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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님의 서재입니다.

몸속에서 벌레 군대를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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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3
최근연재일 :
2022.06.26 22:10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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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6,481

작성
22.06.1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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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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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글자
9쪽

40화

DUMMY



황윤건이 순간 달려드는 듯 몸을 움직였고, 장소영은 움찔하며 나이프를 휘둘렀지만 속임수였다.


대신 황윤건은 테이블 위의 식사용 나이프를 들어 삼단봉 중간 부분을 힘을 주어 긁었다. 삐끼끼끼끽.


"우욱!"


평소라도 귀에 거슬렸을 법한 그 금속 마찰음을 듣고 나니, 귓속에서 찢어지는 듯한 이명이 울려퍼지며 조금 전부터 메슥거리던 속이 버티지 못했다.


조금 전 먹었던 것들이 식도를 거쳐 입밖으로 거침없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기세로 장소영은 음식물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저런... 급하신 것 같네요. 그래도 임신이라든가 그런 건 아니겠죠? 그럼 좀 미안해서."


정신없이 토하면서도 장소영이 가까스로 무릎을 꿇지 않고 구부정한 자세로 버티는 사이, 황윤건은 벽쪽으로 이동해 조명 스위치를 껐다가 1초 후에 켰다.


순간 눈이 타는 것 같았다. 속에서 구토물은 올라오고, 이명이 솟아오르며 말은 잘 들리지도 않고, 너무나 눈이 부셔 시야도 나오지 않았다. 절망적인 상황.


딸칵, 딸칵, 딸칵. 황윤건은 마치 놀리듯 전등을 키고 끄는 것을 반복했다. 두 눈을 질끈 감았지만, 눈꺼풀 사이로 빛이 파고드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만!"


"어렸을 때 다들 하는 놀이인데,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셨나... 뭘 그리 예민하게 굴어요? 즐겁잖아요."


"너 이 새끼, 음식에 뭘 탄 거야!?"


"뭐일 것 같아요?"


흐린 시야 안으로 실실 웃는 황윤건이 잠깐 보였다.


"헤로인과 코카인의 가장 적절한 조합 비율이 뭔지 알아요? 뭐랄까, 남들에게 알려주기 싫은 나만의 비밀 레서피같은 건데."


"뭐?"


"사람을 맛 가게 만들면서 기분은 전혀 좋아지지 않는, 나 말고 남들에게만 먹이고 싶은 딱 그 조합이죠."


시야뿐만 아니라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장소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헤로인과 코카인!?


"뭘 탔냐고..."


전신의 탈력감으로 결국 바닥에 주저앉은 장소영은, 황윤건이 말끝을 길게 끄는 사이 무거운 파공성같은 것을 들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몸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순간 등과 머리에 격통이 몰려왔다. 아주 무거운 뭔가가 몸을 찍어눌렀다.


쿵. 조금 전까지 자신이 엉덩이를 붙이고 있던, 식탁용 의자가 등을 거칠게 찍은 후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화려한 장식이 달린, 무거운 원목 의자. 저 무식한 놈이 저걸 공중으로 던진 모양이다. 횡으로 던져 맞추려는 게 아니라, 종으로 허공에 던져 위에서 떨어지도록.


"비싼 음식에 돼지발정제를 섞어놓고, 수 틀리면 엄한 사람 뱃대지 쑤시려고 나이프 들고 다니는 잡년이 할 소리는 아니지 않을까?"


저벅저벅 걸어오는 황윤건의 발소리가 공포로 다가왔다.


"네가 농담하는 것 같냐고 했었지?"


무거운 의자에 깔렸던 고통은 새로운 종류로 바뀌기 시작했다. 삼단봉이 무자비한 기세로 휘둘러지고 있었다. 퍽. 퍽. 퍼벅.


"멀쩡한 사람 붙잡아놓고, 네 여자친구도 찾아내서 지금 열심히 조지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걸 농담으로 듣겠냐? 어? 이 씨발년아."


온몸의 살이 터지고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자꾸만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음식물 때문에 장소영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게다가 사람에게 최음제 먹여놓고 라이브로 야동을 찍으려고 해? 뭐 그걸 보여주면 그 윤시현이 눈 하나 꿈쩍할 것 같냐? 저렴한 발상하고는. 버러지같은 것들이."


피가 고여 붉은 빛으로 변한 좁은 시야로, 휘어진 삼단봉을 옆으로 던진 후 조금 전 마셨던 와인병을 드는 황윤건이 보였다.


아, 끝인가. 그 와중에도 장소영은 반사적으로 머리와 얼굴을 두 팔로 가렸다.


하지만 격통은 머리가 아닌 발목에서 몰려왔다. 황윤건은 맥주병보다 무거운 와인병을 오른쪽 발목에 사정없이 내려쳤다.


발목 뼈가 부러지며 튀어나간 유리조각들이 스타킹을 뚫고 들어와 박혔다.


"으으..."


위아랫니가 서로 경련하듯 밀어내는데 가까스로 혀를 깨물지 않을 정도로 통증은 극심했다.


참지 못하고 신음이 흘러나오는 장소영의 입안은 이제 더 토할 게 없어 역류한 담즙으로 쓰디쓴 상태였다.


"농담 아니니까 좆나게 좋지? 좋으면 웃어야지. 씨팔년아, 웃어봐. 제대로 웃으면 살려줄게."


부러진 발목을 부여잡고 온몸을 꿈틀거리고 있던 장소영에게 지옥같은 3초간의 적막이 흘러갔다.


하지만 통곡을 내쏟고 싶을 정도의 극심한 통증에 장소영은 웃기는커녕 차마 위쪽의 황윤건을 올려다볼 수도 없었다.


"계획대로 됐는데 왜 웃지를 못하니... 밥상까지 차려줬는데 찾아먹지를 못 하네. 쯧. 그러니 내 탓 아니다."


"아악!"


기절할 것 같은 격통이 몰려왔다. 황윤건이 깨진 와인병 끝의 날카로운 부분을 왼쪽 허벅지 바깥쪽에 그대로 푹 쑤셔넣었다가 바로 빼냈다. 차라리 기절하고 싶었다.


"이런 악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깨끗한 낯짝으로 돌아다니고 있다는 게, 너한테 지금까지 천운이 따랐다는 증거야. 상식적으로 벌써 눈깔 하나는 파이고 얼굴에 칼자욱 네다섯 줄은 생겼어야 정상 아니겠어? 얼굴 들어 썅년아."


머리채를 쥐고 끌어당기는 황윤건의 손아귀를 밀어내고 싶었지만 극심한 통증으로 경련하는 온몸의 근육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다 그어버리면 좀 불쌍하니까 선택권을 줄게. 왼쪽? 아니면 오른쪽?"


억지로 턱이 위쪽으로 제껴진 시선의 끝에는 음산하게 웃는 황윤건의 얼굴이 있었다. 윤곽선이 흐릿했지만 한쪽으로 올라간 입꼬리만은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장재닛 님은 골라도 너무 고르는구나? 왼쪽 오른쪽 그 쉬운 걸 못 고르니. 나중에 남편이 힘들겠다. 걍 내가 고를게."


머리채를 쥔 황윤건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아! 아아아악!"


부지불식간에 짐승의 울음소리같은 괴성이 목구멍 사이를 비집고 나왔고, 아랫도리는 어느새 새어나온 뜨뜻한 액체로 흥건해졌다.


장소영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 * *


꽤 오래 버티네. 황윤건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이 여자는 제대로 훈련받은 사람인 듯 했다.


그래도 패닉에 빠질 정도의 공포는 분명히 심어줬다.


맥각균 알칼로이드의 혈중농도가 높아져 섬망 단계에 이른 정신은, 강렬한 감정을 품게 되면 마치 트라우마처럼 그 정서적 기억을 오래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이 여자는 아마도 나를 떠올릴 때마다 지금의 오줌 지릴 것 같은 기억이 플래시백처럼 반복될 것이다. 일종의 PTSD라고 해야겠지.


좀 가혹한 처사였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이 재닛이라는 여자가 보여준 언행을 반추해보면, 이 여자 뒤에 있는 조직은 결코 규모가 작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소수의 인원이 벌일만한 짓이 아니다.


몸뚱이 하나밖에 가지지 못한 내가 그런 집단을 상대로 뭔가를 해보려면, 당장 내 앞에 나타난 단서 하나라도 확실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일단은 이 재닛 장이라는 여자부터라도.


그러기 위해서는 적당히 중독시키고 구슬리는 정도로는 부족할 것이다.


독하고 잔인하다는 비난을 듣더라도 세게 나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나뿐만이 아니라 시현이까지 걸린 일이다.


하지만 정작 한숨을 내쉬게 된 것은, 이 뒷처리를 본인이 해야 한다는 막막함 때문이었다.


핏자국이야 잘 닦아낸다지만 저 역한 냄새의 토사물은 어찌할 것인가. 대학교 입학했을 때 이런저런 술자리에 불려다니며 자기 주량도 모르는 동기들 토할 때 뒷처리했던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것보다 급한 일이 있지.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재닛의 상처 부위에 지혈 물질을 분비하는 벌레들을 급속 증식시켰다.


걷잡을 수 없는 대량 출혈이 일어날 때 딱 어느 정도 속도로 지혈 물질을 풀 것인지는 꼭 테스트가 필요한 모델이었다.


조금이라도 속도가 느리면 출혈량과 그 압력 때문에 피떡이 형성되기도 전에 지혈 물질들이 혈류에 다 씻겨나갈 것이고.


짧은 시간 안에 너무 지혈 물질을 많이 풀어버리면 지혈로 끝나는 게 아니라 중요 혈관 안에 혈전이 생기며 혈관 폐색이 생길 수도 있다.


그게 뇌로 들어가면 뇌경색, 심장으로 들어가면 관상동맥혈전증이다. 양쪽 모두 제때 처리 못하면 생명을 잃는 응급 상황.


그래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알맞은 속도와 밸런스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실험을 위해서 최소한 사시미칼에 깊게 찔린 자상 두 세 개는 나야 할 텐데, 일부러 내 몸에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쉬운대로 이번 해프닝을 실험 모델로 활용해보기로 했다.


지혈 조치가 좀 과하다 싶어도 내가 바로 옆에 있으니 죽거나 심각한 영구 장애는 남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랑 시현이한테 이런 짓을 했는데 경미한 뇌졸중 후유증 정도야 마땅히 감수해야겠지. 사람이라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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