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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름 님의 서재입니다.

숙원 홍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서여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9
최근연재일 :
2021.04.12 11:00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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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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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561

작성
20.09.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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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숙원 홍씨 57. 무예시합-1

DUMMY

숙원 홍씨 57. 무예시합-1


상점의 입구에 걸어둔 등불이 갑자기 꺼졌다. 삼년은 별 관심 없이 힐끗 보고는 빗속을 보며 말했다.

“비 그칠 때까지 기다리게? 나 내일 일찍 일어나려면 자야 하는데.”

삼년이 옆을 봤지만 백겸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나 싶어 두리번거리다가 승무와 눈이 마주쳤다.

승무가 어둠 속에서 삼년을 빤히 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승무가 말했다.

“게 섰거라!”

수레를 끌고 있는 삼년이 긴장했다.

“왜 그러셔유?”

승무가 수레를 덮고 있는 짚단을 젖혔다. 죽은 돼지가 있었다. 돼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삼년이 말했다.

“좀 봐주셔유, 나라 허락 없이 도륙한 거라, 이리 밤에 옮기는 거에유, 나으리, 백정도 사람인디, 먹고 살아야지유...”


상점 주인이 등불을 다시 밝혔다. 불빛 아래에 삼년의 밋밋한 얼굴이 훤히 보였다. 승무는 어둠 속에서 봤던 체격과 독특한 체취를 가진 삼년을 기억해 냈다. 얼굴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돼지 수레를 끌던 놈이 분명했다.

승무가 삼년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삼년은 무슨 일인가 싶어 물러섰다.

승무의 가슴이 들썩였다.

“이제야 찾았구나.”

“누구세요?”

“내 돈 떼어먹고 도망친 놈이 꼭 네놈처럼 생겼는데 한양 말씨를 쓴다.”

삼년은 이런 일을 한두 번 당해본 게 아니었다. 이럴 땐 오리발을 내밀고 튀는 게 상책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지는 한양 사람 아니어유. 그리고 지는유 돈 떼먹고 그럴 사람이 아니어유 나으리...사람 잘못 보셨시유...”

“네놈이구나!”

승무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아이고 나으리도 참...저기 좀 보셔유...”

삼년이 팔을 뻗어 가리켰으나 승무는 움직임이 없었다.

상점 안에서는 백겸이 검을 구경하느라 밖으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삼년은 승무의 장검을 힐끗 보고는 슬며시 주저앉았다.

“발에 뭐가 묻은 겨...”

삼년이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승무가 삼년을 쫓았다. 쏟아지는 빗속을 삼년이 미친 듯이 달렸다.

상점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한곳을 향했다. 운종가의 밝은 불빛 아래에 노비가 도망을 가고 무사가 뒤를 쫓고 있었다. 비단을 파는 상점에서는 아씨들이 비단을 손에 든 채로 고개를 내밀었다.

책방에서는 상상력 풍부한 아씨들이 노비가 나쁜 짓을 해서 무사가 쫓는 거라고 했다. 부채를 고르던 사내들은 도망 노비를 추노가 쫓는 거라고 했다.

그들은 노비가 무사에게 쫓기는 걸 재미 삼아 보고 있을 뿐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삼년은 필사적이었다. 노비 삼년은 살기 위해 미친 듯이 내달렸다. 삼년의 발이 미끄러져 넘어지자 승무가 삼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삼년은 잽싸게 좌판 뒤로 숨었다. 승무의 검이 좌판을 갈랐다. 삼년은 기겁하며 뛰쳐나갔다.

삼년은 잽싸게 어두운 골목으로 내달렸다. 승무가 재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승무는 그날 밤 저놈을 놓친 게 두고두고 한이 됐다. 반드시 저놈을 잡아 숨통을 끊어놓고 형제들을 죽인 놈의 숨통도 끊을 것이다.

삼년은 노름 빚 때문에 쫓기는 거라 여겼다. 삼년은 발이 워낙 빨랐고 한양 일대의 개구멍까지 꿰뚫고 있어 승무보다 유리했다. 하지만 승무는 이제껏 상대했던 왈패들과는 달랐다. 왠지 승무에게 잡히는 순간 죽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삼년은 백겸이 원망스러웠다. 백겸만 있었어도 이렇게 도망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굵은 빗줄기가 삼년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삼년이 달리다가 뒤를 힐끗 보니 승무가 보이지 않았다. 삼년은 멈춰서 모퉁이 집의 벽에 바짝 붙어 자신이 달려온 골목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삼년이 안도하는 순간 지붕 위에서 승무가 뛰어내렸다. 삼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승무가 삼년을 향해 검을 날렸다.

삼년은 잽싸게 피하고 또다시 달렸다. 삼년이 골목골목을 돌고 따돌리려 했지만 승무는 집요했다. 삼년은 승무가 자석처럼 따라붙고 있어 겁을 집어먹었다.

삼년이 광통교를 내달렸다. 그 뒤를 승무가 바짝 쫓았다. 삼년은 광통교를 지나자마자 큰 나무 뒤로 숨어 미끄러지듯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삼년이 어둠 속에 웅크렸다.

승무는 그대로 광통교를 지나쳤다. 바로 앞에서 달리던 삼년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승무는 다시 광통교로 달려와 사방을 둘러보았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또다시 놈을 놓쳤다. 승무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승무는 고함을 내질렀다.


백겸이 상점에서 나와 보니 삼년은 없었다. 비는 여전히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의 손이 백겸의 옷섶으로 들어왔다. 백겸이 서둘러 손목을 낚아채고 보니 창이였다.

“아퍼.”

“놀랬잖아! 너 뭐냐?”

“너 돈 너무 쓴다. 다 봤어. 얼마 남았어?”

“연모하러 간다더니!”

창이가 빙그레 웃었다.

“왔잖아. 연모하러!”

창이는 경복궁으로 가다가 백겸이 검을 사러 간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발길을 돌렸다. 나비문신이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백겸 혼자 가게 할 수는 없었다.

이상했다. 창이는 경복궁으로 향하며 처음으로 단진이가 아닌 이향이 먼저 떠올랐다. 단진을 향한 그리움보다 이향에 대한 불안함이 더 커져 버린 것일까.

백겸과 창이는 시원스레 내리는 빗줄기를 보고 있었다. 내일 이향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긴장이 조금은 풀려서인지 오랜만에 빗소리에 젖어들었다.

백겸은 비 내리는 운종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각양각색의 등불 아래에 떨어지는 빗줄기는 저마다 색을 입은 듯했다.

아버지 진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조선에 와서 단 하루도 아버지가 떠오르지 않은 날이 없었다. 아버지가 단진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눈길을 그 마음을, 그 책임을 백겸이 가져온 듯싶었다.

창이가 빗속에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연적도 적이겠지!”

백겸은 느닷없는 소리에 창이를 보았다. 그러다 창이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짝사랑하는 여자한테 남자도 있어? 짝사랑에 남자까지? 내가 남의 사생활에 관심은 없지만, 그만 둬.”

창이가 정색했다.

“내가 언제 남자 있댔어?”

“그 말이 그 말이지! 너 진짜 뇌 두고 왔어?”

“너야말로 기억력 퇴보했어? 짝사랑 아니랬지!”

백겸은 오랜만에 나누는 대화가 낯설면서도 좋았다. 까마득했지만 조선에 오기 전에는 늘 이런 이야길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백겸은 한 마디 더 했다.

“대체 어떤 여자길래. 고백도 못해. 남자도 있어...설마...유부녀는 아니지?”

창이는 백겸을 빗속으로 확 밀어버렸다. 잠깐이었지만 굵은 빗줄기가 사정없이 백겸에게 떨어졌다. 백겸이 서둘러 처마 아래로 들어오려 했다. 창이가 또다시 백겸을 빗속으로 확 밀었다.

“하지 마! 나 젖는 거 싫어!”

백겸이 또다시 들어오려 하자 창이가 백겸을 뒤에서 안고 빗속으로 나가 내던졌다. 백겸이 나동그라졌다.

“야! 독고준!”

“내 연모를 모독한 대가야!”

백겸이 벌떡 일어섰다. 이번엔 백겸이 창이를 잡아끌고 빗속으로 내던졌다.

창이가 나동그라졌다.

백겸이 말했다.

“연모를 모독해? 모독할 연모나 했냐? 야! 독고준, 연모는 같이 하는 거야! 남자 있는 여자 그만 둬.”

“질문 하나에 너무 몰고 가는 거 아냐!”

창이가 백겸에게 달려들었다. 백겸이 잽싸게 도망치려 했지만 늦었다. 그들은 빗속에서 뒹굴었다. 빗방울이 사정없이 얼굴에 흘러내렸다.

처마 아래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번엔 백겸과 창이를 향했다.

백겸이 빠져나가려 하자 창이가 백겸의 바지를 잡고 늘어졌다. 백겸은 바지가 벗겨지려 하자 당황해 허둥댔다. 그 모습이 하도 웃겨 창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책방의 아씨들은 서책으로 눈을 반쯤 가리고, 비단 상점의 아씨들은 비단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눈은 더욱 크게 뜨고 있었다. 아씨가 들고 있던 고운 연분홍 비단이 바람에 날려 그들 위로 하늘하늘 떨어졌다. 연분홍 비단이 금세 비에 젖어 빛을 잃었다.


용무용과 승무, 호와 결, 석이 앉아 있었다.

용무용이 말했다.

“내일 무예시합에 집중해라. 너희들의 실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예 형님!”

호와 석, 결은 대답했지만 승무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승무는 내일 이향이 나오지 않는 일로 심기가 불편한 용무용에게 돼지 수레를 끌던 놈을 봤으나 놓쳤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용무용이 거칠게 탁자를 내려쳤다.

“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는 것이냐?”

“송구합니다 형님.”

용무용이 승무와 호와 결, 석의 눈을 하나하나 보았다.

“그런 눈빛으로 토끼 한 마리도 베지 못할 것이다! 네놈들이 이런 일 하나에도 이리 휘둘려서야 어찌 대의를 도모할 수 있겠느냐!”

....

“더 힘을 기르라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너희들의 분노에 더 불을 지르라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피를 토하고 죽은 우리 부모 형제들을 기억하라고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우리는 하루만큼 더 분노가 쌓이는 것이다. 하루만큼 더 죽여야 할 놈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허니, 이를 갈고 증오하고 분노하거라. 해서 힘을 기르거라!”

승무와 호와 결, 석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이향이 궁 밖에 언제 어느 때 나올지 모른다. 허니 너희들은 칼을 갈고 또 갈아서 그 찰나에 쳐야 한다. 알겠느냐?”

“예 형님.”

“내일 무예시합에 집중하거라. 잘해야 할 것이다.”

“예 형님.”

형제들이 나가자 용무용은 감추고 있던 분노가 드러났다. 어찌 분노가 다 사라졌겠는가. 이향의 피를 보는 기쁨을 먼저 누린 탓에 그 실망감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 허나 용무용은 때를 기다릴 것이다, 그때 이향을 직접 죽여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용무용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대로 하란 말이다!”

“그곳이 비뚤어지지 않았느냐!”

“다시 가져오란 말이다!”

한성부는 무예시합 준비로 북적였다. 하늘은 맑고 쾌청했지만 장문호의 기분은 천둥번개를 동반한 벼락이 치고 있었다.

장문호는 새벽부터 나와 직접 무예시합 준비를 진두지휘했다. 어찌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지 관원들이 발걸음 하나하나 옮길 때마다 장문호의 눈치를 살폈다.

장문호는 세자저하께서 나오지 않지만 더욱 완벽하게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는 장문호가 주최하는 무예시합이었다. 김종서가 야인들을 데리고 있다고 해서 그가 주최자가 돼선 안 되기에 더욱 철저하게 지시했다. 또한 야인들을 맡을 사람은 자신이었다.

한성부 마당에 탁자들이 길게 줄을 맞춰 놓였다. 상석을 중심으로 양쪽에 긴 탁자가 마련됐다. 그 위를 하얀 천으로 덮었다. 상석에는 세자저하를 위해 특별히 주문한 용 문양이 들어간 의자가 중앙에 놓였고 그 뒤로는 병풍이 세워졌다. 저하께서 앉으실 자리 위에는 길게 해 가리개를 만들어 두었다.

중앙은 무예시합을 하기 좋게 넓게 비워두었다. 시합에 참여하는 무사들을 위해 많은 장검과 목검을 준비해 두었다.

지붕마다 끈을 이어 오색 천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천들이 바람에 나풀나풀 휘날렸다.

장문호는 자신은 세자저하의 오른쪽에 앉기로 결정했다. 대군들의 자리는 세자저하의 대각선 자리에 앉게 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김종서였다. 김종서가 형판이긴 하지만 이곳 한성부의 주인은 자신이었다. 김종서는 자신의 옆에 앉게 할 생각이었다.

장문호는 무예시합 준비를 하다 보니 기분이 나아졌다. 기분이 나아지다 못해 좋아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호판이고 예판이고 김종서고 그들은 조정대신에 불과했지만 자신은 달랐다. 양원마마가 세자빈 자리에 오르시고 용종을 잉태하시면 그리고 왕자 아기씨를 생산하시어 보위에 오른다면. 만인지상 영의정이 다 뭐란 말인가.

장문호는 늘 꾸던 꿈을 또다시 꾸었다. 꿀수록 달콤했고 꿀수록 갖고 싶고 꿀수록 그 자리에 오른 기분이었다.

장문호는 김종서의 자리를 바꾸었다. 장차 부원군의 자리에 오를 자신이 이런 일로 구설수에 올라선 안 되지 싶었다. 지금은 세자저하께서 김종서를 아끼시니 세자저하 옆자리를 주기로 결정했다. 이는 장문호가 큰 그릇임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오늘 세자저하가 오시지 않는다고는 하나 모든 일은 세자저하의 귀에 들어갈 게 자명했다. 이참에 점수를 후하게 따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장문호는 한성부에서 무예시합에 내보낼 관원들을 불러서 그들의 입성을 살폈다. 만족스러웠다. 장문호는 그들의 무예실력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검은 무사복을 입은 용무용과 승무, 호와 결, 석이 안채 마당으로 들어섰다. 부장과 군관 여섯이 기다리고 있었다. 때마침 김종서가 안에서 나왔다.

용무용이 김종서에게 인사했다.

김종서가 말했다.

“그간 닦아온 실력을 마음껏 보여주거라. 세자저하께서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크시다!”

“예 대감.”

김종서가 용무용을 잠시 보다가 말했다.

“세자저하께서 참석치 못하시는 게 서운한 것이냐?”

“예 대감, 저는 괜찮지만 애들이 세자저하께 잘 보이고 싶어 수련을 많이 하였습니다.”

“오늘만 날이겠느냐!”

김종서가 용무용을 보다가 덧붙였다.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용무용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예 대감. 가장 좋은 날이 오겠지요. 기다리겠습니다.”


김종서가 부장과 군관들, 용무용과 승무, 호와 결, 석과 함께 한성부로 향했다.

진양이 자주색 무사복을 입고 한성부로 걸어왔다. 회색 무사복을 입은 순포와 김가, 은가, 양가가 뒤를 따랐다.

진양이 마주 오는 김종서를 보았다. 진양이 웃으며 김종서에게 다가갔다.

“형판대감 오셨습니까?”

“대군마마,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 대감. 대감께서 조정에 오셨으니, 이제부터 대감께서 아바마마와 세자저하께 큰 힘이 돼 주셔야겠습니다!”

“미약하나마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양의 눈길이 용무용에게 닿았다.

김종서가 용무용에게 말했다.

“인사 올리거라. 진양대군이시다.”

용무용이 예를 갖추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대군마마.”

진양이 용무용에게 다가갔다.

“처음이 아니다. 너도 날 처음 보는 눈이 아닌 듯한데. 우리는 세 번째 보는 것이다!”

“그렇습니까? 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진양이 큰소리로 웃었다.

“내가 그리도 평범해 보이더냐? 앞으로는 이 진양을 기억하도록 하거라.”

“예 대군마마.”

진양과 용무용은 잠시 서로를 보았다.

용무용은 진양이 보통이 아님을 간파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었다.

진양은 거슬렸다. 용무용의 눈빛에는 거슬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진양이 김종서와 함께 한성부로 들어가려는데 안평이 호위무사 다섯 명과 걸어왔다. 안평은 푸른색 무사복을 입었고 호위무사들도 같은 계열의 무사복을 입었다.

진양이 안평을 보며 웃었다.

“서책은 가져오지 않았구나.”

안평이 살짝 흘기고 김종서에게 인사했다.

“형판대감, 먼 곳에서 그간 고생하셨습니다!”

“대군마마, 잘 지내셨습니까?”

“대감을 뵈니 좋습니다. 아바마마와 세자저하께서 든든하시겠습니다.”

“과찬이십니다.”

호판과 예판이 탄 가마가 한성부 앞에서 멈췄다. 호판은 가마에서 내리며 ‘흠’ 소리를 내며 옷을 젖혔다. 호판은 김종서를 보고도 먼저 인사하지 않았다.

김종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호판대감 오셨습니까?”

호판이 김종서를 보고 인사했다.

“형판대감 언제 오셨습니까? 제가 다른 생각을 하느라 형판대감을 못 봤습니다. 서운해 마세요!”

“서운하다니요! 호판대감께서 다른 생각을 하실 일이 나랏일 밖에 더 있겠습니까! 호판이 조정에 계셔서 큰 힘이 됩니다.”

호판이 김종서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그러니 형판께선 쉬엄쉬엄 하세요. 급히 먹는 밥이 체하는 것이고 마음만 앞선다고 일이 다 되는 것도 아니질 않습니까?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지요.”

호판과 예판, 진양과 안평은 서로 반갑지 않은 얼굴로 인사를 나누었다.

호판과 예판이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한성부로 들어갔다. 이어 김종서와 진양 안평이 한성부로 들어갔다.

승무, 호와 결, 석과 진양의 무사들이 기싸움 하듯 서로를 보았다. 순포는 승무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용무용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도화의 처소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방안 곳곳의 꽃들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백겸과 창이 도화는 어젯밤 내리는 비 때문인지 오늘 하루는 안심을 해도 돼서인지 술을 마시고 늦게까지 푹 잤다. 백겸과 창이는 이부자리를 개고 있었다.

도화가 목을 좌우로 젖히며 말했다.

“오랜만에 잘 잤네. 독고준 네가 그동안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밤마다 잠을 못 잤잖아. 오늘 밤도 나가지 마!”

“내가 없는데 잠을 왜 못 자? 둘이서 뭐하느라?”

일순 도화가 당황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야!”

“왜? 안 싸우느라 못 잤겠지”

도화는 괜히 뻘쭘해서 창을 열었다.

“날씨 좋네. 오늘 남산 갈래?”

백겸이 웃으며 대답했다.

“가자. 가서 나비문신 잡을 계획 완성해서 내려오자.”

어젯밤 셋은 나비문신 잡을 계획을 세웠지만 저마다 의견이 달랐다. 창이는 직접 찾아나서야 한다고 했다. 어디로? 백겸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언제까지? 도화는 승무의 얼굴을 그려 사람을 시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죄 없는 사람이 죽게 되면?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지만 답은 간단했다. 문종을 지키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단진을 지킬 수 있었다.

백겸은 단진이 오늘 궁 밖으로 나오게 될까 노심초사했었다. 해서 단진이 궁 안에 안전하게 있다는 걸로도 백겸은 모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창이는 어젯밤 갑자기 떠오른 이향 때문인지 비 때문인지 싱숭생숭했었다. 창이의 젖어 물컹해진 마음이 더욱 단단해졌다. 이향은 단진이 존경하는 왕이고 단진을 위해 이향을 지켜야 했다. 이놈의 마음이란 게 얼마나 겁이 많은지 매일매일 단단히 두드려야 했다. 창이는 웃으며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폈다.

몸종 년이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도화와 창이 백겸은 밥상 앞으로 앉았다. 구수한 된장국 냄새를 맡자 뱃속이 요동쳤다. 그들이 수저를 드는데 몸종 년이가 말했다.

“아씨. 삼년이란 노비가 찾아왔어요.”

도화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걔가 아침부터 무슨 일이래?”

“궁에서 출발했다고 전하면 아신다고 했어요.”

도화와 백겸 창이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겸이 입을 열었다.

“출발? 누가...”

삼년은 이향이 나오지 않는 걸 모르고 있었다. 삼년은 새벽부터 경복궁 앞을 지키고 있다가 이향이 나오면 보고하기로 돼 있었다.

백겸과 창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쳐나갔다.


백겸과 창이가 한성부 앞으로 달려왔다.

백겸이 입구를 지키는 관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세자저하께서 오셨소?”

관원이 찌푸리며 말했다.

“오셨으면 우리 얼굴이 이렇겠소. 세자저하께서 안 오셔서 판부사대감이 우릴 잡아먹으려 하고 있소.”

백겸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문종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러다 저만치에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갔다. 창이는 이미 그곳을 보고 있었다.

열 명이 넘는 붉은 무사복을 입은 내금위 별감들이 오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감청색에 금색이 수놓아진 무사복을 입은 향이 있었다.

향이 걸어왔다. 향이 가까워졌다.

백겸과 창이는 놀란 눈으로 보고만 있었다.

아침 햇살이 향에게 머물렀다. 눈이 부셨다. 향의 눈길이 백겸과 창이에게 잠시 머물다가 한성부 안으로 들어갔다. 별감들이 뒤를 따랐다.

별감들 속에 아는 얼굴이 있었다. 그 얼굴이 백겸과 창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백겸과 창이는 놀라 그대로 있었다. 백겸과 창이의 심장이 두방망이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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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숙원 홍씨 53. 나비문신 +2 20.09.07 2,138 10 19쪽
52 숙원 홍씨 52. 죽이려는 자, 지키려는 자 +1 20.09.03 2,163 11 21쪽
51 숙원 홍씨 51. 단진, 향의 위험을 알아채다 +1 20.08.31 2,188 11 20쪽
50 숙원 홍씨 50. 무예시합 날이 정해지다 +2 20.08.27 2,202 11 22쪽
49 숙원 홍씨 49. 여인 홍단진의 결심 +1 20.08.24 2,228 11 20쪽
48 숙원 홍씨 48. 백겸과 창이, 진양대군을 만나다 +2 20.08.20 2,268 11 21쪽
47 숙원 홍씨 47. 목멱산의 결의 +4 20.08.17 2,300 11 21쪽
46 숙원 홍씨 46. 계유정난을 막아라 +2 20.08.13 2,334 11 20쪽
45 숙원 홍씨 45. 단진의 고백 +2 20.08.10 2,348 11 20쪽
44 숙원 홍씨 44. 홍단진, 주상전하를 만나다 +2 20.08.06 2,363 12 18쪽
43 숙원 홍씨 43. 백겸과 창이 한양 기방에 들다 +1 20.08.03 2,387 11 16쪽
42 숙원 홍씨 42. 비 오는 밤, 사라진 자들 +3 20.07.30 2,400 11 18쪽
41 숙원 홍씨 41. 이향의 마음 +3 20.07.27 2,426 11 16쪽
40 숙원 홍씨 40. 꽃비 그리고 고려 제일 무사 창이, 조선 제일 무사 백겸 +1 20.07.23 2,443 11 20쪽
39 숙원 홍씨 39. 이향, 김종서와 야인을 만나다 +2 20.07.20 2,464 11 19쪽
38 숙원 홍씨 38. 운명적인 만남 +2 20.07.16 2,498 1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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