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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님의 서재입니다.

몸속에서 벌레 군대를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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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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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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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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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화

DUMMY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달란트에 비해 연출은 좀 밋밋한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종종 들곤 한다.


삶을 굳이 영화로 비유하자면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비상식적이고 말도 안 되는 현상이 벌어진다면, 쏟아지는 수퍼히어로 이야기처럼 뭔가 그럴듯한 계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황윤건에게 그런 계기는 없었다. 그저 남들 하는대로 학교도 다니고 놀면서 살아가다가, 어느날 갑자기 문득 그.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을 뿐.


미래에서 회귀한 것도, 전지전능에 가까운 뭔가가 빙의한 것도 환생한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러기로 예정된 것처럼, 잠을 깨고 일어나보니 어느새 달란트가 내 안에 온전히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1995년 5월 28일. 태어나고 나서 정확히 12년이 지난, 만 12세가 되는 생일 아침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귀로 들리는 것. 그리고 오감을 넘어서는 어떤 감각이 바로 전날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주변에 살아움직이는 것들은 사람, 개와 고양이, 새와 나무, 가끔 보이는 쥐와 벌레들 정도였는데. 그냥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날부터는 아니었다. 주변의 모든 공간에 살아움직이는 것들이 있었고, 또 느껴졌다.


그것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심지어 자기 몸속에도. 배 안에 있는 그것들을 모두 합치면 체중의 2% 정도는 너끈히 될 것이다.


종류도 엄청나게 많았다. 수십 수백 정도가 아니었다. 구분하다 보면 수천 수만 이상으로 나눌 수 있었다.


몸 안에 있는 것들만 그 정도이니 밖으로 눈을 돌리면 그 수는 가히 무한에 수렴할 것이다.


그 날 이후 일주일 정도 황윤건은 얼굴빛이 노래진 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부모님에게 온갖 횡설수설을 다 쏟아냈고,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이 미쳐버리는 게 아닌가 두려웠던 나머지 부모님은 그 방면에 익숙하다는 목사를 집에 부르기도 했다.


영적으로 길이 트여있다던 그 개척교회 목사는 어린 황윤건의 횡설수설을 방언으로 규정했고, 방언 중에서도 괜찮은 쪽이라고 판단했다.


달란트라는 이야기는 그때 처음 들었다. 목사는 지금 이 방언이 하나님이 내려주신 달란트가 개화하는 증거라고 했다.


달란트도 뭐고간에 다음날 결국 입원하긴 했지만.


신경안정제와 항경련제를 투여하며 입퇴원을 반복하다가,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아, 이건 병이 아니구나.


어린 마음에 왜 그런 무거운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니고 예전 상태로 내가 돌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건 치료할 이유조차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이어지며 마음은 점점 안정을 되찾아갔고, 입원했던 황윤건보다 더 초췌해진 부모님을 보면서 더더욱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말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더 이상 경기도 일으키지 않고 횡설수설 방언을 늘어놓지 않게 된 아들에 부모님은 안도했다.


그 해 몇 번의 검사를 더 거친 후, 황윤건의 가족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일종의 해프닝처럼 그 일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황윤건에게 보이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감각은 더 생생해졌고, 그것들의 존재 역시 점차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경악과 공포에서 벗어나 마음을 대충 다잡은 황윤건을 채우기 시작한 건 호기심이었다.


다행히도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대형서점이 있었고, 방과 후 짬이 날 때마다 황윤건은 서점에 쪼그리고 앉아 자신이 알고자 하는 것들을 파들어가기 시작했다.


큰 일을 겪고 나서 다니던 모든 학원을 중단했던 것도 시간이 남는다는 점에서는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책들을 닥치는대로 탐독한 결과, 황윤건 자신이 생생하게 느끼게 된 그것들과 가장 유사한 자연현상이 있었다.


미생물microorganism. 혹은, 세균.


세상에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생명체들이 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그것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또 인간에게 아주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많은 경우는 건강을 해치고 심지어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지만, 또 일부는 인간의 면역체계에 관여하여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필수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어린 황윤건에게 세균, 고균, 진핵생물 등의 분류가 친숙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들을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느껴온 입장에서 황윤건은 그냥 한 마디로 퉁치기로 했다.


벌레.


그냥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작은 벌레들은 먹이와 온도 등 생존할 수 있는 조건만 갖추어지면 끊임없이 수를 늘려갔다.


불과 몇 시간 안에 백 만 배로 불어나기도 할 정도로 실로 엄청난 증식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하나하나의 개체에게는 정해진 수명이라는 것도 없었다. 수를 잔뜩 늘려 그 군집 안에서 별다른 위협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이론적으로 무한정 살아갈 수도 있었다.


황윤건에게는 그들 하나하나가 눈에 보이는 듯 생생했다.


그래서 세균 도감에 나와있는 모양과 습성 등으로, 그때그때 자신이 느낄 수 있는 벌레들과 대조하며 이름을 확인하는 게 매일의 낙이었다.


그렇게 그들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게 있었다.


황윤건은 점차, 본인이 뜻대로 이 벌레들의 수를 늘리고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잘 자랄만한 환경이라 그냥 더 빨리 증식하나 싶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시험해본 결과 그렇지 않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원래라면 살아남기 힘든 조건에서도 황윤건이 뜻하면 빠르게 증식했고, 놔두면 끝간데 없이 군집을 키울 수 있는 환경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증식을 억제하고 그 수를 줄일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황윤건은 자연스레 그 두 가지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레이업을 처음으로 성공시킨 중학생이 뭔가에 홀린 것처럼 끊임없이 레이업을 연습하게 되는 것처럼.


임의로 특정한 벌레들의 군집을 찍어 늘리고 줄이는 속도는 계속 빨라지게 되었고, 중학교를 졸업하던 즈음에는 몇 초 지나지 않아 사람 한 명의 몸에서 균주 하나를 깨끗하게 소거시킬 수 있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늘리는 것도 예전에 비해서는 훨씬 빨라졌지만, 아무래도 줄이는 것보다는 시간이 더 걸렸다.


벌레의 군집을 줄인다는 것은 결국 그들의 숨통을 막아 죽인다는 뜻이다.


이는 생각보다 단순한 일이었다. 비유하자면 위로 올라가있던 레버를 그냥 내리는 느낌과 비슷하다.


벌레들은 증식이 극히 빠르지만 약점도 아주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생존하기 위한 조건이 하나만 틀어져도 바로 사멸하며 그 수가 줄어든다. 복잡하지 않다.


그 하나만 제대로 건드리면 순식간에 전멸하는 것이다.


반면에 군집을 늘리는 것은, 이들이 죽지 않고 최대한 살아남게 하여 단순한 생존보다는 증식에 모든 자원을 다 쏟도록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편안한 환경이 되기 위한 조건이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온도도 적당해야 하고 최소한의 습기가 있어야 하며 벌레 종류에 따라 공기에 딱 어느 정도 노출되어야 하는지의 여부 역시 중요하다.


먹이로 삼는 물질도 충분해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주변에 해로운 물질도 없어야 하고, 경쟁자도 많으면 안 된다.


그 모든 항목 중 단 하나만 어긋나도 증식은 좀처럼 원하는 속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줄이는 것보다 늘리는 쪽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황윤건 자신의 몸 안에서 늘였다 줄였다 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모든 조건을 조절할 수 있으니까.


문제는 다른 사람의 몸에 사는 벌레를 늘리는 일.


사람마다 몸속의 환경이 다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잘 먹혔던 조건대로 다른 사람에게 바로 적용한다 해도 꼭 성공한다는 법이 없다.


황윤건 자신의 몸에서 완벽하다 싶은 조건을, 몸집도 키도 비슷한 주변 친구들에게 적용했을 때 좋은 결과가 안 나왔던 경우를 많이 경험했던 것이다.


결국에는 시행착오를 거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충 생각나는대로, 되는대로 해보기보다는 체계를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막 고교생이 되고 나서 그 기준을 어디에 세워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제일 흔하고 평범한 게 기준으로 삼기에는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의 몸안에 공통적으로 꼭 있는 벌레를 대상으로 연습을 이어나갔다.


책에서 이런 벌레들을 상재균resident flora이라고 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누구에게나 살 수 있는, 포도알처럼 생긴 벌레부터 시작했다.


소위 황색포도상구균이라 불리는, 아주 유명한 벌레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혹은 웬만한 동물들도 몸속에 약간씩은 다 지니고 있는 게 이 벌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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