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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님의 서재입니다.

몸속에서 벌레 군대를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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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3
최근연재일 :
2022.06.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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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481

작성
22.06.18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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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
9쪽

47화

DUMMY



물론 생체가 아니라서 이쪽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정문 초소에는 두 명이 있었다. 이 밤중에도? 원래 이런 식으로 인력을 낭비하는 곳인지 아니면 지금 평소와 다른 경계 태세인지는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바로 네글러리아 파울러리, 소위 뇌를 먹는 세균을 옮겨서 급속 증식시켰다.


1분 남짓 지나면 상황은 끝날 것이다.


그래도 작업 속도가 느린 렙토스피릴룸을 위해 5분 정도는 기다려줬다.


그 사이에 알러지를 유발하는 세균의 조합으로 피부색을 살짝 바꾸고 얼굴을 붓게 만들었다. 일단 초장부터 침입자가 황윤건이라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는 게 좋으니까.


동시에, 노르에피네프린을 분비하는 세균들을 전신에서 증식시켰다.


심박이 조용히 빨라지며, 손발끝이 차가워지고 신경이 민활해지며 주변의 움직이는 것들이 느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 농도로는 앞으로 삼일 밤을 꼬박 셀 수도 있을 것이다. 상관없다. 깻잎 한끗차로 총칼을 못 피해서 뒈지는 것에 비해서야 며칠 잠을 못 이루는 게 대수일까.


후드를 벗고 특수 플라스틱 헬멧을 썼다.


네글러리아 파울러리 증식을 멈추고, 천천히 정문으로 걸어갔다.


운이 좋으면 건물 안 CCTV에서 날 보는 놈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쪽이든 상관없다. 지금 걸리든 안 걸리든 안쪽에 있는 이들의 운은 어차피 똑같이 흘러갈 것이다.


자신이 게워낸 구토물에 전신에 범벅이 되어있는 두 명이 초소 문밖으로 손을 내뻗고 온몸을 경련하고 있는 모습을 슬쩍 쳐다보고, 황윤건은 터벅터벅 안쪽으로 걸어갔다.


가급적 죽이거나 불구로 만드는 일은 피하자는, 나만의 내부적 원칙을 잠깐이나마 접어두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는 뭐랄까- 내가 손수 만든 룰을 적용하는 게임과도 비슷했다. 다른 누구도 나에게 규칙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규칙을 만들어 적용한다.


문제는 이 게임에서 규칙으로 제한을 받는 대상은 오직 황윤건, 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이들은 이 게임에서 그 어떤 제한도 받지 않는다.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사용할 수 있다. 사시미칼을 쓰든, 사냥용 컴파운드 석궁을 쏘든, 총을 갈기든 말이다.


반칙을 쓰면 안 되는 건 오직 나뿐인데, 그도 그럴 것이 벌레를 부리는 능력은 나밖에 없으니까. 특수한 힘을 지닌 히어로는 멋대로 그 힘을 남용하면 안 되니까.


어차피 시작점 자체가 불평등한 상황이니 규칙으로 제한을 받는 건 오직 나뿐이어야 한다. 그게 공평하니까.


그런데 사실 세상은 게임이 아니잖아. 누군가의 알량하고 작위적인 규칙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 세상 아니던가.


뭣도 모르는 대학생이 히어로 놀이를 한다고 해서 그 멀쩡하던 세상이 갑자기 게임으로 변하는 게 아니다.


어설프게 마스크 쓰고 얼굴을 가린 대학생이 뽈뽈뽈 돌아다니며 끙끙대며 세균을 번식시키고 있다 해도, 누군가 총 한 방 쏴서 머리통에 적중하면 그야말로 상황 종료 아닌가.


이건 게임이 아니다. 나도 그 게임의 규칙에 따라 힘을 숨기고 찐따인 척하고 살아가는 히어로가 아니다.


만렙이 쪼렙들이랑 여유롭게 놀아주는 상황? 웃기는 이야기다. 쪼렙들이 쏜 무기에 맞고 죽는 게 무슨 만렙이야.


국회의원 한 명 조지려고 숨어들어간 오피스텔에서 개인 경호원에게 개처럼 두드려맞고 경막외혈종이 생긴 병신은 히어로가 아니다.


깡패들에게 다구리 당할까봐 문 쳐닫고 탁자 뒤에 숨는 건 히어로가 아니다.


여친의 전남친에게 부모님 동선까지 털리고 협박당해 벙쪄있는 건 히어로가 아니다.


나만의 내밀한 히어로 놀이는 끝났다.


아니, 끝났다기보다는 애초에 그런 게 존재했던 적이 없었다.


죄인을 처벌하고 무고한 이들을 구하는, 그 멋진 역할을 위해 남들이 지키지 않아도 되는 규칙을 지키는 히어로는 내 마음 속의 허상이었을 뿐이다.


나는 약간의 특별한 재주를 부릴 수 있는 보통 사람일 뿐이다.


크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재주.


지금 나를 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전장에 떨어뜨려놓는다면 불과 두 시간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폭격기가 쓸고 지나가는 모가디슈와 마그레브 한 복판에서 벌레들을 부려봤자 폭탄이 떨어질 때 대체 뭘 할 수 있겠는가?


오늘 겪었던 일 덕분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특별한 규칙으로 제한을 받을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거야말로 토나올 정도로 부끄러운 자기애성 뇌내망상일 뿐.


어린날의 순진한 역할놀이, 롤플레잉 게임은 오늘로서 끝이다.


이제 나는 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남들이 총칼을 든다면 난 그저 별 것 아닌 나만의 재주를 부려볼 뿐이다.


* * *


가장 큰 건물 쪽으로 다가가, 일단 벽에 몸을 붙였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렙토스피릴룸이 열일을 한 성과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괜찮은 경호업체라며. 이 새끼들 군기가 단단히 빠졌구만. 이렇게 외부인이 보란듯이 걸어서 침입하는 상황에서 왜 CCTV를 안 쳐다보고 있냐.


빠르게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깊게 한숨을 쉬고 황윤건은 평소 해보고 싶었던 실험을 떠올렸다.


속도와 규모에 제한을 두지 않고, 가급적 넓은 영역에서 여러 벌레들을 한꺼번에 과증식시키는 것이다.


일단 건물 전체에서 뮤탄스균과 렙토스피릴룸을 증식시켰다. 끌어낼 수 있는 전력을 쏟아부었다.


건물 안의 모든 공간을 박테리아로 채운다는 느낌으로.


벌레들이 더 이상 먹을 인간 세포가 없어 자기들끼리 잡아먹을 정도로, 주어진 공간을 벌레들의 초 과포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최근에 알아낸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면,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벌레들의 군집을 늘리는 일은 트레드밀을 달리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라는 점이다.


트레드밀 위에서는 속도를 계속 높이다 보면, 그 속도를 못 따라가 숨 차서 허덕이다가 결국 속도를 낮추게 된다.


하지만 벌레들을 증식시킬 때에는, 균마다 다르긴 하지만 각각의 임계점같은 게 있다.


그 임계점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고, 체력적으로 점점 힘들어진다.


평소 들던 것보다 10kg 무거운 벤치프레스를 하면서 기어이 그 스무 번을 채우려고 끙끙 용을 쓰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죽을 똥을 싸든 무슨 짓을 하든 한 번 그 임계점을 넘겨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오히려 부담이 줄어든다.


나는 크게 집중할 필요가 없고, 벌레들이 자기 멋대로 영역을 늘리며 급속도로 새끼를 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오히려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과증식, 과포화로 이어진다. 참으로 재미있는 현상이다.


주도권과 책임이 나에게서 벌레들에게 넘어가는 셈인데, 어쨌든 그 임계점을 넘은 벌레들의 군집은 마치 암세포가 자라듯 엄청난 속도로 커지게 된다.


이곳은 건물과 담벼락 사이에 거리도 먼 편이고, 일반 주거지역과 충분히 떨어져있다.


조금만 올라가면 양재동 상가지역이 나오는 지난번 그 깡패들의 창고 부지와는 다르다.


모든 제한을 풀어버리기에 딱 좋은 조건이다.


어차피 충치균은 과증식해봤자 사람을 바로 죽일 정도는 아니고, 쇠를 먹는 벌레들은 원래 일하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이 건물 전체의 기계들이 망가질 때까지 기다리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황윤건은 건물 전체에서 두 균종의 임계점을 깨버리려고 이를 악물었다.


서른 둘, 서른 하나, 서른... 열 다섯, 열 넷, 일곱, 여섯... 둘, 하나, 됐다.


미묘하게 비릿한 냄새가 건물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람 입냄새와 혈향이 뒤섞인, 과히 기분좋지 않은 냄새.


건물 안쪽은 바람 한 번이라도 쓱 불면 엄청난 세균 콜로니가 공기 중을 둥둥 떠다닐 정도로 두 종류의 벌레들로 과포화 상태가 되었다.


동시에 건물 안에서 치아를 가진 모든 자들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모두 서른 한 명.


동시에 주변에 있던 모든 철제 자재가 암실 안에서 형광물질이 보이듯 뚜렷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기계, 전자기기, 심지어 시멘트 안의 철골까지.


몇 번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고른 후, 황윤건은 일단 감지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리 준비해둔 벌레들 조합을 옮겼다.


목숨이 위험한 경우에만 쓰기로 한 법정 1종 감염병의 조합.


일단 보툴리눔균과 탄저균의 콤비를 사용했다.


보툴리늄균은 그 독소로 인해 전신 마비를 일으켜 대상을 무력화시키는 데 가장 유용하다. 마음만 먹으면 호흡근까지 마비시켜 숨을 못 쉬어 죽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문제는 얘네들이 좀 입맛이 까다로운 놈들이라 대상의 체격, 체온, 체중, 근육량, 대사량 등에 따라 번식 조건과 속도가 천차만별이다.



예전에 수십 번 진행해본 실험 결과에 따르면 정말 몸 좋고 건강한 사람이 1분만에 숨이 넘어가기도 하는데, 허약하고 여리여리한 사람이 반 시간 이상 버티기도 했다.


즉 시간대비 결과물이 워낙 들쭉날쭉하여 이놈만 믿고 갈 수는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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