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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님의 서재입니다.

몸속에서 벌레 군대를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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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3
최근연재일 :
2022.06.26 22:1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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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06.1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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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글자
10쪽

35화

DUMMY



최진홍은 저런 이야기를 농담기를 다 빼고 삭막할 정도로 진지하게 늘어놓을 수 있는 남자다. 보통이라면 아주 기분 나쁠, 외모 비교질.


하지만 이상하게 저 남자가 하면 그럴 듯 하게 들린다. 미처 생각 못하고 있던 부분이 일깨워지는 듯한 느낌.


어처구니없게도 그게 최진홍이 가진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조금 전 가슴 속에 차올랐던 울화가 서서히 흩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정말 바보같게도 말이다.


그리고 사실 틀린 이야기도 아니지 않은가? 그 가슴 하나도 없고 어깨만 넓은 여자. 천재적인 머리 빼고는 외모로 볼 게 없다.


"장 실장. 내가 왜 직원들 물리고 바로 숙소에 가자고 했는지 알겠지?"


반쯤 뒤로 누운 자세에서 최진홍이 짧게 기지개를 폈다.


"소영아. 나 예전처럼 불러줘."


"...하아."


이럴 때 보면 진짜 비겁한 남자다.


"얼른."


"...마사히로."


"会いたかった."


장소영은 룸미러에 비치는 최진홍의 미소로부터 시선을 떼는데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아직은 운전 중이니까.


*******


"민서야. 저기 좀 봐봐."


중간고사를 앞두고 빈 강의실에서 공부하고 있던 정민서는, 친구가 가리키는대로 창밖을 쳐다보았다.


친구들에게 나눠주려는지 캔커피를 잔뜩 사들고 오던 후드티 차림의 황윤건이, 조금 당황한 얼굴로 어떤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옷 장난 없다. 위아래 합하면 이백은 가뿐히 넘길 걸?"


베이지색 투피스에 연하늘색 블라우스. 누가 봐도, 백화점 여성복 코너 제일 잘 보이는 마네킹에 걸려있을 법한 새끈한 스타일의 코디.


"신발은 마X로 블라닉이네. 올해 초 신상으로 나온 거."


옆에 있던 친구들이 중얼거렸다.


"넌 이 거리에서 신발이 어디 제품인지 눈에 보여?"


"너도 스틸레토 한 켤레 사려고 말 더럽게도 안 들어먹는 고딩 새끼 참아가며 삼 개월 과외하다 보면, 백 미터 밖에서도 바로 알 수 있을 거야."


"혜정이 생각보다 신발 욕심이 있었구나."


"근데 대학원 연구실 들어가서 조교 월급 받으면 마X로 블라닉은 꿈도 못 꿔."


"기집애야.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봤자 신을 일이 없잖아... 일주일에 이틀은 집에 못 들어가고 하루는 꼬박 날밤을 깐다던데. 만날 시간이 없어 남친이 못 견디고 헤어지자고 하는 마당에 뭔 하이힐이야. 반쯤 군대 간 거지."


"황윤건 숨겨놓은 애인 있다더니 저 여자겠지?"


"그러기에는 나이대가 좀 많이 있어보이지 않나?"


"지난번에 호경이 이야기로는 연상 확실하다고 하던데?"


사실 이 년 전 황윤건 헤어졌다는 얘기 듣고 같은 학번 여자애들 중 둘 이상이 공공연히 꼬셔보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키가 훤칠하고 선이 분명한 이목구비에, 운동도 좋아해서 어깨랑 골반 등 몸의 선도 아주 보기 좋다. 지난번 여친과 헤어진 것도 어처구니 없게도 운동중독 때문이라고 했었지.


하지만 카페나 술자리 뒷담화에서 여자애들 사이에서 늘 나오는 황윤건의 이야기는, 단순히 그런 외형이 아니었다.


윤건이는 곁에 있으면 냄새가 너무 좋아. 땀냄새도 하나 없고, 왠지 깨끗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일부러 맡아봐도 향수 내음은 아니라는 거.


게다가 피부가 여드름 자국이나 잡티 하나 없이 너무 깨끗하다는 것도 언제나 눈에 띈다. 윤기있고 매끈한 피부에 담홍색으로 혈색도 워낙 좋으니 아주 건강해보이는 남자였다.


제대 후 푹 삭아 반쯤 아저씨가 되어버린 예비역 오빠들과 비교를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이 년 전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여친이랑 헤어진 황윤건이 정민서에게 대시한다는 이야기가 학부 내에서도 파다했었다.


그래서 다른 여학생들도 눈치를 보며 좀 삼가하는 분위기였는데.


하지만 정민서가 건강 문제로 한 학기 휴학하면서 그 썰도 자연스레 흐지부지되었다.


술자리와 파티를 즐기던 대학교 2학년생은 이제 뱅뱅이 안경에 후드티를 입은 채 강의실과 도서관 사이를 전전하며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을 뿐이다.


다행히도 그때 일은 학교의 아무도 알지 못한다. 황윤건을 포함해서.


학교에서 마주치며 문득 한 번씩은, 황윤건이 뭔가를 알고도 모른 척 해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낼 용기도, 굳이 그럴 이유도 없었다. 아직까지는 열뜬 호기심이 그때의 참혹했던 기억을 억누를 정도까지 올라오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학부 내에서 이상적인 남친 후보 1, 2 순위를 다투는 황윤건이 연애를 안 하고 있다는 게 친구들 사이에서는 정말 납득 안 가는 일이었고.


간혹 병역을 면제받을 정도의 지병이 생각보다 큰 문제라서 그럴 것이라는 어이없는 썰도 나오기는 했지만.


올해 초 한 학년 후배 중 한 명인 호경이가 응암동 카페에서 우연히 윤건이를 보고 나서 전해준 이야기로, 다들 그러면 그렇지-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누가 봐도 애인인 사람이랑 꿀 떨어지는 데이트 중이었다고.


그런데 여자 쪽이 최소 두 살은 많아보였다는 게 호경이의 증언이었다.


결국 학부 내에서 황윤건은 연상의 애인을 숨겨두고 한 마디도 입에 올리지 않는, 물어봤자 대충 둘러대며 넘어가는 능구렁이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야야, 저 차 좀 봐."


"뭔지는 모르겠는데 엄청 비싸보인데. 저 여자가 몰고 온 거지?"


"포X쉐잖아."


"넌 그걸 어떻게 아는 건데?"


"나보다 두 살 많은 우리집 부모님 아들새끼가 맨날 노래 부르는 게 저 차야."


"그런데 황윤건 표정 보니까 편치가 않아보이네. 여친더러 학교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는데 서로 말이 안 맞은 건가? 이제 싸우나? 싸우나?"


"소설 쓰고 앉아있다. 애초에 여친이 아닐 거라는 가정은 어디에 간 건데?"


"혜정아. 저 가슴 빵빵하고 돈 많은 여자가 여친이 아닌데 학교까지 황윤건을 만나러 온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와, 찬바람 부는 초가을인데 저 가슴골 봐라. 저건 패드와 브라 빨로 어떻게 되는 수준이 아니야."


"윤건이 사실 호스트로 뛰고 있는 게 아닐까?"


"아, 저질스러운 상상력 진짜. 쟤가 부족할 게 뭐가 있어서 호스트를 뛰어."


"또 모르지. 대출 받아서 주식 하다가 사채꾼들에게 쫓기는 하룻강아지들이 한 두 명이야? 왜 그, 99학번 항연 선배도 자퇴한 진짜 이유가 그거라며."


"넌 공대에 왜 왔니... 지금이라도 한X종에 가든 드라마 스쿨에 가든 빨리 네 천직을 찾아가라."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긴 한데. 누가 봐도 지금 여친이랑 같이 있는 풍경이 아냐. 연인들의 투샷이 영 안 나온다고. 저들의 거리를 봐라."


"여자한테는 확실히 내외하는 황 대감의 명성을 고려하면 저 최소 1m의 거리가 막 납득되지 않냐? 야, 봐라. 여자가 슬쩍 다가오니까 쏙 피한다 야. 윤건이 복싱 했다더니 반사신경 장난 없음."


"여친 아니면 그럼 저 여자가 누군데?"


"호스트바에서 엮인 여자라니까."


"아 진짜..."


"황윤건 남친감으로 괜찮긴 한데 그래도 길거리에서 돈 많은 여자에게 헌팅 당하고 번호 따일만한 수준은 아니지 않아?"


"그 정도는 아니긴 하지. 우리 학부에는 그 등급 외모의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위아래 다섯 학번씩 쫙 둘러봐도 없다. 오호 통재라."


"어. 차에 타는데?"


좀 굳은 얼굴의 황윤건이 들고 있는 커피를 주변의 친구에게 맡기고 스포츠카에 타는 모습이 보였다.


"조수석이다. 윤건이가 운전석으로 갔으면 애인 설이 확증되는 순간이었을 텐데."


"그렇다고 해서 호스트바 썰에 증거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농담으로 시작한 이야기에 우리 너무 진지해지지 말자. 사실 무슨 상관이겠냐."


"그러게. 당장 닥친 중간고사나 걱정하자."


"시험 며칠 앞두고 포X쉐 타고 사라진 황윤건의 성적은 과연 어디로 향할 것인가?"


"우리 코가 석자야, 이것들아... 이중에 윤건이보다 학점 좋은 사람 없잖아."


"오오. 정민서. 은근히 황 대감에게 라이벌 의식 있는 것인가?"


"꿈 깨라. 황윤건은 벌써 일학년 때부터 연구실에서 따까리짓 하면서 교수 눈도장 확실하게 찍어둔 놈이다. 넘을 수 없는 산이야!"


"이제 공부하자... 포X쉐 벌써 안 보인다. 가십타임 끝."


"이럴 때 맥주 한 잔 하면 소원이 없겠는데."


"지랄."


"우리 저녁은 뭐 먹지?"


"공부 좀 해..."


정신 사나운 잡담 와중에도 정민서는 자꾸 눈이 창밖으로 향했다. 눈치 상 여자친구는 아닌 것 같았지만, 뭔가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계속 마음에 걸려서 나중에 기회 되면 한 번 물어보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먼 발치에서부터 눈길을 끌었던 포르쉐에서 내린 사람은, 엄청 고급스러운 복장의 젊은 여자였다. 셔츠 윗 단추 하나가 풀려있어 자연스러게 그 사이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여인.


황윤건이 옆의 친구들을 바라보며 작게 대박이라고 속삭였고, 우워어- 거리는 남자들만의 꾹 참은 괴성을 한동안 흘려내며 좋아했던 게 당혹감으로 바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 여자가 이쪽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황윤건씨. 맞나요?"


"네... 저 맞는데요."


"저랑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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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8화 22.06.14 1,155 6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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