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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름 님의 서재입니다.

숙원 홍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서여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9
최근연재일 :
2021.04.12 11:00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215,230
추천수 :
1,167
글자수 :
809,561

작성
20.10.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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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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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22쪽

숙원 홍씨 59. 무예시합-3

DUMMY

숙원 홍씨 59. 무예시합-3


창이가 시합장에 들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창이를 향했지만 창이에겐 한 사람만 보였다.

이향.

향이 창이를 보았다.

창이가 향을 보았다.

하늘을 장식해 놓은 천이 나풀거렸다.

창이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향에게 인사했다. 고개를 들어 향을 보았다. 맑은 하늘 아래 향이 있었다. 향이 창이를 보며 미소 지었다.

북소리가 울렸다.

창이가 목검을 집으러 가다가 용무용과 눈이 마주쳤다. 용무용은 여전히 놀란 눈으로 창이를 보고 있었다. 창이는 용무용을 보고 순포를 보았다.

창이가 물었다.

“둘 중 누구와 겨루는 것이오? 둘 다요?”

용무용은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용무용은 창이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용무용은 모든 시선을 받고 있는 걸 알고는 서둘러 시합장을 나갔다. 용무용의 낯빛은 창백했고 심장이 맹렬히 뛰었다. 창이가 입을 여는 순간 대의는 저만치 멀어져 가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용무용은 아무 대책이 없었다. 용무용의 심장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창이가 목검을 잡고 진양에게 인사했다.

안평이 창이를 보며 말했다.

“형님. 저 자는 체격이 참 좋소. 키도 크고, 인물도 좋고, 눈빛도 좋고, 무사로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소. 실력도 있다면 말이오!”

“실력은 모르지만 낭만은 있는 놈이다!”

진양이 탁자에 팔을 얹고 창이를 보며 웃었다.


진양은 쉬는 시간에 김가에게 수상쩍은 놈이 있나 살피라고 했다. 김가는 기방에서 본 놈이 한성부 앞을 서성이고 있다고 했다. 진양이 나와 보니 창이가 있었다.

창이는 진양을 보자마자 큰 소리로 불렀다.

“대군마마!”

진양은 보고 있었다.

“돈을 갚으러 왔습니다!”

진양이 내려가 창이 앞에 섰다.

창이가 서둘러 말했다.

“무예시합에 상금이 걸려 있다 들었습니다. 제가 시합에서 우승해 그 돈으로 대군께 빌린 돈을 갚게 해주십시오!”

진양은 웃었다.

“네놈이 내 돈을 빌려가더니, 네놈이 돈 갚을 방법까지 내게 마련하라는 것이냐? 참으로 뻔뻔한 놈이구나!”

“예 대군마마. 제가 돈을 벌 방도가 이것 밖에 없습니다. 돈이 필요합니다.”

진양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네놈이 전에 그러지 않았느냐? 사내가 한 여인을 지키는 것보다 더 대단한 일이 무엇이 있겠냐고? 아직도 그러하냐?”

창이는 단호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진양은 창이를 보다가 말했다.

“이기거라!”


창이가 목검을 들고 서서 순포를 보았다. 창이는 무심히 순포의 눈가에 베인 상처를 보았다.

순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순포는 당장이라도 창이를 베어야 했다. 창이가 입을 여는 순간 자신들의 50년 대의가 물거품이 될 게 자명했다. 거기다 순포는 창이와 호형호제하던 사이였다. 이놈이 배신한 걸로도 모자라 자신의 눈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백겸과 함께 도주를 했다. 죽은 걸로 위장해 놓고는 대의를 위한 첫걸음을 떼는 이 자리에 갑자기 나타났다. 것도 진양의 호위무사라니.

순포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창이는 순포의 눈이 사나운 맹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이는 다른 무사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김종서는 창이를 유심히 보았다.

창이와 순포는 목검을 든 채로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를 보고만 있었다. 순포는 죽일 듯이 노려봤고 창이는 대체 이 자가 왜 이럴까 하며 보고 있었다. 대신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창이가 순포에게 말했다.

“먼저 공격하시오!”

그 순간 순포가 분노를 터뜨리듯 검을 휘둘렀다. 창이가 순포의 검을 막아냈다.

빠르게 부닥치는 목검 소리만이 들릴 뿐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찌나 빠른지 움직이는데 바람소리가 났다.

진양은 흥분돼 가슴이 들썩였다. 순포의 실력이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김가를 비롯해 진양의 무사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사란 본디 강한 적을 만나야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었다.

모든 대신들은 입이 쩍 벌어졌고 시합을 보고 있는 모든 무사들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종서가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김종서는 갑작스레 등장한 창이의 실력에 놀라워했다. 문득 백겸이 스쳐갔다.

향은 창이를 보았다. 창이는 바람처럼 움직였다.

순포의 검은 거칠었지만 창이의 검은 바람 같았다. 처음엔 순포의 검을 창이가 막았지만 조금 지나자 창이가 순포를 공격했다. 순포는 창이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창이는 이제 끝낼 때가 됐다고 여기고 순포에게 일격을 날렸다. 순포가 검을 세워둔 곳으로 나동그라졌다. 순포의 머리 위로 검들이 쏟아졌다.

너무도 빠른 공격에 모두가 놀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고만 있었다.

진양이 활짝 웃었다. 창이가 목검을 내려놓고 향에게 인사했다. 그때였다. 순포가 진검을 빼들고 창이를 공격했다. 순포의 진검이 창이의 뒤에서 날아왔지만 창이가 재빨리 피했다. 살짝 창이의 얼굴을 스쳐 피가 배어나왔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양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순포 네 이놈! 당장 그만두지 못할까!”

별감들이 뛰어들려 하자 향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향은 창이와 순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진양은 부들부들 떨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순포는 진검을 창이에게 휘둘렀고 창이는 목검으로 막았다. 순포의 진검은 창이의 목검조차 뚫을 수가 없었다. 순포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검은 더욱 거칠어졌다.

용무용의 심장이 맹렬히 뛰었다. 호와 석, 결이 놀라 용무용을 보았다.

순포의 검이 앞에서 날아들자 창이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창이는 날듯이 목검을 휘둘러 순포의 가슴을 내리쳤다. 순포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창이가 진검이었다면 순포는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순포가 다시 맹렬히 달려들었다. 창이의 뒤로 대신들이 앉아 있었다. 순포의 검이 날아오자 창이가 순포의 어깨를 짚고 날듯이 뛰어올랐다. 순포의 검이 대신들이 앉은 탁자를 갈랐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대신들은 기겁하고 일어났고 탁자 위의 술잔과 음식이 바닥에 쏟아졌다.

창이가 다친 대신들이 있나 살피는데 순포가 검으로 내리쳤다. 창이가 목검으로 또다시 막아냈다. 순포의 공격이 어찌나 사나웠는지 창이의 목검이 부러졌다.

창이와 순포가 싸우다보니 향에게 가까워졌다. 박 내관과 최 무사와 정 무사를 비롯한 별감들이 향을 에워쌌다. 향은 또다시 손을 들어 비켜서라고 했다.

사람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보고 있었다. 창이는 순포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또다시 향에게 가까워지는 걸 느꼈다. 순포가 공격을 하자 창이는 날쌔게 부러진 목검을 잡았다. 창이가 목검을 잡은 손의 위치를 바꾸었다.

창이는 더는 봐줄 생각이 없었다.

순포가 뛰듯이 날아올라 창이에게 장검을 치켜들고 창이가 뛰어올라 목검으로 내리찍으려는 찰나에 용무용이 뛰어들었다.

용무용이 목검으로 순포를 가르듯이 쳤다. 순포가 붕 떠서 날아가 무사들 쪽으로 떨어졌다. 무사들이 모두 비켜섰다. 창이는 그대로 착지하고 나동그라져 있는 순포를 보았다. 순포는 배를 움켜잡고 일어서려 했으나 그대로 주저앉았다. 별감들이 순포를 에워쌌다.


용무용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향에게 말했다.

“저하...소신 감히 아뢰옵니다. 이는 공정한 시합이 아니옵니다. 한 사람은 목검인데 한 사람은 진검인 이런 승부는 있을 수 없사옵니다.”

“시합을 계속 하겠느냐?”

용무용이 창이를 힐끗 보고 말했다.

“저하. 오늘의 승자는 바로 이 무사이옵니다. 이 무사가 진검을 썼다면 저 자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소신 이 무사의 실력 뿐 아니라 무사로서의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고 사료되옵니다.”

긴장했던 대신들이 정신을 차리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호판이 벌떡 일어나 진양에게 노여워했다.

“대군께서 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 겝니까? 감히 세자저하 앞에서 진검을 휘두르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판이 벌떡 일어섰다.

“당장 저놈을 의금부로 끌고 가야 합니다. 저놈이 역당의 잔괴일 수도 있는 일입니다.”

“저런 자를 내보낸 대군께서도 그 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그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어찌 저하 앞에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단 말입니까!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모든 대신들이 일제히 진양을 공격했다.

김종서가 노여워했다.

“지금 뭣들 하는 짓입니까? 세자저하께서 계십니다. 어찌 언성을 높이시는 겁니까?”

향이 일어섰다. 모든 대신들이 따라서 일어섰다.

진양이 향의 앞으로 와서 엎드렸다.

“저하. 소신, 아랫사람을 통솔하지 못한 죄 죽어 마땅하옵니다. 저하. 소신을 벌하여주시옵소서.”

순포가 용무용과 눈이 마주쳤다. 순포는 정신이 번쩍 들어 납작 엎드려 외쳤다.

“저하..소신을 죽여주시옵소서. 대군께선 아무 잘못이 없사옵니다. 소신이 이기고 싶어 정신이 나간 것이옵니다. 저하...소신을 죽여주시옵소서...”

향은 순포를 보았다. 향은 순포가 간자임을 알고 있었다. 향이 진양을 보았다.

“진양은 일어서라.”

진양은 너무도 갑작스런 상황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향은 진양을 보고 대신들을 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본관이 진양에게 아랫사람을 통솔하지 못한 죄를 물어야겠습니까?”

향이 호판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허면, 나라의 구휼미를 빼돌려 백성이 굶어 죽어가게 만든 신료의 죄는, 본관의 죄인 것입니까? 전하의 죄인 것입니까?”

호판과 대신들이 모두 엎드렸다. 김종서와 진양 안평도 엎드렸다.

“저하...말씀을 거두어주시옵소서...저하...말씀을 거두어주시옵소서...”

향이 대신들을 보며 말했다.

“일어들 나세요.”

대신들이 하나 둘 일어섰다. 호판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향이 미소 지었다.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 둘입니다. 어찌 그건 보이지 않으십니까? 저 자가 규칙을 어기고 진검을 잡았음에도 이 무사는 끝까지 목검으로 대련을 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안위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다치지 않을까 살피기까지 했습니다.”

향의 시선이 창이에게 닿았다.

“이는 상을 받아야 할 일입니다.”

향의 시선이 용무용을 향했다.

“또한 조선에 귀부한 족장은 실력 뿐 아니라 됨됨이까지 갖췄으니 무예교관으로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귀한 인재를 얻었으니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김종서가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저하. 무예교관이 어찌 실력만 가지고 수하들을 통솔할 수 있겠사옵니까! 검술을 익힘에 있어 마음가짐과 자세부터 가르침이 마땅하온데 족장은 모든 걸 갖추고 있사옵니다.”

대신들은 불만스러웠지만 괜히 입을 잘못 놀렸다 불똥을 맞을까 싶어 다물고 있었다.

향이 말했다.

“또한 본관이 진양에게 허락한 일입니다. 허니 더는 거론하지 마세요!”

향이 장문호에게 말했다.

“판부사대감께서 복이 많으십니다. 귀한 재주이니 귀히 쓰세요 대감. 대감께서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장문호가 과하게 소리를 높였다.

“저하...망극하옵니다. 저하...저하께서 이리도 소신을 아껴주시어, 귀한 재주를 가진 인재를 소신에게 주시니 소신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소신 저하의 뜻을 받들겠나이다!”

호판과 예판이 찡그렸다.


시합이 끝났다는 북이 울렸다.

향이 김종서, 장문호와 정청으로 들어가 있는 사이에 관원들은 어질러진 시합장을 정리했다.

별감들과 겸사복, 군관, 사병들은 모두 창이를 보고 있었다.

창이는 이곳에 있으니 안심이 됐다. 한성부에 들어올 때 살펴보니 자객이 온다 해도 쉽게 이향에게 접근하지 못할 만큼 호위에 만전을 기울이고 있었다.

창이는 백겸이 단진이가 나오지 않게 잘 지키고 있나 싶어 걱정됐다. 한편으로는 단진이가 잠시라도 나와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마음은 두 갈래였다.

창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하늘에 뭉실 뭉실 구름이 떠다녔다. 구름이고 싶었다. 구름이 돼 궁으로 들어가 단진을 보고 싶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공두였다.

공두가 창이의 앞에 서서 목검으로 어깨를 툭 때렸다. 공두는 모든 무사들의 시선이 쏠려 있으니 창이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공두는 창이 앞에서 “야아압!” “얍!” 기합소리를 내며 목검을 기괴하게 흔들었다.

정 무사는 공두가 제정신인가 싶어 입이 쩍 벌어졌다. 최 무사와 박 내관은 저하를 따라가고 없었다. 정 무사는 별감 옷을 입고 내금위 망신을 시키고 있는 공두를 보자 화가 치밀었다. 공두의 일을 최 무사에게 보고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공두는 목검을 들고 “얍!” 소리를 내며 창이의 가슴을 탁 때렸다. 창이는 어이가 없어서 보고만 있었다. 공두는 멋진 척하며 목검을 세우고는 창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겼다 기고만장해선 아니 된다. 더욱 수련에 매진하거라. 알겠느냐?”

공두는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 같았다. 시합에서 이긴 창이를 이긴 건 자신이었다. 결국 진정한 승자는 공두였다. 공두가 볼썽사납게 목검을 휘두르며 걸어갔다.

창이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늘 상상 이상의 행동을 하는 공두가 단진이와 함께 있는 게 불안했다.

대신들은 웅성이고 있었다. 진양에게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호판의 언성이 높아졌다.

“어찌 대군의 사병이 내금위 별감들보다 실력이 뛰어나단 말입니까! 대체 무얼 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말이 그 말입니다!”

진양이 벌떡 일어섰다.

“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호판대감!”

“전에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과유불급입니다!”

“대감!”

진양이 금세라도 튀어나갈 기세를 보이자 안평이 말렸다.

“형님께서 이러시면 세자저하만 난처해지십니다. 제발 앉으시오.”

진양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애써 누르며 앉았다.

용무용과 호와 결, 석이 목석처럼 서 있었다. 호와 결, 석은 용무용을 봤지만 그는 말이 없었다.

용무용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창이가 자신들의 정체를 발고할 생각이었다면 벌써 했을 것이다. 이토록 뜸을 들일 이유가 없었다. 무슨 속셈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오늘은 아니란 결론에 다다랐다.

용무용은 창이를 보았다. 분명 창이인데 뭔가가 달랐다. 창이라면 순포가 진검을 빼들었을 때 창이 역시 진검을 빼들고 단칼에 베었을 것이다. 창이는 검에 인정을 두지 않는 놈이었다. 헌데 창이는 순포를 봐주고 있었다.

용무용이 마지막에 나서서 순포를 목검으로 내리친 건 순포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순포는 창이를 죽이지 못했을 것이다. 창이가 부러진 목검을 잡은 손의 위치를 바꾸었을 때 창이의 눈빛을 보았다. 창이는 그대로 순포의 명줄을 끊었을 것이다. 해서 용무용이 나선 것이다.

용무용은 조금 전 일을 떠올렸다.

향은 순포에게 어찌 그런 일을 벌였느냐고 물었다. 순포는 너무도 이기고 싶어 정신이 나간 것 같다고 하며 납작 엎드렸다. 향은 순포에 대한 처결을 창이에게 맡겼다. 창이가 진검을 들고 순포가 목검을 들고 다시 승부하길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창이는 순포를 용서해 달라고 했다.

향은 순포를 보며 이번 한 번은 용서하겠다고 했다. 허나 다시는 무예시합에 참여해선 안 되고 또한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나선 안 된다고 했다. 순포는 그대로 한성부 밖으로 나가야 했다. 향은 순포를 통해 무사들을 가르친 것이다. 또한 향은 시합에 참여한 모든 무사들에게 공평하게 상금을 내렸다.

이향은 용무용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섭고 치밀했다. 드러내지 않으면서 모든 걸 뜻대로 움직였고 모든 걸 움켜쥐었다.

향과 김종서 장문호가 걸어왔다. 모든 대신들이 일어섰다.


하늘을 장식한 천들이 나부꼈다.

향이 시합장으로 들어섰다. 창이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향이 점점 가까워졌다. 향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름이 무엇이냐?”

“창이라 하옵니다.”

“창이라. 오늘 잘 하였다.”

박 내관이 화려한 문양이 들어간 검을 들고 왔다.

향이 창이에게 검을 주었다. 창이가 팔을 뻗어 검을 받았다. 이상했다. 순간 창이의 가슴에 영원히 뺄 수 없는 검이 꽂힌 기분이었다.

“일어서거라.”

창이가 일어나 향의 앞에 섰다. 키가 엇비슷해 창이와 향의 눈이 마주쳤다.

창이의 바로 앞에 문종이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이향이 있었다. 처음 운종가에서 봤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반듯하고 압도적인 강한 아름다움에 저도 모르게 넋을 잃었다. 창이는 입안이 바싹 마르고 심장은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향이 창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뜨거웠고 순수했다. 향은 창이의 살아있는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너를 전에 본 적이 있는 듯하다.”

“예 저하. 운종가에서 한번 뵌 적이 있사옵니다.”

창이가 향을 바라보았다. 향의 눈빛은 너무 깊었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향을 바라보던 단진이 떠올랐다.

창이가 단단히 향을 보았다.

“저하. 소신이 저하를 지키겠사옵니다.”

창이는 다짐했다.

‘제가 저하를 나비문신으로부터 지켜낼 것입니다. 저하를 제가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봄이와 함께 돌아갈 것입니다.’

향이 미소 지었다.


시합이 끝나는 북소리가 울렸다.

향이 서서 모든 무사들을 보았다.

“모두 듣거라.”

무사들이 모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오늘 모두 잘 하였다.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무예시합을 갖게 될 것이다. 허니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거라!”

무사들은 희소식에 반색하며 서로를 보았다. 들뜨고 흥분했다.

향이 말했다.

“허나 명심하거라. 무예시합은 이기고자 하는 싸움이 아니다!”

무사들이 보았다.

“무예시합은 서로를 알아가는 방법이다. 서로에게 배우는 것이다. 오늘 시합을 통해 그대들이 배운 게 있을 것이다. 무관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와 마음가짐을 다잡도록 하거라. 소속은 다르나 모두가 조선의 무관이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조선의 백성을 지키는 무관이다! 그걸 잊어선 아니 된다. 알겠느냐?”

“예! 세자저하!”

“조선의 백성은 그대들이 있어 든든할 것이다.”

무사들의 눈에 빛이 났다.

“본관은, 조선의 백성을 지키는 그대들이 자랑스럽다.”

“저하...망극하옵니다...”

모두가 심기일전한 눈빛으로 향을 바라보았다. 진양과 안평의 눈에 빛이 났다. 김종서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창이는 저도 모르게 뭉클해졌다. 용무용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향이 김종서와 장문호와 함께 한성부를 나섰다. 진양과 안평, 대신들이 향을 따랐다. 진양과 호판의 시선이 맞닿았다. 진양은 싸늘했고 호판은 못마땅한 표정이었으나 서로 예를 갖췄다. 진양은 호판에게 먼저 가라고 길을 내주었다. 호판이 앞서 가자 진양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안평이 진양의 팔을 잡았다.

향을 보기 위해 백성들이 몰려들자 관원들이 막아섰다.

향이 대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장문호를 보며 말했다.

“판부사대감께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 무예시합도 대감께서 준비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세자저하. 소신 목숨 걸고 저하의 명을 따르겠나이다!”

호판과 예판이 잔뜩 찌푸렸다.

향이 진양과 안평을 보며 말했다.

“따르거라!”

향이 진양, 안평과 함께 걸어갔다. 박 내관과 최 무사 정 무사를 비롯한 십여 명의 내금위 별감들이 향을 호위했다.

장문호가 좋아서 웃고 있자 호판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다음번엔 관원들을 아예 네발로 기어 나오게 하시지요!”

호판은 또다시 헛기침을 하고 가버렸다.

장문호는 화가 났지만 이참에 배를 갈아탈까 싶어 김종서를 보았다.

“형판대감, 오늘 저와 술 한잔 하시겠습니까?”

김종서는 멀어져 가는 향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장문호의 말에 김종서가 무뚝뚝하게 응대했다.

“판부사께서 그럴 시간이 있으십니까! 관원들의 실력이 너무 엉망입니다. 내일부터 당장 훈련을 준비하셔야지요!”

김종서가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장문호의 얼굴이 굳었다. 역시 김종서와는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호판과 화해를 해야 했다. 또한 장문호는 이제부터 용무용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김종서를 밀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모든 공을 자신이 독차지할 것이다.


한성부 마당은 무사들의 차지가 되었다. 시합장에 천막을 치고 평상이 놓여졌다. 무사들을 위한 음식과 술상이 차려졌다. 무사들은 오늘 시합 일을 이야기하며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댔다.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창이였다.

겸사복들이 용무용의 옆자리에 앉아 계속 말을 시켰다. 용무용은 건성으로 듣는 척하면서 무사들을 훑어보았다. 관원들 군관들 겸사복들 대군들의 사병은 있었으나 내금위 별감들은 없었다. 진양의 사병들의 자리에 창이는 없었고 김가가 용무용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끊임없이 질문 공세를 하는 겸사복들에게 용무용은 한성부를 둘러보겠다고 일어섰다.

용무용과 호와 결, 석은 한성부를 다 찾아봤지만 창이는 없었다.

용무용은 때아닌 살얼음판 위에 있었다. 창이가 입을 여는 순간 50년간 준비해 놓은 대의가 산산조각이 나게 됐다.

용무용이 다시 한 번 더 찾아보려고 돌아섰다.

그때였다. 창이가 걸어왔다. 창이는 무기도 없는 빈손이었다. 관원들은 시합장에 모여 음식을 먹느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용무용은 창이를 죽여야겠다고 결심했다. 호와 결, 석이 창이를 보고 용무용을 보았다. 용무용과 호와 결, 석이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창이가 용무용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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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숙원 홍씨 65. 단진, 한양 기방에 들다 +3 20.10.26 1,929 10 26쪽
64 숙원 홍씨 64. 단진, 궁 밖으로 나오다 +2 20.10.22 1,934 11 22쪽
63 숙원 홍씨 63. 비밀의 열쇠, 백겸과 창이 +1 20.10.19 1,948 11 21쪽
62 숙원 홍씨 62. 진양, 비밀의 단서를 찾아내다 +2 20.10.15 1,953 11 19쪽
61 숙원 홍씨 61. 단진을 향한 애틋함 +2 20.10.12 1,961 11 21쪽
60 숙원 홍씨 60. 무예시합이 끝나고 +3 20.10.08 1,974 13 23쪽
» 숙원 홍씨 59. 무예시합-3 +4 20.10.05 1,991 12 22쪽
58 숙원 홍씨 58. 무예시합-2 +2 20.09.24 2,030 10 21쪽
57 숙원 홍씨 57. 무예시합-1 +2 20.09.21 2,047 10 20쪽
56 숙원 홍씨 56. 이향, 무예시합에 가지 않기로 하다 +1 20.09.17 2,065 10 17쪽
55 숙원 홍씨 55. 단진의 간절함 +1 20.09.14 2,090 9 21쪽
54 숙원 홍씨 54. 향을 지키려는 단진 +2 20.09.10 2,118 10 18쪽
53 숙원 홍씨 53. 나비문신 +2 20.09.07 2,139 10 19쪽
52 숙원 홍씨 52. 죽이려는 자, 지키려는 자 +1 20.09.03 2,164 11 21쪽
51 숙원 홍씨 51. 단진, 향의 위험을 알아채다 +1 20.08.31 2,189 11 20쪽
50 숙원 홍씨 50. 무예시합 날이 정해지다 +2 20.08.27 2,203 11 22쪽
49 숙원 홍씨 49. 여인 홍단진의 결심 +1 20.08.24 2,229 11 20쪽
48 숙원 홍씨 48. 백겸과 창이, 진양대군을 만나다 +2 20.08.20 2,269 11 21쪽
47 숙원 홍씨 47. 목멱산의 결의 +4 20.08.17 2,300 11 21쪽
46 숙원 홍씨 46. 계유정난을 막아라 +2 20.08.13 2,335 11 20쪽
45 숙원 홍씨 45. 단진의 고백 +2 20.08.10 2,349 11 20쪽
44 숙원 홍씨 44. 홍단진, 주상전하를 만나다 +2 20.08.06 2,364 12 18쪽
43 숙원 홍씨 43. 백겸과 창이 한양 기방에 들다 +1 20.08.03 2,388 11 16쪽
42 숙원 홍씨 42. 비 오는 밤, 사라진 자들 +3 20.07.30 2,401 11 18쪽
41 숙원 홍씨 41. 이향의 마음 +3 20.07.27 2,427 11 16쪽
40 숙원 홍씨 40. 꽃비 그리고 고려 제일 무사 창이, 조선 제일 무사 백겸 +1 20.07.23 2,444 11 20쪽
39 숙원 홍씨 39. 이향, 김종서와 야인을 만나다 +2 20.07.20 2,465 11 19쪽
38 숙원 홍씨 38. 운명적인 만남 +2 20.07.16 2,499 1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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