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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남녀

결혼 후 愛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완결

이설理雪
작품등록일 :
2012.05.02 22:52
최근연재일 :
2012.05.02 22:52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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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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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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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861

작성
12.03.1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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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19쪽

27.8월의 결혼식

DUMMY

27.8월의 결혼식


세상에. 예비 남편 쪽을 팔아도 팔아도 이렇게 팔아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지훈 녀석 앞에서의 굴욕과 치욕은 친구니까 어떻게 그냥 넘어 간다 쳐도, 처음 본 사람에 불과한 의진 앞에서 팔린 쪽은 어찌 한단 말인가.

다시 생각해도 헛웃음밖에 안 나온다. 아이고.

“죄송해요.”

응? 혼자만의 씁쓸한 기억에 폭 빠져 있던 준은 고개를 들었다.

“나, 사고 제대로 친 것 같아요.”

혜리는 침대 위에 그대로 앉았으되, 무릎과 허벅지는 딱 모으고 종아리와 발은 부채꼴 펴듯 조금 벌리고, 양 손은 이불에 붙이고서 고개 푹 숙인 자세로 말을 이었다.

“뭐라고? 설마, 다 기억하는 거야?”

끄덕끄덕. 기억 못 하면 크게 혼내려고 했던 준으로서는 반전을 겪는 거나 마찬가지다. 3살 때의 일도 기억에 남아 있는 혜리가 그 정도를 기억 못 한다면 오히려 더 이상하다. 게다가 한 번 보고 슥 지나쳤던 그림의 유무까지 다 기억하고, 크기까지 다 기억하지 않았던가. 수준급의 기억력이 아닐 수 없다.

“정말이야?”

“청혼도 개판이었다고 욕한 것도 기억나요. 근데 어떻게 집에 왔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그래서 미안해요.”

“잠꼬대도 기억 안 나?”

“잠꼬대 했어요?”

되묻는 걸 보니 정말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정작 기억해도 될 부분이 기억되지 않아서 준은 못내 섭섭하다.

‘난 들었는데. 넌 기억 못 하는구나. 의진 씨말로는 그 말 직후 뻗어서 청혼에 대한 언급을 기억 못 할 거라고 하더니만.’

생각에 잠겼던 준은 표정을 풀고서 혜리를 봤다. 그녀는 또렷이 기억나는 자신의 행패로 인해, 준이 얼마나 망신을 거하게 당했을지 아는 탓에 얼굴을 못 들고 있다.

“술주정을 좀 심하게 했나 봐요. 의진 씨한테 다 들었을 거 같으면 옆에 윤 선생님도 같이 계셨다는 말이잖아요. 그 쌤 활기찬 성격으로 봤을 때 정신없을 웃어댔을 거예요, 분명. 미안해요. 미안해요, 정말.”

‘나 때문에 제대로 창피했고 제대로 부끄러웠을 거를 생각하면, 미안하다는 말로는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미안해요.’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다 가리고 있는 혜리의 손을 내린 잡고 준은 빙그레 웃었다.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줄 거야. 다음부터는 정말 혼난다? 아직 결혼도 안 한 예비 남편 이미지 쇄신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다 망치고 있잖아. 이제 나 의진 씨 어떻게 보라고 이래?”

“잘 보면 되잖아요. 아얏!”

타악.

오른손 중지를 튕겨서 혜리의 코끝을 살짝 때린 준은 다시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가 폈다.

“너 정말.”

“히잇.”

매롱하듯 혀를 쏙 내밀었다가 넣는 혜리. 그 모습마저도 귀여운 준은 혜리를 품에 잠시 안아주었다.

“잘못한 거 안 거야?”

“네.”

“그럼 됐어! 처음이니까 그냥 넘어간다. 가자, 밥 먹으러. 배고파. 너 자는 동안 잠깐 나가서 좀 걸었더니 더 해. 아줌마한테 콩나물국 부탁드려놨어. 다 되어 있을 거야.”

“술 안 먹어야 되요?”

“아예 먹지 말라고 하면, 그 약속 지킬 수 있어? 와인도 술이거든요? 나 너랑 결혼하고 나면 집에 아버지가 고이 모셔놓은 와인 다 따서, 너랑 같이 오붓한 분위기 내면서 마실 작정이었거든?”

전면 수정에 들어가야 할 판이다. 오리처럼 입술 삐죽 내민 혜리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대꾸를 안 한다. 먼저 침대에서 일어난 준의 뒤를 따라 침대에서 내려간 그녀는 이내 답을 내놓는다.

“히힛. 자신 없어요.”

“그럴 거면서 뭘 물어?”

“같이 가요오.”

편한 옷차림으로 앞서 가는 준의 팔에 팔짱 끼며 애교를 슬쩍 부려보는 혜리다.

“용서해주는 거예요?”

목소리에 귀여움을 담아서 질문하는 혜리의 모습에 준은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손을 뻗어서 혜리의 말랑한 코를 향해 손가락을 또 한 번 튕겼다.

“아얏!”

“새침데기!”

“용서해주세요오.”

“알았어, 알았어.”

외부적인 요인 때문이라도 애교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들만큼 모진 일을 겪었던 지난 과거. 그런 그녀가 지금, 아양을 떨고 있다. 지연에게서도 보지 못 한 모습인지라 준은 미소를 지우지 못 했다.

1층 부엌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가사도우미 아줌마가 반긴다.

“밤이 깊은 것도 아닌데 어쩌자고 그랬어요? 어제 도련님 등에 업혀서 들어오는데 깜짝 놀랐어요. 사모님이랑 사장님이랑 집에 안 계신다고 막 나가는 건가 싶었다니까요.”

“그러게요. 아, 두 분은요?”

“어제 온천 여행 가셨어. 의진 씨랑 둘이 노느라 바빠서 집에도 연락 안 해, 예비 신랑한테도 연락 안 해, 그런데 부모님 집에 안 계시는 걸 어떻게 알았겠어? 오늘 밤 늦게나 돌아오실 거야. 지금 12시가 다 되어가, 사이다 잔으로 세 잔에 그렇게 늘어져 자면 어떻게 해?”

“진짜에요?”

자도 자도 너무 오래 잤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혜리는 설마 밤인가 싶어 바깥을 내다보지만, 훤한 대낮은 지금이 정오임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 밥 떠주시고요. 아줌마도 식사하셔야죠.”

“예.”

혜리가 일어나지 않는 통에 덩달아 아침을 거른 두 사람이다.

준의 말을 들으며 자리에 가 앉는 혜리. 그러고 보니 머리가 다 땋아져 있다. 콩나물국 나오는 걸 보면서 손으로, 땋아진 댕기머리를 매만져본 혜리가 가사도우미 아줌마와 준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 머리 어떻게 된 거예요?”

“내가 심심해서 좀 땋아봤어. 어때, 괜찮아?”

“네! 머리 땋는 거 하나는 잘 하시네요.”

“…….”

준은 혜리가 그랬던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서 혜리를 바라봤다.

“그러기야?”

“쿡!”

“자자, 식사하세요, 도련님과 아가씨.”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시간차를 두고 인사하는 준과 혜리. 숟가락으로 콩나물국부터 먹어본 혜리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눈웃음도 모습을 드러냈다.

“시원해요!”

“속이 풀린다는 증거야. 어제 구토도 한 번 없었으니 간이 많이 힘들 거야. 듬뿍 끓여놨으니 많이 먹어.”

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접째 들고 벌컥 벌컥 국물을 쭈욱 마시는 혜리. 건더기는 손도 안 대고 국물만 들이켠 그녀는 대접을 가사도우미 아줌마에게 내밀었다.

“저 국물 좀 더 주세요.”

“하하, 알았어요!”

고개를 끄덕인 가사도우미는 일어나서 콩나물국을 한 대접 퍼서 혜리에게 준 뒤, 아예 국 냄비 채로 혜리 앞에 내려놓는다.

“와아!”

무척 환영한다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준과 가사도우미는 실소를 지었다. 그녀의 엉뚱함은 정말이지 당해낼 사람이 없을 듯싶다.

7월 두 번째 일요일인 오늘은 속이 부대끼는 혜리를 위해 준이 미리 DVD를 넉넉하게 빌려왔다. 집 거실에서 틀어서 두고 두고 볼 참으로 넉넉히. 아침에 나가서 걸었다더니 DVD 빌리러 나간 것이다.

DVD의 장르를 보던 혜리가 의문을 품었다.

“원래 남자들 액션이나 스릴러물 좋아하잖아요.”

근데 지금 빌려온 건 다 드라마나 코미디 장르다. DVD를 손에 든 혜리를 보며 준이 조용히 말했다.

“혜리가 싫어하니까.”

“…….”

“혜리가 싫어하는 건 안 하고 싶으니까! 잠깐 잊고 있었던 걸 강 경장이 제대로 상기시켜줬어.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서 순경의 영향으로 인해, 영화관 멀리 하게 됐다면서? 그러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안겨주더라. 액션 스릴러 공포 영화는 되도록 피하고, 색깔도 검정과 빨강은 피하라고.”

혜리는 손에 들고 있던 DVD를 내려놓고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 때 영화관에 가자는 오빠의 말에 순순히 응했던 건 <극복> 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어서 그랬어요. 하지만 쉽지는 않더라고요. 도와줘요. 잊을 수 있게.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줘요. 그래주세요.”

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혜리는 팔을 뻗어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 상태로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는 혜리의 눈에, 이슬이 비치는 것을 보고는 오른손으로 그녀의 목 뒤를 받치고서 입술을 맞댔다.

양치를 한 후라서 치약 맛이 강했지만 서로 같은 상황이니 키스는 점차 진해졌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그녀의 혀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잠시 키스를 멈추는 듯 하더니 다시 서로의 입술을 부딪치고 안에서 혀끼리 감겼다. 혜리는 준의 허리에 감았던 손을 풀어 그의 목을 감쌌다. 둘은 그저 서로의 입안을 탐색하기에 치중했다. 소파에 길게 엎어진 후에도 둘은 그대로 키스를 이어갔다.

쪽쪽대는 소리가 깊어지는 가운데이지만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의 진도는 없었다.

열린 창문과 틀어진 선풍기 등, 집 안 거실은 제법 시원했다.

2시간 후 장을 보고 돌아온 가사도우미 아줌마는 거실의 풍경을 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재생 중인 DVD, 그러나 소파의 준과 혜리는 다리를 소파 아래로 내리고 앉은 채 사이좋게 서로의 머리를 서로에게 맞대고서 잠이 들었다.


* * *


7월 23일 토요일 오후. 결혼식을 8월 5일 금요일로 잡은 뒤에 오게 된 부산 수영구 남천동의 디아뜨르웨딩. 그곳에서 준은 심심한 얼굴로 앞의 잡지를 뒤적이는 중이다. 한숨을 길게 내쉰 그는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듯 결국은 목소리를 낸다.

“아직 멀었어?”

말 끝나기 무섭게 양쪽으로 열리는 커튼. 촤악 소리에 준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

그는 시간이 멈춘다는 게 어떤 건지 그 때에 가서야 비소로 알았다.

머리에는 월계관을 얹고 손에는 조화로 만들어진 부케를 들었다. 크고 늘씬한 체격을 완전히 드러낸, 흰색의 단아하고 길게 내린 웨딩드레스. 어깨와 팔은 그대로 드러낸 채, 없는 가슴계곡을 만드느라 있는 대로 모은지라 거기서 시간소모가 제법 컸다.

곱실거리는 머리를 풀어내려서 전체적으로 우아한 자태는 아름답다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할 지경이다. 입가의 옅은 미소는 화룡점정이다. 넋을 놔버린 준은 한참 후에야 말했다.

“……여신이다!”

그의 반응에 놀란 혜리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고는 돌아섰다. 골라놓은 드레스가 네다섯 벌 정도 된다. 이제 시작한 시점이니 얼른 다른 걸로 갈아입으려는 듯. 하지만 준이 잠깐만이라며 그녀를 붙잡았다.

찰칵!

그러더니 갖고 온 디카로 혜리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촬영했다.

“됐어.”

커튼이 다시 쳐지고 혜리는 두 번째 웨딩드레스로 갈아입으러 사라졌다.

디카의 단추를 이리저리 눌러서 방금 찍은 첫 번째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는 준의 입이 헤벌레 벌어졌다. 천사가 실존한다면 이런 모습일 지도 모른다.

“예쁘다.”

정신줄을 놨다고 말해도 충분할 만큼의 얼굴 표정이다. 입 꼬리가 귀에 닿을 정도로 찢어졌지만 피는 흐르지 않는다.

“우와. ……이야. ……와아. ……우와. ……와아.”

다시 생각해도?

“히야아…….”

감탄사밖에 안 나오는 듯.

“대엽 형이 말하던 게 바로 이거구나! 우와아…….”

양손으로 볼을 탁탁 쳐보기도 하고 머리를 흔들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 확실히 박혀버린 여신 자태는 사라지지 않는다. 디카를 보며 다시 헤벌쭉 웃는 준의 모습은, 웨딩드레스샵에 온 신랑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모습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신의 신부를 혼자만 볼 수 있다는 생각과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은 행복.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부부가 이때의 기억만 고스란히 간직한다면, 서로 가장 사랑한 그 때를 두고두고 회자한다면, 서로를 헐뜯거나 의심해서 심지어는 이혼서류까지 쓰는 일은 없으리라.

모든 부부는 결혼식에서 주례 앞에서 맹세한다. 영원히 옆의 상대만을 사랑하겠다고. 이 사람만 보고 살 거라고. 맹세한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끝까지 그럴 거라는 듯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랑만 하고 살기에는 5,60년, 또는 70년이 너무 긴 걸까? 자신의 인생이 총 100년이라고 봤을 때는 그래, 길다.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안다. 겪어보면 인생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알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정작 얼마 안 된다는 불편하고도 잔인한 진실을.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주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왜 부부들은 다툼으로 채우는 것일까. 돌아보면 그 때뿐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백 번 생각해도 의문이다. 누군가를 만나서 연애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결혼을 했다. 사랑하니까.

사랑해서 결혼했다면 상대의 ‘잘못’도 인정하고 받아줘야 하는 법이다. 왜? 내가 선택했으니까.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그 몫도 자신의 것이니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신뢰가 깨지면 사랑으로 버티고 사랑이 희미해지면 연민으로 채우는 것. 그게 바로 부부사이가 아닐까 한다.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겠다. 저 ‘잘못’ 안에, <바람> 은 들어있지 않다. 한 사람만 보고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남에게 나눠준다? 그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므로.

요는,

떠들기 시작해서 흘린 시간이 30분에 가까워가는데도 우리의 주인공은 준인 <주책바가지>의 모습을 유지한 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 나와 봐.”

촤악. 이번에도 말 끝나기 무섭게 커튼이 좌우로 물러갔다.

“……!”

이번에 혜리가 입은 웨딩드레스는 옅은 노란색의 미니스커트다. 발랄한 옷에 맞춰 표정도 발랄하게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다시 혼이 육체를 이탈하는 준. 혜리가 느끼기로 1분이 흐른 뒤에야 디카를 손에 드는 그다.

“예쁘다. 너무 잘 어울리는데?”

“오빠가 골라준 옷이에요. 다른 거 입어볼게요.”

“좀 빨리 갈아입으면 안 될까? 나 애태우는 거 재미있어? 정녕 그래?”

“안 그래요. 기다려요!”

라고 말하고 사라진 혜리는 다시 30분이나 걸린 뒤에야 나타났다. 분홍색의 긴 웨딩드레스를 입은 혜리의 모습은 아까와는 다른 모습의 우아한 자태를 가진 여신이다. 기어이 자리에서 일어난 준은 빠른 속도로 박수를 쳤다.

“환상적이야! 백설 공주도 신데렐라도 울고 가겠어! 그게 제일 아름답다, 그걸로 하자!”

“저도 이게 제일 마음에 들어요.”

찰칵! 이번에도 찍는다. 지금까지 입어본 세 벌의 웨딩드레스 모습이 다 저 안에 있다는 것을 아는 혜리는 질문을 하고야 만다.

“웨딩앨범 촬영 할 건데 뭐 하러 그래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런가, 라며 고개를 갸웃댄 혜리는 다시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자, 다음은 신랑 차례다. 그런데.

“저도 좀 찍게 그냥 거기 있으면 안 돼요?”

“여기 이상해! 단상 여기에 서 있는 게 너무 어려워! 너무 어색하단 말이야.”

참 별일이다. 남들은 잘만 서 있는 단상인데 왜 저 혼자 못 내려와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준은 옷을 세 벌 갈아입는 내내 단상에 가만히 서 있지를 못 하고 계속 내려왔고, 보다 못 한 혜리가 한 마디 하지만 준은 어색하다는 말만 해댈 뿐이다.

그 날은 내친 김에 웨딩앨범까지 촬영했다. 준은 <변태 늑대>라는 별명답게 앨범의 절반을 뽀뽀와 키스로 장식했고 위치는 손 입굴 뺨 등 가리지를 않았다. 덕분에 촬영하는 스태프들도 내내 오글거림에 손을 펴지 못 했다는 후문이다.

남은 2주는 화장대를 비롯해서 나이에 맞는 기초 화장품부터 선크림과 아이크림 등, 현재의 고운 피부 상태와 호리호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썼다. 생활에 쫓기다 보니 화장품은 생각도 못 하고 있던 그녀였지만 서 순경, 재현을 만난 뒤로 그나마 선크림은 바르고 다녔다.

다행히 기미와 주근깨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이지만 화장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의 직원들은 하나같이 묻는다.

“기초화장품 뭐 쓰세요?”


* * *


8월 5일 대망의 결혼식!

준은 흰색 와이셔츠에 꼬리 긴 흰색 턱시도와 흑색 나비넥타이 등 조화를 멋있게 줬고, 혜리는 분홍색 웨딩드레스와 머리 위에는 월계관을 손에는 흰 장미 부케를 들고서 여신의 자태를 뽐냈다. 원래 키 차이가 얼마 안 나서 굽 높은 구두는 신는 게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5cm정도의 높이는 된다. 그렇다 보니 키 차이가 정말 얼마 없다.

결혼식의 무대는 수영구 수영동에 위치한 수영사적공원으로 선택됐다. 어차피 준이 쪽 사람들만 모여들 텐데 넓은 곳의 예식장이나 호텔 홀은 돈 낭비라는 게, 최 사장과 나 여사 그리고 혜리의 똑같은 생각과 판단이다.

그렇다고 혜리가 청첩장을 갖다 줄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남부경찰서의 오 순경과 강 경장 해석, 그리고 의진네 부부까지. 물론 준이 학교 교사들과 교장 교감에 애들까지 부른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원래 4박 5일 프랑스 파리로 가기로 되어 있던 신혼여행은, 김해국제공항에서 바로 갈 수 없다는 교통편의 이유를 들어서 일본 오사카로 변경되려다가, 방사능 사건 발생한 지 불과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준이 지적하면서 그대로 유지되기에 이르렀다.

인천국제공항을 경유해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

“혜리야, 너 안색 왜 그래? 아까 김해에서 김포로 올라올 때도 안 좋더니.”

“모르겠어요, 무서워요.”

“무서워?”

사색이 된 혜리의 얼굴을 살피던 준은 울렁증인가 싶어서 속이 울렁거리거나 머쓱거리느냐고 물어보지만 그건 아니란다. 주위를 지나가던 스튜어디스를 잡은 준이 혜리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조언을 구하는데.

“고소공포증 같습니다. 진정제를 가져오겠습니다.”

결론을 말해준 스튜어디스는 비상약이 구비되어 있는 쪽을 향해 걸었다. 스튜어디스가 가고 난 뒤 준은 혜리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고소공포증? 예상도 못 했네.”

“저도 그래요. 어디 비행기 타고 다닐 틈이나 있었나요, 뭐.”

“제주도 안 가봤지? 지금 같은 상태라면 진정제 없이는 제주도도 힘들겠다.”

“그러는 오빠는?”

“난 지난 5월에 애들 수학여행 갈 때 같이 갔다 왔잖아. 제주도.”

이윽고 스튜어디스가 진정제와 물을 챙겨왔다. 혜리는 물과 약을 먹은 뒤 이제는 어엿한 남편인 준의 말에 대한 질문을 건넨다.

“그 때 비행기 탔어요?”

“당연하지! 배로 가면 얼마나 오래 걸리는데. 한두 명인 것도 아니고. 난 그 때 이미 고소공포증이란 나와는 연관 없는 증상이라는 것을 몸소 밝혔지.”

씩 웃는 준이다, 그러나 김해국제공항에서 제주도까지 45분이면 간다. 떴다는 걸 느끼는 순간 이미 도착하는 거리인 것이다. 그런데 고소공포증을 느낄 겨를이 존재할까, 과연?

인천에서 파리까지 직항 13시간 30분. 경유하면 훨씬 싸지만 내리고 타는 게 둘 다 귀찮아서, 좀 비싸도 직항으로 가기로 했다. 27년 만에 처음 타는 비행기인 탓에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버린 우리의 배혜리 씨! 아무래도 파리 가는 길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돌아갈 때는 KTX 타고 내려갈까? 그게 낫겠지?”

혜리는 핏기 가셔서 더 하얗게 변한 얼굴로 간신히 끄덕인다. 식은땀까지 보이는 혜리가 마냥 안쓰러운 준이다. 그렇다고 출발한 비행기를 내리자고 할 수도 없고, 큰일이다. 정말이지 신혼여행 가는 첫 날부터 험난하다.


작가의말

드디어 결혼!
...이대로 완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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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어머니랑 삼각관계 +5 12.03.12 1,934 23 15쪽
20 20.초밥집 데이트 +6 12.03.10 2,033 20 15쪽
19 19.유치한 별명 +9 12.03.09 2,045 20 16쪽
18 18.합방 +9 12.03.09 2,914 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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