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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님의 서재입니다.

몸속에서 벌레 군대를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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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3
최근연재일 :
2022.06.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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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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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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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43화

DUMMY



도대체 뭘 기대하고 나온 건지. 애초에 황윤건 부모님 동선까지 털어서 협박당한 마당에 최진홍과 제대로 된 협의 따위가 오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래도 크게 피 안 보고 비교적 평화롭게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한 가닥 기대가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


그의 말대로다. 그래도 예전에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나를 탐하던 남자니까. 비록 끔찍한 방식으로라도 날 아끼는 남자니까 내가 나온 것 자체가 레버리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알량한 기대감.


불쾌감과 자책감이 뒤섞인, 토할 것 같은 기분에 그대로 이 자리를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황윤건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멋대로 그럴 수도 없었다.


"그리고 시현아. 왜 나한테 네 지금 남자친구 행방을 묻는지 모르겠다."


일그러진 얼굴로 자리에 다시 앉은 윤시현에게 최진홍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설마 지금 황윤건씨를 물리력을 써서 어디에 붙잡아놓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시현아. 나 지금 나름 규모있는 회사의 이사 직책에 있어. 불법적인 일을 하면 얻을 것보다 잃을 게 훨씬 많은 입장이야. 그런 부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상하네. 남자친구랑 연락이 안 되니?"


최진홍은 정말 의아하다는 듯한 얼굴로 윤시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기가 막힌다. 저 또라이 새끼.


울화병으로 죽을 것 같았던 몇 년 전 기억이 떠올라 더 가슴이 답답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한다면 내가 장 실장에게 연락할게. 둘이 같이 있다면 지금 통화할 수도 있을 거야."


최진홍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을 들었다.


"하긴 장 실장이 오늘 의전 나가기 전에 좀 들뜬 것 같긴 하더라. 늙은 아저씨가 아니라 젊고 잘 생긴 남자를 접대하게 되어 설렌다나? 참 그 친구도 아직 소녀같은 구석이 있어서 재미있단 말이야."


최진홍은 하는 말과 표정의 방향이 다를 때 비로소 그 끔찍한 속에 있던 진짜가 나온다.


바로 지금처럼. 치고 있는 대사와 달리 양쪽 입꼬리를 한껏 올리고 웃는 저 섬뜩한 얼굴.


큰 북을 치는 것처럼 가슴 속이 두근거리며 속이 울렁거렸다. 윤시현은 그제서야 최진홍이 준비한 그림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 안에서 저 소시오패스 새끼가 가장 즐거워할만한 장면이 무엇인지도. 씨발.


"어때. 지금 통화해볼래? 스피커폰도 괜찮고."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는 듯, 하지만 그 터져나오는 감정을 애써 구겨넣고 있는 저 표정.


비뚤어진 희열과 득의감이 뒤섞여 잡탕이 된, 최진홍 특유의 심리. 너무나 증오스러웠다.


하지만 최진홍이 계획을 짤 때 얼마나 독하고 치밀한지 잘 아는 윤시현 입장으로는, 차마 전화 걸어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내심 두려웠다.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지금 바로 확인하고자 하는 강단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다.


장소영은 요원 양성 기관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인물이었고, 그 훈련에는 살상 기술만 포함되어있지 않다. 윤시현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무리 황윤건이라도... 아. 정말 상상도 하기 싫다.


"통화 원하면 언제든지 말해."


안경 뒤쪽의 두 눈동자에 잠시나마 가득 서렸던 광기는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그러면서 옆에 놔둔 가방 안에서 두툼한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 앞에 내밀었다.


"계약서 초안이야. 어차피 선택은 네 몫이니까, 일단 여기에서 다 읽고 숙지만 해두는 게 좋겠다. 물론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차후 협의를 통해 수정안 마련해야겠지."


최진홍이 포크를 들어 먹다 남은 애피타이저를 마저 먹기 시작했다.


"식사 제대로 할만한 기분은 아닌 것 같으니, 콩소메만 단품으로 주문할게. 너 예전부터 좋아했잖아, 콩소메 슾."


차가운 보리새우와 루꼴라 샐러드를 한 입에 넣어 씹으며, 가라앉은 낯빛의 윤시현에게 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최진홍이 벨을 울렸다.


*******


룸 카드를 받은 후 만취한 여자를 부축하는 척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출혈을 중단시킨 후 타박상, 자상, 찰과상, 골절 모두 재생 모드로 놓아두고, '행복한 심문' 조합을 본격적으로 발동시켰다.


지금까지 대상으로 삼았던 누구보다도, 이 재닛이라는 여인에게는 맥각균 알칼로이드와 프로스타글란딘 농도를 높게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통에 대한 저항력이나 부적인 감정에 맞서는 의지력이 대단한 수준이었다. 초인적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인 건 사실이었다. 몇 번이나 휘파람을 불었는지 모른다.


뭐 그래봐야 농도를 단계별로 높이다 보면 해결되는 문제지만 말이다.


프로스타글란딘이야 농도 좀 높여봐야 시스템 쇼크가 올 정도는 아니지만, 맥각균 알칼로이드는 원래 인간 체내에서 작동하는 물질이 아닌 일종의 독이다보니 그래도 좀 조심스러웠다.


이 여자의 뇌를 비가역적으로 박살내는 게 목적은 아니니까. 섬세하게 조절해야 한다.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윤시현과 이 여자가 속한 회사가 뒤에서 어떻게 이어져있는지 낱낱이 알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그런 절박함과는 상관없이, 실실거리며 웃다가도 얼굴을 구기며 옛일을 으르렁거리며 늘어놓는 재닛은 생각보다 구경하는 맛이 있는 캐릭터였다.


여러 극한 상황에 대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차가운 면도날같은 면모보다는 인간적이고 감정이 풍부한 인물에 가까웠다.


처해있는 상황이 갑갑한 부분이 많아 좀 불쌍하기도 했고. 어느 사람이 그렇지 않겠느냐만은.


재닛 장. 한국이름 장소영. 79년생. 출신이 좀 복잡하다.


재일교포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 센다이에서 자랐으나, 부모의 이혼으로 어렸을 때 한국으로 아버지를 따라갔다.


하지만 아버지 재혼 등의 여러 복잡한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 다시 일본의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다.


체육계 특기생으로 학창시절 유도, 가라데, 검도 등을 두루 섭렵하고, 고교 2년 때 전국 고교 여자 킥복싱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다.


여유가 없는 집안 사정 때문에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경호업체에 바로 취직했다.


일본에서 유명하여 TV 광고에도 자주 등장하는 보안회사의 직속 자회사.


회사에서 월등한 성과를 내면서 각 분야의 요인 경호를 맡게 되었고, 결국 회사에서 보내주는 특별 연수 대상으로 뽑히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외인부대(레지옹 에트랑제)와 영국의 MI6 출신 인물들이 창설한 국제 특수임무 요원 양성 업체에서 2년을 보내고 온 후, 장소영은 일반적인 외주 경호가 아닌 회사 소유주 일가의 직속 경호원이자 일종의 비서로 일하기 시작했다.


반 년 전 실장으로 승진했고, 직접 움직일 수 있는 휘하의 직원들도 스무 명 가까이 된다.


이번 일을 기획하여 장소영에게 지시를 내린 이는 얼마 전 한국 지부 부사장으로 부임한 레슬리 이이다, 한국이름 최진홍이라는 인물이다. 회장인 이이다 소이치로의 막내아들.


이놈도 좀 골때리는 게, 출신이 많이 복잡하다. 어머니가 성인이 된 이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한국인인데, 이이다 회장과 정식으로 결혼한 적이 없다. 즉, 첩의 자식으로 서자인 셈.


미국, 일본, 한국을 전전하며 살다가 머리가 워낙 좋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즉 칼텍에 입학하면서 친부에게 법적인 자녀로서 인지를 받게 되었다.


문제는, 이 최진홍이라는 놈이 윤시현의 전남친이라는 것.


누운 채 끙끙대며 장소영이 그 이야기를 중얼거릴 때에는, 듣다가 나도 모르게 그 면상에 파운딩을 날릴 뻔 했다.


하지만 그 새끼가 시현이 전남친이라는 게 이 여자 잘못은 아니니까. 그냥 내 기분이 나빠진 것일 뿐.


윤시현과의 첫 만남은 황윤건에게도 여전히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코카인에 찌든 여자를 족히 사흘 밤낮을 먹이고 재우고 돌봐주며,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자기 옛날 이야기를 하며 내내 통곡을 하는 모습을 봐야만 했었다.


그리고 그 옛날 이야기 중에 지랄같이 헤어진 전남친 에피소드도 여러 번 등장했었는데.


가장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 자기를 헌신짝처럼 내다버렸다고. 인간같지도 않은 소시오패스라고 그렇게 욕을 쏟아내더니만.


이제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토해낸 저주가 조금이나마 납득이 됐다.


아주 지저분하게 헤어지고 나서 몇 년 후에 다시 나타나, 특수요원으로 양성한 자기 부하를 보내 현 남친을 유혹하는 동영상을 찍어 그걸 시현이에게 보여주려고 했다는 이야기잖아.


진짜 소름돋는 변태 새끼 아닌가.


지난번 민서에게 들러붙었던 그 마약상 놈도 여자애들 섹스 동영상을 찍은 후 협박으로 돈을 벌더니만, 왜 내 주변에는 이런 터무니없는 변태 남자놈들이 넘쳐나는 걸까.


최진홍이라는 놈은 그런 비열한 방법까지 써서 나랑 헤어지게 만든 후 시현이에게 또 뭘 어쩌려는 건지.


그런데 그 대목에서 장소영이 황당한 스토리를 읇어댔다.


그 최진홍이라는 놈이 이 여자랑 그렇고 그런 관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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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7화 +8 22.06.18 1,068 72 9쪽
47 46화 +3 22.06.18 990 56 9쪽
46 45화 +6 22.06.17 1,171 58 9쪽
45 44화 +4 22.06.17 1,041 4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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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39화 +12 22.06.14 1,261 83 9쪽
39 38화 22.06.14 1,155 6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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