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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님의 서재입니다.

몸속에서 벌레 군대를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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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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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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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9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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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2화

DUMMY



집락의 표면 일부만 남기고 중심에 있는 모든 콜로니를 한 번에 소멸시켰다.


이러면 백혈구 계통이 얇아진 세균막을 아주 쉽게 공략하여 면역체계가 정상적으로 감염 반응을 마무리할 수 있다.


만약 집락의 표면조차 남기지 않고 벌레들을 갑자기 다 없애버리면, 이미 급속 생산되어 파견된 대량의 백혈구 군집이 올바른 신호를 받지 못하고 당황하여 멀쩡한 정상 세포 조직을 공격하기도 한다.


무기를 잔뜩 들고 와 예열시켜놨는데 갑자기 그걸 쓸 대상이 사라지니 면역계 입장에서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소위 자가면역질환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일정 이상의 집락을 형성한 세균들을 한꺼번에 죽여버리는 건 그다지 현명한 대처방법이 아니다.


그 다음으로 타박이 심하여 세포조직이 허혈 상태에서 괴사한 부위를 찾았다.


죽어버린 세포에는 아주 쉽게 감염이 벌어지기 때문에 역시나 좀 과할 정도의 염증 반응을 일으켜 청소를 하게 된다.


하지만 감염 여지를 없애버린 상태에서 염증 반응을 적당히 진정시키고 조직 재생에만 집중하면 고생도 덜하고 회복도 빨라진다.


서 기자의 다리뼈 부러진 곳 역시 그런 식으로 처리할 수 있다. 급하게 진행하면 3일 정도에 뼈를 붙게 할 수 있지만, 굳이 그럴 이유도 없고 누가 봐도 수상하게 생각할 테니 골조직 재생을 유도하는 벌레들은 딱 적당한 만큼만 증식시켰다.


세 가지 과정을 다 끝낸 다음에야 황윤건은 서 기자의 부분 파열된 비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원리는 비슷하다. 이미 괴사가 이루어져 가망 없이 죽어버린 부분은 깔끔히 포기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청소해서 없애버린다.


그리고 나서 멀쩡한 부분에 집중한다. 중요한 건 괴사 부위와 정상 조직 사이의 중간 지대. 소위 페눔브라Penumbra.


보통 뇌졸중 시 죽어버린 뇌세포와 정상 조직 사이에 반쯤 걸쳐있는, 치료 여하에 따라 소생시킬수도 있지만 그대로 놔두면 괴사되기도 하는 부위를 일컫는다.


의학적으로 개입했을 때 결과 측면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부위이기 때문에, 신경보호와 신경재생 분야에서는 이 페눔브라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꼭 뇌신경뿐만 아니라 다른 신체 조직의 손상 상황에도 이 페눔브라 영역은 생기기 마련이다.


상해를 입은 사람을 회복시키는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라면, 이 페눔브라 영역의 세포들이 100% 정상화되는 상황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획 정리가 확실히 이루어져야 한다.


괴사된 세포만 탐식하는, 소위 청소부 역할의 벌레들을 서 기자의 비장 쪽으로 옮겨 증식시켰다.


여러 번 테스트를 거쳐 선별한 놈들이다. 페눔브라를 건드리지 않고 완전히 죽어버린 세포만 노리는, 일종의 구더기 노릇을 수행해주는 벌레들.


보통 이놈들이 활동할 때 혼자가 아니라 쓸데없는 화농균들이 같이 들어가기 때문에, 괴사된 조직은 이 화농균들이 싸지른 독소들 때문에 썩어가기 마련이다.


총칼에 맞는 등 팔다리를 크게 다친 사람이 제때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썩어들어간 손발을 절단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황윤건 앞에서 이런 불청객들은 등장할 기회가 전혀 없다.


청소부는 불쾌한 친구들을 대동하지 않고 와서 정말 청소만 열심히 하고 갈 것이다.


동시에, 비장 조직의 재생에 특화된 벌레들을 보냈다.


비장은 림프절로서의 기능과 함께, 마치 간처럼 아주 많은 혈관이 지나기 때문에 손상된 혈관을 재생시킬 수 있는 벌레들까지 두 군집을 동시에 증식시켜야 한다.


자칫 혈관신생이 통제가 안 되면 새로 자라난 조직이 마치 암세포처럼 변하기도 하기 때문에, 혈관신생을 적당히 억눌러주는 물질을 분비하는 제3의 벌레 군집도 소량이나마 딱 적당한 만큼 같이 있는 게 도움이 된다.


사실 이런 미묘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가장 난이도가 높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래서 내장 조직의 재생은 여러모로 복잡하고 어렵다.


청소와 재생을 병행하며, 황윤건은 전에 없이 긴장하면서도 동시에 묘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본인의 내장 조직을 일부러 아주 조금 손상시킨 후 계속 연습을 해왔는데, 지금은 진짜 샘플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실전의 노하우를 얻기 위해 멀쩡한 사람을 다치고 병들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결국 우발적으로 이런 환자를 맞닥뜨려야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의사든 의사든 합법적으로 환자를 보는 직업을 가지긴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벌레들을 부리는 재주가 궁극적으로 나아갈 길은, 그래도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쪽이 되는 게 더 나을 테니.


죽여야 하는 놈들을 죽이는 것은 나쁘지 않다. 속에서 뭔가가 훅 끓어오를 정도로 혹하는, 두근거리면서도 재미있는 일이다.


지금만 해도 동원할 수 있는 수 만 가지의 벌레, 수 만 가지의 방법이 있다.


흑사병, 탄저균, 매독같이 전통의 강자들도 있고, 메티실린과 반코마이신 내성까지 지닌 수퍼 포도상구균도 이미 입수했다.


이들은 각자의 특성과 장단점이 있으며, 감염을 통해 숙주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스타일 역시 가지각색이다.


그 모든 과정과 결과가 매혹적일 것이다.


하지만 죽으면 안 되는, 살리고 싶은 사람을 이 재주로 살릴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크나큰 희열이 아닐 수 없다.


죽이는 것과 사뭇 다른, 아니 오히려 좀 더 넓게 퍼지는 종류의 짜릿함.


지금 차오르는 이 느낌처럼 말이다.


*******


약 한 시간 동안 고도로 집중한 끝에, 이제 그냥 놔둬도 서 기자의 몸이 저절로 회복할 수 있는 단계까지 만들어놨다.


애초에 한 20% 정도가 손상된 비장이었는데, 이대로 가면 원래 기능의 90%, 잘 하면 95%까지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쯤 나도 피곤해질 때가 되었는데, 아까 워낙 노르에피네프린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뿌려대다시피 해서 그런지 전혀 졸리지가 않다.


피 묻은 옷을 벗고 호텔이 제공한 가운으로 갈아입은 후, 소파에 반쯤 누워서 왼쪽 어깨의 손상 회복에 집중했다.


좀 더 많은 벌레를 불러내 일을 시키며, 회복에 시간차가 있어 우둘투둘해진 부위를 매끈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흉터가 생기지는 않을 테지만, 보기에 과히 유쾌하지 않은 모습이니까.


아마 이렇게 집중하다 보면 신경도 점점 피곤해져서 잠이 올 것이다.


지이잉.


- 두 사람 지금 잠들어있어?


휴대폰이 울려 확인하니, 윤시현에게서 문자가 와있다.


- 응. 치료 끝났고 이제 내일 오전까지는 꼬박 잘 거야.


곧 창문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윤시현이 리스로 굴리는 SUV 중 하나를 몰고 온 듯 하다.


아래로 내려가 맞이하고 싶긴 한데 지쳐서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엄청 피로한데 졸립지는 않은 상황.


하루 밤 새며 에스프레소를 여덟 잔 정도 한꺼번에 마신 것과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곧 전자음이 들리며 여분의 카드키로 문이 열렸다.


야구모자에 후드까지 둘러쓴 윤시현이 들어왔다. 윤시현은 일할 때 실제로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 팀장도 이 팀장이지만 서 기자와 같은 외부 정보원에게 직접 얼굴을 보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들어오자마자 두 사람이 잠들었는지 확인한 후 천천히 일어난 황윤건의 앞에 와서 섰다.


조금 화가 난 건지 맥이 빠진 건지, 복잡한 표정으로 손목을 잡아끌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어깨 어느 쪽이야."


화장실 문을 닫은 후 윤시현이 말했다. 천천히 가운을 벗어 왼쪽 어깨를 보여줬다.


아까보다는 많이 형태가 돌아왔긴 하지만 여전히 살점이 떨어져나간, 진피 아래쪽이 시뻘겋게 드러난 모습이 흉물스러웠다.


그걸 보고 흠칫 놀라 두 손으로 입을 막더니, 윤시현의 두 눈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진짜 왜 그래..."


원망스러운 얼굴로 어쩔 줄을 모르다가, 윤시현은 다친 어깨를 만져보려고 하다가 그냥 손을 뗐다.


"너 때문에 진짜 못 살아..."


울먹거리며 입술을 부르르 떠는 모습에 황윤건이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흔적도 안 남게 회복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것처럼 쓸데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었다. 조직 자체 재생이라는 비상식적인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무리 말로 떠들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 정도 상처가 하루만에 아무는 것을 직접 눈으로 봐야, 사귀고 나서 일년 반 사이에 네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상식의 범위에서 더욱 멀어졌다는 점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미안. 다 때려눕힐 자신이 있었는데, 저놈들이 비겁하게 사냥용 석궁을 쏘더라구."


눈물을 훔치며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는 윤시현을 뒤에서 천천히 안았다.


사실 그럴 자신은 없었다. 연장 하나씩 들고 있는 스무 명의 조폭과 근접전으로 붙어서 이긴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그래도 무계획적이고 무모하게 일을 벌였다는 점을 들켜 더 걱정스럽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자기는 만약 내가 저렇게 다친 걸 보면 마음이 어떨 거 같아? 심장이 내려앉아... 진짜."


허리를 감싼 손을 몇 번 찰싹찰싹 때리더니 윤시현이 곧 팔을 가만히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다음부터 그러지 마. 최소한 일을 저지르려면 나하고 상의를 먼저 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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