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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님의 서재입니다.

몸속에서 벌레 군대를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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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3
최근연재일 :
2022.06.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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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6,481

작성
22.06.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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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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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글자
9쪽

45화

DUMMY



* * *


최진홍과 장소영의 거처, 회사의 위치 및 경호업체 직원들의 주 집결지, 최진홍의 동선 등 실무적인 정보까지 다 뽑아냈다.


시간만 더 있으면 이 여자가 관여했던 소유주 일가의 잡다한 비밀까지 다 알아낼 수 있겠지만, 그러려면 이틀 밤낮은 더 소진될 터.


이놈의 자백 모드는 안 그래도 사람이 반 섬망 상태에서 취한 듯한 느낌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속도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이미 소주 한 병 들이킨 사람을 졸지 않게 잘 붙잡아가며 취조하는 경찰 느낌일까. 채찍 역할으로 프로스타글란딘 대신 아예 브래디키닌을 써야 하나.


입맛을 쩝쩝 다시며 고민했지만 당장 뭘 어쩔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장소영 신변과 동선은 확실히 파악했으니, 혹시 나중에라도 필요한 게 있으면 이 여자를 찾아내서 제압한 후 더 뽑아쓰면 그만이다.


특별한 방식으로 배양하고 있던, 내 몸 속 아니면 지구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진화시킨 벌레들 군집을 잔뜩 넣어뒀다.


아, 생각해보니 이걸로 중거리 이상의 탐지를 시도해볼 수도 있겠군.


지금은 내 터치가 들어간 벌레 군집 하나를 대상에게 묻혀 탐침 도료처럼 썼을 때, 최대 100m 반경 정도가 탐지 범위의 한계이다.


하지만 이 여자처럼 군집 여섯 개 이상을 조합해서 노골적으로 들이붓는다면? 시너지 효과를 통해 탐지 범위가 비약적으로 넓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환상의 조합을 감당할만한 건강체야 할 것이고, 이 여자는 전에 없던 괴증상으로 지속적으로 고생하겠지만. 뭐 그것까지 내가 알 바는 아니지.


고식적인 윤리관이나 꽉 막힌 책임감을 조그만 덜어낸다면 가능한 일이었을 텐데. 지금까지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이 여자야 내 뱃속을 휘저어 장기자랑을 시키려고 나이프까지 들고 온 예비 범죄자니까 이 정도까지는 괜찮겠지?


사실 이렇게 속으로 반문할 필요까지도 없을 것이다.


음식 속의 돼지발정제 성분이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내게 익숙한 물질이 아니었다면, 약에 취해 맛간 상태에서 AV 동영상 한 번 찍히고 향정에 뇌가 잔뜩 절여져 정신병원에 장기 감금되는 쪽은 내가 되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존경하는 천재 만화가가 작품 속에 남긴 명대사 중 하나가 떠오른다.


나와 장소영은 이미 죽고 죽이는 나선 위에 오른 관계인 것이다.


한 번 그 나선 위에 올라가면, 내가 싫다고, 혹은 이 여자가 싫다고 한쪽이 맘대로 그 나선 아래로 내려오기는 극히 어렵다.


나와 이 여자가 동시에 진심으로 합의하지 않는 한, 내려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쪽이 내려가려 해도 다른쪽이 길을 손쉽게 꼬아버리면 상대편은 영원히 그 나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진심으로 합의? 하하. 그런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그 나선 위에 올라간 상태였는데, 서로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몸매 좋은 옆집 누나로 만나 달밤에 뻘쭘하게 같이 담배 태우다가 자연스레 친해질만한 인연이 아니지 않은가.


어쨌든 탐침용 벌레 군집을 다중 중첩시키는 조합. 실험해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모델이다.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 팽팽 돌아가기 시작하자 몸은 피곤했지만 왠지 의욕이 막 샘솟는다.


의욕이 샘솟는 김에 민서 몸에서 추출했던 HIV 군집도 극미량이나마 선물로 남겼다. 옛다, 기분이다.


내장에 직접 넣지 않고 항문과 질구 주변 정맥으로 옮겨놓아, 통상적인 감염 확산 경로를 따를 것이다.


꽤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최진홍이라는 놈과 떡치다가 사이좋게 나눠가질 수도 있겠지.


왜,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벌레들은 나누면 언제나 배가 된다. 전염이라는 형태로.


따라서 이 벌레들은 곧 기쁨이다. 벌레 = 기쁨.


money. time. root. evil. woman. woman = evil.


고릿적 시절의 공대 유머가 떠오른다. 아무래도 취조에 너무 열중하다 보니 머리가 슬슬 맛이 가고 있는 듯 하다.


어쨌든 이 귀여운 벌레들은 절대 슬픔이 아니다. 최소한 나에게는.


지이잉.


딱 그때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시현이다.


*******


평소 잘 쓰지 않던 안전가옥에 있다고 했다.


최진홍이 어떤 회사의 임원인지를 생각하면 그 정도 보안이야 당연한 일이었지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문자만으로는 정말 괜찮은지 알 수 없어 전화를 걸었을 때에도, 목소리가 너무 가라앉아있었다. 가급적 빨리 와달라고만 하고.


스위트룸과 장소영을 눕혀놓은 방에 남긴 모든 자신의 세포를 지우도록 세팅해놓고, 황윤건은 조심스레 호텔을 나섰다.


남겨놓은 벌레 군집의 양을 생각했을 때 장소영은 최소 이틀은 잠들어있을 것이다. 하긴 워낙 건강하고 근육량이 많으니 좀 더 일찍 깰 수는 있겠지.


마음같아서는 장소영을 아예 데려가 인질로 신병을 확보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상대인만큼 어설프게 움직이다가는 발목을 잡힐 것 같아서 일단 뒤로 미루었다.


일단 그녀의 소지품만 챙기고 이동했다.


* * *


문을 열어주는 그녀의 얼굴에서, 분당의 오피스텔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초췌하고 퀭한 기색이 떠올랐다.


많이 울었는지 눈도 부어있었다.


가슴이 턱 막혀왔다. 물리적인 위협은 없었을 거라 생각했던 게 너무나 안이한, 어이없는 오판이었던 걸까?


문을 닫자마자 윤시현을 꽉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녀는 힘이 없었다. 평소같은 부드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놈이 무슨 짓을 한 거야!?"


저절로 입밖으로 튀어나온 목소리는 덜덜 떨렸다.


반사적으로 그녀의 몸 전체를 스캔했다. 타박, 골절, 찰과상, 출혈, 창상, 화상 등의 조직손상이 있었는지. 윤시현의 몸 속에 넣어둔 벌레들을 쓰면 오래 걸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왼쪽 손목에 약간의 염좌 빼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일단 몸이 제대로 상한 상황은 아니다.


"자기야. 일단 앉아."


조금 쉬어 갈라지는 목소리로 윤시현이 말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은 격동하고 있었지만 애써 진정하며 테이블 옆의 의자에 앉았다.


그 맞은 편에 앉으며 바라보는 윤시현의 눈은, 뭐랄까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문자 좀 일찍 주지 그랬어."


그녀의 가라앉은 어조 때문에 딱히 타박하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황윤건은 좀 억울한 생각도 드는 한편 혹시나 내 판단이 틀렸나 싶은 낭패감도 뿌리치기 어려웠다.


재빨리 오늘 벌어진 일을 설명했다.


학교에 장소영이 차를 타고 갑자기 나타났던 일부터, 윤시현의 이름을 걸고 협박을 시작하여 별 수 없이 호텔로 끌려갔던 것.


식사에 약을 탔길래 모르는 척 똑같이 돌려줬고, 일부러 도발을 거듭한 끝에 교전이 벌어졌고 어렵지 않게 제압한 것.


옆방으로 자리를 옮겨 심문하며 이 일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


언제 저쪽 인원이 들이닥칠지 몰라 급하게 정보를 빼내느라 먼저 연락할 경황이 없었던 것까지.


"그랬구나. 그 꼴보기 싫은 최진홍에 엮였던 히스토리를 굳이 내가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게 홀가분하네..."


처연한 표정으로 윤시현이 잠깐이나마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오늘 황윤건이 장소영과 만나던 때와 거의 같은 시간에 겪었던 일을 전달했다.


나에 대한 뒷조사 자료가 전달되며 바로 한 시간 반 후에 강남의 모 식당에서 만나자는 전언이 왔고, 그 자료에는 내 동선과 심지어 내 부모님 신변까지 다 기록되어있었다는 것. 그래서 그냥 무시할 수 없어서 나가게 되었고.


최진홍은 아버지의 회장인 기업에서 현재 한국 지사 부사장 신분이고, 암암리에 아버지가 투자한 PMC 관련 업무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


국가 단위의 보안을 뚫어야 하는 고난이도의 해킹을 위해 윤시현의 손이 필요하고, 말이 협업이지 사실상 일방적 지시로 하청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


"그것뿐이야? 그 최진홍이라는 작자가 날 평범한 대학생으로 알고, 나를 인질로 삼고 네가 하기 싫은 일을 강요했다는 건데. 실제로는 택도 없었잖아. 난 잡히지도 않았고 장소영에게 넘어가지도 않았는 걸. 그쪽의 작전 실패네."


윤시현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서류 봉투를 건넸다.


황윤건은 그 안의 사진을 살펴보다가 경악했다. 최진홍이 뭘 가지고 윤시현을 협박하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윤시현이 칼텍에 다니며 미국에 있을 때 찍은 사진일 것이다. 아직은 한국에서 약을 시작하기 힘든 환경이라, 많은 중독자들이 외국, 특히 미국에서 중독이 된 상태에 귀국하여 결국 끊지 못하고 계속 약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녹음기에서 나오는 음성을 들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걸 어떻게 하나하나 다 녹음할 생각을 했지? 스토커도 이런 스토커가 없다. 미친 새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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