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뜨거운아아 님의 서재입니다.

몸속에서 벌레 군대를 키우기로 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뜨거운아아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3
최근연재일 :
2022.06.26 22:1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115,352
추천수 :
4,305
글자수 :
236,481

작성
22.06.19 23:50
조회
1,392
추천
79
글자
18쪽

52화

DUMMY



남자는 그 와중에도 허리를 들어올려 황윤건 몸의 중심을 뒤흔들려 했으나, 몸이 말을 잘 안 듣는지 미처 피하지 못했다.


황윤건의 옆머리가 남자의 왼쪽 눈과 콧대 사이에 정확히 들어박혔다.


문자 그대로 박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코뼈가 주저앉았다.


황윤건 역시 머리에 격통을 느꼈으나, 권총에 맞은 우측 가슴의 통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 남자에게 별 감정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적인 감정을 떠올릴 정도의 여유도 없는 상황이었다.


죽느냐 죽이느냐. 그것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벌레를 던졌고 남자는 총을 쐈을 뿐.


더 잘 먹히는 수단을 가져 결과적으로 이긴 쪽만 살아남을 수 있을 따름이다.


순간 힘이 풀린 남자의 손아귀에서 빼낸 왼손으로, 아까 실패했던 훅을 파운딩으로 퍼부었다.


빡. 빡. 왼손이 아파와서, 타격의 반동으로 억지로 돌아간 오른쪽 어깨까지 동원해서 팔꿈치로 찍었다.


오른쪽 팔꿈치가 남자의 턱을 찍었지만 총에 맞았던 우측 가슴이 죽을 것같이 아파왔다. 아무래도 늑골 한 대는 부러진 듯 하다.


빡. 억지로 밀어친 마지막 주먹을 통해, 남자 얼굴과 목에 들어가있던 경직이 풀리며 늘어지는 게 느껴졌다.


머리가 띵했다. 머리에 연거푸 두 발 총을 맞아 이미 염좌가 와있던 목은 박치기했을 때의 충격으로 좌우로 돌리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제대로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맨 얼굴을 때린 손은 얼얼했고, 무엇보다 오른쪽 가슴이 숨 쉬기 힘들 정도로 아팠다.


실로 만신창이였다.


하지만 죽을 정도가 아니면 벌레들이 알아서 조직을 재생시킬 것이다. 지난 몇 년 내내 그렇게 훈련시켰으니까.


황윤건은 왼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절로 끄응- 소리가 났다.


얼굴이 엉망이 되어 정신을 잃은, 바닥의 남자를 한 번 쳐다보았다. 어차피 탄저균과 보툴리눔 균이 과증식 중이라 영영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한쪽에 떨어져있던 헬멧을 들어 머리에 쓰고, 그 옆의 권총을 주워 왼손에 쥐었다.


안전장치를 걸고 탄창을 꺼내 총알이 몇 발 남았는지 확인했다. 열 발 정도 남아있었다. 어차피 사람을 이걸로 죽일 일은 없을 테지만.


아마 지금쯤이면 2층에 있던 두 명도 피거품을 뱉으며 쓰러져있을 것이다. 황윤건은 별관의 정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하며 염두에 두고는 있었지만, 직접 총을 맞아보니 감회가 남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기분이 좆같고 무엇보다 너무 아프다. 방호복이 없었다면 아마 이런 생각도 떠올릴 수도 없었을테지만.


어쨌든, 사람을 표적으로 두고 주저없이 총을 쏘는 인물이 일행에 섞여있는 세 명이라.


수행원의 사이즈와 요인의 사이즈가 비례한다면, 아마도 세 명 중에 꽤나 중요한 인물이 섞여있을 것이다.


2층에 있는 두 명 중 하나는 아주 높은 확률로 최진홍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전신이 찢어질 것 같이 아파왔지만, 그 와중에도 황윤건은 양쪽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리며 웃었다.


기어이 선을 넘어줘서 고마운 사람을 드디어 만나는 건가.


고마워해주러 간다. 지금.


* * *


정문으로 들어설 때부터 렙토스피릴룸 등 쇠를 먹는 벌레들을 건물 전체에 과증식시켰다.


이미 총격까지 있었다. 오늘 밤을 여유롭게 이곳에서 보낼 수는 없다. 얼른 끝내야 한다.


2층, 두 명이 들어있는 그 방의 철문은 특히 두꺼웠다.


한동안 문고리 쪽에 집중하여 이미 증식한 벌레를 한 점으로 쏟아부었다.


아무리 화려한 개폐 장치가 있다 해도 문이 열리지 않도록 문짝과 벽을 연결하는 철기둥의 지름은 두꺼워봤자 3cm 정도이다.


표면의 코팅된 부분을 피해 안쪽으로 벌레들을 몰아넣었다.


삭다 못해 알아서 열리기를 기다릴 시간은 없었고, 적당히 거리를 띄운 후 대각선 방향으로 권총을 겨눠 자물쇠 접합부를 노렸다. 튕겨나온 도탄에 맞아 쓰러지면 그것만큼 허무한 일은 없을 테니.


탕. 탕. 탕. 탕. 네 발 째에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살짝 열렸다.


바로 들어가려다가, 아마 안쪽의 두 명도 총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지금쯤은 벌레들에 절여져서 정신 차리고 있기도 힘든 지경이겠지만 또 모르니까.


한쪽 복도에 세워져있던, 허리 높이까지 오는 대형 쓰레기통을 들었다.


문 옆에 서서 발끝으로 살짝 열린 철문을 밀어제끼면서 바로 쓰레기통을 안쪽으로 던졌다.


탕. 타앙! 권총과는 차원이 다른 격발음이 들렸다. 설마 소총을 가지고 있나?


떡이 되어 갈가리 찢어진 플라스틱 쓰레기통의 잔해가 문 밖으로 튀어나왔다.


벽 뒤에서, 방금 움직임을 보인 충치균의 소재에 집중했다. 조금 남아있던 트리파노소마 크루지를 급속 증식시켜, 소총을 쏜 그놈에게 전이시켰다.


탕! 타탕! 타타탕! 소총을 격발시키는 살벌한 소리가 연달아 들려았다.


체질 상 아나필락시스가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지금 피부를 손톱으로 뜯어내고 싶을 정도로 가려울 것이다.


총소리가 들리지 않고 나서 약 1분 후, 권총을 겨누고 재빨리 문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쓰러져 몸을 번데기처럼 말은 채 꿈틀대고 있는 두 명이 보였다. 전신 방호복에 방독면까지. 준비 한 번 빡빡하게 하셨네.


그중 한 명이 황윤건을 보고 힘겹게 들고 있던 총을 들었다. 하지만 이미 겨누고 있던 황윤건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팔과 가슴을 겨누고 세 번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타탕. 반쯤 누워있던 사람의 몸이 딱지가 튀듯 격하게 움직였다. 저 한 구석으로 총이 밀려 날아갔다.


사람을 처음으로 쏴본 것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느낌이 없었다. 매일매일 반복하던 일과처럼 느껴졌다.


몇 시간 전 장소영의 허벅지에 깨진 와인병을 박아넣을 때처럼.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왼손의 총을 겨눈 채로 두 명에게 다가갔다.


총이 없던 한 명도 몸을 힘들게 움직이려 했으나, 굼뜨기 그지없었다. 발로 몇 번 복부를 걷어차 옆으로 접어놓았다.


"욱! 우욱!"


방독면 안에다가 토했는지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황급히 방독면을 벗기 시작했다. 양쪽 팔을 들며 열린 겨드랑이 아래쪽을 겨눠 한 발을 쐈다. 탕!


방호복이 있어도 아주 아플 것이다. 방독면을 쓴 채 자신의 토사물에 질식할 것인지 아닌지는 자기 손에 달렸다.


고개를 돌려 황윤건은 조금 전 삼점사에 맞은 쪽을 쳐다보았다.


케블러 베스트를 입고 있었지만 너무나 아픈지 온몸을 떨며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발을 들어 그 머리를 연거푸 밟았다. 워커 바닥으로 방독면을 지근지근 밟아 벗겨주는 기분으로.


혹시나 몰라 준비해둔 것처럼 보이는, 옆쪽 주머니의 군용 단검을 꺼내 슬랩과 끈을 손수 잘라주었다. 좀 거칠게.


"어디 건지 모르겠는데 방독면 품질 작살이네. 끈까지 이렇게 튼튼하게 만들고. 잘못하면 경동맥 다 상하겠는데."


가슴에 총을 맞아 그런지 목이 잔뜩 쉬어있었다.


방독면을 벗겨내고 나니 20대 후반의 수려한 남자 얼굴이 보였다. 탄저균 감염으로 인한 피부 발진과 변색만 없었다면 여자들이 꽤 따를만한 외모.


하지만 눈매와 턱선에서 묘하게 냉막한 인상이 풍겨나왔다. 차갑고 건조하며 무감정한.


윤시현이 그렇게 뱀같은 새끼라고 욕하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잘 생긴 거 빼고 얼굴 골격만 보면 정말 뱀이 떠오를만한 형상이었다.


"최진홍씨. 맞습니까?"


대답은 없었지만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놈이다.


그래도 생각보다 멍청해서 다행이다. 조금 전 바깥 주차장에서 내 머리를 날려버리고 했던 그 무서운 아저씨한테, 권총 대신 지금 자기가 들고 있던 H&K G36 돌격소총을 들려서 보냈으면 지금쯤 황천길을 걷고 있는 건 내쪽일 수도 있었는데.


아니 왜, 좋은 무기가 있으면 선수에게 줘야지 자기가 들고 있냔 말이지. 병신같이.


"하루가 참 기네요. 그쵸?"


고통으로 일그러진, 하지만 흐려지지 않고 여전히 맑고 투명한 최진홍의 두 눈을 바라보며 황윤건이 말을 이어갔다.


"전 오늘 최진홍씨 이야기 처음 들었는데. 시현이도 안 하던 이야기를 재닛 누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풀어서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우선 소장과 대장에 병원성 대장균 군집을 옮겨 증식시키기 시작했다. 특별히 O-157 타잎으로.


"미국이나 일본에서 재미있게 잘 계셨으면 좋았을 걸. 왜 또 굳이 한국까지 와서 이 욕을 보시는지. 그죠? 막 후회되지 않나요?"


조금 전 워커 바닥에 밟히고 갈리다가 난 얼굴과 목의 찰과상에는 VRSA을 듬뿍 옮겨줬다. 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상구균. 소위 수퍼 박테리아.


"그런데 어쩌나. 이제는 후회해도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네요."


항문과 생식기 쪽에는 저항성 매독균 군집을 이식해놓았다. 이 매독균은 워낙 섬세해서 찬 공기만 닿아도 바로 죽는 놈들이라, 내 체온으로 고이 포장해서 잘 보내주었다.


"그러게 왜 하기 싫다는 사람한테 일을 시킵니까. 시현이 널럴하게 지냈던 적을 한 번도 못 봤어요. 그쪽 아니어도 충분히 바쁜 사람입니다."


요도, 전립선, 부고환에는 임균과 클라미디아를 사이좋게 나눠 증식시켰다. 앞으로 밤마다 즐거울 것이다. 그럴 밤이 남아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저야 그렇다 쳐도 우리 부모님 뒤까지 터는 건 좀 너무 나가지 않았나요? 사람이 도리가 있어야지 말이야."


양쪽 폐 첨부 깊은 곳에 현재까지 나온 모든 약에 내성이 있는 결핵균을 잘 박아두었다. 파마산 치즈 가루를 솔솔 뿌리듯.


"부모님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하는 이야긴데. 혹시라도 3년 이상 살아남는다면 말이죠, 부모님 덕을 단단히 봐야 할 거에요."


당장 죽일 생각은 없다. 죽으면 그대로 끝 아닌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이 세상이 곧 지옥이라는 걸 체감하게 해줄 생각이다.


내장이 모두 망가져 생명유지장치와 투석 없이는 연명하기 힘든 몸으로, 어디 한 번 자살할 마음이 들 때까지 잘 살아보기 바란다.


그래도 총알이 좀 남아있는 게 아쉬우니까, 다 쓰고는 가야 할 것 같다.


방호구를 두텁게 입고 있는 하복부 쪽을 권총으로 겨눴다.


"괜히 막 피하고 그러지 말아요. 잘못하다가 민망한 곳에 맞으니까."


탕.


"윽!"


탕. 탕.


"으아아악!"


누구는 총 맞고 늑골이 나갔는데 겨우 이런 거 가지고 몸을 꼬고 그래.


이제 마지막 한 방인가. 하나쯤은 남겨둘까 잠깐 고민하다가, 그래도 깔끔한 게 좋을 듯 하여 심장 부분을 노렸다.


설마 이거 맞고 심장마비같은 거 오면 낭패인데. 한 명에게 이렇게까지 다양한 벌레를 옮겨둔 건 처음인데 말이다. 그 정성스러운 손길이 이 한 번의 사격으로 날아갈까봐 심히 두렵다.


탕!


왼쪽 허벅지가 끊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몰려온 건 그 순간이었다.


탕! 탕!


연이어 우측 종아리와 팔뚝에서도 격통이 찾아왔다.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이 날아가고, 핏줄기와 함께 찢어진 팔뚝의 살점이 앞으로 쫙 뿌려지는 모습이 보였다. 남의 살이 아닌 내 살이.


순간 숨이 턱 막히며, 벌써부터 어지럽던 머리가 훅 무거워지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던 최진홍의 몸통이 급격히 가까워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놈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내가 넘어지는 중이구나.


그게 황윤건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겨우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정 부장은 잠깐 기절했다가 깨어나 고농도 스테로이드와 각성제 계열 향정을 조합한 특수 주사를 겨우 허벅지에 꽂았다.


투여 후 부작용이 상당하지만 이러고 누워있다가 죽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목구멍의 붓기가 좀 가라앉고 겨우 숨을 좀 쉬게 된 후, 천근같은 몸을 일으켜 말을 듣지 않은 한쪽 다리를 끌면서 겨우 계단을 올랐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을 쓰러뜨린 후 테러범은 확인사살도 하지 않았고, 포박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몸을 뒤져 무장해제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단순한 아마추어인지 아니면 상식으로는 그 심리를 이해하기 힘든 미치광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방호복 안쪽 홀스터에 있던 예비용 베레타 한 자루를 꺼내 조심스레 다가갔지만, 시큐리티 룸 안쪽에서부터 총소리가 들려오고나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거의 기어가듯 문까지 이동한 후, 쓰러져있는 부사장에게 연달아 총을 쏘는 테러범의 모습을 포착했다.


너무 늦었나 싶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방호복이 없는 다리와 팔 쪽을 조준해서 서둘러 연사했다.


팔다리의 중심부를 겨냥하여 가급적 동맥과 뼈까지 상할 수 있도록. 그래야 움직임을 제대로 봉쇄할 수 있다.


손떨림은 스테로이드 주사 후 상당히 덜어진 상태였고, 다행히도 겨냥이 빗나가지 않아 적중할 수 있었다.


"이 대리! 병신짓 그만 하고 빨리 이사님 차로 옮겨!!"


연달아 들린 총 소리에 얼어있던 이 대리의 얼굴에는 토사물이 잔뜩 묻어있었다.


아마도 방독면 안에 토했다가 겨우 벗어서 질식을 면한 꼴인 듯 싶다.


거의 울면서 얼굴을 닦아내고 있던 이 대리에게 고함을 지르며, 정 부장은 바닥의 테러범을 겨눈 채 최진홍의 경동맥에 손을 댔다.


다행히 아직 살아있다. 총탄이 방호복 위쪽으로만 적중하여 외부 출혈도 없어보인다.


통증이 극심한지 거의 기절한 채로 몸을 떨고 있었으나, 뇌와 척수를 심하게 다쳐 사망을 앞두고 경련하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정확히 어떤 독에 중독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최대한 빨리 대형병원에서 집중적인 처치를 받는다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리가 부사장을 업고 비틀거리며 문을 나서는 것을 확인하고, 정 부장은 잠깐 고민에 빠졌다.


테러범의 다리와 팔에서 피가 뿜어져나오는 것을 보니 동맥이 터진 건 분명하다. 이대로 놔둬도 아마 알아서 죽겠지.


그래도 궁금한 게 있다.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게다가 이 어설픈 일처리는 대체 무엇인지.


엎어진 테러범의 선혈이 흘러나와 바닥을 적시는 사이, 정 부장은 절뚝절뚝 걸어가 테러범의 뒷덜미를 잡고 들어 바로 눕게 했다.


그리고 얼굴을 감싸고 있던 발라클라바를 벗겼다.


진짜 어린애잖아.


자료파일에서 봤던 황윤건, 만 22세의 대학생. 그 얼굴이었다.


어이가 없군. 메마른 입술 주변이 갈라져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정 부장은 툴툴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이 어린놈 한 명에게, 이 관사에 모여있던 회사의 정예 인력 절반이 당했다는 말인가.


아마도 윤시현이 구해다준 제3세계나 러시아 쪽 생화학 무기를 손에 넣고 이 난장판을 벌인 것이겠지.


어린애 손에 총을 쥐어준 격일까.


어쨌든 아마추어다 보니, 하독을 할 때 어떻게 될지 몰라 보통은 화학무기와 해독제도 같이 소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정 부장 본인이 살기 위해서라도 당장 해독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았지만 정 부장은 정신을 잃은 황윤건의 소지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정말 귀찮게 하는군.


"?"


황윤건의 방호복 조끼를 열다가, 뭔가 기분나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정 부장은 동작을 멈췄다.


스스스. 스스. 낡은 집안에 누워 잠을 못 들이고 있을 때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바퀴벌레나 다족류가 방바닥을 기어가는 미세한 소리. 보스니아에 파견 갔을 때 원치 않게 익숙해졌던, 특유의 기분나쁜 느낌.


물론 이런 신축 건물에서 들릴만한 소리는 아니다. 뭐지?


왠지 황윤건의 얼굴에서 뭔가가 흘러 떨어지는 것 같아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헬멧 벗은 머리에 쏜 적은 없는데. 아까 박치기할 때, 아님 조금 전에 쓰러질 때 부딪히며 출혈이 생겼나.


하지만 황윤건의 얼굴과 머리에는 그 어디에도 출혈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아까 투검에 맞아 찢어진 귀 쪽은 이미 피가 멎은 상태였고.


그 대신- 황윤건의 눈, 코, 입, 귀 전체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망할. 대체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눈에 보이는 실체는 없었다. 하지만, 황윤건의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뭔가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히 뭔가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지만 엄청나게 많은 무언가가 황윤건의 눈에서, 콧구멍에서, 귓구멍에서 흘러나와 주변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정부장은 몸으로 느꼈다.


"...씨발! 뭔데!?"


전신을 옥죄어오는 섬뜩한 감각과 함께 온몸의 피부에 소름이 확 돋았다. 정 부장은 마치 더러운 것에 닿았다는 듯 멱살을 잡고 있던 황윤건에게서 손을 뗐다.


황윤건의 머리가 힘없이 떨어지며 바닥과 부딪히며 퍽- 소리를 냈다.


곧 정 부장은 마치 환청과도 같은 소리, 아마도 심한 이명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방 전체를 눈에 보이지 않는 개미, 바퀴벌레, 혹은 메뚜기같은 것들이 꽉 채우는 듯한 끔찍한 느낌이 확연하게 다가왔다.


스스스. 스스스스스.


"으아아악!"


점점 커지던 이명이 귀를 찢을 것 같이 퍼져나가면서, 정 부장은 두 손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으며 서서히 무릎을 끓었다.


스테로이드로 눌러놨던 기도의 부종이 순식간에 다시 차오르며, 마치 무형의 거대한 손이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에 얼굴이 벌개졌다.


숨을 못 쉬어 혼미해져가는 의식 사이로, 정 부장은 보이지 않는 엄청난 수의 벌레들이 자신을 집어삼키는 환상을 보았다.


그 움직임은 극히 차갑고 무감동한 동시에, 너무나도 탐욕스러웠다.


오직 주변의 모든 것들을 뜯어먹어 뱃속에 집어넣는 일밖에 안중에 없다는 듯이.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몸속에서 벌레 군대를 키우기로 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6 55화 +17 22.06.26 1,264 74 7쪽
55 54화 +3 22.06.26 804 48 10쪽
54 53화 22.06.26 840 41 10쪽
» 52화 +22 22.06.19 1,393 79 18쪽
52 51화 +6 22.06.19 1,064 76 10쪽
51 50화 +8 22.06.19 953 50 10쪽
50 49화 +3 22.06.19 953 52 10쪽
49 48화 +5 22.06.19 947 52 10쪽
48 47화 +8 22.06.18 1,068 72 9쪽
47 46화 +3 22.06.18 990 56 9쪽
46 45화 +6 22.06.17 1,171 58 9쪽
45 44화 +4 22.06.17 1,041 41 9쪽
44 43화 +13 22.06.16 1,210 63 9쪽
43 42화 +5 22.06.16 1,091 49 9쪽
42 41화 +3 22.06.15 1,282 67 10쪽
41 40화 +5 22.06.15 1,143 57 9쪽
40 39화 +12 22.06.14 1,261 83 9쪽
39 38화 22.06.14 1,155 61 10쪽
38 37화 +7 22.06.13 1,398 76 9쪽
37 36화 +2 22.06.13 1,261 54 9쪽
36 35화 +8 22.06.12 1,548 63 10쪽
35 34화 +6 22.06.11 1,510 73 10쪽
34 33화 +2 22.06.10 1,538 67 10쪽
33 32화 +4 22.06.09 1,482 54 10쪽
32 31화 +1 22.06.08 1,503 54 10쪽
31 30화 +4 22.06.07 1,545 57 10쪽
30 29화 +1 22.06.06 1,565 51 9쪽
29 28화 +1 22.06.05 1,657 57 9쪽
28 27화 +2 22.06.04 1,758 53 10쪽
27 26화 +4 22.06.03 1,865 65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