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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님의 서재입니다.

몸속에서 벌레 군대를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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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3
최근연재일 :
2022.06.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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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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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53화

DUMMY



"진짜 쩔지 않냐?"


"야, 사람들이 저렇게 죽었는데 뭔 말이 그래."


옆 테이블에서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커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역시 식당 한켠의 티비에 시선이 꽂혀있었다.


"오늘 시험 미뤄진 게 저거 때문이지?"


"아, 으응. 그렇다고 들었어."


역시 티비를 보고 있던 혜정이가 민서에게 말을 걸었다.


"조교 언니 이야기 들어보니까 오늘 새벽 댓바람부터 미생물학과 교수님들이랑 박사과정 쌤들 저쪽으로 총출동했다더라."


"지난번 그 뇌 파먹는 아메바 건도 그렇고 올해 우리 학과가 좀 난리를 많이 겪는 편인 듯."


"그래도 시험 연기된 건 나름 이득 아님?"


"없는 밑천으로나마 시험 치는 멘탈 겨우 만들어놨는데 이런 일 생기면 오히려 결과 안 좋을 수도 있음..."


"그건 최소한의 공부를 해놓은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넌 우리 편이 아니다."


친구들의 잡담 사이로 민서는 국을 한 숟가락 떠먹으며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하남에 위치한 한 보안경호 회사 직원들 관사에서 참사가 벌어졌다. 이른 새벽에 그 사실이 알려지며 경찰이 출동했고, 지금 해당 부지는 삼엄한 경비 속에서 출입 금지 상태가 되었다.


총 서른 네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그 피부가 흑자색으로 완전히 변색된 것이 급성 출혈성 병변의 소견이 뚜렷하다고 했다.


문제는 거의 모든 시신이 공통적으로 그런 외견을 보인다는 것인데, 결국 이는 전염성 질환의 급속 감염이나 특정 물질의 집단 중독 상황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다고.


조사를 위해 파견된 감염병 전문가 중 한 명이, 마치 페스트나 에볼라의 집단 감염 후 시신이 방치된 끔찍한 풍경을 보는 것 같다는 언급을 남겼다.


하지만 오늘 오후 밝혀진 검사 결과에 따르면,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해당 부지 전체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시신들, 그리고 시신들이 놓여있던 건물 안이, 사실상 완전한 무균 상태에 가까웠다는 것.


사망 후 체내의 부패를 일으키는 박테리아들이 없어 시신에서 별다른 악취조차 나지 않았고, 사람 사는 곳이면 마땅히 있어야 하는 최소한의 곰팡이균과 진드기 등도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검출된 균종들은 수사를 위해 파견된 경찰과 전문가들 몸에 묻어서 딸려온, 아주 소량의 군집이라 추정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오후 되어서 살펴보니 부지 내 잔디와 나무들이 다 축 처지며 말라죽어가는 현상도 관찰되었는데, 몇 군데 흙을 검체로 채취하여 조사해봤는데도 결과가 비슷했다고 한다.


식물이 자랄만한 땅 안에 응당 있어야 할 기본적인 박테리아와 진균의 군집까지 모두 사라져, 아예 죽은 땅이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전대미문의 현상에 학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혹한의 극지방이나 육지의 소금 사막과 같은 극단적인 조건에서조차 구현되기 힘든 현상이 대한민국 수도권 한복판에 벌어졌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번 사건에서 부각되는 보도 내용은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부지 별관과 주차장 근처에서 총격전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것.


소구경 권총과 소총 탄알이 스무 개 가까이 현장에 널려있었고, 별관의 2층 방 안에서 사망한 시신 주변에서는 유럽에서 생산된 권총과 돌격소총까지 고스란히 발견되었다고.


총기 소지를 엄금하는 분위기에 폭력조직이 상대적으로 공권력에게 눌리는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현장에서 극적으로 빠져나와 살아남은 두 명의 경우 병원에 입원한 후 병세가 악화되어 혼수 상태에 빠졌는데, 문제는 이 두 명에게서 탄저균 감염이 발견되었다는 점이었다.


1종 법정 감염병으로 한국에서든 어디에서든 절대로 발견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탄저균인데, 두 명 다 호흡기에 심각한 탄저균 감염 양상을 보였다고.


게다가 다량의 보툴리눔균과, 역시나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남미의 원충 감염까지 발견되어 두 명은 특수 격리병동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참사의 피해자, 목격자, 혹은 가담자나 가해자일 가능성이 높은 두 명이 혼수 상태라서 수사가 제대로 진척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 민서가 접한 마지막 보도 내용이었다.


며칠 동안 한국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참사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화제가 되지는 못했으며, 곧 닥쳐온 시험공부에 파묻혀 민서 역시 곧 이 사건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자기 일상이랑 직접 연결되지 않는 대부분의 뉴스들이 그렇듯이.


*******


비쳐오는 햇살에 마지 못해 눈을 떴을 때의 나른함은, 그 어떤 때보다 오래 갔다.


뭔가 꿈에서 몇십 년 분량에 달하는 엄청난 장편 대서사시 - 소위 총천연 칼라 개꿈을 꾼 것 같은데, 눈을 뜨고 나니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정도로 완전 깔끔하게 막막해질 수가 있는 걸까.


뇌 안의 한 구역 전체가 텅 비어버린 듯한 느낌에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눈을 감아도 작열하는 햇빛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욱신거리며 근육통이 엄습하고, 특히 팔다리가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러고 나서야 황윤건은, 잠들기 전까지 본인이 뭘 하고 있었는지를 겨우 떠올릴 수 있었다.


순간 온몸이 긴장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 안. 빌린 렌트카 뒷좌석이었다. 여기 계속 누워있었던 건가?


시트 곳곳에 핏자욱이 남아있었다.


많이 아팠지만 급히 오른팔을 확인했다. 삼두박근 쪽이 실탄에 맞아 거의 살점이 다 터져나갔었는데.


살펴보니 약간의 변색된 피부와 생채기가 보일 뿐 총상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피에 절어서 완전히 흑갈색으로 염색된 것 같은, 찢어진 바지 안을 확인했다.


역시나 총탄에 맞았던 허벅지와 종아리도, 약간의 흔적만 있을 뿐 외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눌러보니까 역시나 많이 아프긴 하다.


아마도 재생된 조직이 완전히 다 붙어서 아문 상태는 아닌 듯 했다.


자다가 거추장스러웠는지 방호복은 모두 벗겨져 바닥 여기저기에 널린 상태였고, 티셔츠를 위로 올려 오른쪽 흉곽을 보니 아주 조금 멍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눌러보니 그냥 타박상 수준으로만 통증이 전해져왔다. 이미 부러진 늑골도 유합된 것 같았다.


다행히도 몸은 멀쩡한 편이었다. 열심히 훈련시켰던대로 벌레들이 알아서 일을 잘 해준 듯 하다.


가볍게 한숨을 쉰 후 마지막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랬지. 쓰러져있던 최진홍에게 골고루 작업을 친 후, 총알이 남아 하복부에 몇 방 좀 갈겨주고 마지막 한 방을 심장 부근에 쏘려고 했을 때.


바로 그때 허벅지에 총을 맞았다. 기억이 난다. 그 후 연거푸 종아리와 팔뚝에 총을 맞고 쓰러졌었지.


무방비 상태에서 뒤를 잡혔던 상황이라 총을 쏜 자를 눈으로 보고 확인하지는 못했다.


가능성을 굳이 따져보자면 부지 안으로 나중에 진입한 경찰이나 외부 인력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황윤건은, 막연하긴 해도 아마도 주차장 쪽에서 멱을 따지 않고 그냥 놔두고 왔던 그 아저씨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의 현역 특전사 느낌이던데. 차 아래에서 고개를 드는 순간 바로 머리를 노려쏜 총탄에 맞아서 넘어졌던 낭패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지만, 팔다리에 그렇게 세 번 총을 맞은 이후 일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일이 그 지경까지 갔으면, 나라도 헬멧 벗기고 뒤통수에 몇 방 갈겨서 바로 사살했을텐데.


만져봐도 머리와 얼굴 쪽에는 상처도 뭣도 없이 온전하다.


누가 도와줄 상황도 아니었는데.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갔길래 내가 저 한쪽에 주차해둔 렌터카까지 걸어와서 뒷좌석에서 곱게 잠든걸까. 거리 상으로 그 관사 부지와 600~700m는 떨어진 곳인데.


머리가 찌르듯 아프고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깨끗하게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술에 떡이 되어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도 그 중간중간 들렸던 소리나 잠깐 보였던 장면은 기억에 남는데.


이번에는 정말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가만있자. 지금 그럼 얼마나 지난 거지. 시계를 확인해보니 꼬박 3일이 지나있었다.


렌터카 안에 보관해둔 짐에서 꺼둔 휴대폰을 꺼내 다시 켰다.


부재중 전화 37통, 문자 129통.


자동으로 머리를 감싸쥐게 된다. 호기롭게 큰소리 치고 나오긴 했는데, 결국 또 시현이 속을 숯덩이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잠깐만. 그럼 최진홍은 어떻게 됐지? 그 와중에 살아나가긴 했나?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 상당히 불안해졌다.


일단 재정비부터 해야 할 것 같다.


* * *


애저녁에 다른 사람 명의로 바꾸어두었던 레지던스에는 다행히도 여기저기에서 감시의 손길은 없었던 듯 하다.


조심스레 물건을 가져다두고 옷을 갈아입은 후, 빌린 차를 반납하고후 움직였다. 시트에서 핏자국을 지우느라 조금 고생하긴 했다.


그러면서 티비와 인터넷으로 수많은 뉴스를 접했다. 처음에는 좀 어이가 없었지만, 사실관계를 조합하다 보니 대충 그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넓은 부지에서 시신과 건물, 부지의 땅속까지 전부 무균상태가 되었다?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게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황윤건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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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2화 +4 22.06.09 1,482 5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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