨는 쌍둥이 잘 크고 있죠?”

“남편이 학교까지 접고 키워주고 있어요. 이 안에, 애기 또 있고요.”

“벌써 넷째에요? 정말 빠르시다. 저도 슬슬 둘째 가져볼까 생각 중이에요.”

잠시 후 양손에 커피를 든 유빈의 남편이자 CF의 대표이사 규진이 슬그머니 두 사람 사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유빈! 자녀 계획을 왜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이랑 짜고 있는 건데?”

“쿡! 이 사람이 요즘 이렇다니까요? 점장님이 좀 말려주세요, 여자랑 얘기하는 것도 꼭 기분 나쁜 것처럼 굴어요. 최 선생님도 이러는 가요, 혹시?”

“누구누구 씨랑 똑같네요! 남자들은 다 똑같은가 봐요! 연애할 때랑 변한 게 하나도 없다니까요? 더 하면 더 했지! 애 넷이 뭘 배울지 참 걱정이 태산이에요.”

“나도 그래요, 우리 아들이 벌써부터 아빠 따라 근엄한 흉내 내고 다녀서, 하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어요.”

“우리 아들도 그래요. 호호호호호호호!”

두 여인네는 서로를 마주보며 한참을 웃었고, 번갈아 바라보느라 바쁘던 규진도 이내 빙그레 웃었다. 서로 아는 사이임을 그때서야 확인한 해석과 혜리, 그리고 유빈과 규진 부부는 합석하여 한참을 웃었다. 혜리와 유빈은 서로 남편 비화에 바빴고 해석과 규진은 그런 여인 둘을 말리느라 바빴다.

시간경과.

혜리는 해석의 개인 차량 조수석에서 곧 경찰 부부가 될 해석과 오 경장의 청첩장을 다시 열어서 보며 활짝 웃었다.

“이거 아니었으면, 오늘 강 경사님과 유빈 씨, 그리고 표 대표님도 못 뵐 뻔 했어요! 새삼 이 청첩장이 고맙네요.”

“왜 사모님이 아니고 유빈 씨 인거죠? 나는 유빈 씨가 남장했을 때 만났기 때문에 그런 거지만, 혜리 씨는 유빈 씨가 사모님이 되고 나서 만나지 않았나?”

“유빈 씨가 편하게 대해달라고 했어요. 아. 강 경사님, 청첩장 하나만 더 주세요. 모레 토요일에 의진 씨 내외 만날 건데 그 댁에도 청첩장 드리려고요.”

“그렇게 하세요. 내릴 때 드릴게요.”

“네에, 고마워요.”

“제가 더 고맙지요, 혜리 씨 덕분에 하객이 더 느는 건데.”

빙그레 웃은 해석은 혜리를 그녀의 집 앞에 내려주면서 의진네로 갈 청첩장을 건넸다. 지훈네 것까지 해서 총 세 개의 청첩장이다. 오랜만에 좋은 사람 만나서 기분 좋은 혜리는 저녁때가 다 되어 돌아온 것이다.

“……윽, 사골! 욱! 우웁!”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사골 특유의 냄새에 혜리의 뱃속이 갑자기 요동을 쳤고, 텅 빈 거실을 후다닥 내려가서 안방의 화장실로 향했다. 양변기에 얼굴을 푹 박은 혜리는 갑자기 시작된 헛구역질을 정신없이 해댔고,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는지 자신의 방에서 두 동생과 함께 잘 놀던 바다가 갑자기 칭얼댔다. 작은 손으로 문을 두드리며 엄마라고 말함과 동시에 눈으로는 울고 있었다. 같은 방의 준은 왜 그러냐며 말려보지만 한 번 시작한 바다의 칭얼거림은 말리고 토닥여도 소용이 없었다.

“아빠!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왔어?”

“엄마, 엄마!”

“……?”

쌍둥이가 방 안에서 아직 놀고 있기 때문에 눈을 뗄 수 없는 준은 당황하면서도 바다를 품에 안고 다독였다. 그러나 그럴수록 아이의 칭얼거림은 더 커졌고, 잘 놀던 쌍둥이도 바다의 울음에 전염됐는지 이윽고 울음을 터트렸다. 방 안이 순식간에 눈물바다로 돌변했다. 당황하던 준은 앞뒤로 쌍둥이를 업고 손에는 바다의 손을 잡고 방을 나가서 계단을 내려갔다. 아빠 손을 잡고 천천히 계단을 타고 내려가던 바다가 거실에 내려선 뒤 종종걸음으로 안방으로 뛰어갔고, 준도 급히 뒤를 따르다가 활짝 열린 현관문을 보게 됐다. 당황한 준이 부엌에 대고 묻는 그 찰나에 맞춰,

“아줌마! 누구 왔어요?”

“우웨엑!”

안방 쪽에서 커다란 구역질 소리가 들려왔다. 빠른 걸음으로 안방으로 향한 준은 잠시 후, 화장실 입구에 서서 울며 발을 동동거리는 바다와 세면대에서 입을 행구는 혜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야가 좁아져 준은 미처 보지 못 한 혜리의 입장에서, 아이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모르지만 일단 울고 있어서 달래야 하는데, 엄마가 세면대에서 입을 씻고 자신을 내려 보는 순간, 바다는 울음을 뚝 그쳤다. 큰 아이가 울음을 멈추자 쌍둥이도 덩달아 칭얼거림을 멈추었다.

“다 울었어요, 우리 공주님?”

“엄마아!”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얼굴로 자신을 향해 두 팔 벌리는 엄마 품에 와락 안겨든 바다는 문 쪽으로 손을 뻗으며 외쳤다.

“아빠다!”

“응, 아빠에요. 잘 다녀왔어요?”

“예! 청첩장 받아왔어요. 강 경사님이랑 오 경사님이랑 결혼하신대요.”

바다가 말을 배우기 시작한 시점이라서 존칭부터 써야 하는 준과 혜리다. 그래야 아이가 존칭을 배우고 쓸 테니까. 세 아이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간 준은 애들 방에 놀게 해놓고, 혜리와 둘만 부부 방으로 건너와 서랍에서 게보린을 꺼내보였다.

“이거. 첫 날마다 챙겨먹었던 거지?”

생리통이 심한 혜리로서는 첫 날 게보린 한 알에서 두 알을 챙겨먹는 건 필수였다. 출산 후 월경이 재개 되어도 또 임신해서 월경이 멈추면 게보린 안 먹어도 되는 건 당연지사. 서랍을 정리하다 새삼 그걸 본 준은 혜리에게 미안했다.

아이 넷을 갖는 동안 한 번이라도 먼저 알아차려준 적이 없다. 바다 때는 콘돔을 꼈었는데도 임신이 덜컥 되어서 놀랐었고, 쌍둥이 때는 3주 후 임신시험기로 혜리가 바로 알아차렸었다. 넷째 때는 12월의 정사 후 학교 일에 바빠 혜리가 석 달 넘게 게보린을 안 먹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것만 봤더라면 먼저 알아차렸을 텐데. 먼저 임신 축하한다고 해줬을 텐데. 그랬다면 온천에서 그렇게 낯부끄럽게 질투 행각 벌이지 않았을 텐데. 못 보낸다며 발악 비슷하게 행동한 거, 이틀 전에도 사과했지만 준은 지금 다시 사과했다.

혜리를 품에 안은 준은 그 상태로 말을 이었다.

“내가 그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넷째 임신만 알았어도 그렇게 눈이 뒤집히지는 않았을 텐데. 다섯 째 가질 일이 없어서 아쉬울 뿐이야. 그래서, 다시 한 번 미안해.”

“전 괜찮아요. 근데 어떻게 바다가 거기까지 왔어요?”

혜리의 질문에 준은 포옹을 풀면서 답했다.

“두 동생이랑 잘 놀다가 갑자기 문에 붙어서, 문을 두드리면서 엄마라고 하면서 칭얼대는 거야. 엄마 헛구역질 하고 있다는 텔레파시를 받았나 봐, 바다가. 그랬으니 칭얼대면서 울었겠지. 그거 외에는 지금 상황에 대한 답이 없는 거 같아.”

“우리 공주님 똑똑하네요.”

첫 돌 때부터 벽에 그림 그리더니, 두 부모님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굉장히 똑똑한 모양이다.


* * *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해 9월 25일 목요일. 문정주산부인과에서 정오에서 조금 지난 시간에 3.3kg의 건강하고 고추 달린 아들을 낳은 혜리. 문 의사는 분만실 한 쪽에 앉아 있는 아이 아빠를 불렀다.

“최 쌤, 탯줄 잘라야지요! 이제는 긴장이 다 풀렸다 이거지요? 부인은 옆에서 진통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잠이 옵니다, 잠이 와!”

“아, 태어났어요?”

“자, 가위!”

간호사한테서 가위를 받아서 탯줄을 자르려던 준은 그 순간 문 의사로부터 ‘철썩!’ 등짝 한 대 크게 얻어맞았다.

“어허, 좀 더 아래쪽! 넷째인데 아직도 이러면 곤란합니다, 최 쌤?”

“제가 어제 쌍둥이 때문에 밤을 새서 그럽니다.”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고서 탯줄 잘 자른 준, 가위를 내려두고 혜리에게 고생 많았다며 한 마디 하려는데.

“어! 우리 부인 왜 이래! 혜리야, 혜리야! 정신 차려! 눈 떠, 혜리야!”

“아, 거 시끄럽네. 김 간(호사), 입 막어.”

문 의사의 짜증을 들은 김 간(호사)이 즉각 몸을 날려 준의 입을 손으로 턱 막았다. 입을 막혀 소리를 못 지르게 된 준은 손으로 혜리의 얼굴을 가리키며 부인 살려내라고 있는 대로 발악을 해댔고, 문 의사는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뒤 그의 뒤통수에 ‘콩!!’ 알밤을 한 대 먹였다. 결과적으로 준은 오늘 몇 초 차이로 문 의사에게 두 대를 얻어맞은 격이다.

“부인 취침 중이니까 아들 데리고 건너가세요, 최 쌤! 배혜리 산모는 우리가 312호실로 ‘잘’ 올려다 드릴 테니까요.”

“예에.”

알밤 한 대에 정신 차린 준은 아들을 품에 안은 후에도, 아쉬운 듯 부인 쪽을 연신 돌아보며 분만실을 나섰다.


결혼 후 愛

-The Fine.


작가의말

조판양식 총 500쪽 돌파직전.
아쉽지만 분량 때문에라도 이 작품은 여기서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이번 일요일이 오기 전까지 콜센터를 통해 완결란으로 넘길거고요.
읽어주신 많은 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완결란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고요^-^
현재진행형인 '이별을 막는 방법'은 연참대전 참가를 위해
플롯 재정비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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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6.폭탄 맞은 준이네 +7 12.04.24 1,653 1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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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4.한숨뿐인 출산 +4 12.04.19 1,642 13 13쪽
43 43.겹경사 +8 12.04.18 1,356 15 13쪽
42 42.환자 +5 12.04.17 1,575 15 14쪽
41 41.둘째 만들기[19금] +5 12.04.14 2,500 20 14쪽
40 40.웬수 꼬물이? +6 12.04.10 1,652 22 17쪽
39 39.200일에는 입덧을 +5 12.04.06 1,503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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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지퍼가 필요해 +6 12.04.03 1,459 16 16쪽
36 36.최후의 발악 +7 12.04.03 1,676 1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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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내 눈에는 +5 12.03.21 1,750 17 13쪽
28 28.신혼여행 +3 12.03.20 2,025 17 19쪽
27 27.8월의 결혼식 +4 12.03.18 1,842 17 19쪽
26 26.폭로! 술이 웬수다 +3 12.03.17 1,813 19 14쪽
25 25.생일 +4 12.03.16 1,867 19 15쪽
24 24.여우 +5 12.03.15 1,808 19 15쪽
23 23.고급정보와 선물 +4 12.03.14 1,576 20 17쪽
22 22.외톨이야 외톨이야 +6 12.03.13 1,622 18 16쪽
21 21.어머니랑 삼각관계 +5 12.03.12 1,934 23 15쪽
20 20.초밥집 데이트 +6 12.03.10 2,033 20 15쪽
19 19.유치한 별명 +9 12.03.09 2,045 20 16쪽
18 18.합방 +9 12.03.09 2,914 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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