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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님의 서재입니다.

몸속에서 벌레 군대를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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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3
최근연재일 :
2022.06.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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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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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46화

DUMMY



뒷골목을 두리번거리며 여자친구가 마약을 사고 있는 걸 쫓아다니며 그 거래 순간을 녹음할 여력이 있었으면, 그럴 사이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약을 끊게 유도하는 게 정상 아닐까.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최진홍이 얼마나 대단한 변태인지가 아니다. 그놈이 얼마나 집요하고 치밀한지- 그게 문제다.


윤시현 나이와 공소시효를 고려했을 때 최소한 앞으로 5년 이상은 최진홍이 윤시현의 목줄을 틀어쥐고 있는 셈이다.


끔찍하게 헤어졌던 전남친이 몇 년만에 나타나, 지금 내 말 안 들으면 예전에 너 약 빨았던 거 경찰에 찌른다고 협박하며, 향후 몇 년간 자기한테 부려먹히는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라는 꼴이다.


게다가 그놈은 그냥 찌질한 스토커가 아니라 대기업의 임원급 인물이다. 게다가 일반 기업도 아닌 보안경호업체에다가 PMC와도 관련이 있다.


마음먹었을 때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해커라 해도, 개인사업자 체급인 윤시현 입장에서는 정면으로 대응해서는 승산이 별로 없다.


또한, 아무리 그 변태를 탓해봐야 윤시현이 마약에 손댔던 사실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과오.


2년 전 처음 만났을 때 약에 쩔어 생기가 하나도 없던 그 얼굴이, 지금 눈앞의 윤시현에게 겹쳐보이고 있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얼마나 처참한 기분일까. 다 버리고 도망치거나, 아니면 죽고 싶은 상황일 것이다.


"미안해..."


가만히 앉아 모은 무릎에 두 손을 올린 채, 윤시현이 입술을 앙다물고 울기 시작했다.


"네가 그 구렁텅이에서 건져줬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버려서 미안해..."


그렇게 윤시현이 흐느끼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순간 시야가 흐려질 정도로 정신이 아찔해졌다.


기절하기 직전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런 느낌이 잠깐 황윤건의 전신을 쓸고 지나갔다.


발끝에서부터 뱃속의 모든 게 끓어올라 머리 끝으로 치미는 느낌.


단순한 화가 아닌 분노라는 게 이런 것이겠지. 늙어서는 이러다가 중풍이 터지며 맛이 가서 사람 구실을 못 하는 되는 것일 테고.


내 여자를 부려먹으려고 나와 내 부모님 뒤까지 털어버린 놈들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여자를 압박하려고 잡히기도 전의 나를 마치 손쉬운 인질처럼 써먹었다.


하하.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인간이라면 응당 지켜야 할 도리에 하한선이 있다면, 선을 넘었다는 게 바로 이런 상황이겠지.


이제는 굳이 더 확인할 사실도 없고, 상대방과 대화나 타협을 해서 딱히 얻을 것도 없으며, 지금 내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예외가 발생할 여지도 없을 것이다.


머리 끝까지 분노가 거세게 쓸고 지나간 다음, 오히려 머리가 맑아졌다. 이런저런 잡생각들이 그 탁류에 일거에 씻겨나가며 청소된 느낌.


황윤건은 몸을 일으켜 울고 있던 윤시현을 꼭 끌어안았다.


"우리 시현이 남자 보는 눈이 영 별로였구나?"


조금 전만 해도 농담을 던질만한 여유가 없었는데, 왠지 지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외부 자극의 임팩트가 너무 크다보니 내 안의 생각이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여서 그럴까.


"괜찮아. 혹여나 약 생각이 나도 죽고 싶어도 바로 해결해줄 남친도 있고, 너도 나도 지금 몸 성히 안 다치고 잘 살아있는데 뭐가 문제야. 세상 안 무너졌어, 시현아."


"윤건아. 지금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품속에 안긴 채 불안이 잔뜩 어린 눈으로 윤시현이 올려다보았다.


"간단하지 않으면 내가 간단히 만들거야. 괜찮지 않으면 내가 괜찮게 만들 것이고."


어떤 긴장도 흥분도 없었지만, 반사적으로 부교감신경을 자극하는 벌레들의 군집은 미동도 안 하고 그대로였다. 몸 속의 모든 벌레들이 마치 내 눈치를 보는 것처럼 조용히 숨어있었다.


그런데도 너무나도 마음이 편했다. 앞일에 대한 막연한 걱정, 타인에 대한 죄책감, 혹여나 크게 잘못 판단한 게 아닐까 하는 우려. 그 모든 것들이 어느샌가 사라진 상태였다.


오히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뭉근하게 남아 보글보글 끓고 있는 감정은 일말의 안도감이었다.


그렇군. 이 정도까지 선을 넘어줘서 다행이라는 느낌인 듯 하다.


고맙다. 최진홍.


"상황 해결될 때까지 여기에서 기다려. 얼마 안 걸릴거야."


윤시현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한 후 황윤건은 짐을 챙겼다.


"...지금 어디 가는건데??"


"너를 괜찮게 만들려고."


"뭐?"


윤시현의 두 눈썹 사이가 좁아졌다.


"나 흥분한 것도, 조급한 것도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


"자기야,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거야!?"


"대규모 실험? 기분 안 좋아도 끼니는 거르지 말고 챙겨먹어."


"황윤건!"


황윤건은 한 번 활짝 웃어보이고 문을 닫고 나갔다.


*******


일단 지하철을 타고 도심으로 이동한 후, 렌터카 업체에서 SUV 하나를 빌렸다.


물론 윤시현에게 예전에 몇 개 받아둔 노숙자 주민등록번호 중 하나를 사용했다.


유사시에 쓰되 가급적 안 꺼내드는 게 좋다고 했었는데,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은 몰랐지.


곧바로 레지던스에 가서 나름대로 필요한 장비를 챙겼다.


케블러 베스트를 포함한 전신 방호구. 약간의 방독면 기능을 가진 발라클라바. 플라스틱 헬멧까지.


사람들 눈에는 광대놀음도 아니고 참 우스워보이겠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머리와 심장에 총칼을 맞고 즉사만 하지 않으면 감지덕지한 상황으로, 제 발로 기어들어가고 있는 셈이니.


혹시라도 내가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유언 비슷하게 뭐라도 작성해놓을까 싶었지만. 뭐 어쩌라고 싶다.


뒤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뒷일을 생각하고 일을 벌이기에 지금 내 뇌는 너무나 맑고 청순한 상태이다.


무기를 딱히 챙기지 않아도 된다는 게 벌레 부리는 능력의 좋은 점 중의 하나이다.


내가 어떻게든 목숨만 부지하고 있으면 벌레들이 알아서 잘 작동한다.


지금 최진홍이 있을만한 위치를 우선순위 별로 따져 계획을 세운 후, 빌린 SUV를 타고 이동했다.


지금쯤이면 장소영의 위치가 발견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장소영이 맡았던 일이 처음에 짜놓은대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최진홍 측에서 분명히 인지했을 것이다.


장소영에게 토설하도록 시킨 최진홍의 동선 중에서, 뭔가 일이 크게 틀어졌을 때 이놈이 갈만하다고 생각되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일종의 안전가옥같은 공간들. 제일 가능성이 높은 곳은 정예 경호요원들 다수가 기숙사처럼 쓰고 있는 회사의 관사 건물이다.


장소영의 이야기로는, 말이 관사지 사실은 PMC 부대원들의 임시 병영같은 곳이다. 최진홍이 키우는 개들의 아지트인 셈이다.


그런 곳에 간다는 게 아무래도 위험하긴 하겠지만, 최진홍이 지금 거기에 없어도 별로 상관은 없다.


중요한 건 최진홍을 최대한 불편하고 불리하고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기 수족들이 하나씩 지워질 때마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윤시현이 그렇게 그놈더러 소시오패스 사이코새끼라고 했는데, 과연 그런 쫄깃함을 느낄 리셉터가 뇌에 얼마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왜 그 사이코패스들은 공포와 고통을 느끼는 중추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사실상 망가진 상태라고 하지 않는가.


정말로 그러한지 이번에 한 번 테스트해볼 겸. 어쨌든 내 방식대로 간다.


그나마 명목 상 총기 사용이 엄금되어있는 한국이다. 미국과는 달리 민간인에게 대놓고 돌격소총을 풀오토로 갈겨댈 수 있는 환경은 아닌 것이다.


웰컴 투 코리아다 이 새끼야.


* * *


관사는 강동구의 경계와 인접한 하남의 변두리에 있었다.


몇 안 되는 건물들이 그렇게 넓을 이유가 없는 부지에 산재해있다.


한밤중에 이동하여 다른 차들도 댈만한 저 멀리의 주차장에 빌린 차를 대놓고, 후드 달린 품 넓은 점퍼를 입고 헬멧은 벗고 움직였다. 현장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너무 눈에 띄는 행색이 될 테니.


최대한 빙 돌아 CCTV가 있을만한 위치를 가급적 피해서 접근했다. 뭐 걸리면 어쩔 수 없고. 어차피 발목 잡으며 귀찮게 하는 놈들은 다 죽일 거니까.


부지 전체가 높이 2m 정도의 시멘트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상당히 폭이 넓은 정문과 사람 한 두 명 겨우 드나들만한 후문이 있었다.


후문은 잠겨있었고, 정문은 초소 비슷하게 만들어놓고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다.


담을 넘고 들어가볼까 생각해봤지만, 문득 귀찮아져서 정문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몰려나오는 쪽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지금 기분으로는.


일단 경비원 주변에 있는 모든 생물에게서 스트렙토코커스 뮤탄스, 즉 충치균을 급속 증식시켰다.


곧 치아를 가진 모든 생체들이 감지될 것이다.


또한 눈에 보이는 모든 구조물에서 렙토스피릴룸 등의 철을 먹는 세균을 증식시켰다.


이 부지와 건물 안에서 정상 작동하는 전자기기들은 나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문제거리가 될 확률이 높다. 가급적 모두 부식시키고 못 쓰게 만드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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