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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님의 서재입니다.

몸속에서 벌레 군대를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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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3
최근연재일 :
2022.06.26 22:1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115,368
추천수 :
4,305
글자수 :
236,481

작성
22.06.03 12:30
조회
1,865
추천
65
글자
10쪽

26화

DUMMY



어쨌든 일리 있는 이야기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야근하고 회식 가는 생활을 상상해본 적은 없다.


초년부터 연구실에 드나들긴 했지만, 밤 새다시피 교수님이 지시한 실험에 매달리며 이십대를 소비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말마따나 학교에 남아 교수나 연구원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


그래도 한의대든 의대든 다시 들어가는 게 좋아보이는 선택이긴 하지만, 부담이 큰 건 사실이다.


최소 6년은 더 학교에서 썩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일단 수능을 다시 봐서, 그 천장 뚫기 직전의 무지막지한 커트라인을 통과하는 게 문제다.


그래도 주변 동기들 보면, 바로 취업하거나 대학원에 남을 생각 없는 친구들은 벌써부터 고시공부 시작한 경우도 심심찮게 있긴 하다. 행시든 7급이든 변리사든.


물론 벌레들 부리는 노하우가 개선되며 점점 헛점이 없어지고 있는 내 몸 상태를 생각하면, 똑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예전보다 최소 두 배는 효율적일 것 같긴 하지만.


"고민 시작한 건 좋은데. 일단 우리 저녁에 뭐 먹을지부터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윤시현이 이불을 쓰윽 끌어당겨 몸에 둘둘 만 채 일어나버렸다.



*******


생각보다 정말 혹하는 맛이 있네.


어떤 건지 시험 삼아 한 번 해보려다가 어느새 한 시간 반이 지나있었다.


황윤건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상품권을 수령하러 일어났다.


밖에서 언뜻 봤을 때에는 횟집인가 싶었다. 하지만 너무 간판이 너무 밋밋해서 식당 느낌은 아니었다.


초저녁이라 많이들 식사하러 갔을 법한 시간대였지만, 성인오락실 안에는 손님들이 꽉꽉 차있었다.


곳곳에서 태워대는 자욱한 담배 연기로 시야가 흐릴 정도였다.


윤시현이랑 일본에 며칠 놀러갔을 때 한 번 해봤던 파칭코 게임을 카피한 것 같은, 물고기 캐릭터들이 가득한 게임이었다.


애들 장난같은 게임에 사람들이 왜 이리 붙어있나 싶었는데, 한 번 해보고 나니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흡입력이 장난이 아니다. 특히 게임이 잘 안 풀리고 있을 때, 저 한쪽에서 한 명이 대박이 터져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을 보고 나면 다시 왠지 모를 의욕 혹은 초조함이 솟아올라 다시금 게임에 집중하게 된다.


집에서 컴퓨터 상대로 혼자 포커 치는 느낌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프론트에서 상품권을 받을 때 환전소 위치를 전해들었다. 골목 뒤쪽으로 한 블럭만 돌아가면 되는, 걸어서 1~2분 거리에 있었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있는 이 성인오락실의 존재 의미를 만들어주는 핵심이 이 환전소인데, 오락실과 멀리 떨어져있을 이유가 없다.


환전소를 찾아가며 며칠 전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따라 윤시현이 초조한 얼굴로 계속 메신저를 보내고 가끔 급한 통화까지 몇 통 했었다.


평소 일할 때의 느긋하고 담담했던 모습이 아니라 좀 의아했었는데, 나중에 말하기를 협업하는 팀의 조사원 한 명이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돌아가는 점조직 여러 팀과 필요할 때에만 같이 일하는 구조라서 보통은 큰 문제가 없는데, 이번에 실종된 조사원은 윤시현과 다이렉트로 연락하는 그쪽의 팀장격 인물이라 경우가 좀 다르다고 했다.


잘못하다가 연락처와 접촉 경로같은 게 털리면 윤시현까지 위험해질 수 있어, 일정 선을 넘으면 지금 오피스텔에서 짐과 장비를 다 빼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그쪽 팀원들과 함께 위치 추적을 진행하며 마지막 남은 흔적들을 쫓고 있긴 한데, 뾰족한 단서는 아직 없다는 듯 했다.


팀장은 이 우스꽝스러운 물고기 게임이 가득한 오락실 업계를 조사 중이었다.


최근에 유행하고 있던 사행성 성인오락실 업계에 전국 단위 조직이 개입했고, 조폭이 끼어있을 확률이 높다는 게 현 상황.


그런데 웃기게도 그 사실을 접하게 된 첫 소스가 정치권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척지고 있던 정치인 계파가 자잘하게 받던 비자금 루트가 생각보다 커지고 있어, 배알이 꼴린 그 경쟁 계파에서 뒷조사를 시킨 셈이다.


사행성 성인오락이면 결국에는 불법도박으로 몰아갈 수 있는 여지가 크기 때문에, 증거만 제대로 잡아 크게 터뜨리면 경쟁자 물먹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검찰 경찰의 습성 상 현직 정치인이 개입된 사건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그쪽 계파에서도 나름 돈을 써서 윤시현과 연결된 흥신소를 고용한 상황이다.


공권력이 시큰둥하니까, 사립탐정에게 일을 맡긴 형국인 것.


엄격하게 따지면 한국에서 사립탐정이 불법이라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불법인 업계에서 정치자금을 불법으로 뽑아내는 현장을 불법 흥신소가 무단 조사하는 웃기는 상황이다.


황윤건은 윤시현 옆에서 뒹굴거리며 다른 일을 하는 척 하면서 귀기울여 몇 가지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방배4동. 방배1동 쪽으로 가는 큰 길의 이면도로 쪽. 이 팀장. 어제 새벽 1시가 마지막 연락.


예전에 한가락 하던 사람이긴 한데 이제 30대 중후반으로 접어들어 체력적으로 꺾일 때가 됐다- 라는 주관적인 평가도 같이.


황윤건 자신과는 상관없는 윤시현 쪽 일이기 때문에 굳이 나서기도 애매한 상황이긴 하다.


무엇보다, 내가 좀 알아볼까? 라는 말 한 마디만 입에 올리면 윤시현이 극구 말릴 것이다.


맨날 입에 달고 있는 소리가 괜히 위험한 일에 뛰어들었다가 다치지 말라는 이야기니까. 이제 홀몸이 아니라나.


틀린 이야기도 아니고 왜 그러는지 공감하지 못할 바도 아니지만.


1년 넘게 지겹도록 연습해온 반사 지혈과 조직재생 숙련도가 어느 정도 믿을만한 단계에 이른 상태라서, 슬슬 실전 테스트를 해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게다가 명분도 있다. 어차피 이런저런 일들이 걸려서 경찰에 신고하기도 애매한 상황 아닌가?


경찰에 신고하게 되면 저 이 팀장이라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하려다가 실종이 되었는지에 대한 자초지종이 털릴 수밖에 없을 것인데.


그건 꽤 큰 비용을 지불하고 이번 일을 의뢰한 정치인 계파가 용납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닐 것이다.


불법적인 흥신소 일을 하고 있던 해당 업체와 윤시현 측에서도 전혀 원하는 그림이 아닌, 최후의 수단일 뿐.


즉 자체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항복하고 경찰에 신고한다는 것은, 곧 이 업계에서 대대적인 신뢰도 하락을 감수하겠다는 일종의 뼈아픈 결단이 되는 셈이다.


자기 아래에 직속으로 고용한 사람도 아니고 협력업체 쪽 일이라, 윤시현도 완전히 감 놔라 대추 놔라 지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그 협력업체가 털리면 자기 신변도 털릴 위험성이 있어서 전전긍긍하며 적극 지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고.


만약이라도 제대로 털리게 되면 윤시현도 한동안 업을 접고 일종의 잠적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황윤건 입장에서도 강건너 불구경하고만 있을 일은 아닌 셈이다.


무엇보다, 아마도 조폭이 손대고 있는 영역에서 사람이 실종되었는데 충분히 목숨이 왔다갔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손 놓고 있다가 그 며칠 사이에 죽지 않을 수도 있었을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면 그거야말로 큰일이다.


경찰이 어렵다면 누구라도 나서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그리고 또,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윤시현이 황윤건이 와있을 때 통화를 하며 이런저런 일처리하는 모습을 굳이 숨기지 않을 것일 수도 있다.


워낙 머리가 좋아 평범한 사람들보다 생각이 두 세 수는 앞서는 게 보통이니까.


그렇게, 황윤건은 윤시현 쪽 사정이 자기 귀에 들어오게 된 것이 일종의 미필적 고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윤시현이 피치 못한 상황을 만들어 반쯤 의도적으로 정보를 자기에게 흘린 것이라고.


...아님 말고.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몸이 너무 근질거리는 처지라는 말이지.


*******


쭈뼛거리며 들어간 환전소는 아주 좁았다. 투명 플라스틱 창 사이로 원형 구멍을 낸 것이 꼭 버스터미널의 표 사는 창구와도 비슷했다.


그러한 프론트 창구 빼고는 적당히 앉아있을 의자 몇 개 정도만 들어갈만한 약 서너평 남짓한 공간.


하지만 임대료 엄청 비싼 대로변 1층 상가도 아니고, 이면도로 골목의 상가가 저렇게 작은 평수로 쪼개서 임대해줄 리는 없을 것이다.


아마 저 프론트 뒤쪽으로 공간이 꽤 있겠지.


"상품권 이쪽으로 주시면 됩니다."


창구 안에 앉아있던, 티셔츠 차림의 마른 남자가 말했다. 결코 순한 인상은 아니다.


5천원짜리 상품권 다섯 장을 내미니, 아주 익숙한 듯이 지폐와 동전을 세서 22,500원을 내줬다.


"어... 이거 2천 5백원이..."


"손님 게임 처음이시구나. 환전수수료 10% 있습니다."


"아... 네.."


"게임 재미있게 하시고 앞으로 자주 봅시다."


창구 안의 남자가 어울리지 않게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황윤건은 역시나 쭈삣거리면서 한 번 건성으로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아까 봐뒀던 건물 안쪽의 공용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환전해준 남자가 단순히 월급 받고 일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운영하는 측에서 나온 사람.


그렇다면 이래도 되는 거겠지? 엄한 사람 붙잡고 조지는 건 아닐 거라 믿고 싶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99 산방학
    작성일
    22.06.03 14:20
    No. 1

    경찰인가 사회정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9 뜨거운아아
    작성일
    22.06.03 16:12
    No. 2

    히어로 놀이... 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1 허밍기
    작성일
    22.06.12 00:54
    No. 3

    바다이야기~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쿨스타
    작성일
    22.06.16 20:10
    No. 4

    격투기술도 동반 상승시켜야ㅋ 옥타곤의 제왕 밑에서 수련을ㅋ
    신체 재구성, 환골탈태 아류도 할수있어보이는데 뭣하면 성장호르몬도 균으로 조절해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다양한 인종들을 연구해서 골격 연골 근육 힘줄 등 격투에 최적화된 육체 dna로 재구성하는 만능히어로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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