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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름 님의 서재입니다.

숙원 홍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서여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9
최근연재일 :
2021.04.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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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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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0.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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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숙원 홍씨 62. 진양, 비밀의 단서를 찾아내다

DUMMY

숙원 홍씨 62. 진양, 비밀의 단서를 찾아내다


“그리도 좋으냐?”

단진과 향이 경회루를 따라 걷고 있었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향과 단진에게 쏟아졌다.

단진은 심부름 가는 곳이 김종서 집이란 걸 안 순간부터 웃고 있었다. 인옥을 만나고 백겸과 창이, 도화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너무도 설렜다.

“예 저하. 다른 곳도 아니고 형판대감 댁에 가는 일이라 소인, 너무도 너무도 좋사옵니다.”

“형판대감 댁에 가는 길이 어찌 좋은 것이냐?”

“그 댁에 가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사옵니다!”

향이 멈춰서 단진을 보았다.

“만나고 싶은 사람?”

단진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었다.

“예 저하. 형판대감 며느님이십니다. 음...소인과 같은 또래인데 그분도 역병을 앓고 일어나 기억을 잃었다 하옵니다. 전에 궁 밖에 나갔을 때 뵌 적이 있었는데 꼭 한 번 더 뵙고 싶었습니다.”

“형판대감 댁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저하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마님은 다 나았고 저처럼 씩씩하옵니다.”

단진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또한 소인의 벗이옵니다. 신분은 달라도 벗이옵니다. 소인과 말이 잘 통하옵니다.”

향이 단진을 보았다. 괜찮다고 말해도 말벗 하나 없는 궁궐 생활이 외로웠던 것이다. 저토록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좋으면서도 안쓰러웠다.

단진이 잠시 있다가 걱정스레 향을 보았다.

“저하.”

향이 보았다.

“저하. 헌데 소인이 나가면 저하 혼자 괜찮으시겠사옵니까?”

향이 웃었다.

“괜찮지 않다 하면 아니 나갈 것이냐?”

“예 저하. 나가지 않을 것이옵니다.”

향이 달빛에 비친 단진의 고운 얼굴을 보았다.

“괜찮다. 심려치 말고 나간 김에 도성 구경도 하고 오거라.”

단진은 또다시 저도 모르게 입이 귀에 걸렸다. 향이 단진을 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제등을 들고 있는 공두와 박 내관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향과 단진이 또다시 걸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리고 바람에 나뭇잎들이 산들산들 춤을 추었다. 향은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았다.

단진은 바람이 얼굴에 닿자 부드러운 향의 손길 같았다. 단진은 이런 생각을 자꾸만 하는 자신이 이상해 고개를 저었다.

향이 물었다.

“역당을 보면 알아볼 수 있을 거라 했느냐?”

“예 저하. 소인은 역당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알 수 있사옵니다.”

“어찌 안다는 것이냐?”

“그냥 아옵니다. 나쁜 일을 꾸미는 자들의 눈빛엔 모래가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서걱서걱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깨끗하지 않사옵니다.”

향이 멈춰서 단진을 보았다.

“만일, 역당을 보게 되면 말이다.”

단진이 향을 보았다.

“못 본 척 지나가거라. 역당은 다른 이들이 잡을 것이다. 지난번처럼 그리 따라가 다치면 아니 된다.”

단진은 그제야 향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았다. 육갑을 죽인 진양을 만나 따라갔다가 맞았던 일이 떠올랐다. 단진의 얼굴에 근심이 들어찼다. 잊고 있었다. 육갑이 죽은 것도 잊고 있었고 육갑을 죽인 놈에게 복수한다는 다짐도 잊고 있었다.

미안했다. 그 미안함이 어두운 밤처럼 단진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향이 단진을 보며 물었다.

“어찌 그러느냐?”

“...저하. 사람의 마음만큼 깊은 것도 강한 것도 없지만. 또한 사람의 마음만큼 약하고 얕은 것도 없는 것 같사옵니다.”

향은 말없이 단진을 보았다.

단진이 눈길을 떨구었다.

“소인의 잘못으로 누군가 이 세상을 떠났는데...미안했는데...너무 미안해서 원수를 갚아주겠노라 맹세도 했는데. 잊어버렸습니다. 하루하루가 바쁘고 즐거워 단 한순간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소인이 나쁜 것이지요.”

향이 단진을 보았다.

“아니다. 네가 나쁜 게 아니다. 그게 삶이다. 오늘은 비록 울지만 내일은 웃게 되는,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다. 오늘 웃고 내일 비록 울게 될지라도. 지금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사는 것이다. 지난 일에 연연해하지 마라. 그럴 시각에 네 벗을 생각하거라. 내일 벗과 무엇을 할까를 생각하거라. 알겠느냐?”

단진이 향을 보았다.

“또한 네 탓이 아니다. 명심하거라.”

단진의 무거운 짐을 향이 나눠 짊어지고 있었다.

향이 박 내관을 보았다. 박 내관과 공두가 알아듣고 쪼르륵 왔다.

향이 공두를 보며 말했다.

“단진이와 함께 잘 다녀오거라. 지난번처럼 위험한 일에 처하게 해선 아니 된다. 장 내관은 잘 할 거라 믿는다.”

공두는 갑자기 칭찬을 받자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예 저하! 소신은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사옵니다!”

박 내관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단진이를 궁 밖에 내보내는 것도 그렇고 공두를 믿을 수가 없었다. 박 내관이 서둘러 말했다.

“저하. 내일 소신이 다녀오겠나.”

박 내관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공두가 잽싸게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저하! 내관 장공두. 저하의 명을 따르겠나이다. 박 내관님은 다리가 짧아 가고 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터이니, 소신이 이 긴 다리로 저하의 명을 수행하겠나이다.”

박 내관이 눈을 부라렸다.

향이 웃고 있는 단진을 보았다.

귀뚜라미 소리에 답하듯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였다.


운종가의 길을 따라 등불이 훤히 밝히고 있었다. 밤이 내린 운종가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물건을 팔려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댔다.

진양과 안평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한곳을 향해 가느라 걸음이 빨랐다.

진양과 안평은 경복궁 앞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들은 대군이기 이전에 향의 신하였다.

진양과 안평은 향이 궁에 들어가고 나서 다시 한성부로 갔다. 시신을 다시 확인했다. 진양은 그들의 잔인함에 분노했다. 설가의 목에 난 상처처럼 모두가 싸워보지도 못하고 단칼에 죽었다. 사건이 일어난 날 순포는 집에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 이는 순포와 한패인 역당의 무리가 도성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진양과 안평은 사건이 일어났던 왈패들의 소굴로 갔다. 아무것도 없으나 무언가 있는 것 같았다.

왜 왈패들을 죽였을까? 왜 죄 없는 부부를 죽였을까? 비 오는 날 돼지가 떨어져 있었다. 이는 수레에서 떨어진 것이고. 누군가 왜? 수레를 끌고 왈패들 소굴이 있는 곳으로 갔을까? 그 수레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허면 역당은 그 수레에 있던 무언지 모를, 그것 때문에 부부와 왈패들을 죽인 것이다. 뭔가가 떠올랐지만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다 열어두어야 했다. 이제부터는 눈에 보이는 것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했다.

그 수레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알아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누가 수레를 끌었는지를 먼저 찾아야 했다.

진양은 민가에서 나와 한성부 앞을 지나다가 또다시 순포가 떠올랐다. 순포를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밀어냈다. 또한 순포를 시합장에 세운 잘못을 후회할 때도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그 잘못을 짚어보니 그곳에 무언가가 있었다.

진양은 순포가 진검을 뽑아들고 창이에게 덤벼들 때를 되짚어보고 또 되짚어봤다. 순포가 창이를 보는 눈은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순포가 진검을 빼들고 덤비던 순간엔 무언가가 있었다.

안평이 진양에게 물었다.

“형님, 형님 생각대로 순포란 그 자가 창이란 그 무사를 아는 걸까요?”

“해서 확인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냐?”

“좀 더 신중히 계획을 세워 하는 게 어떻겠소?”

진양이 버럭 소리 질렀다.

“한가한 소리 좀 그만 하거라! 이제껏 뜸들이다 이도저도 아닌 게 된 것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봐야 하는 일이 있는 것이고. 한 걸음 더 다가가 봐야 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다가가야 할 때다. 지금으로선 순포 그놈이 우리를 역당에게 안내하는 유일한 길이다.”

안평이 화 좀 내지 말라고 하려다가 참았다.

“그놈이 실수로 발자국 하나를 남겼다. 놈이 허둥댈 때 찾아야 한다. 내일이 되면 그놈이 제 발자국을 지울 수도 있는 일이다!”


기방은 여전히 가야금소리와 웃음소리로 넘쳐났다.

백겸과 창이는 기방에 들어온 이후로 계속해서 용무용 이야길 했다. 백겸은 용무용에게 믿음이 가지 않아 반대했지만 창이는 용무용에게 직접 물어봐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백겸과 창이는 이제 정문을 사용하지 않고 뒷문으로 다녔다. 하지만 지금 뒷문으로 나간다면 혹시라도 그 사이에 용무용이 밖으로 나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급했다.

백겸과 창이는 나비문신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용무용을 기다릴 참이었다.

백겸과 창이가 입구 쪽으로 가려는데 용무용이 보였다. 용무용을 먼저 본 백겸이 창이를 툭 치고 눈짓으로 가리켰다. 창이가 보니 용무용이 그들에게 시선을 둔 채로 걸어오고 있었다.

기방의 얼굴인 대문 앞은 수많은 등불이 걸려 있어 낮처럼 밝았다.

용무용도 백겸과 창이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용무용이 백겸과 창이 앞에 멈춰섰다. 용무용과 백겸, 창이가 서로를 보았다. 밝은 불빛에 그들이 감추고자 하는 모든 것까지 드러나 보이는 듯했다.

용무용은 창이를 보고 백겸을 보았다. 그들을 보는 용무용의 얼굴이 밝아졌다. 서로를 죽여야 할 놈들이 이리도 나란히 있는 것 자체가 이상했던 것이다.

백겸은 용무용과 마주한 순간부터 불편했다. 용무용과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마치 서로 검을 겨루듯 몸에 힘이 들어갔다.

창이는 용무용을 살폈다. 단단한 사내였다. 눈빛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도 단단했다. 창이는 이 사내가 왠지 나비문신에 대해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용무용과 창이, 백겸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잠시 서로를 보고만 있었다.

용무용과 창이가 동시에 입을 열려는데 진양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또다시 무예시합이라도 여는 것이냐?”

용무용과 창이, 백겸이 돌아보았다. 진양과 안평이 있었다. 용무용과 백겸, 창이는 진양과 안평에게 예를 갖추었다. 진양과 안평이 한 걸음 다가왔다.

밝은 불빛 아래 두 대군과 세 명의 무사가 서로를 보고 있었다.

이들은 대문 바로 앞에 있었다. 들고나는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보았다. 그러다 한 사내가 길을 비키라고 하려다가 진양을 알아보고는 그들을 피해서 문으로 걸어갔다.

진양이 먼저 침묵을 깼다. 진양이 용무용의 눈을 찌를 듯이 보고 있었다.

“조선인이 되기도 전에 고관대작이 된 것이냐?”

용무용은 진양을 바로 보며 말했다.

“저 같이 미천한 놈이 죽었다 다시 태어난다 한들 그리되겠습니까? 판부사대감을 따라왔습니다.”

“판부사대감을 따라왔다면 호판대감을 만났겠구나!”

“예 대군마마.”

“야인이라 산속에서만 살아 세상 이치에 어두울 줄 알았더니, 참으로 이치에 밝고 빠르구나.”

“세상 이치에 빠른 것이 아니라,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입니다. 조선인이 됐으니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진양은 용무용의 눈을 보았다. 용무용은 자신을 낮추고 있었지만 눈빛은 한없이 오만했다. 약한 척하고 있었으나 눈빛에 날카로운 검이 서려있었다.

“헌데 예서 무얼 하는 것이냐?”

용무용이 창이를 힐끗 보며 말했다.

“저자를 우연히 봤사온데, 궁금한 게 있어 물어보려던 참이었습니다.”

진양이 말했다.

“물어보거라. 무언지 몰라도 나도 궁금하구나.”

용무용이 진양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창이를 보았다. 창이가 용무용을 보았다.

용무용이 창이에게 물었다.

“검을 놀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던데, 검을 누구에게 배웠느냐?

창이가 바로 대답했다.

“모릅니다.”

용무용이 놀라는 듯 되물었다.

“모른다?”

“예. 역병을 앓고 일어나 기억이 나질 않소. 해서 누구에게 배웠는지 모르오.”

진양은 용무용을 빤히 보고 있었다.

용무용은 창이의 눈을 보았다. 용무용은 확신했다. 창이는 진정 모르고 있었다.

용무용이 백겸을 보았다.

“너도 검을 잡는 것 같은데. 허면 너도 역병을 앓고 일어나 누구에게 검을 배웠는지 기억이 나질 않느냐?”

백겸이 답했다.

“그렇소. 기억이 나질 않소.”

“그렇구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구나.”

백겸이 용무용을 날카롭게 보았다.

“헌데, 아까 한성부에서 우리가 하는 말을 다 듣질 않았소? 우리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말을 다 들었을 터인데, 어찌 다시 묻는 것이오?”

용무용이 백겸을 보았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건 사실이나 예리한 건 그대로였다. 용무용은 재밌었다.

“믿기기 어려워 다시 물었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게 믿어지겠느냐?”

진양과 안평이 백겸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백겸은 그제야 수긍했다.

“우리도 궁금한 게 있소!”

용무용이 보았다.

“혹 북방의 나비문신이 있는 자들을 아시오?”

창이가 덧붙였다.

“어깨에 나비문신이 있는 야인들이오!”

용무용이 혼잣말하듯 말했다.

“어깨에 나비문신이라.”

진양의 머릿속에 ‘나비문신’ 이 새겨졌다.

용무용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글쎄다. 나비문신을 새긴 자들을 본 적은 있는 것 같으나.”

백겸이 서둘러 물었다.

“그게 누구요?”

용무용이 웃었다.

“야인들 몸엔 없는 게 없다. 어떤 놈은 나비부터 호랑이까지 새긴 놈들도 있다. 허나 어깨에 나비문신을 한 자들은 본 적이 없다.”

백겸과 창이가 서로를 보았다. 더 물어보려는데 호판과 예판, 장문호가 기녀들과 함께 걸어왔다.

장문호가 인사했다.

“대군들께서 오셨습니까?”

진양의 눈빛이 서늘했다.

“예 판부사대감.”

진양과 안평, 대신들은 서로 달갑지 않은 인사를 나누었다.

호판이 말했다.

“그럼, 놀다들 가시지요!”

호판이 가려는데 진양이 말했다.

“호판대감.”

호판이 보았다.

“아까의 가르침 잘 배웠습니다.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언제는 대군께서 제 허락받고 일을 만드셨습니까! 뜻대로 하시지요!”

진양이 서늘하게 보았다.

호판은 진양을 피해서 돌아가지 않았다. 호판은 진양을 보고 있었고 진양은 피할 생각이 없었다. 안평이 진양의 팔을 잡아끌었다. 진양은 화를 누르고 물러섰다.

호판과 예판, 장문호와 대신들이 가자 용무용은 창이와 백겸을 눈에 담고 돌아섰다. 확실했다. 백겸과 창이는 진정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용무용의 가슴이 흥분으로 들썩였다.


정각에 진양과 안평이 앉아 있고 술상을 사이에 두고 백겸과 창이가 앉아 있었다.

진양은 분에 못 이겨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안평이 보다 못해 야단치듯 말했다.

“형님, 그만 하시오! 형님도 지금 한가하게 저들을 상대할 때가 아니질 않소! 주먹 부서지겠소!”

진양이 안평을 보다가 큰소리로 웃었다.

“안평, 네가 요즘 나를 자주 웃기는구나!”

백겸과 창이는 평범한 형제처럼 티격태격하는 진양과 안평을 보았다. 사이좋은 형제였다. 그들의 중심에 향이 존재했다.

진양은 웃다가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백겸과 눈이 마주쳤다. 진양은 창이에게 볼 일이 있었으나 백겸도 함께 불렀다.

이들은 정각에 올라와 앉지 않고 서 있었다. 진양이 앉으라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서 있었다. 진양이 편하게 앉으라고 하자 그제야 백겸과 창이는 사양도 하지 않고 편하게 앉았다. 진양은 그런 배포가 마음에 들었다.

진양이 술병을 들고 백겸에게 따라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백겸이라 합니다.”

진양은 백겸을 보았다. 백겸의 순해 보이는 눈엔 굳은 결기가 있었다. 진양은 백겸의 눈빛을 보자 단진이 떠올랐다. 이상했다. 그 작은 계집이 또다시 떠올랐다. 진양의 눈길이 잠시 술잔에 머물렀다.

진양이 창이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오늘 잘 하였다.”

창이는 별 말이 없었다. 그런 창이를 보는 진양의 눈길이 따뜻했다.

진양이 잠시 있다가 말했다.

“너를 보자고 한 것은 네게 궁금한 게 있어서다.”

“말씀 하십시오.”

“순포를 아느냐?”

“순포가 누굽니까?”

“무예시합장에서 네게 진검을 겨눈 놈 말이다. 아는 놈이더냐?”

“모릅니다. 처음 보는 자였습니다.”

“그래?”

창이가 잠시 있다가 덧붙였다.

“제가 기억을 잃었으니 제 말이 다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자를 모르지만, 그자가 저를 아는지까진 모릅니다.”

진양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래서다. 그래서 보자고 한 것이다.”

연월이 올라왔다. 연월은 오늘도 가장 화려한 연꽃 같았다. 연월은 창이와 백겸의 뒷모습을 힐끗 보고는 진양에게 말했다.

“대군마마. 댁에서 손님이 찾아오셨사옵니다.”

“들이거라.”

순포가 올라와 섰다.

“대군마마. 시키실 일이 있다 들었사옵니다.”

연월은 또다시 백겸과 창이를 보고 물러갔다.

순포는 진양의 눈치를 살폈다. 진양이 순포를 기방으로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진양이 한번은 용서해준다고 했지만 속을 알 수 없으니 긴장하고 있었다.

진양이 순포에게 말했다.

“가까이 오거라.”

순포가 진양에게 다가갔다. 안평은 순포를 살피고 있었다. 백겸과 창이는 순포를 보고 있었지만 순포는 알아채지 못했다.

진양이 잔을 내밀었다.

“앉아서 한잔 받거라.”

순포는 무릎을 꿇고 앉아 양손으로 술을 받았다.

“마시거라.”

순포가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시려는 순간이었다. 순포의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창이가 눈에 들어왔다. 순포가 움찔했다.

진양은 느낄 수 있었다. 순포가 창이를 아는 게 확실했다. 놀라는 게 느껴졌지만 애써 아닌 척했다.

안평도 순포가 창이를 안다고 확신했다.

순포가 감정을 숨기며 술잔을 입에 대려다 멈췄다. 순포가 술잔을 입에서 뗀 채로 백겸을 보았다. 순포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 됐다. 순포의 눈이 백겸에게 꽂혔다. 순포는 아직 백겸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한 터였다.

안평은 순포를 보고 진양을 보았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진양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순포가 백겸에게 시선을 둔 채로 술잔을 든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백겸은 눈에 흉터가 있는 순포를 그저 보고 있었다.

진양은 이 느닷없는 상황에 가슴이 들썩였다. 순포가 백겸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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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원 홍씨 62. 진양, 비밀의 단서를 찾아내다 +2 20.10.15 1,953 1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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