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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님의 서재입니다.

몸속에서 벌레 군대를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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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3
최근연재일 :
2022.06.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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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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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42화

DUMMY



아시아 최대 보안경호업체 소유주의 아들 중 한 명인 최진홍은 그 한참 전부터 PMC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어떻게든 그 블루오션에 끼어들어가려고 졸업하기 전부터도 창업이다 뭐다 난리였다.


하지만 결국 몇 번이나 엎어졌었는데.


지금 들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실패자인 막내아들이 아버지에게 굽히고 들어가 뒷문으로 입사한 게 아니라.


거꾸로 아버지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회사 차원의 투자를 끌어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윤시현은 쉽사리 그의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최진홍, 즉 이이다 마사히로가 껍질 덜 벗겨진 뱀이라면, 그 아버지인 이이다 회장은 가히 용이라 불릴만한 사내다.


절대로 실패할 사업에 투자할 위인이 아니다.


물론 결과적으로야 최근 몇 년 사이 PMC가 엄청 성장세인 것은 맞고, 그 잠재력을 알아보았다면 이이다 회장이 과감히 투자했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예전부터 PMC 노래를 부르던 막내아들의 입김과 설득 때문이었을까?


첫째로, 실제로 이이다 회장 지시로 그 분야에 투자가 들어가있는지를 확인해야 하고.


둘째로 유의미한 수준의 투자가 이루어진 게 맞다면, 그 과정에서 막내아들인 최진홍의 기여도나 심리적 지분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두 명제가 모두 참이어야, 최진홍이 지금 던진 말 속의 뉘앙스가 거짓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이 너무 급하게 벌어지는 와중이라 제대로 확인을 하지 못했다.


사실은 최진홍 일이라면 생각하기도 싫고 무작정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떠올리기만 해도 예전 기억으로 불쾌해지니까.


얼마 전 연거푸 연락이 왔을 때 마음 가라앉히고 이 놈이 왜 이러나 앞뒤 사정을 알아봤어야 한다.


이 인간이 아무런 목적 없이 단지 한밤중에 떠올린 미련만으로 액션을 취할 감상적인 부류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다.


젠장. 빼도 박도 못하는 내 실수가 맞다. 윤시현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자회사 개념으로 일단 아시아 지역부터 시작하는 단계야. 아무래도 동남아 쪽에 일이 많지. 주로 정부기관이 의뢰하고, 마약 카르텔이나 반군 연합을 타겟으로 삼고 있어. 근데 그 친구들도 이미 비싼 회사 고용한 경우가 많아서. 알지? 러시아 쪽 애들. 관공서 홈페이지나 금융기관 보안 건드리던 순둥이 해커들 가지고는 일이 영 진행이 안 되더라고."


어느새 테이블 위에 놓인 애피타이저를 먹기 시작하며, 최진홍이 말을 이어갔다.


"소위, 유능한 인력 충원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거지. 그래서 네가 불편하게 여길 거 알면서도 피치 못하게 연락했어. 내가 아는 한, 어느 정도 규모 넘어가는 시스템의 외부 동기화 분야에서 너만한 사람이 없으니까."


"알긴 알아? 정말?"


순간 욱하는 감정에 윤시현은 입밖으로 나오는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냐, 아니지. 이러면 저놈 뜻대로 되는 거니까. 진정해야 해.


"...미안하다. 지금 와서 아무 의미 없겠지만."


포크를 가만히 내려놓고 최진홍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예전 우리 일 꺼내서 어쩌자는 건 아니야. 어쨌든 우리도 나이가 들었고, 각자 자기 분야에서 책임있는 사회인이 된 거니까. 일 관계로 제안하고 싶었어. 공연히 널 추켜세우려는 게 아냐. 너는 이미 one of them 레벨을 한참 전에 뛰어넘었고, 사람 골라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뿐이야."


"그래서 네 밑으로 들어오라고?"


음흉한 뱀대가리 새끼가 여전히 말은 청산유수지.


"그래주면 가장 좋긴 한데. 아마 네가 싫어할 것 같아서. 계약 성립된다는 전제 하에서 난 그냥 협업 관계로도 만족해."


"만족은 얼어죽을... 협업하자는 인간이 내 남친과 그 가족들 동선까지 다 털어서 나한테 보내?"


"다섯 번 넘게 컨택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니까. 나도 나름 급하고 절실한 상황이거든. 또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네가 이렇게 만나줬잖아."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머금은 채 최진홍이 말했다.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너는 내 손바닥 안에 있다든가, 내 말 안 들으면 네 남친을 어떻게 해버린다는 등의 느낌이 아니다.


그런 식의 우월감이나 내려다보는 기색조차 없다는 게 더 화가 난다.


이 소름돋는 소시오패스 새끼는 그냥 순수하게 이 방법을 써야 내가 테이블 앞에 알아서 앉을 것이라는, 그게 가장 효율적이니까 했다는 식이다.


자존심이나 컴플렉스가 강하고 또 그렇게 비대한 자아에 의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타잎이었다면, 이런 상황이라도 이놈을 대응하거나 다루기가 좀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간은 그 최소한의 사람같은 느낌조차 별로 없다.


"당신같으면 이렇게 협박해오는 인간이랑 선뜻 같이 일하겠어?"


"시현아. 네가 어정쩡한 협박에 넘어갈만한 사람 아니라는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 그냥 내가 우연히 쥐게 된 작은 레버리지라고 하자."


"우연히? 허. 레버리지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좆까. 뭐 애초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Fuck your ass!"


"우리 가급적 험한 말은 하지 말자. 말로 상처 주는 건 옛날에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했었잖아. 어쨌든 그 레버리지 덕분에 네가 이 자리에 앉은 것만으로 충분해. 그리고 네가 지금까지 한 번도 누리지 못했던 최고의 조건으로 계약할 거야. 도X다나 혼X 사내이사 급의 연봉과 성과급, 그리고 의전까지. 나도 나름 리스크 감당하면서 너한테 투자하는 거야."


"이 정신병자야. 사람 말을 좀 들어..."


한숨을 토해내며 윤시현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일단 내 제안을 수락할지 말지 결정하기 위해서라도, 협약 세부사항까지는 네가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 실제로 무슨 일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네가 맡아야 할 역할이 무엇이고, 그 성취도와 진척도에 따라서 어떻게 성과급을 정산하는지. 우리 회사에서 준비한 문건 보고 나면 아마 지금 네가 가늠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울 거야."


"윤건이 지금 어디 있어?"


꽉 쥔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윤시현이 말했다.


이 자기 할 말만 던져대는 고장난 녹음기같은 놈과, 그나마 정상적인 대화가 조금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고 온 자신이 병신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 또라이는 나이가 들어도 변한 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섬뜩한 정신구조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굴러가고 있고, 직급과 권한이 커져 더 소름돋는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위치에 오른 셈이다.


저런 놈이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 자체가 세상에 재앙이다.


"윤건이 어디 있냐고!?"


"아마도 지금 따로 협의 중일 거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윤건이랑 당신 회사가 무슨 협의를 해? 진짜 돌아버리겠다."


"너랑 지금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고 들어서. 이사급 이상으로는 모시는 분의 가족에 대해서도 의전이 들어가거든. 부모님이 계셨다면 굳이 황윤건씨까지는 항목에 안 올랐을 텐데. 휴우. 안타깝네."


아무런 긴장도 동요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하는 최진홍을 보면서 윤시현은 정말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네가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는 인간이냐?


이건 몰염치도 파렴치도 아닌... 차마 사람의 말로 형용하기 힘든 괴물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걱정마. 경험 많고 능숙한 사람 보냈으니까. 장 실장 알지? 황윤건씨 입장에서 딱히 불쾌하거나 무례하다고 느끼지는 않을 거야."


"장 실장? 설마 재닛? 장소영을 윤건이한테 보냈다고?"


재닛 장. 표독하기 이를데없는 이이다 가의 충견. 하지만 최진홍이 입마개만 풀어주면 도살자가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여자.


겉보기로는 미끈한 셰퍼드로 보이지만 사실은 굶주린 로트와일러에 가까운 인간이다.


자동으로 떠오른 옛날 기억에 윤시현은 벌떡 일어나 최진홍에게 다가갔고, 그 멱살을 잡았다.


"개새끼야! 네가 사람이야?"


"시현아. Mind your language.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소리치던 윤시현은 엄습하는 통증에 신음을 흘리며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멱살을 쥔 손을 한 번 제대로 흔들기도 전에 최진홍의 손에 잡혀 손목이 180도 반대방향으로 꺾인 상태였다.


"널 아끼고 또 여전히 사랑하고 있지만, 험악한 언행이 서로에게 더 나오도록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 진정해."


"아악!"


꺾은 손목을 무자비하게 반 바퀴 더 돌린 채, 최진홍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윤시현에게 좀 더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댔다.


"내 마음 알겠지? 시현아, 이제 진정하고 네 자리에 가서 앉아줄래?"


저 섬뜩한 유리같은 눈동자. 문득 몸서리가 쳐졌다.


통증이 가라앉는 와중 윤시현은 저 뱀같은 놈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는 낭패감에 자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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