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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남녀

결혼 후 愛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완결

이설理雪
작품등록일 :
2012.05.02 22:52
최근연재일 :
2012.05.02 22:52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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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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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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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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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2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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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46.폭탄 맞은 준이네

DUMMY

46.폭탄 맞은 준이네


1년 후. 2014년 4월 1일. 집안을 미술실로 보기 시작한 바다와 함께 쌍둥이를 같이 돌보기 위해 지난 2월 휴직계를 내고 가정에 몰두하게 된 준. 덕분에 학교 일에서 잠시 손을 놓은 그는 혜리와 함께 세 아이를 보는데 집중했다. 문제는 준이 휴직계를 던지고 잠수하니 절친 지훈마저 준이 따라 휴직계를 던지고 잠수타기에 이르렀다는 거다. 덕분에 애꿎은 대연고만 완전 폭탄 맞고 두 사람 공간을 매우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준의 생일. 쌍둥이와 바다를 두 어른에게 맡긴 준은 아침 일찍, 혜리와 단둘이 경남 창녕군 부곡면에 있는 온천으로 여행 갔다. 덕분에 또 다른 폭탄을 맞아버린 최 사장과 나 여사는 급히 대엽네 부부와 형님네를 집으로 호출했다. 그게 또 다른 폭탄이 터트릴 일이라는 것은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못 한 채. 대엽네 쌍둥이는 두 달만 있으면 돌이라 서서히 걷기 시작하고, 준이네 쌍둥이도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집안이 온통 난리가 나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준이네 쌍둥이와 바다는 부모를 찾지 않는다는 거다. ……아직까지는.

자기네들끼리 노느라 정신없어서 그러리라.

띵동!

“왔다!”

거실에 나와 있던 최 사장과 나 여사가 서로를 보며 반가운 얼굴을 한다. 같이 아이를 봐줄 사람을 끌어들인 것이다. 가사도우미는 청소 때문에라도 아이들을 봐줄 수가 없다. 이윽고 딸 쌍둥이를 품에 안은 대엽 내외의 뒤를 이어 최 회장 내외도 들어온다. 그들은 각자 인사를 나눈 뒤 머리카락 하나 없게 깨끗이 치운 거실 바닥에 쌍둥이 자매를 내려놓는다. 먼저 내려와 있던 바다 그리고 쌍둥이 남매와 깔깔대며 인사를 나눈 아이 다섯.

아이들이 갖고 놀 장난감을 여기저기 꺼내놓은 어른들은 소파에 앉아 음료와 과자를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그들의 손전화와 디카도 나와 있다. 한 번씩 촬영도 하는 것이다.

이윽고 장난감이 거실 여기저기 흩어지는 건 둘째 치고, 아이 다섯 중 맏이인 바다를 중심으로 기차놀이를 하며 집안을 온통 헤집어놓는 다섯을 보며, 어른들은 깔깔대며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어차피 치워봐야 소용이 없을 시기 아닌가. 안전사고가 나지 않을 범위 안에서 다섯 아이 맘껏 놀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특히 두 달 후면 두 돌인 바다는 그림 그릴 재료로 색깔 있던 볼펜에서, 최 회장이 선물로 사다준 크레파스로 한층 업그레이드했고 안방에서 거실까지 공간도 넓혀왔다.

바다가 크레파스로 벽화를 그리는 사이, 기어 다니는 쌍둥이 남매는 맏언니가 여기저기 흩트려 놓은 크레파스로 바닥에다 벽보를 그리고 있다. 그야말로 온 거실이 난장판이고 개판 일부직전이다.

“푸하하하하하하하!! 걸작이다, 걸작! 바다 작품이에요? 애 나중에 화가시키면 되겠네!”

“벽지 안 깔아?”

“우리 벽지 안 깔기로 결론을 내렸어요. 어차피 깔아봐야 또 헤집어놓을 텐데요, 뭐. 소용없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현명하지요. 안 그래요, 아주버님? 호호호호호호!”

최 회장의 질문에 대답한 나 여사가 깔깔거린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장미와 개나리도 피었습니다. 1년 사이 안방은 바다가 뽐낸 그림 실력으로 인해 새로운 도배가 된 상태다. 잠식이라고 봐도 무방할 터. 안방이 각종 꽃들로 액자 없는 장식이 된 상태를 본 대엽네 가족이 다시 한 번 대소를 터트린다. 실컷 구경하고 거실로 나오는 그들. 가사도우미 아줌마가 내온 음료와 과자 집어먹으며 대엽이 기차놀이 중인 다섯 애기 보면서 말문을 연다.

“이렇게 모이니까 훨씬 낫네요! 애들은 지들끼리 놀라고 하고, 우리는 못 다한 얘기하면서 잠깐이나마 쉴 수 있고. 더불어 집 한 채만 어지르면 되니깐요. 하하하하하하!”

“정말 그렇구나, 하하하하하하!”

대엽의 말에 어른들 모두 웃음이 터진다. 얼떨결이지만 명쾌한 결론이 나온 거다. 집 두 채 어지럽히고 엉망으로 만들면서 따로 지내느니, 한 집에 모여 살며 한 집만 어지럽히는 게, 한 채만 희생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최 사장이 최 회장을 보며 묻는다.

“좋은 생각이네. 형님네는 어떠세요?”

“나쁜 생각은 아니다만 힘들지 않나? 준이네 돌아오면 얘기 한 번 해보자. 일단 우리 집으로 옮기는 게 어떨까 싶다. 두 집이 합치기에는 이 집은 좀 작잖아.”

최 사장네가 아무리 3층이라도 지하에 서재가 있어서 최 회장네가 한꺼번에 밀고 들어오기에는 무리가 좀 있다. 최 회장의 말처럼 다 같이 모여서 상의해봐야 할 문제이다.

콩.

“…!”

어디선가 둔탁한 소리가 나고 어른들의 고개가 똑같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간다. 잘 놀고 있던 다섯 아이 중에 막내인 준이네 쌍둥이 딸 사랑이가 소파 다리에 이마를 살짝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리 심하게 받은 건 아닌 듯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마름모 모양으로 다리 모으며, 철푸덕 주저앉은 뒤 커다란 두 눈을 껌벅이느라 바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아픈 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덩달아 다른 네 명의 아이도 무슨 일이냐며 서로 돌아보며 영문을 몰라 한다.

일어나려던 어른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다섯 아이를 보며 또 한 번 웃음이 터진다.

“노느라 바빴나 봐요, 사랑이는 아픈 것도 모르나 본데요? 하하하하하!”

“앞에 웬 벽이 있나 하는 얼굴인데? 하하하하하하.”

최 사장의 말에 최 회장이 받아치며 껄껄 웃는다.

“흐응?”

어른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는지 바다가 눈을 껌벅이며 어른들을 바라보고, 그 모습에 어른들은 다시 한 번 빵 터진다. 대엽은 박수까지 치면서 난리가 난다. 앞의 탁자에 올려놓은 손전화를 집어 들고 카메라로 바로 들어가는 그다.

분홍색 크레파스를 들고 설쳐댔는지 뺨에는 연지곤지를, 입술에는 립스틱을 바른 바다다. 자기 여동생한테도 해주려고 하지만, 사랑이가 뽈뽈뽈뽈 기어 댕기느라 바쁜 탓에 바다의 크레파스 화장은 계속 실패한다.

“푸하하하하하! 어머니 아버지 바다 좀 보세요! 바다 얼굴 너무 멋진데요, 바다야, 여기 좀 보시게, 으하하하하하!”

“나중에 준이랑 새아기 돌아오면 할 얘기 많겠다?”

“정말 그렇군요, 형님.”

“하하하하!”

“으응?”

어른들이 왜 웃는 지를 파악하지 못 한 아이들은 다시 자기네끼리 옹기종기 모여 놀기 시작한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대엽네 큰 아이가 철푸덕 넘어지지만 자신이 넘어졌다는 사실도 모른 채 다시 일어나 바다와 함께 노는 것을 보며, 대엽은 웃느라 바쁜 와중에도 다시 손전화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얼른 합쳐야겠다.”

“아아, 너무 잘 논다.”

“큭!”

“응?”

또 한 번 이상한 소리를 내며 어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아이들. 뭔 일이나 보니 대엽이네 쌍둥이 중 둘째가 적색 크레파스를 코에 쑤셔 넣고는 자랑하듯 소리를 내는 것이다. 또 한 번 폭소가 터지고, 보다 못 한 대엽의 부인이 내려가 크레파스를 빼주지만, 적색인 탓에 코피가 터진 것처럼 코 안이 빨갛다.

“하하하하하하!”

“못 말리겠다, 이걸 왜 쑤셔 넣었습니까?”

“헤에.”

뭐든 콧구멍에 넣고 보는 습관이 발동한 듯 보인다.

“잘 노니까 다행이네요.”

“아파도 아픈 것도 모르고, 하이고!”

자주 모여서 애들끼리 노는 것도 좋을 거 같다.


한편. 준과 혜리 부부는. 1박 2일로 생각하고 온 온천여행이라서 세 아이만 찾지 않는다면 온천 여행 마음껏 즐기고 올 수 있다. 비수기라 사람이 뜸한 온천을 장악한 부부는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쉬는 중이다. 미리 수영복을 챙겨 와서 가릴 곳은 가린 혜리를 준이 응큼한 눈으로 바라본다. 시선은 오로지 한 군데에만 가 있다. 온천여행을 온 목적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쳇. 벗기 싫다 이거지?”

“싫어요. 아, 좋다.”

“그럴 거야? 그럼 내가 직접 벗겨주리?”

“뭐야, 다른 목적 있었어요?”

온천물에 몸을 푹 담근 혜리는 고개만 빼꼼 내밀고서 묻고, 준은 씨익 웃기만 할 뿐이다.

“이리 와.”

“이리 와는 무슨? 흥.……엄마야!”

첨벙, 첨벙. 물살을 가르며 준을 피해 반대편으로 도망가려다가 팔을 확 붙잡혀서 신랑의 품에 와락 안기는 혜리. 짧은 비명이 온천 안을 울린다. 준은 손을 뻗어 수영복 안에 가려진 꽃봉오리 위로 얹는다. 그냥 턱 얹었을 뿐인데 그 손길에도 혜리는 다시 몸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낀다. 4개월 만에 느끼는 열기다. 욕구의 열기다. 하지만, 안 돼!!

“내가 왜 이렇게 멀리까지 여행오자고 했겠어? 오늘이 생일이라는 거는 핑계라는 걸 몰라?”

“몰라요, 알 턱이 없잖아요. 놔줘요, 온천인데 마음껏 즐겨야지요.”

“신부. 애들 생각 안 나지?”

“별 일 있겠어요? 아버님 어머님 계시는데. 이참에 전화한 번 해봐야겠네요.”

신랑 손을 풀고 쌩하니 도망 나가는 혜리의 뒷모습을 보며 황당하다는 표정만 짓는 준.

‘하여간 도망가는데 선수야. 넷째 만들기로 해놓고 웬 도망이래? 잡혀도 시원찮을 이 마당에. 한 번씩 밀당으로 골려주시겠다 이거지? 잡히기만 해?’

또 씩 웃은 준은 온천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가 뒤에서 천천히 다가가는 것도 모르는 채로, 라커룸에 넣어 놓은 손전화를 꺼내 나 여사에게 발신 거는 혜리. 수신이 들어오는 탓에 카메라가 자동적으로 꺼져버리자 나 여사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전화를 받는다.

“새아기니? 온천에서 즐기다 말고 갑자기 웬 전화야?”

“우리 세 아이 어쩌고 있나 궁금해서요. 꺄악!”

“도망가 봐야 내 손바닥 안입니다, 신부.”

혜리 등 뒤에서 백허그 들어가는 준이다.

“안 그래도 온 집안이 난리가 났다. 사진 찍은 거 바로 보내줄 테니 끊으렴.”

“예, 어머니.”

준에게 자신의 등을 맡긴 혜리는 어머니가 보내주실 사진만을 기다리고 있다. 곧이어 속속 도착하는 사진들. 현장을 그대로 찍어서 보내는 나 여사의 실력은 그야말로 수준급이다. 가히 갤러리 안주인이라고 할 만 하다. 사진 속 바다의 모습을 보며 깔깔 웃던 혜리는 자신의 허리에 손을 감고 있는 신랑에게 사진을 보여준다. 대엽이네 쌍둥이까지 가세하여 벽이며 거실 바닥이며 멀쩡한 곳이 없다. 돌 지나기 전인데도 이럴 진데 앞으로는 얼마나 더할지 기대마저 되는 혜리다.

“아, 잘 봤다!”

사진 감상 실컷 한 혜리는 사물함에 손전화 넣어놓고 돌아선 혜리는 다시 온천 쪽으로 발을 옮기려 하지만 쉽지 않다. 신부를 꼬옥 끌어안고 있는 준의 발이 본드 붙인 것마냥 찰싹 붙어 있는 탓이다.

“어어? 온천욕 좀 더 할 거예요.”

“넷째 만들 생각 없는 거야?”

“천천히요. 아직 밤도 아니에요.”

“자꾸 자극 들어간다 이거지?”

엉덩이 골짜기 사이로 자신의 몸을 찰싹 붙인 준은 자신의 급소로 부인의 엉덩이 골짜기를 쿡쿡 쑤셔댔다. 그 조그마한 자극에도 혜리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안 된다, 지금은 위험하다! 신부의 어깨가 빳빳하게 굳어지는 것을 본 준은 드러난 목덜미에 촉 소리 나게 키스를 하는 준.

“느껴지지? 그런데도 버틸 수 있을까?”

“신랑. 아직 낮인데 이럴 거예요?”

“나 왜 이렇게 됐는지 몰라? 봉인해제를 안 시켜주니까 이렇게 됐잖아. 작년에는 바다 100일 때 봉인해제 허락해주더니 이번에는 좀 길게 간다? 4개월 전에 봉인해제 시켜준 걸로는 만족이 안 돼. 우리 쌍둥이 넉 달 있으면 돌이야. 그 때 너무 짧았던 거 알지? 우리 그 때 ‘4시간밖에’ 안 했다는 것도 알지?”

“<밖에>, 라니요. <씩이나> 겠지요. 4시간도 길어요. 힘들어요, 신랑! 4시간은 두 번이면 충분해요. 우리 그 때 그렇게 해서 쌍둥이 봤잖아요, 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넷째 기다리고 있는 거 알지만 아직은 비밀로 하고 싶다. 모르게 하고 싶다. 오늘이 신랑 생일이라서 온천 여행 오자고 해서 성큼 왔지만 설마 아기 만들기가, 봉인해제가 그 밑바탕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안 된다. 지금은 아니다. 산부인과에서도 신신당부를 했던 게 있으므로 오늘의 고비를 제대로 넘겨야 하는데 큰일이다. 쌍둥이 가졌을 당시 바로 알려줬던 것 때문에 이번에는 늑장을 좀 피워보는 거다. 오늘을 잘 넘겨야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월경 전이니 배란일일 거 아냐.”

“신랑.”

“나 한계점 다다른 거 알면 풀어주지? 넷째 만들어야지.”

“혼자 삭힐 수 없나요? 절대 안 되요.”

“왜 이렇게 튕겨? 뭔가 수상한데?”

“안 되는 건 안 되요.”

단호하게 뿌리치고 온천수 안으로 다시 몸을 담그는 혜리. 준도 황급히 뒤를 따라 온천수 안으로 풍덩 들어온다.

“여보. 결혼 4년 만에 애정이 식었나? 하긴. 무리도 아니지. 아이가 벌써 셋인데. 결혼 전부터 봉인해제를 해줬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근데 난 아니거든? 남자는 육십도 청춘이라고 하는데 좀 받아들여주지? 나 이제 겨우 서른하나야.”

“저는 이제 겨우 서른인데 아이가 벌써 셋이에요.”

“그래서. 사랑이 식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런 거야?”

“아니에요.”

아니라고 하면서 받아들여주지 않는 부인의 태도가 수상하다. 이상하다. 뭐야, 설마 결혼 4년 만에 딴 맘? 그래서 순순히 온천여행 응했나? 이별여행 왔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안 돼. 그건 절대 허락 못 해! 짐짓 판단한 준은 속에서 불꽃이 확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불꽃에 휩싸인 준의 몸에서 연기가 천천히 피어오른다. 그는 목소리를 쫙 깔고서 입을 연다.

“나 봐. 똑바로 봐.”

“네?”

“솔직하게 말해. 부인 마음에 방이 두 개야?”

“네?”

“방이 두 개냐고. 방이 하나가 아니냐고 묻고 있잖아. 그 방에 나만 있는 게 아니냐고 묻고 있잖아, 지금.”

불편한 심기로 인해 말투가 점점 사나워지는 준.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이내 무슨 뜻인지 파악한 혜리가 그의 오해를 풀려고 하는 그 때 준이 느닷없이 입술을 맞춰 온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키스다. 부드럽고 감미롭고 달달하던 지금까지의 키스는 온데간데없고, 거칠고 사나운 야생마적인 느낌만 있을 뿐이다. 입안에 상처라도 낼 듯이 거칠게 옭아매는 신랑의 키스에 정신이 없을 정도다.

손을 뻗어 신랑의 가슴팍을 밀어내보지만 다시 들러붙은 그는 혜리의 아랫입술을 한참이나 잘근잘근 씹어대다가 거친 눈빛으로 혜리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못 가. 나. 너 못 보내. 선녀의 나무꾼도 아니고 아이가 셋이나 되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배혜리. 신부. 넌 죽을 때도 내 옆에서 죽어야 해. 알잖아. 언제부터야. 언제부터냐고. 이런 이벤트를 준비해놓다니 생각도 못 했어. 설마 생일에 맞춰서 이별여행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명령이야, 그 딴 소리 집어치워.”

“신랑.”

“신부 사랑이 식었으면 내 사랑으로 회복시키면 돼. 그럼 돼. 나 너 보낼 수 없어. 안 보내. 이혼 못 해. 안 해!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넷째 만들어서 널 내 옆에 꼭 붙여놔야겠어.”

이런 이런. 더 이상 숨겼다가는 사랑이 아니라 집착으로 보이겠다. 응? 이별여행은 이별여행이 될 지도 모르겠다.

“신랑. 진정하고.”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참을 수 없어. 강제적으로라도 널 안아야겠어.”

“정말! 애기 놀래면 안 되요오!”

“…!”

데엥! 머릿속에 갑자기 커다란 종이 나타나서 거침없이 울어댄다. 뭐라고? 아니,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봉인해제는 두 달만 더 기다려줘요. 5개월 지나면 해도 된다고 했으니까 이왕 참은 거 조금만 더 참아줘요.”

“신부, 너……?”

“저도 처음에는 몰랐으니까 SameSame이라고 치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 알죠?”

“지금, 그러니까 임신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쌍둥이 가질 때 너무 덤볐던 게 미안해서, 3주 만에 확인 사살시켜서 봉인시켜준 게 미안해서 넷째는 좀 천천히 가지고 싶었어요. 저도 신랑한테 익숙해지고 익숙해져서 스킨십 자주 하고 싶어서요. 그런데 이렇게 된 걸 어쩌겠어요. 진짜 봉인이라도 시켜야 하나 봐요. 병원 가서 묶어 달라 하세요. 그리고요. 넷째까지 가진 이 마당에 가기는 어딜 가요? 아무리 신랑이라지만 내 새끼들 놔두고 도망가는 발칙한 년을 만들고 있어요, 왜. 아무리 제가 자식 버린 엄마의 피를 물려받았어도 그렇게 못 해요. 우리 예쁜이들 어쩌고 있는 지 다 봤잖아요. 배부르고 나면 얘기하려고 했더니만 그것도 생각대로 안 됐네.”

말 끝낸 혜리는 신랑을 포근하게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참. 이별여행이라고 했죠? 그렇기는 하네요. 앞으로는 둘이서 나오는 거 정말 어려울 테니까. 지금처럼 작정하고 맡기지 않는 이상. 그러니 이상한 오해는 금물이에요? 방이 두 개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혹시 신랑이야말로 방 두 개인 거 아니에요? 그러기만 해요? 용서 못 해. 다신 아기 가질 수 없는 몸으로, 남자로서 살 수 없도록 만들어 줄 거예요.”

그 말 들으니 마음 놓인다. 준은 그제야 편하고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서 다시 부인의 목덜미에 키스를 짧게 남긴다. 쓸데없는 오해를 하고 만 자신이 창피하고 부끄러울 정도다. 그래서 준은 고개를 들지 못 한 채로, 부인에게 안긴 채로, 자신의 턱을 부인의 어깨에 댄 채로 말을 잇는다.

“그렇게 해줄래? 나 도망 못 가게?”

“병원 가서 묶어 달라 하세요. 그러면 얼마든지 받아들여줄게요.”

“후후. 성별은 알고 있고?”

“아.들.”

“딱 됐다! 근데 어느 병원에 가서 묶어달라고 해야 하지?”

“어휴! 남자가 돼갖고 그런 것도 모르고! 비뇨기과요!”

바보. 혜리는 잠시 포옹을 풀고 신랑을 가볍게 흘겨보고는 재차 폭 안긴다. 그러자 서슴없이 꽉 끌어안지 않고 팔에 힘을 조금 푸는 준. 행여나 해가 될까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뭐야, 난 모르는데 넌 어떻게 알아?”

“문 쌤한테 물어봤지요. 히힛! 신랑.”

“응.”

“생일 축하해요!”


다음 날 저녁. 부곡 하와이 온천 여행을 끝내고 부산 남천동 집으로 돌아오는 준과 혜리. 그런데.

“다녀왔……으헉!!”

퍽! 느닷없는 블록 장난감 공격에 급소를 맞아버린 준은 양손으로 사타구니를 감싸며 고꾸라진다.

“딸. 이건 아니지 싶다. 아빠의 피임을 네가 대신 해주는 건 좋지만 이렇게는 아니지 싶다. 어떻게 여기를 딱 맞추냐.”

털썩! 엉덩이 치켜세우고 시옷 자 형태로 바닥에 납작 엎드린 준은, 해맑게 웃는 얼굴로 머리맡에 서 있는 딸아이를 쳐다본다. 그 너머로 장난감으로 엉망이 되어 있는 거실이 보인다. 그렇다고 딸아이한테 뭐라 할 수도 없고. 아아. 아프다.

자세한 건 다음 편에서!


작가의말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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