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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름 님의 서재입니다.

숙원 홍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서여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9
최근연재일 :
2021.04.12 11:00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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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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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09,561

작성
20.09.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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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7쪽

숙원 홍씨 56. 이향, 무예시합에 가지 않기로 하다

DUMMY

숙원 홍씨 56. 이향, 무예시합에 가지 않기로 하다


“저하께서 무예시합에 못 오신답니다!”

도화가 눈이 휘둥그레져 옆에 있는 장문호를 보았다.

기방 별채에 호조판서를 따르는 조정대신들이 모여 있었다. 호조판서가 상석에, 장문호와 공조참판 심민, 맞은편에 예조판서 장우성, 형조참판 민계수가 앉아 있었다. 호조판서 옆엔 월이, 예조판서와 민 참판 사이에 초련이, 장문호와 심 참판 사이엔 도화가 앉아 있었다.

오늘도 술상은 산해진미가 가득했고 오늘도 대신들은 상다리를 부러뜨릴 만큼 성이 나 있었다. 대신들은 늘 같은 자리에 앉았고 늘 화가 나 있었고 늘 같은 소리를 해댔다. 다만 화를 내는 사람이 바뀌는 게 그나마 신선했다.

월과 초련은 살벌한 분위기는 관심도 없고 도화를 보며 생글거렸다. 도화는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장문호를 보고 있었다.

장문호가 흥분해 소리쳤다.

“어찌 저하께서 이러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토록 잘 준비하라고 하셔놓고는, 이제 와서 못 나오신다니요! 이제껏 얼마나 성심성의껏 준비했는데 저하께서 나오지 못하신다니요!”

호판이 술잔을 들고 못마땅한 듯 보았다.

“그러게 서둘렀어야지요, 거북이도 아니고 어찌 일을 그리 늦게 한단 말이오!”

장문호가 성을 냈다.

“제가 거북이겠습니까? 제가 준비한 판에 거북이가 끼어드는 바람에 이리 된 게 아닙니까!”

예판이 장문호를 보았다.

“어찌 저를 그리 보십니까! 제가 그 거북이라, 이 말씀입니까?”

장문호가 소리쳤다.

“그건 아십니까? 어제만 했어도 저하께서 나오셨을 겁니다! 그제만 해도 저하께선 나오셨을 거예요! 예판대감이 연회니 뭐니 해서 시간을 끄는 바람에 이리 된 게 아닙니까?”

예판이 소리쳤다.

“왜 날 걸고넘어지십니까?”

“걸고넘어지는 게 아니고 제 앞에서 알짱댔으니 하는 말씀입니다!”

“알짱이라니요? 알짱이라니요? 말씀 다 하셨습니까?”

호판이 상을 두드렸다.

“그만들 하세요! 이리 싸운다 한들 저하께 들리겠습니까?”

장문호가 예판에게 말했다.

“그리 연회가 좋으시면 형판 말대로 기방에 오셨어야지요!”

예판이 눈이 뒤집혔다.

“도와달라 한 게 누굽니까? 무예시합을 돋보이게 할 비책을 가르쳐달라 한 게 누굽니까?”

“좋은 비책을 가르쳐달라 했지, 상을 엎으란 뜻은 아니었습니다. 것도 모르십니까? 이제 어쩌실 겁니까? 상은 내가 차리고 밥은 형판이 떠먹게 됐습니다. 김종서가 주최해서 하라 하질 않습니까! 거기다 진양대군과 안평대군까지 온다고 합니다. 어찌 책임지실 겁니까?”

“내가 왜 책임을 집니까? 그리 앞날이 걱정되시면, 양원마마께 용종이라도 품으라고 하세요!”

장문호가 벌떡 일어섰다.

“거기서 우리 양원마마가 왜 나옵니까? 네! 네! 그러지요, 그때 돼서 후회한들 늦었습니다!”

예판이 비웃었다.

“제발 후회 좀 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장문호가 소리쳤다.

“대감 말 다 하셨소!”

호판이 상을 세게 내리쳤다.

“그만들 하세요! 지금 우리끼리 이럴 때가 아니질 않습니까! 김종서가, 그 저만 잘난 인사가, 호조 일까지 나서려 하고 있어요!”

형조참판이 말했다.

“맞습니다 대감, 형판대감이 지금 무얼 준비하고 있는 듯합니다. 제발 앉으세요!”

민 참판이 장문호를 자리에 앉혔다.

도화는 어수선한 틈을 타서 밖으로 나왔다. 별채 안과는 다르게 사내들과 기녀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났다. 가야금소리와 형형색색의 등불이 꽃과 나비들을 한껏 달아오르게 했다.

도화는 문득 왜 이향이 나오지 않는 걸까? 궁금해졌다. 돌아보았다. 조정의 대신이란 자들이 세자가 한성부에 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에만 흥분해 불만을 토해냈다. 세자가 왜 나오지 못할까를 생각할 머리도 없는 자들이었다. 도화는 500년 전이나 후나 빈 깡통에 돌멩이 하나만 든 자들이 판치는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심했다. 그러다 이럴 때가 아니지 싶어 서둘러 백겸과 창이에게 향했다.


“이제 되었느냐?”

“예 저하...”

“그리도 좋으냐?”

단진의 처소엔 여전히 수많은 촛불이 너울너울 춤추고 있었다. 향과 단진이 마루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단진은 어찌나 좋은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향은 그런 단진을 보며 미소 지었다. 단진의 옆에는 반쯤 먹다 만 죽과 물이 있었다.

“더 먹거라.”

“많이 먹었습니다...”

단진이 향을 물끄러미 보았다.

“저하......”

“몸이 불편한 것이냐? 말해 보거라.”

“저하...소인 청이 있사옵니다.”

향이 웃었다.

“마지막 청을 이미 하지 않았느냐!”

“저하...오늘 밥을 먹는다고 내일도 배가 부르겠습니까? 오늘의 마지막 청이란 뜻이었사옵니다. 내일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단진이 실망스런 눈으로 향을 보았다.

향이 단진을 잠시 보다가 말했다.

“나를 위한 청은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저하...”

“앞으로는 너를 위한 청을 하거라. 일이 고단하다, 편한 일을 하게 해 달라 청하거라. 처소가 불편하다, 좋은 처소로 바꿔 달라 청하거라. 필요한 게 있으니 달라 청하거라. 네게 필요한 걸 달라 떼를 쓰거라. 다 들어줄 것이다.”

“허면 주십시오. 소인이 가장 갖고 싶은 건...”

단진이 향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강건하신 저하의 미소입니다. 매일 매일 저하의 밝은 미소를 주십시오. 소인은 그거면 됐습니다.”

단진이 미소 지었다.

향은 곳간에 곡식이 썩어가도록 쌓아놓는 대신들을 떠올렸다.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그들의 욕심을 떠올렸다.

다 준다, 그리 말을 해도 미소 한 자락이면 좋다고 하는 단진을 보았다. 단진의 그 마음이 너무 어여쁘면서도 주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단진의 작은 손에 태산이라도 쥐어주고 싶었다.

향이 잠시 보다가 처소를 둘러보며 말했다.

“날이 추워지고 있는데 이곳에서 겨울을 나기 힘들 것이다. 처소를 옮겨주라 이르겠다.”

“아니옵니다 저하...여기가 좋사옵니다. 제 추억도 있고...필요한 건 다 있습니다. 박 내관님이 이리도 불을 많이 가져다 놓으시어 따뜻합니다...박 내관님 덕분에 이런 호강이 없습니다. 촛불로 이리 따뜻하게 지내는 건 소인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단진의 말에 향이 웃었다.

“소인 걱정은 마십시오. 박 내관님이 가죽신도 두 개나 주시고. 필요한 건 박 내관님이 다 가져다 주십니다.”

단진은 환하게 웃었지만 얼굴은 창백했다.

“이제 자도록 하거라.”

“아닙니다 저하...졸리지 않사옵니다...”

향은 단진을 걱정스레 보았다.

“얼굴이 많이 상했다.”

“아닙니다 저하...소인은 끄떡없사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루 이틀 밤을 새면 푹푹 쓰러지지만, 소인은 체력이 좋아 저하를 위해선 한 달도 일 년도 버틸 수 있습니다. 오늘 산책을 나가야 합니다. 건강을 위해선 꾸준히 운동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은 소인이 저하를 동궁전까지 모시겠사옵니다.”

단진이 벌떡 일어났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단진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려 하자 향이 서둘러 단진을 잡아당겼다.

향의 품 안으로 작은 단진이 들어왔다. 향의 품 안에 한 세상이 있었다.

따뜻했다. 단진의 귓가에 향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살아 숨 쉬는 그 소리가 너무도 좋아 단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단진은 눈을 감고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듣고 있었다.

단진은 향의 품에서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백겸과 창이가 장터로 들어섰다. 백겸과 창이는 도화에게 내일 이향이 나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했지만 잠시 뿐이었다. 이향으로 인해 단진이 위험에 처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나비문신이 들어앉았다. 이제부터 나비문신을 찾아야 했고 그들과 싸워야 했다. 이기기 위해선 그들에 대해 알아야 했다.

백겸과 창이는 함길도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백겸과 창이가 백 미터 달리기를 하듯 앞만 보며 빠르게 달렸다. 그 뒤를 승무와 무장한 수많은 야인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백겸이 달리다가 발이 미끄러졌다. 달리던 속도 때문에 데굴데굴 내리막으로 굴렀다. 창이가 잽싸게 미끄러지듯 내려가 백겸을 일으켰다. 이때다 싶어 승무와 야인들은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창이와 백겸은 또다시 달렸다.

승무가 소리쳤다.

‘놓치지 마라! 우리의 형제를 죽인 원수다, 우리를 배신한 놈이다!’

백겸과 창이는 절벽 끝에 다다라서 멈춰섰다.

승무가 증오에 가득 차 소리쳤다.

‘백겸 우리의 원수, 네놈의 껍질을 벗겨 죽일 것이다!’

‘창이 이 배신자! 네놈을 죽여 형제의 원한을 풀어줄 것이다!’

승무의 화살이 날아와 창이의 왼쪽 어깻죽지에 박혔다. 백겸과 창이는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산속 절벽에 수많은 횃불을 든 야인들이 있었다.

‘우리의 대의를 위해선, 단 하나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된다! 반드시 시신을 찾아라! 산을 깎아서라도 찾아야 한다! 강물을 말려서라도 찾아야 한다! 다시 한 번 샅샅이 뒤지거라!’

절벽 아래 움푹한 곳에 백겸과 창이가 간신히 매달리듯 서 있었다.


백겸이 멈춰서 창이를 보았다.

“대의, 그때 우리가 절벽에 매달려 있을 때 어떤 놈이 분명 대의를 위해서라고 했어. 그들의 대의라는 게.”

창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거였어. 나는 놈들과 같은 편이었고. 너는 그들의 대의를 알아냈기에 놈들이 죽이려 한 거고.”

“왜? 왜 야인들이...”

“이건 역모야!”

창이가 말을 하자마자 백겸이 그를 잡았다. 그들 옆으로 관원들이 지나갔다.

백겸은 관원들에게 시선을 둔 채로 다급히 말했다.

“여기 조선이야. 입에 담지 마. 그 말을 뱉는 것만으로 죄가 될 수 있어.”

창이는 백겸을 물끄러미 보다가 큰소리로 외쳤다.

“왜 죄가 돼! 내 입으로 말도 못해! 난 말할 수 있어!”

백겸은 당황했다. 관원들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창이가 소리쳤다.

“이건 연모야!”

백겸이 벙 쪄서 보자 창이가 말했다.

“이건 연모라고! 널 연모해!”

그들이 서 있는 곳은 국밥집 사거리였다. 국밥집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술잔을 든 채로, 술병을 든 채로 그들을 보았다.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관원들은 잔뜩 찌푸렸고 국밥집의 사내들은 대놓고 손가락질을 해댔다. 오가는 아낙들도 그들을 힐끗 보았다.

창이는 매번 속는 백겸이 재밌어서 웃음이 터졌고 백겸은 매번 알면서도 속아서 짜증이 났다.

창이가 웃으며 백겸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배가 고파 그래, 밥이나 먹자, 먹어야 기운 내서 싸우지! 놈들은 떼로 덤빌 텐데.”

백겸이 어이없다는 듯이 보자 창이가 웃으며 덧붙였다.

“연모해!”


불이 훤히 밝혀져 있는 국밥집에 창이와 백겸이 앉았다. 국밥집은 술을 마시는 손님들로 가득 차 북적였다.

퉁퉁한 주모는 창이와 백겸을 보자 반색했다. 주모는 둘을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세상에서 세월을 비켜가는 유일한 건 마음이었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았다. 쭈글쭈글 늙어가도 훤칠한 백겸과 창이를 보면 봄날이었다. 가끔은 마음이 늙어가고 몸은 그대로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퉁퉁한 주모는 그릇이 넘치도록 국밥을 담아 백겸과 창이 앞에 놔줬다. 백겸과 창이가 어찌나 달게 먹는지 주모는 국밥을 두 그릇을 더 말아다 주고 물까지 떠다줬다. 물이 넘쳐 주모의 손이 젖었다. 주모가 그들이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손님들이 여기저기서 불러댔다. 주모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춘몽에서 벗어나 국밥집 주모로 돌아갔다.

국밥이 들어가자 백겸과 창이의 허기진 뱃속이 요동을 쳤다. 마른 사막에 물을 붓듯 계속 먹어도 배가 차지 않았다. 두 그릇을 먹고 나서야 살 것 같았다.

배가 부르고 나니 밀어두었던 궁금증이 들어왔다. 백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백겸이 배운 문종은 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왕이었다. 신하와의 약속을 어기지 않는 왕이었다. 그러기에 원칙을 지키며 연달아 부모의 상을 치르다 몸이 쇠약해져서 세상을 떠났다. 신하들이 아무리 간곡히 쉬기를 청해도 문종은 단 하루도 정무를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그런 문종이 야인과의 첫 화합을 뜻하는 무예시합에 나오지 않는 게 이상했다.

백겸의 생각이 밖으로 나왔다.

“왜 갑자기 문종이 안 나오는 걸까...이해가 안돼...”

창이도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 밖에 없지.”

백겸이 보았다. 창이는 말을 이었다.

“문종은 효자잖아. 세종은 움직이는 병원이라고 할 만큼 당뇨부터 온갖 병을 달고 사니까, 세종이 아픈 거 아닐까? 그거 아니고서는 안 나올 분이 아니잖아.”

창이가 다리를 평상 밖으로 내밀며 말했다.

“여기 있을 거지?”

“너 밤마다 대체 어디 가는 거야?”

창이의 얼굴에 그리움이 스쳤다.

“연모하러.”

백겸이 손을 내밀었다.

“돈 주고 가. 단검 사게!”

“돈 맡겨 놨어?”

“대출이야!”

“야, 서여름, 나는 조선에 너의 뻔뻔함을 알기 위해 온 것 같다. 어쩌면 이리도 뻔뻔할까, 호랑이 불러 들였다고 난리 피울 때는 언제고!”

“돈은 죄가 없잖아.”

창이가 옷섶에서 돈 주머니를 꺼내 백겸에게 던졌다.

이때 전혀 반갑지 않은 얼굴이 또다시 나타났다. 삼년은 어느새 그들 앞에 앉아 있었다.

“나 보러 온 거야? 벌써 밥 다 먹었어? 같이 먹지! 여기 국밥 한 그릇!”

퉁퉁한 주모가 삼년의 앞에 먹다 남은 것 같은 국밥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그지 발싸개 같은 놈아! 너 한 번만 더 부엌에서 주먹밥 훔쳐 먹으면 맞아 뒤질 줄 알어! 내가 모르는 줄 알았냐?”

삼년은 입을 삐죽 내밀고는 주모가 간 다음에 말했다.

“몸이 생각과 달라. 자꾸만 훔쳐. 훔치면 짜릿해. 도벽이 이래서 무서운가 봐.”

백겸과 창이는 벙 쪄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삼년은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대답했다.

“걱정 마! 내일 궁 앞에서 지키고 있다가 문종 나오면 바로 보고할게.”

백겸과 창이는 삼년에게 내일 이향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삼년이 더 말을 하려는데 백겸과 창이는 국밥집을 나섰다.


승무와 석이 장검을 들고 걸어왔다. 승무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르고 있었다. 순포가 이향이 내일 한성부 무예시합에 나오지 않는다는 긴급한 소식을 전했다. 용무용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순포가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종서가 용무용을 불러 같은 소리를 했다.

승무는 용무용의 지시를 기다렸지만 용무용은 바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우리 형제를 죽인 그놈들만 없다면, 이대로 불러들이는 게 맞다. 허나...가장 좋은 때를 기다리자. 그때는 이향 뿐 아니라 더 많은 피를 볼 것이다. 가서 형제들에게 때를 기다리라고 연통해라.’


승무와 석은 내일 도성으로 들어오기로 한 형제들에게 밀지를 보냈다. 호와 결은 오늘밤 도성으로 들어오기로 한 형제들에게 연통하기 위해 숭례문으로 갔다.

승무는 용무용의 주먹 쥔 손이 떨리는 걸 보았다. 승무는 지난번 형제들을 죽인 놈들을 놓친 게 자신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승무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빗속에서 수레를 끌던 놈을 찾아 반드시 죽일 것이다.

석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저 형님...”

승무가 보았다.

“저...지난번에 진양을 쫓을 때 창이형님을 본 듯합니다.”

승무가 놀라 멈춰섰다.

“지금 뭐라 했느냐?”

“창이형님을 본 듯합니다.”

“그 얘길 왜 지금에서야 하느냐?”

“창이형님은 죽지 않았습니까! 해서...”

승무는 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너는 가서 형님께 형제들에게 연통을 넣었다고 전하거라. 또한 확실치 않으니 창이 얘긴 꺼내지 말거라. 나는 어디 좀 가볼 데가 있다.”

“예 형님!”

석이 가고 나서 승무는 잠시 생각을 했다. 허면 지난번에 본 자가 창이란 말인가.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승무는 그냥 갈까 하다가 바로 옆에 있는 상점의 처마 아래로 들어갔다. 승무의 얼굴로 빗줄기가 흘러내렸다. 빗줄기를 보자 또다시 돼지 수레를 끌던 놈이 떠올랐다.

삼년이 상점 안에서 나왔다.

“비가 오네...”

삼년은 슬쩍한 단검을 꺼내보고는 다시 옷 속에 감추었다.

승무가 힐끗 삼년을 보고 내리는 빗줄기를 보았다.

백겸이 단검 두 개를 들고 상점 안에서 나왔다.

백겸은 삼년이 따라온 것도 거슬렸지만 도둑질까지 하자 짜증이 났다.

백겸이 삼년을 힐끗 보고 말했다.

“야, 이재열, 그만 좀 훔쳐.”

삼년을 사이에 두고 백겸과 승무가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마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요란했다.

승무의 눈길이 백겸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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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7 cr*****
    작성일
    20.09.17 13:40
    No. 1

    이렇게 단진이 향을 바꾸어놓네요!! 창이와 백겸도 둘이 있을때 케미가 너무 좋아요~~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찬성: 6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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