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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름 님의 서재입니다.

숙원 홍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서여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9
최근연재일 :
2021.04.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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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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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숙원 홍씨 45. 단진의 고백

DUMMY

숙원 홍씨 45. 단진의 고백


박 내관은 오는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박 내관과 내의관, 단진이 함께 공두의 처소에 들었다. 공두는 단진의 말대로 심각한 상태였다. 누렇게 떠서 정신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박 내관에게 공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궁이란 본디 소문이 빠른 곳이었다. 단진으로 인해 저하의 웃음소리가 동궁전 밖으로 나갔다. 부왕이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그보다 어젯밤 일이 소문이 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동궁전에서의 일이 밖으로 나가는 것과 저하께서 나인의 처소에서 밤을 지새운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박 내관은 공두가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자 더욱 화가 치밀었다. 어젯밤 마음 고생한 걸 생각하면 공두를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았다. 저하께서 단진의 처소에 머무르는 동안 우산을 가지러 간 공두는 함흥차사였다. 한참 만에 나타난 공두는 빈손이었다. 너무 급히 가느라 우산이 어딨는지 물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자신이 직접 가서 우산을 가져오고 싶었지만 저하를, 고뿔보다 역병보다 더 위험한 홍단진 옆에 두고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공두에게 우산을 가져오라고 했다. 공두는 나무를 베서 해 가리개를 만들고도 남을 시각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단진은 공두를 걱정스레 보고 있었다. 박 내관의 눈길이 공두에서 단진에게 향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못해 머리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어젯밤의 장대비로도 불길을 끌 수 없을 만큼 타올랐다.

내의관이 공두의 맥을 잡은 손을 놓았다.

“어찌 이런 몸으로...힘들었을 터인데...”

내의관이 장침을 꺼냈다. 장침이 공두의 몸에 들어가자 단진은 저도 모르게 박 내관의 옷깃을 잡았다. 박 내관이 거칠게 단진의 손을 뿌리쳤다.

박 내관은 이 애물단지를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전처럼 이년저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혹시라도...박 내관은 도리질했다. 죽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단진을 천하다 하면 저하의 안목이 천해지는 것이 되고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박 내관이 뒷목을 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단진이 눈치 없이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장 내관은 일어날 것입니다!”

박 내관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그래! 일어나야지. 일어나야 내가 죽일 것이 아니냐!”

단진이 움찔했다. 공두는 더 끙끙거리며 고통스러워했다.

박 내관이 공두를 살피다 조금은 걱정스러워 내의관에게 물었다.

“심각한 것이냐?”

“힘들었을 것입니다. 허나 탕약을 지어먹이면 금세 나을 것입니다!”

“무슨 병인데 이러는 것이냐?”

“오래도록 통변을 하지 못한 듯합니다.”

박 내관과 단진이 벙찐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내의관이 공두의 배 전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이 전부 뒷간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박 내관이 눈을 부라리며 공두를 보았다.

“이런 더러운 놈 같으니라고, 이젠 하다하다 똥 싸는 걸로도 내 속을 끓이는구나!”

단진의 눈에 구석에 떨어져 있는 곶감이 보였다. 매일 같이 곶감을 먹던 공두가 떠올랐다. 공두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단진은 박 내관이 행여나 곶감을 볼까 싶어 얼른 감추었다. 그러다 부왕 앞에서 박 내관을 부르며 뛰어가던 자신이 떠올랐다. 단진은 엉덩이를 슬금슬금 뒤로 밀며 도망칠 자세를 취했다. 문까지 이르렀을 때 박 내관이 단진을 보았다. 박 내관의 눈에서 자동화살이 마구 퍼부어졌다. 단진이 배시시 웃었다.

박 내관은 부들부들 떨더니 벌떡 일어섰다. 발에 뭔가 밟혔다. 박 내관은 발밑의 곶감을 보았다.

“이 더러운 놈이!”

박 내관은 눈이 팽 돌아 공두의 배를 걷어찼다. 단진은 자신이 맞기라도 한 듯 움찔했다. 때마침 내의관이 놓은 침이 효과를 나타냈다. 공두의 몸에서 요란한 방귀가 “뿌우웅~” 하고 엄청난 악취를 풍기며 나왔다.

단진은 입을 틀어막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박 내관 역시 너무도 고약해 헛구역질을 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단진이 박 내관의 눈치를 보며 걸었다. 단진이 향의 명을 어기고 궁 밖으로 나갔는데도 박 내관은 말이 없었다. 박 내관이 화내고 겁박해야 하는데 아무 말 없이 노려보기만 했다. 단진은 그것이 더 불안하고 불편했다. 또다시 공두를 끌고 가 고문을 할까 염려가 됐다.

단진이 더는 참지 못하고 멈춰서 말했다.

“박 내관님, 소인이 저하의 명을 어겼습니다,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사료됩니다, 그렇게 노려만 보시면, 저도 불편하고 박 내관님도 일을 하셔야 할 텐데, 서로 불편하니, 깔끔하게 한 대 때리고 잊어버리심이 어떠신지요! 다시는 저하의 명도 박 내관님의 명도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

단진은 향의 말이 떠올라 또다시 말했다.

“하오나 박 내관님, 소인은 저하께 다치지 않겠다 약속을 했사오니, 다치지 않게 때려주십시오!”

박 내관은 부글부글 끓어 몸이 벌벌 떨릴 지경에 이르렀다. 박 내관이 단진에게 한 걸음 다가왔지만 단진의 시선은 박 내관의 등 뒤로 향했다.

박 내관이 더는 참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작게 말했다.

“네 이년, 요망한 세치 혀를 뽑아버리기 전에 닥치거라. 저하 앞에서 나불대는 걸로도 모자라 주상전하 앞에서까지...네년이...네년이 요망한 세치 혀도 모자라 몸뚱이를 저하 앞에 드러내고...다시 한 번 저하께 몸뚱이를 드러내면 갈기갈기 찢어죽일 것이다!”

박 내관은 너무 화가 나 입을 열긴 했지만 입 밖으로 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해서 이를 악물고 입을 닫고 중얼거리느라 표정만이 더욱 기괴해질 뿐이었다.

박 내관이 화를 누르고 이번엔 목소리를 내서 말했다.

“또다시 저하의 명을 어긴다면 물고를 낼 것이다! 알겠느냐?”

박 내관은 그제야 단진이 보이지 않는 걸 알았다. 박 내관이 둘러보니 단진이 저만치 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동궁전으로 걸어가던 향은 달려오는 단진을 보고는 멈춰섰다. 단진은 향이 자신을 보고 있자 너무 좋아서 더욱 속도를 냈다.

“멈추거라!”

단진은 제대로 듣지 못하고 달리는데 향이 또다시 말했다.

“멈추라 했다!”

단진이 깜짝 놀라 멈춰섰다. 단진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다. 먼발치에서 향이 보고 있었다. 단진은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

단진을 쫓아 달려오던 박 내관은 자신에게 한 말인 줄 알고 그대로 서 있었다.

향과 단진이 서로를 보고 있었다. 향이 한 걸음 단진을 향해 내딛었다. 향이 걸어왔다. 단진은 그대로 있었다. 향이 다가왔다.

푸르른 나무 아래에 두 사람이 마주 섰다.

향이 단진을 잠시 보다가 말했다.

“뛰지 말거라! 다치지 않았느냐!”

단진은 생각지도 못한 말에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살랑살랑 나뭇잎들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그럴 때마다 햇살이 반짝여 눈이 부셨다. 단진은 향을 보고 있었다.

향이 단진의 멍든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좀 어떠하냐?”

“...야...약을 발라 괜찮사옵니다.”

바람이 단진의 얼굴에 닿았다. 향의 손길이었다. 단진은 저도 모르게 볼이 발그레해졌다. 단진은 가슴이 두근거려 터질 것 같았지만 향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단진은 향을 바라보았다.


향이 단진의 등에 약을 발라주었다.

‘네가 또다시 없어진다면, 네가 죽은 것이니, 잊으라 했느냐?’

‘그리 할 수가 없다.’

‘너는 나를 지키겠다 했으나, 네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있다, 해서 더는 널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다.’

‘네가 죽는 일은 없을 것이고, 네가 내 곁을 떠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너의 목숨은 내 것이라 했다, 너는 나의 것이라 했다, 허니 귀히 여기거라, 알겠느냐?’

‘다시는...’

향이 잠시 보다 말했다.

‘다치지 말거라.’


단진은 좋았다. 너무 좋았다. 그저 좋았다. 마냥 좋았다.

단진이 향을 올려다보았다.

“저하...”

향이 보았다.

“저하를...좋아합니다...”

향이 단진의 눈을 보았다. 단진이 향의 눈을 보았다. 향의 입이 열리는가 싶더니 미소 지었다. 향의 미소에 대답이라도 하듯 일순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나뭇잎이 밤새 머금은 빗방울을 뿌려댔다. 단진이 서둘러 까치발을 하고 양손을 모아 향의 얼굴을 가렸다. 단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향의 하얗고 큰 손이 단진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단진과 향은 서로를 보았다. 약속이나 한 듯이 손을 내리고 올려다보았다. 푸르른 나무 사이로 햇살에 빗방울이 반짝이고 있었다. 향과 단진은 서로를 보며 활짝 웃었다.


“형조판서라니요! 형조판서라니요!”

기방 별채에 호조판서가 상석에 앉아 있고. 장문호와 공조참판 신민, 맞은편에 예조판서 박우성, 형조참판 민계수가 앉아 있었다. 호조판서의 옆에 기녀 난이가 앉아 있고 예조판서와 신 참판 사이에 초이가, 장문호와 민 참판 사이엔 도화가 앉아 있었다. 술상은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잘 차려져 있었고 대신들은 상다리를 부러뜨릴 만큼 성이 나 있었다.

도화는 술상의 산해진미를 보고 대신들을 보고 기녀들을 보았다. 도화는 기녀가 먹음직스런 전 옆에 놓인 종지의 간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먹지 않아도 꼭 있어야 하는 그런 존재였다.

호판이 노여워했다.

“전하께서 어찌 이러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제껏 형판 자리를 비워둔 게 김종서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장문호가 소리를 높였다.

“우리의 천거를 마다하신 이유가 김종서였습니다. 어찌 이러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호판이 술상을 손으로 탁 쳤다.

“김종서라니요! 김종서라니요!”

민 참판은 술을 계속 들이켰다. 민 참판은 이제껏 자신이 형조판서가 될 거라 여기고 있었고 이곳에 있는 모두가 민 참판을 밀고 있었다.

민 참판이 술을 벌컥 들이키고는 말했다.

“이러실 수는 없지요. 전하께서 제게 당장이라도 형조판서 자리를 줄 것처럼 하셨습니다. 제가 있으니 빨리 형조판서를 뽑을 이유가 없다, 그리 말씀해 놓으시고, 이제 와서 김종서라니요!”

호판이 못마땅하게 말했다.

“전하께선, 떡은 주지도 않으시면서 떡방아를 찧게 하는 재주가 있는 분 아닙니까! 전하를 믿지 말라 그리 말했거늘, 그때 내 말대로 무조건 밀어붙여야 했습니다! 이게 뭡니까!”

예판이 말했다.

“대감, 지금은 이미 벌어진 일을 두고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눈엣가시 같은 김종서가 돌아왔습니다, 얼마나 휘젓고 다닐지 알 수 없으니 대비를 해야 합니다!”

모두가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똘똘 뭉쳐야 합니다!”

호판이 술을 들이켜고 말했다.

“눈꼴사나워서는, 호조의 일까지 하겠다 나서는 거 보셨습니까! 저만 깨끗한 인사가 한양 땅에 나타났어요! 저만 충신인 인사가 한양 땅에 나타났어요! 저만 똑똑한 인사가 한양 땅에 나타났어요!”

호조판서가 다시 상을 거칠게 쳤다.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모두가 말없이 동상이몽에 빠졌다.

예조판서는 호판의 집안사람으로 판서가 될 때 호판의 도움을 받은 그의 사람이었다. 자신이 판서가 될 때 자질을 운운했지만 호조판서와 판한성부사가 방패막이가 돼 주었다. 김종서로 인해 이들이 무너진다면 자신에게까지 타격이 올 것이다. 판서가 되고 보니 대장 노릇이 하고 싶어 호조판서와 조금 거리를 둘까 생각도 했지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끝까지 이들 곁에 있어야 편하게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신 참판은 예조판서처럼 자신도 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들의 수족 노릇을 하고 있는데 김종서라니 말이 되질 않았다.

호조판서는 장문호에게 양원 마마는 대체 궁에서 잠만 자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었다. 호판의 집안은 고려 대대로 나라의 재정을 맡아온 권문세족이었다. 태조가 손을 내밀어 재정을 맡아 달라 사정을 해놓고 이제 와서 조선이 안정을 찾는 것 같으니 자신들의 세력을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어불성설이다. 호판은 견고히 세력을 만들어 자신의 아들에 손자의 그 손자까지 나라의 재정을 맡을 것이다.

장문호는 김종서가 형조판서가 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양원 마마를 세자빈 자리에 앉힐 수만 있다면 김종서가 아니라 그 할아비와도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언제든 이들의 손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김종서와 손을 잡는 건 불가능했다. 김종서의 손을 잘라내지 않는 한 자신의 손을 잡지 않을 것이다. 결국 장문호는 어떻게 해서든 이들과 함께 세력을 키워 세자빈 마마를 만들어야 했다.

장문호가 호조판서를 보며 심각하게 말했다.

“역당도 잡겠다 나설 거고, 구휼미사건까지 다시 들쑤시고도 남을 위인입니다. 우리도 방비를 해야 합니다!”

호조판서가 한쪽 다리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함길도 야인들이라도 다 풀어야겠습니다! 그래야 돌아갈 게 아닙니까!”

호조판서는 이거다 싶어 몸을 앞으로 내밀며 장문호에게 말했다.

“김종서가 데려온 야인을 판부사대감께서 데리고 계시기로 한 건 잘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득이 될 수 있습니다.”

장문호가 박자를 맞추었다.

“야인이 문제가 되면 김종서에게 뒤집어씌우면 되고, 야인이 득이 된다면 제 공으로 만들면 되겠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없는 죄도 만들어 김종서에게 씌우면 되겠습니다!”

호조판서가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장문호가 말했다.

“한성부에서 야인의 무예실력을 겨루는 날을 속히 잡아야겠어요!”

도화는 김종서란 이름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 머리가 바빠졌다. 도화는 대신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틈을 타 밖으로 나갔다.


방에서 나온 도화는 마루에 서서 생각을 정리했다.

어젯밤 창이는 아침이 밝아서야 들어왔다. 그 덕분에 백겸과 둘이서 밤을 지새우게 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백겸에게 함길도에서의 일을 자세히 들었고 그들의 신분이 분명치 않다는 게 불안했다. 야인인 창이가 지금 한양에 와 있는 야인들과 관계가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백겸이 무슨 원한을 사고 있는지를 알아야 대비할 수 있었다. 단진이 향에게 한글 편지를 쓴 게 확실한지 알아야 했고, 어젯밤 시신은 처리가 잘 됐는지 알아야 했고, 삼년이 돌아갈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게 사실인지 알아야 했다.

도화는 가장 쉬운 문제부터 풀기로 했다. 삼년을 불러와야 했다. 도화가 서둘러 가려는데 기분 나쁜 입김이 느껴졌다. 장문호가 도화의 목덜미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도화가 잽싸게 돌아서 장문호를 확 밀어냈다.

“성미는 여전하구나! 허니 내가 널 아끼는 것이다! 꽃이란 가시가 있어야지!”

도화는 장문호의 귀싸대기를 갈기고 싶었지만 손이 닿는 것도 소름끼쳤다.

장문호가 기세등등해져서 말했다.

“기다려 보거라, 위기는 기회라 하지 않느냐! 우리 양원 마마를 세자빈 자리에 앉히면, 네게 부귀영화를 줄 것이다, 허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말거라!”

도화는 고개를 돌리고 혼잣말했다.

“세자빈 같은 소리하네. 김칫국 너무 마시면 속 뒤집어진다. 지랄들 그만하고 가서 일이나 해라. 좀...나랏돈으로 그만 처먹고...”

도화는 장문호를 보며 말했다.

“부귀영화도 필요 없으니 좀 가게 해주시지요!”

도화가 마루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으려는데 장문호가 말했다.

“이번에 한성부로 저하께서 나오실 것이다. 그 일만 끝나면 일간 들를 것이다, 허니 서운해 말거라!”

도화가 돌아보았다.

“세자저하께서? 언제?”


기녀들의 웃음소리가 기방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정각 위에서 담장 앞에서 나무 그늘 아래서 기녀들이 부채질을 하며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기방의 모든 기녀들이 나와 한 곳을 보고 있었다. 기녀들은 대낮인데도 화려한 복색이었다. 속이 훤히 보이는 저고리를 입고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연지를 바르며 서 있는 기녀, 명나라에서 들여온 향수를 연신 뿌려대며 걸어오는 기녀. 연못에 앉아 치마를 슬쩍 걷어 올리고 앉아 부채질을 하는 기녀. 각양각색이었다.

그 중심에 백겸과 창이가 있었다. 백겸과 창이가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도화가 백겸과 창이에게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방에만 있자니 답답해 마루에 나왔는데 갑자기 기녀들이 몰려왔다. 백겸은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들을 보고 있었다.

창이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창이는 어떻게 하면 단진을 궁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있었다.

월은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속이 비치는 검정색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저고리 사이로 젖무덤이 훤히 보였다. 월은 백겸과 창이의 사이에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며 웃었다. 월은 부채질에서도 교태가 흘렀다. 월이 부채를 탁 접고는 말했다.

“우리 도화 성님, 능력도 좋소, 어젯밤엔 분명, 이 소년 같은 사내가 방에 들어갔는데, 세상에...아침에 보니, 수컷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이 사내가 나오질 않겠소!”

기녀들이 까르르 웃었다.

월이 몸을 야릇하게 흔들며 말했다.

“내가 잘못 봤나 싶어 봤더니, 이 소년 같은 사내가 뒤이어 나오는 게 아니겠소! 우리 성님이, 두 사내를 품었는데 내 어찌 가만있겠소! 이 경사를 알려야지!”

기녀 명이 부채질을 하며 백겸을 보며 말했다.

“도화 성님, 진짜 능력도 좋소! 이런 꽃 같은 사내는 어디서 구했단 말이오?”

월이 박자를 맞췄다.

“꽃이 그냥 꽃이겠소!”

월이 백겸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악기를 타듯 움직였다.

“이 꽃은 바위에 핀 꽃이오! 향기도 맡을 수 있고 바위에 누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어찌 좋을 수 있겠소!”

기녀들이 까르르 웃었다. 백겸이 월의 손을 조용히 떼어냈다. 월이 까르르 웃었다.

서둘러 오던 도화가 멈춰섰다. 백겸이 월의 손을 치웠다고는 하나 너무 천천히 행동한 것처럼 보였다. 도화는 순간 치밀어 백겸을 노려봤다.

초련이 창이를 보며 말했다.

“허면, 이 싱싱한 과일 같은 사내는 어디서 구했을꼬?”

월이 창이의 허벅지를 만져보며 놀랐다.

“이 사내도 바위에 핀 열매나무요! 달콤한 열매를 바위에 누워 먹을 수 있으니...아, 우리 도화 성님이 바위를 좋아하는지 오늘에서야 알았소!”

모두가 까르르 웃었다.

월이 창이를 보며 야릇하게 말했다.

“내가 도화 성님이랑, 성님 아우 하는 건 알고 있소? 오늘 밤, 내 방에 들르는 건 어떻겠소?”

월이 창이의 허벅지에 손을 대자 창이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떼어냈다.

“별로. 나는 일편단심이라. 도화 성님밖에 없어서!”

도화가 더는 못 참고 버럭 소리 질렀다.

“야! 다들 가라!”

월은 도화의 팔짱을 끼고 창이에게 야릇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성님! 성님! 이 사내 좀 보소, 절개는 계집이 아니라 사내가 있어야 하는 법을 알고 있질 않소! 조선 팔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절개 있는 사내가 여기 있었소!”

도화가 월을 밀쳐내고 백겸과 창이 앞에 섰다.

창이가 도화를 보며 말했다.

“우리 팔려왔어? 원숭이야?”

창이가 백겸을 툭 치며 말했다.

“얘는 원숭이 체질 같아!”

백겸이 말했다.

“야! 스크린은 저쪽이야! 이쪽은 관객석이고! 5D!”

도화의 시선이 잠깐 백겸의 허벅지에 닿았다. 도화가 성질을 팍 냈다.

“조용히 해! 지금 장난할 때야?”

백겸이 당황해 도화를 보았다. 눈치 빠른 월이 부채로 백겸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도화 성님 마음은 꽃바위네그려....호호호호호”

도화의 얼굴이 벌게졌다.

창이가 장난스레 말했다.

“장난할 때 아니면 잘 때야?”

도화가 말을 하려는데 몸종 년이가 와서 말했다.

“아씨, 삼년이란 노비가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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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숙원 홍씨 48. 백겸과 창이, 진양대군을 만나다 +2 20.08.20 2,269 11 21쪽
47 숙원 홍씨 47. 목멱산의 결의 +4 20.08.17 2,300 11 21쪽
46 숙원 홍씨 46. 계유정난을 막아라 +2 20.08.13 2,334 11 20쪽
» 숙원 홍씨 45. 단진의 고백 +2 20.08.10 2,349 11 20쪽
44 숙원 홍씨 44. 홍단진, 주상전하를 만나다 +2 20.08.06 2,364 12 18쪽
43 숙원 홍씨 43. 백겸과 창이 한양 기방에 들다 +1 20.08.03 2,387 11 16쪽
42 숙원 홍씨 42. 비 오는 밤, 사라진 자들 +3 20.07.30 2,400 11 18쪽
41 숙원 홍씨 41. 이향의 마음 +3 20.07.27 2,426 11 16쪽
40 숙원 홍씨 40. 꽃비 그리고 고려 제일 무사 창이, 조선 제일 무사 백겸 +1 20.07.23 2,443 11 20쪽
39 숙원 홍씨 39. 이향, 김종서와 야인을 만나다 +2 20.07.20 2,464 11 19쪽
38 숙원 홍씨 38. 운명적인 만남 +2 20.07.16 2,498 1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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