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생활의 냄새라는 것은 언제나 비루함이 섞이기 마련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근로자든 재벌집 회장이든 큰 차이는 없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부스스한 얼굴로 화장실에 들어가 용변을 보고, 거울을 보며 눈꼽을 떼어내는 일은 결국 자기 몫이라는 것.
다른 누군가가 그런 일을 대신해주게 된다면, 그건 돈과 지위가 있든 없든 간에 곧 요양병원에 들어가 멀쩡한 채로 다시 나오기는 어렵다는 의미일 것이다.
결코 좋은 소식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삶은 원래 최소한의 비루함을 전제로 굴러가는 셈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그러한 필연적인 비루함에 아주 드물게 예외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지금 그녀의 눈동자에 비치는 대상.
사십 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청년과도 같은 매끈한 피부와 몸매를 지닌 남자가, 완벽하게 균형잡힌 몸을 일으켜 가운을 걸치고 있다.
황윤건. 그와 알고 지낸지도 이제 이십 년을 넘기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의 그는 용모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지금이 이십 년 전의 앳된 모습에 비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저 아름다운 몸을 눈에 담아두어 오직 나 혼자만 가지고 싶은 욕심과, 초 고해상도로 사진이라도 찍어 만인에게 자랑하고픈 욕구가 그녀의 안에서 뭉근하게 부딪힌다.
그와 밤을 보낸 후 아침마다 느끼는 모순은 오늘도 여전하다.
"자기야. 난 샌드위치 세트로 해줘. 커피는 마끼아또로."
반쯤 목이 잠긴 그녀의 중얼거림을 듣고 남자는 슬쩍 웃었다.
전화기를 들어 룸서비스를 시킨 후, 그는 스마트폰을 들어 밤새 들어온 보고를 읽기 시작했다.
그를 대주주이자 회장으로 모시는, 세계 곳곳의 지사에서 관련 주식과 원자재 가격을 실시간으로 전달한 결과를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생활의 비루함도 없고, 나처럼 하루하루 늙어가는 것을 같이 경험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는 저 남자는, 그래도 지금 내 곁에 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 족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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