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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님의 서재입니다.

몸속에서 벌레 군대를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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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3
최근연재일 :
2022.06.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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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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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4화

DUMMY



레슬리 이이다(Leslie Iida). 이이다 마사히로(飯田雅弘). 최진홍. 이런저런 사정으로 세 가지 이름을 쓰는 꽤나 복잡한 인물이다.


"장 실장님. 앞으로 제가 한국에서 붙박이로 지낸다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입니다?"


"천만에요. 그럴 리가요. 한국에서 부사장님이 뛰어난 성과 거두실 수 있도록 전력으로 보필하는 게 제 책무인 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언뜻 비꼬는 듯한 말로 들릴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저 농담을 던진 것임을 장 실장은 잘 알고 있다. 저 사람이 직원을 마음먹고 족칠 때에는 최소한 저런 식으로는 하지 않으니까.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중학교 졸업하고 나서부터는 한국에서 3개월 이상 지냈던 일이 없어서, 제가 지금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장 실장밖에 없어요."


시원스럽게 웃으며 가볍게 악수를 청하는 이이다 부사장과 장 실장이 잠깐 손을 맞잡았다.


"어떻게, 준비해놓은 숙소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바로 회사로?"


"첫날부터 출근이 웬말입니까.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싶네요. 숙소로 갑시다. 다만, 장 실장님이 직접 운전해주시면 좋겠네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같이 나온 직원들은 바쁠텐데 원래 일터로 보내시고요. 의전 너무 과하면 좋을 것 없어요."


장 실장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준비해온 세단 트렁크에 캐리어를 넣은 후, 출발하는 차 뒤로 직원들이 90도로 몸을 꺾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뒷좌석의 이이다 부사장이 양복 상의를 벗어 옆에 걸고 나서,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블랙박스 꺼둬."


넥타이도 슬쩍 풀어 헐겁게 만들며 부사장이 말했다.


"네."


"뭐 또 없지? 차 안에."


"없어요. 이번에 오신다 해서 새로 리스한 차량입니다. 회사 장비 안 들어가있어요."


"볼 사람도 없는데 말 편하게 해. 장소영."


"...네."


이이다는 말의 뉘앙스를 잘 해석해야 하는 사람이다. 둘만 있을 경우에 자기가 말을 편하게 하겠다는 선언인 동시에, 네가 어디까지 나를 바라볼 수 있겠느냐는, 일종의 시험일 것이다.


이제는 같은 회사에서도 저 멀리 있는 상급자인데, 예전처럼 반말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성함은 어떤 쪽으로 할까요? 내부 문서하고 상관없이, 명함용으로요."


"버젓이 한국 이름도 있는데 최진홍으로 하지. 외국 바이어나 파견된 기술 고문들에게만 미국 이름으로 하고."


"알겠습니다."


"윤시현은 연락 됐나?"


"아뇨. 묵묵부답입니다. 지금까지 다섯 번 컨택했는데 한 번도 응답하지 않았어요."


"살갑고 점잖게 손 내밀 때 반응해주면 참 좋을텐데. 그치? 그런 쪽으로 애가 눈치가 없단 말이지. 예전에도 그랬어."


시트를 뒤로 제끼고는, 최진홍이 양 손으로 머리 뒤에서 깍지를 끼며 몸을 눕혔다.


"나 한국 들어왔다는 건 알고 있을까?"


"부사장님 발령과 이동 건은 사내에서도 공시 안 되어있어요. 아무리 간이 커도 일 단위로 우리 쪽 엿보지는 못할 겁니다."


"간 큰 거랑은 상관 없을 듯. 윤시현 실력이면 우리 허술한 대외용 인트라넷은 털고도 남아. 그것보다는 걔가 나한테 너무 관심이 없다는 게 문제 아닐까 싶은데. 못 하는 게 아니고 안 하는 거지."


장 실장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원래 아시아 출신 천재들로 꽉 차있는 게 칼텍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윤시현은 독보적이었으니까.


고등학교 1학년 나이로 입학하여 학부 2년차에 또 월반 한 번. 기록적인 인물인 건 사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해커 일을 시작한 이후에도 윤시현의 착수 후 성공율은 매우 높은 편이었다.


그녀를 고깝게 보는 관계자들은 일을 너무 가려받는다는, 즉 성공할 계약만 수락하는 그녀의 성향을 물고 늘어지며 도전정신이 없다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바닥에서는 한끗만 발을 헛디뎌도 인터폴 주시대상이 되어 출국금지 당하고 심지어 징역까지 사는 마당에, 어딜 도전정신을 논한단 말인가.


그냥 윤시현이 잘 되는 게 배 아픈 사람들의 투정일 뿐.


세상 아쉬울 것 없는 최진홍이 그녀를 어떻게든 영입하려고 애쓰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물론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장 실장 역시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잘 구슬러야 하는데. 기름칠할 기회를 안 주네... 그런데 요즘 만나는 사람 있다고?"


"네. 대학생이랑 사귀고 있어요. 서X대학교 생명과학부 4학년. 황윤건. 83년생."


"83년생이면 연하잖아? 거의 3년 터울 아닌가."


"맞아요. 윤시현이 빠른 81이니 한국식으로 하면 3년 차이죠."


"우리 시현이 재주도 좋네. 어디에서 영계를 잡아가지고... 자료 줘봐."


장 실장은 미리 준비해둔 파일을 뒷좌석으로 건넸다. 부하직원들 물리고 내가 운전하라고 했을 때부터 이 용건을 꺼낼 줄 알고 있었다.


"워... 키도 크고 잘 생겼네. 그런데 83년생 남자가 지금 4학년? 아, 면제구나. 집안이 좋나? 아닌데. 아버지가 그냥 세무사. 자산도 서울에 아파트 두 채 정도. 그냥 좀 사는 중산층 정도인데. 병무청에 빽 쓸만한 형편도 못 되고."


"그 뒤에 보시면 병역 관련 자료도 있어요."


"아.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으로 면제. 이거 위험한 병 아닌가?"


"관리만 잘 하면 생명에 큰 지장은 없다고 합니다. 다만 체력이 좋지 않아 남들만큼 무리를 못 하죠."


"시현이 원래 남자 체력 따지는 앤데 왜 허약한 친구랑 놀고 있지? 이상하네. 오... 그런데 20대 초반 대학생이 자산이 왜 이래? 도곡동 주복 딸린 회사 하나 소유에 자택으로 반포 아파트까지?"


"등기 들어간지 얼마 안 됐습니다. 아직 조사 안 끝났는데, 구입 자금 자체가 세탁 혐의점이 좀 있어요."


"그러면 그렇지. 야, 잠깐. 이놈 호스트 계열이야?"


"아닙니다. 중고교 시절부터 공부 잘 했던 모범생이에요. 학생기록부와 수능성적표는 파일 맨 뒤에 별첨 자료로 있습니다."


"누가 봐도 시현이가 자기 돈으로 해준 것 같지 않아?"


"정황 상으로는 그렇습니다. 중산층 출신 대학생이 자기가 번 돈으로 소유할 수 없는 규모의 자산이죠. 황윤건 주식계좌는 지금 조사 중인데 아직 억세스 못 하고 있고요."


"어린애한테 완전 푹 빠졌구나 시현이가. 와... 재미있네. 살다살다 별 일을 다 본다."


해커로서 윤시현은 단순히 데이터 크롤링이나 도청에만 능한 게 아니다. 세계 유수의 기업과 자산가들의 의뢰를 받아 돈세탁을 깔끔하게 처리해준다는 명성이 자자하다.


황윤건 자산 배경을 조사할 때에도 그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부분을 인지하고 있지 않았다면 감쪽같이 속아, 아무 이상없다고 넘어갔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일처리를 어찌나 꼼꼼하게 해놨는지, 혐의점 몇 개를 발견했을 뿐 세탁이 들어갔을 거라 증명할 수 있는 단서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조사하며 알아갈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참 지독한 년이다. 윤시현.


"시현이 약 끊었다고 했지?"


"네. 자세하게는 알 수 없지만, 용모 관련 변화 추이를 봤을 때 1년 반 전에는 중독 상황이 종료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 자문을 받았습니다."


"남친 생긴 시기랑 거진 비슷하지 않나?"


"맞습니다. 사귄 이후 그렇게 숨어다닌 것도 아니라서, 양쪽 기록 대조해보면 거의 일치해요."


"개과천선해서 연애를 시작한 건지, 연애를 시작해서 개과천선을 한 건지. 웃기네. 이 약쟁이가."


피식피식 웃고 있었지만, 룸미러로 힐끗 본 최진홍 표정은 그렇게 재미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화를 참고 있달까.


왜 그런지 모르는 게 아니라서, 장 실장 역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집안이 그리 됐으니 어차피 윤시현 끌어내려면 이 남친 써먹을 수밖에 없겠다. 장소영. 다음번 윤시현 컨택할 때 반드시 응답하게끔 요약된 자료 좀 잘 만들어서 전달해봐."


"황윤건 관련 자료로 채우는 거죠?"


"두 말하면 잔소리. 그저 시큰둥하게 무시로 일관하다가는 남친 신상이 제대로 털릴 수 있겠다는 느낌 확실히 받을 수 있도록."


"반감이 더 커질텐데 괜찮을까요?"


"그건 내가 처리할 문제니까 너는 신경 끄세요. 꼭 우리 회사까지 오게 만들 필요는 없어. 중간에 식사 한 번 할 수 있는 자리 마련하는 것으로 충분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는 황윤건 쪽으로 약점 만들어두고."


"약점이요?"


되묻는 장 실장의 눈이, 룸미러 안의 장 실장을 직시하고 있던 최진홍의 시선과 바로 부딪혔다.


"우리 장소영 눈치 빠른 걸로 칭찬 많이 받았었는데. 오늘따라 영 감이 떨어지네?"


"아..."


"윤시현이 푹 빠져있다는 것 빼면 이 젊은 놈이 가진 레버리지가 뭐가 있겠어. 그 자체로는 무가치하잖아. 그 레버리지를 잘 흔들어서 우리가 쥐도록 해야지. 그래야 윤시현과의 협상에서 유리해진다."


윤시현에 집착하는 모습까지는 참을만 했지만, 이야기가 여기까지 오자 장 실장은 자기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화가 났다. 하지만 내보일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한창 때일 남자놈이니 장소영에게 안 넘어갈 리가 없지. 잘 찍어둬."


비릿한 미소가 아주 잠깐 최진홍의 입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솔직히 말이야. 인간 수컷의 표준적인 관점에서 보면, 윤시현 걔 외모로는 소영이 널 절대 못 따라오지. 네가 남자 입장이라고 생각해봐. 너랑 윤시현 중에 누구 고를래? 얼굴 몸매 모두 비교 불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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