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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남녀

결혼 후 愛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완결

이설理雪
작품등록일 :
2012.05.02 22:52
최근연재일 :
2012.05.02 22:52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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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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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18,861

작성
12.03.1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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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23.고급정보와 선물

DUMMY

23.고급 정보와 선물


대엽에게 투정을 조금 풀고 다시 사장실로 돌아온 준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강 경장 해석으로부터 네가 술잔을 깨먹은 그곳으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서야, 준은 가족 괴롭히기를 그만두고 영신그룹을 뒤로 했다.

덕분에 아들의 투정으로부터 벗어난 최 사장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고, 기획실장실의 대엽 역시 이제 일 좀 하겠다는 비장한 얼굴로 서류 점검에 빠졌다.

대연동. 예의 고급 바.

왼손에는 여전히 붕대를 감고 있는 준은 강 경장에게 약간의 경계를 띈 눈빛을 보냈다.

“음? 왜 그런 눈빛이실까요, 최 선생?”

“아까 점심 때 혜리한테 전화했었어요? 차 한 잔 하자고 했다면서요.”

퇴근 후 바로 온 것인지 제복차림의 해석은 대답 대신 눈을 위로 올리고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런 말 그리 쉽게 꺼낼 사람은 아닌데. 듣게 되지 않은 이상.’

“들은 건가요?”

“의도치 않게 듣게 됐습니다.”

빙고!

해석이 마시라고 따르는 술잔에는 손도 대지 않고, 준은 계속 경계의 눈빛으로 쏘아본다.

아무리 과거에 아무 일도 없었고 직장 동료(=선배) 이상 이하도 아니라 하지만, 해석이 먼저 전화를 해서 차 한 잔 하자고 말하는 것 자체가, 준으로서는 충분히 기분이 나쁘다. 그 얘기를 그녀에게 해야 할, 할 수 유일한 사람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해석이 먼저 전화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속이 뒤틀리는데, 그걸 몰라주고 일에 빠져서 등한시하는 혜리나, 지금 이렇게 보란 듯이 불러내는 해석이나.

“다 미워요. 다.”

술 한 모금 마신 해석은 단단히 토라진 듯 짧게 말하는 준을 보며 피식 웃었다.

“피식! 혜리 씨가 일 때문에 외면한다고 뿔이 단단히 났다고 해서, 사촌 형인 최 실장이랑 아버지인 최 사장한테 그걸 풀어요? 아무리 가족이지만 애도 아니고.”

오른손으로 들던 술잔을 다시 내려놓은 준은 계속 민감하게 굴었다.

‘혹시 내 호구조사 했습니까?’

“형이랑 아버지랑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알긴! 관할 구역 안에 영신그룹이 있으니까 당연히 알지요.”

영신그룹의 주소는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1동이다. 남부경찰서에서 남구 일대를 순찰하고 교통 관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덤으로 영신그룹 지하 주차장에서 접촉사고가 있어서 출동한 사건 때문에라도 특히 더.

“대연고등학교 앞을 지나가면서 보면 보여요! 최 선생 수업 안 하고 애들 주변만 맴도는 거.”

“어제부터 내일까지 기말고사 기간입니다. 그러니 시험지와 OMR카드 나눠주고, 커닝 못 하도록 감시하고 OMR카드 걷어가는 게 지금의 일이지요.”

“아하!”

안주로 나온 후라이드 치킨 다리 하나 손에 들고 뜯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해석.

“최 선생 불러내기 전에 최 실장한테서 전화가 왔었어요. 혹시 아냐고. 알면 불러내달라고. 일하는데 와서 떠들어서 방해된다고. 신제품 개발과 출시 때문에 바쁜데 방해하고 있으니까 제발 좀 불러내서 같이 있어달라고.”

“크윽!”

껄껄껄껄 웃어넘긴 해석은 어느새 뼈만 남은 다리를 같이 나온 그릇에 넣으면서 말을 잇는다.

“왜 그랬어요? 그렇게 갈 데가 없나?”

“제가 발이 넓은 편이 아니에요. 대인기피증 안 걸려서, 동성 친구 한 놈 있고 학교에서 수업하면서 애들 가르치고, 우연찮게 만난 혜리 씨를 옆에 둔 게 신기할 정도지요.”

“그래요?”

준은 여태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술을 두 모금 정도 마신 뒤 말을 이었다.

“집안 재력이 풍족하다보니 돈을 뜯으려는 놈들에게 인질로 잡혀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아무리 남자라지만 어릴 때부터 그런 일이 비일비재 하다 보니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섭고 두려웠지요. 가뜩이나 낯을 많이 가리는데 그런 일까지 겪으니 더 하더라고요.”

“비슷하면서도, 다르군요. 두 사람.”

준은 무슨 소리냐는 듯 해석을 쳐다봤다.

“최 선생, 건전한 부잣집에서 귀티 나는 도련님으로 귀하게 큰 줄 알았는데 납치 경력이 있었군요. 혜리 씨도 납치는 아니지만 그 반대로 태어나자마자 버려졌으니,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나 할까요.”

발끈!

“그래서, 만나겠다고요?”

또 민감하게 군다.

“흥분하지 말아요, 최 선생.”

‘요점이 이게 아닌데.’

너그러이 웃는 해석이지만, 준은 들어올 때부터 이어진 경계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혜리 씨와 나, 일적으로만 아는 사이일 뿐이에요. 재현이, 서 순경과 교제 중이라는 건 같은 경찰서에 배치 받으면서 알게 됐지요. 그리고 반년쯤 지났을까. 서 순경 그리 되고 나서는 배 순경이라는 호칭에서 혜리 씨라고 바뀌기는 했지만, 그녀의 과거를 알기 때문에 그냥 지나갈 수는 없더라고요. 민감하게 굴 거 같으면 내가 그래야 해요. 최 선생이 혜리 씨를 안다고는 해도 나만큼은 아닐 걸요?”

“뭐라고요?”

신경 곤두서는 준.

“웬만하면 영화관은 피하는 게 좋아요. 가더라도 슬픈 영화는 가급적 보지 말고. 아무리 연애의 데이트코스 중에 하나라고 해도 말이에요.”

“!”

해석의 말에 준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걸 느꼈다. 별 것 아닌 듯 꺼냈던 영화보자는 말에, 잠깐이지만 혜리의 안색이 변했던 걸 봤던 것이다.


“로맨스 좋아해요? 여자들은 주로 멜로물 좋아하던데요.”

“슬픈 건 싫어요.”

“그럼 호러나 스릴러? 액션은 더 싫어할 테고.”

“코미디가 좋겠어요.”

“……그래요, 그럼.”


어제 영화 보러 갔을 때 가리는 거 많고 입맛 까다롭다고 속으로 투덜댔던 준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다른 내막이 있었다.

“액션이나 공포영화는 특히 더. 서 순경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상기한다면 왜 기피하는 지 이해하게 될 겁니다.”

“…….”

영화 보러 가자는 말을 듣는 즉각 나빠지는 안색과 까다로운 영화 장르의 취향. 혜리의 짧은 변화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해석이 얘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전혀 모르고 넘어갔을, 일명 <고급정보> 를 넘겨주는 그다.

“서 순경 사망 한 달 전에 봤던 마지막 영화가 눈물 나는 슬픈 거거든요? 그래서 영화 싫어할 거예요. 다른 연인들한테는 좋은 추억으로 꽉 찬 영화관이지만 혜리 씨한테는 눈물뿐일 테니까. 피에 대해 민감하니 한여름에도 시원하자고 공포영화 보러 가는 누는 피해야 할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옷 색깔도 웬만하면 밝은 색으로 입고. 검은 색은 절대 피해야 할 색. 빨간색도 마찬가지. 분홍색은 괜찮아요. 초밥과 냉면 특히 좋아하니까 알아두고. 내장이나 멍게 해삼, 조개류 안 좋아하고. 노래방을 주로 가도록 해요. 혜리 씨 음악 좋아해요. 혹시 <아쿠아마린> 이라고 아나?”

“예. 압니다.”

활동하던 그 때 아쿠아마린 이름으로 발매된 두 장의 앨범을 겨우 구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올해 초 부산대 졸업하고 리더가 종부가 되면서 해체를 했어도, 부산대와 부산을 일대로 활동했으니, 부산 사람이 아쿠아마린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유명한 그룹이었지요. 물론 방송 출연은 극도로 기피해서 더 유명했던.”

“드럼 치던 최덕경이라는 친구가 미국으로 돌아가야 해서 졸업과 동시에 해체했지요. 리더이자 바이올리니스트 하의진한테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쌍둥이도 있었고. 굳이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멤버가 아니라도 아쿠아마린의 수명은 거기까지였습니다. 리더가 아이 엄마가 됐으니 아쿠아마린이 유지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잘 아는군요.”

해석은 의외라는 눈으로 준을 쳐다봤다. 준은 덤덤히 말을 이었다.

“지연이가 피아노를 잘 쳤거든요. 그래서 아쿠아마린의 신지혜라는 친구와 자신의 실력을 종종 비교했었지요. 나한테 누가 더 낫느냐는 질문도 자주 해서 곤란했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 얘기는 혜리 씨 앞에서는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죠? 그 앨범 아직 갖고 있습니까?”

“네? 네, 있습니다.”

“자주 들려줘요. 행복해할 거예요. 악기도 관심이 많거든요. 참! 진짜 생일 언제인지 모르죠?”

해석이 준을 보자고 했던 스페셜 포인트! 고급 정보 중의 고급 정보.

“진짜 생일?”

생일에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던가? 라는 생각을 하는 준에게 해석의 다음 말은 꽤 충격으로 다가온다.

“민증 상의 번호는 절대 믿으면 안 돼요. 앞의 여섯 숫자는 보육원에 들어간 날짜로 구성되어 있을 테니.”

“!”

준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9월이라고 적혀 있길래 그런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나! 그럼, 그럼 언제지?’

해석의 말이 이어지고 준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보육원 출신의 고아들 생일은 다 그래요. 태어난 날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모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럼 진짜 생일은 언젠데요. 친모 만났을 때 물어보지 그랬어요. 적어도 아이 낳은 날이 언제인지는 기억할 거 아냐.”

아아. 안타까움에 한숨만 내쉬는 준.

“견우와 직녀가 ‘아침에’ 만나는 날. 친모를 등지고 말없이 돌아서는데 친모가 제 등에 대고 그렇게 말했어요. 앞뒤 다 떼고 그것만.”

암호야, 무슨? 안타까움이 사라지고 곤란 그 자체라는 표정만이 남는다.

“그걸 알아들어요?”

“못 알아듣나?”

되묻는 해석의 입가로 비웃는 미소가 지나갔다. 인상 팍 쓰고 있던 준의 얼굴이 확 펴졌다. 머릿속에서 생각 중이라는 뜻이다.

‘견우와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들이 놓은 오작교에서 1년에 1번씩 만났다는 전설. 중국 주나라에서 시작되었고 우리나라를 통해 일본까지 전해졌으며, 음력으로 7월 7일인데. 잠깐만, 아침에 만난다고? 해있을 때? 그럼, 양력이라는 건가?’

양력陽曆, 태양력의 줄임말. 즉, 아침과 낮으로 통한다. 반대로 음력陰曆은 태음력의 줄임말. 즉, 저녁과 밤으로 통한다. 견우와 직녀 전설은 음력 칠월 칠석이기 때문에, 음력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노리고 ‘아침’ 이라는 말을 힌트로 남겨놓은 것이다. 양력이라고 알게 하려고.

준이 딴 곳 보고 생각에 빠져 있는 걸 알아차린 해석이 입을 열었다.

“후일을 바라보고 아침이라고 했을 겁니다. 굳이 아침이라고 끼워넣은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7월이 되기 전에 얘기를 해줘야 할 거 같아서 언제 한 번 보자고 하려고 했는데, 오늘이 그 때인 것 같네요. 지금껏 <진짜 생일> 에 미역국 못 먹어봤을 겁니다. 재현이도 9월이 진짜 생일인 줄 알고 있었고, 나도 그랬고.”

혜리의 진짜 생일은 주민등록상의 생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친모가 배 아파 혜리를 낳은 날은 양력 7월 7일. 올해 27살이니 85년생인 건 확실하고.

해석의 말에 양력이라는 확신을 얻은 준이지만 동시에 장애물이 하나가 더 생겼다.

“그럼 이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요?”

“내가 보육원에서 알아냈다고 해요.”

“음, 알았어요. 더운데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나가는 게 어때요?”

그 말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준.

‘응? 아이스크림? 앗, 케이크!!’

“Oh, my, god! 빨리 가야겠어요!”

“무슨 일 있습니까?”

해석은 모자를 챙겨들고 황급히 준의 뒤를 따라 바를 나간다.

“아버지께서 부탁하신 걸 여태 까먹고 있었어요! 얼른 가요, 베스킨라빈스!”

“거기까지 가야 돼요?”

아이스크림점을 직접 지목하고서 뛰는 준이지만 해석은 따지듯이 질문하면서도 뒤따라 뛰었다. 그러면서 왜 따라가야 하는 지 자신에게 묻지도 않고서.


남성용 와이셔츠를 파는 매장.

“실례합니다! 혹시, 넥타이핀 팔아요?”

“예,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상품진열대로 안내받아서 가는 그녀. 대부분 비슷한 색깔에 비슷한 모양이다. 보석이 있는 게 더 비싸보여서 그쪽으로는 되도록 눈길을 주지 않는다.

적당한 넥타이핀을 두 개 골라서 각자 포장해달라고 요청하는 그녀, 혜리.

“받는 사람이 두 분이시거든요? 따로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가격 확인하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서 건네는 혜리. 계산하고 돌려받은 카드를 다시 지갑에 넣은 뒤 포장이 끝난 넥타이핀 두 개를 품에 안고 매장을 나섰다.

이제 집에 가는 일만 남았다.


아이스크림 케이크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준. 곧 8시다.

2층으로 올라가지 않고 거실 소파에 털썩 앉은 그는, 사온 저녁과 케이크를 던지듯이 테이블에 놓고는, 등에 깔린 쿠션을 앞으로 끌어당겨 품에 안는다. 손수 열쇠로 대문과 현관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온 덕에 창고 정리 중인 가사도우미 아줌마는 전혀 모르고 있다.

이렇게 한가한 시간을 맞이하는 게 얼마만이던가. TV도 켜지 않은 그는 그 상태로 바쁘게 지낸 몇 년간을 돌아본다.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낸 딱 한 명의 여자 지연과의 연인으로의 발전, 수많은 추억 그리고 한 순간 찾아온 이별 통보.

그는 그때 깨달았다.

‘사람이 저렇게 차가워질 수도, 잔인해질 수도 있구나. 수많은 추억과 기억과 사랑을, 저 여자는 저리도 쉽게 등 돌릴 수가 있구나. 그게, 가능하구나. 그렇다면 돌아보지 말자. 앞만 보자. 느닷없이 나와 지훈이 앞에 나타난 이 여자에게 집중한다면, 그 여자를 쉽게 잊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진짜. 어떻게 된 게. 이리도 쉽단 말인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자신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어찌도 이리 쉽게 잊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6, 7년이라는 그 세월이 어떻게 이렇게도 쉽게. 이리도 우습게.

문득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치르면서 서로에게 소홀했다는 것을 생각났다. 그리고 교단에 서면서 더욱 소홀해졌다. 그 때쯤 이미 사랑이 식어 갔는지도 모른다. 서로 나누는 게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거리를 두려고 둔 게 아니고 서서히 벌어졌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겠다.

진짜 사랑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한숨 가늘게 내쉬며 손을 뻗어 저녁으로 사온 김밥을 꺼내서 호일을 까는 준. 젓가락을 떼서 김밥 가운데 알맹이부터 먹으려는데.

띠잉도옹.

초인종 소리에 귀가 쫑긋한 준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초인종? 앗! 왔나보다!’

젓가락 버리듯이 내던지고 축지법을 쓰면서 후다닥 현관문을 향해 뛰어가는 준.

때맞춰 안방 문이 벌컥 열리며 머리에 수건을 두른 미진이, 발소리를 들은 듯 입가에 미소를 짓고서 슥 나온다.

“저렇게 좋을까.”

현관문 열어젖힌 준은 슬리퍼 신은 발로 대문까지 마중을 나간다.

“혜리!”

와락! 보자마자 포옹부터 해대는 준. 오죽 반가웠으면.

“어머. 엇! 흠흠. 술 마셨어요?”

“응? 응. 혜리 때문에 좀 마셨어.”

‘너무 반가워! 하루 만에 보는 것 같잖아!’

혀가 멀쩡한 걸 보니 많이 마신 건 아닌 모양이다. 간신히 그의 품에서 벗어난 혜리는 왼손에 들린 봉지를 흔들며 재촉한다.

“김밥 사왔어요! 어머님과 아버님과 아줌마 몫까지.”

“…….”

김밥이라는 말에 행동을 멈춘 준이 눈만 끔벅인다. 우리, 통한 건가?

“나도 김밥 사왔는데.”

“정말이에요? 남겠다. 몇 인분인데요?”

“1인분.”

치사하게 자기 것만 딱 사온 준이다.

“어른 공경하는 걸 이리도 모르다니. 실망이에요. 흥!”

또 양손이 한 가득이라서 못 때리고 넘어가는 게 아쉬운 혜리.

반면 오랜만에 듣는 것처럼 들리는 콧방귀조차도 반갑게 느껴지는 준이다.

혜리가 먼저 들어서고 뒤를 준이 이었다. 아직 아버지가 안 들어오셨으니 대문은 잠그나 마나다.

“어머님이랑 아버님 들어오셨어요?”

“아니, 아직.”

“네? 어머님이랑 아까 7시에 헤어졌는데요?”

“안 들어오셨는데? 전화해봐야겠다.”

추측 어린 대화를 나누며 집안으로 들어서는 혜리와 준.

헌데.

“어? 어머님!”

소파에 다리 꼬고 앉아서 김밥을 먹고 있는 사람은, 미진이 아닌가!

“응. 준이 너랑 나랑 통했나보다? 나 안 그래도 김밥 먹고 싶었는데. 아이스크림 케이크 또 샀어?”

준이 사온 김밥을 집어 먹으며 우물거리느라 말하느라 입이 바쁜 미진, 왼손으로 자신이 끌어다 놓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가리키며 질문했다.

“아버지가 드시고 싶어 하셨대요. 어머니는 어디 계셨어요?”

“안방 화장실에서 씻었어. 막 나오는데 네가 현관으로 뛰어가더라. 어머니 아버지 들어오실 때는 절대 안 그러는 녀석이.”

“어릴 때 많이 해드렸잖아요.”

거실로 내려오며 대꾸하는 준.

“중학교 들어가면서 뚝 끊었지. 혜리는 어디 갔다 와?”

“오빠 넥타이핀이 없는 거 같아요. 선물로 드리고 싶어서요. 사는 김에 아버님 것도 하나 샀어요.”

혜리의 답을 들은 미진이 고개를 갸웃댔다.

“준이가 넥타이핀을 하던가? 잘 못 샀어, 얘. 준이 그런 거 안 해.”

혜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 사람 말이, ……사실이었구나!’

누구를 만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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