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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님의 서재입니다.

몸속에서 벌레 군대를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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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3
최근연재일 :
2022.06.26 22:10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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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6,481

작성
22.06.1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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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글자
9쪽

44화

DUMMY



회장의 둘째 아들이 LA에 회사 지점을 맡으러 일 년 정도 파견되었을 때 장소영도 동행했다.


그녀는 둘째 아들의 일을 도우면서 아직 대학생이었던 최진홍의 신변 보호와 관리 업무도 같이 맡게 되었는데, 그러는 와중에 눈이 맞았다는 것이다.


최진홍은 그 당시 윤시현과 몇 년 유지했던 관계가 흔들흔들하던 상태였는데, 거기에 이 여자가 끼어든 듯 했다.


문제는 많이 좋아한 쪽이 이 여자라는 것. 아무래도 고용 관계의 갑을 위치가 좀 작용했겠지.


대충 들어보니까 윤시현이 집안일 때문에 마약에 손을 대서 최진홍이 그것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그런 틈새를 이 여자가 파고든 느낌이었다.


그런데 또 듣다 보니 윤시현이 나쁜 년이고 최진홍이랑 이 여자는 좀 더 정당한 입장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행복한 심문' 세트에서 짜내는 정보는 전적으로 대상의 기억과 정서에 의존하니까 말이다.


객관적인 팩트가 아닌 것이다. 특히 이런 연애놀음같이 극히 주관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객관적이기가 어렵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은 본인조차도 모르고 있는 뇌 안의 기록을 긁어내는 초능력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자백제 효능을 지닌 신경전달물질과 외부의 약리물질을 조합하여, 그때그때 건드리는 주제에 대해 자기가 알아서 떠들게 하는 것일 뿐.


대상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고 또 그걸 철석같이 사실로 믿고 있다면, 듣는 입장에서는 심문 중에 그게 팩트인지 아닌지 가려낼 방법이 마땅찮다.


게다가 이 장소영이라는 여자가 아주 감성이 풍부한 데다가 불필요하게 기억력까지 좋아서, 정말 쓸데없는 디테일까지 모두 다 털어놓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있었다.


자기 젊은 날의 양다리 대모험을 장대한 서사시로 푸는 걸 놔두고 있을 이유가 없다. 이 방에 언제 저쪽 회사 직원들이 무장한 채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인데.


프로스타글란딘을 채찍으로 써서 고통을 주입하며, 늘어진다 싶어지는 부분에서 끊고 바로 다음으로 진행시켰다.


스위트룸을 청소하고 장소영을 옮긴 후 기다릴 틈 없이 곧바로 심문을 시작했던지라 시간에 쫓겨 후달리는 상황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윤시현을 떠올리고 그제서야 황윤건은 윤시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 최진홍이 보낸 재닛 장이라는 여자 확보. 난 다친 데 없음. 괜찮아?


이 일을 사주한 자가 윤시현의 전남친이고, 협박과 억류를 위해 험한 사람들을 보낸 게 아니라 최진홍이 직접 가서 식당에서 만난다고 했으니 윤시현에게 당장 물리적인 위협은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라면 당장 달려갔을 테지만.


그래도 윤시현의 멘탈이 좀 걱정되긴 한다. 약에 손댈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안 좋게 헤어진 전남친과, 갑자기 만나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누구라도 동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분명히 나를 걸고 넘어지면서 반 협박성으로 이끌어낸 제안이겠지. 나를 일종의 인질이자 미끼로 썼다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지금 당장 찾아내서 죽여버릴까...


그래도 사건의 핵심에 가까운 이 장소영이라는 여자가 손에 들어왔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끄집어낼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괜히 흥분하여 성급하게 행동하다가는, 앞뒤 자초지종을 전혀 모른 채 이후에도 또 한 번 이런 X같은 일을 고스란히 당해야 할 공산이 크다.


그런 점 때문에라도 이 기회를 쉽게 흘려보낼 수는 없다.


그래도 몇 분 지났는데도 답신이 없으니 좀 불안해지긴 한다.


사이코같은 놈이 백주대낮에 시현이게 무슨 짓을 한 건 아니겠지.


부교감신경을 자극하는 벌레들을 일부러 조금씩 더 증식시키며, 황윤건은 차분한 마음을 계속 유지하려고 애썼다.


이 여자한테 필요한 정보를 빨랑 뽑아내는 수밖에 없다.


* * *


최진홍의 강압으로 계약서 초안을 모두 살펴본 후 식당에서 나올 때, 그는 초안 사본과 함께 서류 봉투 하나를 더 건넸다.


혼자 있을 때 확인하라는 말과 함께.


토할 것 같은 기분에 윤시현은 얼른 식당을 나와 차를 몰았고, 미행을 대비하여 미리 준비해둔 위치에 차를 주차시켜놓고 재빨리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아무런 예정이 없던 역에 내려 택시를 두 번 갈아타며, 역시나 미리 확보해놓은 외부 안전가옥으로 이동했다.


이래서 오프라인으로 직접 나오는 건 귀찮은 일이다. 게다가 거래처와 만나는 것도 아니고 저런 뱀같은 소시오패스의 표적이 된 상태라면 더더욱.


그 회사의 규모와 정보력을 생각하면 어쩌면 이런 짓도 다 의미없을 수도 있다. 이미 다 뚫렸을 거라는 찝찝함에서 벗어나려면 결국에는 아지트를 통째로 옮겨야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러기 위해서는 한동안 활동을 중단하고 잠적해야 한다. 이 바닥에서 안심할 수 있는, 출입과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거처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전용선과 케이블의 규모, 한 루트가 막혔을 때 즉시 다른 루트로 돌아가야 하는 접근성 등 이 바닥 입지의 특성 상 언제나 수요보다 공급이 딸리는지라 괜찮은 매물이 생각보다 별로 없는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아지트 입지를 찾느라 반 년 이상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어쩌다 또 저 거머리같은 놈에게 걸려가지고. 윤시현은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싸쥐었다.


이제는 화가 나다 못해 어지럽고 머리가 멍하다. 실로 끔찍한 기분이었다.


최진홍이 건네준 서류를 확인해야 했지만 그녀는 선뜻 손을 뻗기 어려웠다.


솔직히, 무서웠다. 이미 계획을 다 짜고 자기 그림을 선명하게 그려놓은 최진홍이 던진 덫이다. 아마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제 다 싫어...


중얼거리던 그녀가 주저하며 봉투를 열었다. 지금 윤건이가 같이 있으면 좋을텐데. 기다렸다가 만난 후에 뜯을까? 하지만 아직도 황윤건에게서 연락은 없다.


설마 지금 장소영과 정말로... 아아. 너무 싫다. 이런 걸 떠올리고 의심해야 하는 상황 자체에 토할 것 같았다.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이성적으로는 아마도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닫혀있던 상자 뚜껑을 선뜻 열기에 지금 자신은 정신이 너무 불안정한 상태라는 점을 윤시현은 잘 알고 있었다.


몇 번 심호흡을 하고 봉투를 열었다.


"!"


스무 장 정도의 사진. 그리고 재생 가능한 소형 녹음기.


흐릿하고 불확실한 사진이었지만, 그 모든 사진 속에 공통적으로 들어가있는 인물이 자신이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미국에 있을 때의, 어리고 미숙하여 쉽게 흔들리던 네이틀리 윤.


대부분 길거리 뒷골목 등의 으슥한 장소에서 누군가와 뭔가를 주고받고 있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머리가 깨지는 듯한 느낌이 오며, 식은땀이 흐르며 숨이 막혀왔다.


떨리는 손으로 윤시현은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중간중간 노이즈가 끼어 음성이 선명하지 않았지만, 약 30초에서 1분 사이로 짧게 지나가는 각각의 내용은 한결같았다.


예전의 자신이 딜러에게 코카인을 살 때 나누었던 대화, 그것들을 모아서 붙인 파일이었다.


윤시현은 문득 다리가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걸 다 몰래 촬영하고 녹음해서 기록으로 남겨뒀다고?


최진홍이 지독하게 철두철미한 인간인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매일 싸우다시피 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저 당시에는 아직 그와 사귀는 사이였다.


애인의 약점이 될만한 물적 증거를 이런 식으로 확보해놓다니. 정말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안 나오는 인간이다.


이제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정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손끝 발끝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덜덜 떨다가, 윤시현은 문득 고개를 들어 크게 도리질쳤다.


당장 중요한 건 지금이다. 예전의 끔찍했던 기억이 아니라.


최진홍이 저 자료를 보여준 의도는 너무나 명백하여 헷갈릴 수가 없다.


딴 생각하지 말고 곱게 내 뜻대로 따르라고.


작은 것은 양보해도 큰 줄기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괴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수족으로 써먹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터.


반드시 내 손을 빌리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어렵고 더러운 일에. PMC라고? 이 미친 인간들이.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며 윤시현은 두 볼 위에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황윤건 덕분에 그 지긋지긋한 과거로부터 벗어났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헛된 희망일 뿐이었다. 이 정도 증거가 있으면 미국이든 한국이든 어디에서건 마약사범으로 몰리는 것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최진홍은 이미 한참 전부터 내 목줄을 쥐고 있었고, 언제 그것을 잡아당길지 선택할 권리는 온전히 그의 손에 있다.


황윤건을 인질로 삼으려 했던 건 이번 일을 성사시키기 위한 추가적인 조치에 불과했다. 애초부터 그저 양념일 뿐이었다.


황윤건만 번호를 알고 있는, 그녀의 휴대폰에서 그제서야 진동이 짧게 울렸다.


하지만 윤시현은 하염없이 허공을 쳐다보며 폰을 확인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작가의말

에크나트 님, 소중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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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5화 +6 22.06.17 1,171 5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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