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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름 님의 서재입니다.

숙원 홍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서여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9
최근연재일 :
2021.04.12 11:00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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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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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09,561

작성
20.07.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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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숙원 홍씨 40. 꽃비 그리고 고려 제일 무사 창이, 조선 제일 무사 백겸

DUMMY

숙원 홍씨 40. 꽃비 그리고 고려 제일 무사 창이, 조선 제일 무사 백겸


국밥집에 등불이 훤히 밝혀져 있고 밥때가 되자 손님들이 북적였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작은 밥상을 앞에 두고 국밥을 먹었다. 똘똘해 보이는 사내아이와 어미가 빈 국밥 그릇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사내아이는 수저를 쪽쪽 빨며 장터에 부채를 팔러 간 아비가 언제 오나 연신 밖을 내다봤다.

양반 둘이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눴고, 봇짐 장사꾼은 큰 짐을 옆에 두고 홀로 술을 마시던 코가 벌건 사내와 겸상을 했다. 퉁퉁한 주모가 알아서 국밥 한 그릇을 봇짐 장사꾼에게 가져다 줬다. 장사꾼은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었다.

퉁퉁한 주모는 마당 한편에 펄펄 끓고 있는 가마솥을 열고 국을 휘휘 저으며 웃었다. 요 며칠 장사가 어찌나 잘되는지 요즘만 같으면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거기다 방도 세를 줘 수입이 짭짤했다.

창이 백겸 도화가 차례로 국밥집 마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창이는 오자마자 방문을 열었지만 단진은 없었다.

이제껏 셋은 단진을 찾아 처음 만났던 궁의 서문 밖, 육갑의 돌무덤, 한성부, 시구문까지. 단진이 갔던 모든 곳을 찾아다녔다. 국밥집으로 돌아왔을까 싶어 왔지만 없었다.

창이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냈다.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창이는 단진을 만나기 위해 579년을 거슬러 왔다.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었다. 창이는 단진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까 두려웠다.

백겸은 마루에 주저앉아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백겸은 단진이 어디에 있을까보다 무사해야 한다고 주문을 걸 듯 속으로 말했다. 단진의 다친 손이 떠올랐다. 백겸은 아무 때나 나서는 단진이 무슨 사고를 친 건 아닐까 걱정돼 견딜 수 없었다.

도화는 단진의 장례라도 치르는 얼굴을 하고 있는 백겸과 창이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도화 역시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도화는 단진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 보다 다시 궁으로 들어가게 될까를 우려했다.

도화는 부엌으로 가서 물을 떠서 마셨다. 바가지 가득 물을 떠와서 백겸과 창이에게 내밀었다. 그들은 넋이 나가 있었다.

도화가 야단쳤다.

“야! 오버하지 마! 서봄 어디서 자고 있을 수도 있어!”

백겸이 도화를 보았다.

도화가 바가지를 내밀었다.

“마시고 정신들 차려, 그래야 서봄 찾지!”

백겸은 그제야 입이 쩍쩍 갈라지는 걸 느꼈다. 백겸은 이 와중에도 물맛이 좋다고 느껴지는 게 이상했다. 창이 역시 갈증이 심해 꿀꺽꿀꺽 마셨다.

공두는 세자저하가 암행을 나왔단 소릴 듣고는, ‘박 내관’ ‘박 내관’ 하고 반복하더니 번개처럼 뛰쳐나가 보이지 않았다. 셋은 공두의 존재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도화는, 방법은 하나뿐이라 여겼다. 단진을 찾을 게 아니고 이향을 찾아야 했다.

도화가 말했다.

“문종을 찾자. 내 생각이 맞다면 김종서 집에 갔을 거야. 장터에서 기다리자!”

백겸이 말했다.

“다른 길로 가면?”

창이가 말했다.

“다른 길엔 내가 가 있을게!”

도화가 말했다.

“아니, 문종은 운종가로 다시 지나갈 거야. 낮과 밤이 다른 장터를 보면서 백성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을 거야. 가자!”

셋이 나가려는데 퉁퉁한 주모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을 저으며 큰소리로 불렀다.

“여름이 누구야?”

백겸 창이 도화가 주모를 봤다.

주모가 말했다.

“여름한테 전해달래. 봄이 찾지 말라고!”

셋은 후다닥 주모의 곁으로 왔다.

도화가 다급히 말했다.

“검은 복색을 한 곱상한 사내가 왔었어요?”

“아니, 웬 그지 발싸개 같은 놈이 와서 꼭 전해 달랬어.”

셋은 서로를 봤다.

창이가 다그쳤다.

“정확히 뭐라 그랬는데요?”

주모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듯 말했다.

“뭐래드라...봄이 편지를 줬다던데...그래서...”

봇짐 장사꾼 앞에 앉아 술을 마시던 코가 벌건 사내가 말했다.

“옘병, 정신 넋 나간 소리 하네. 언제 그랬간,”

국밥집 손님들은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모두가 쳐다봤다.

“내가 들었고만, 그기 아니고, 봄이 와야 편지를 쓴다고, 그니께 지금 여름이니께, 삼년 후 봄까정 기달려라 그랬단께...”

창이가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뭐라고 했냐고요!”

이때 똘똘해 보이는 사내아이가 평상에서 내려와 그들 앞으로 왔다. 사내아이는 수저로 가리키며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게 아니에요! 어떤 거지 아저씨가, 여름에게 전해라. 봄이 찾지 마라! 봄이가 문종에게 편지를 써서 너희 집에 못가! 삼년이가. 이렇게 말했어요!”

코가 벌건 사내가 말했다.

“그게 그거 아녀?”

도화 백겸 창이는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주모가 도화를 보며 말했다.

“암튼 그지 발싸개 같은 놈이 와서 꼭 전하라 그랬어. 그러면...수고비 줄 거라던데.”

도화는 차분했지만 머리는 바빴다. 도화가 돈 주머니에서 엽전을 꺼내 주모에게 줬다. 사내아이에게도 엽전을 건넸다. 슬그머니 홀로 술을 마시던 사내가 평상에서 내려왔지만 이미 그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도화 백겸 창이는 장터를 향해 내달렸다. 도화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이제껏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몰랐다. 궁에서 사람까지 풀어 단진을 찾으려던 이유가 한글 때문이었다. 공두가 단진을 위해 스스로 궁으로 들어간 게 아니었다. 공두가 백겸을 붙잡고 단진 때문에 잡혀 들어가 두들겨 맞았다고 소리치는 모습이 떠올랐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 그 또한 믿지 않았었다. 도화는 그제야 공두가 사라지고 없다는 걸 깨달았다.


복면을 쓴 자객들은 향이 운종가로 들어서자 서로에게 신호를 보냈다. 운종가를 벗어난 뒤에 습격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들은 복면을 벗고 흩어져 장터 구경을 나온 것처럼 향의 뒤를 쫓았다.

어둠이 내린 장터는 활기가 넘쳤다. 상점마다 각기 다른 등불이 걸려 있고 손님들을 끌기 위해 소리치는 상인이 있는가 하면, 노리개와 장신구를 파는 상인은 여심을 잡기 위해 종이로 만든 꽃잎을 상점 위에서 뿌렸다. 우산을 파는 상인은 연신 우산을 돌려대며 사람들의 시선을 잡고, 엿을 파는 상인은 장단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향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박 내관과 무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한쪽에서 커다란 볏짚이 움직이고 있었다.

박 내관은 걱정스런 얼굴로 향을 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입을 열었다.

“저하...야인이 조선말을 잘하는 것이 수상하옵니다.”

향은 사람들에게 시선을 둔 채로 대답했다.

“조선말을 잘하니 다행한 일이 아니냐, 조선에서 살기 수월할 것이다.”

“저하...눈빛도 좋질 않사옵니다.”

“살다보면 바뀔 것이다.”

“저하...”

향이 멈춰서 박 내관을 보았다.

“숨기는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조선에 적대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조선인이 되기로 하질 않았느냐, 짐작만 가지고 수상하다 속단하지 말거라.”

“하오나 저하...”

향의 시선이 꽃신에 가 닿았다. 이번에도 박 내관이 슬쩍 꽃신을 가로막는데 갑자기 한 사내가 박 내관을 탁 치고 갔다. 바로 뒤에 있던 정 무사가 박 내관을 잡았다. 향은 보고 있었다.

얼굴을 시커멓게 칠한 사내는 박 내관의 돈 주머니를 보란 듯이 던졌다 받았다. 가장 어린 정 무사가 사내를 향해 튀어나갔다. 최 무사가 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은 향의 호위가 최우선이었다. 최 무사는 두 무사에게 눈짓했다. 그들은 향에게 더욱 가까이 와서 주변을 살폈다.

얼굴을 꺼멓게 칠한 사내는 발이 빨랐다. 정 무사가 쫓자 골목으로 들어갔다. 두 번 골목을 꺾고는 돈 주머니를 내던지고 사라졌다. 정 무사가 더 쫓을까 하다 아차 싶었다. 최 무사에게 야단맞을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어떤 상황이 와도 저하의 곁을 떠나선 안 되는 일이었다. 정 무사가 돈 주머니를 주워들고 가려다 멈칫했다. 돈 주머니가 떨어진 곳 창고 앞에 누군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어두웠지만 왠지 낯이 익었다. 정 무사가 사내에게 다가갔다.

단진은 진양을 만나고 나서 육갑과 숨었던 창고 앞에 앉아 있었다. 해가 기울고 밤이 내릴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단진의 활활 타오르는 복수심도 결기도, 책망으로 이어지며 불꽃이 사라졌다. 단진은 다 타버린 재가 되었다. 삼년이 한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배신한 건 내가 맞지만, 민혁을 죽인 건 너야!’

진양의 목소리가 비수를 점점 더 깊이 박았다.

‘그놈을 죽인 건 내가 아니다!’

‘너 때문에 죽은 것이다!’

‘네놈의 그 어리석음과 무모함 나약함이 죽인 것이다, 잊지 말거라!’

육갑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치지 않았다면. 끌려가게 그냥 뒀다면. 향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스키장 버스에서 싸우지 않았다면. 고교시절 민혁의 머리채를 잡지 않았다면...

단진은 알고 있었다. 나 때문이 아니라고 소리칠 때마다 마음속에선 너 때문이라고 더 크게 외치고 있었다.

“홍단진! 네가...네가 왜 여기 있는 것이냐! 네가 왜!”

단진은 갑작스런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단진을 알아본 정 무사가 박 내관을 데리고 왔다. 단진은 천천히 일어났다. 박 내관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단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등을 파는 상점에서 일제히 불을 밝혔다. 형형색색의 등불이 손님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등불을 보고 있었다. 그 사이로 단진이 걸어갔다.

달려오던 백겸 창이 도화의 눈에 단진이 들어왔다. 단진이었다. 창이는 안도와 함께 반가움에 활짝 웃었다. 창이가 서둘러 가려는데 백겸이 잡았다.

사람들 틈으로 키가 큰 향이 있었다. 단진의 앞에 향이 있었다. 창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 얼굴을 꺼멓게 칠한 삼년이 보고 있었다.

향이 있었다. 박 내관의 손에 이끌려 온 단진은 멍한 얼굴로 향을 보았다. 단진은 향을 보고 꿈인가 싶었다. 형형색색의 등불이 밝혀진 곳에 향이 서 있었다.

향은 단진의 얼굴을 보고 놀라 한 걸음 다가섰다. 단진의 눈가는 멍들었고 터진 입술에, 얼굴은 초췌했다.

박 내관이 고개 숙였다.

“소신을 죽여주시옵소서...장 내관이 아프다 하여 궁에 있는 줄 알았사온데...”

향이 말없이 단진을 바라보았다. 단진은 차마 향을 마주할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단진은 향과의 약속을 어기고 몰래 궁을 빠져나왔다. 자신을 믿어준 향에게 미안하고 염치가 없어 바로 볼 수가 없었다. 단진은 향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한참이 지났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단진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향은 말없이 보고만 있었다. 단진은 향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향이 단진에게 물었다.

“무얼 하고 있던 것이냐?”

“.......”

“고개를 들거라!”

단진이 향을 보았다.

단진의 멍든 얼굴이 향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향이 조용히 물었다.

“괜찮으니 말해 보거라. 무얼 하고 있었느냐?”

단진의 시선이 떨어졌다.

“.....후회를...하고 있었습니다.”

향이 단진을 보았다. 단진의 눈이 슬픔에 잠겨 있었다.

향이 물었다.

“해서, 달라진 게 있더냐?”

향이 말을 이었다.

“무엇이 됐든, 일어날 일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네 탓이 아니다!”

단진은 뜻밖의 말에 놀라 향을 보았다.

“야단치지 않으십니까? 저하와의 약속을 어기고 궁 밖으로 나왔사온데...”

향이 따뜻하게 물었다.

“밥은 먹었느냐?”

단진의 입술이 실룩이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 이내 뚝뚝 떨어졌다. 단진은 아이가 엄마를 만난 듯 서러움이 밀려왔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삼키며 울었다. 향은 잠시 울게 두었다.

향이 말했다.

“비가 올 것 같구나!”

단진은 훌쩍이며 향을 보았다. 단진이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장신구 파는 상점 2층에서 또다시 꽃잎을 뿌렸다. 꽃잎이 향과 단진에게 날아들었다. 꽃잎이 단진의 눈물 젖은 뺨에 톡 내려앉았다. 향의 하얀 손이 다가와 단진의 얼굴에 붙은 꽃잎을 떼어냈다. 단진이 향을 보았다.

박 내관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쩍 벌어졌다. 무사들은 시선을 돌렸다.

창이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백겸과 도화는 놀라 보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연분홍 꽃잎이 흩날리는 가운데 향과 단진이 서로를 보고 있었다. 단진의 젖은 눈은 반짝였고 향의 눈은 따뜻했다. 남색 답호에 은색 상투관에 비녀를 꽂은 향과 검정색 무명옷을 입은 작은 단진에게 연분홍 꽃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제껏 볏짚을 뒤집어쓰고 기회를 엿보며 숨어있던 공두가 확 튀어나왔다. 얼굴은 멍들고 옷은 찢겨 있었다.

“박 내관님! 홍단진이 없어...”

공두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허우적거리다 박 내관의 품에 안겼다. 그 바람에 박 내관이 단진을 밀쳤고 단진은 엉겁결에 향의 품에 안겼다. 향의 품안에 작은 단진이 있었다.

시간이 멈췄다. 단진은 그대로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창이의 몸에서 피가 삽시간에 빠져나갔다. 창이의 가슴이 거칠게 뛰었다. 도화가 창이를 보았다. 백겸은 놀라 보고만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단진이 고개 들어 향을 보았다. 향이 단진을 보았다.

그 순간 박 내관이 날쌔게 공두를 밀어내고 단진의 팔을 잡아끌어 향에게서 떼어냈다. 박 내관은 얼굴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단진을 노려봤다. 단진은 고개를 돌렸다.

공두는 눈치 없이 박 내관에게 보고하듯 말했다.

“내관 장공두, 홍단진이 사라져 보고하러 왔습니다.”

공두가 단진을 보고 놀란 듯 말했다.

“아니, 이런, 여기 있었느냐?”

공두가 향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저하. 홍단진이 저하를 지키겠다며, 역당을 물리치겠다고 해서 소인이 따라왔사온데, 갑자기 없어져 찾으러 다녔사옵니다. 소인, 역당과 싸우다 몸이 이리 됐사옵니다.”

박 내관이 공두를 발로 툭툭 차며 일어나라고 노려봤다. 단진은 여전히 넋이 나가서 공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공두가 일어나기 위해 박 내관을 잡았다. 박 내관이 탁 쳐내며 눈으로 공두를 찌르고 후려쳤다. 공두는 고통스러워하며 채찍에 맞은 듯 몸을 요란하게 움직였다.

향과 단진이 걸어갔다. 박 내관 공두 무사들이 뒤를 따랐다.

단진이 다리를 절며 걷는 것을 본 향이 걱정스레 말했다.

“괜찮은 것이냐?”

“괜찮습니다 저하!”

단진이 향을 보며 해맑게 웃었다. 장터 곳곳에서 연을 날리고 종을 흔들고 볼거리가 많았지만 단진에겐 향만 보일 뿐이었다.

창이 앞으로 단진이 지나갔다. 숨결이 느껴지고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창이가 단진을 향해 손을 뻗는데 도화가 그의 팔을 잡았다. 향의 시선이 창이에게 닿았다. 단진은 향을 보며 걷고 있었다. 단진이 향을 보며 활짝 웃었다.

창이가 단진을 보았다.

‘싫어. 그렇게 웃지 마 봄아...’


향과 단진 공두 박 내관 무사들이 국밥집에 들어갔지만 이미 장사가 끝났다. 향과 일행은 국밥집에서 나와 궁으로 향했다.

향은 절룩이며 걷는 단진이 걱정스러웠지만 단진은 괜찮다고 했다. 공두도 일부러 다리를 절었고 박 내관은 성한 다리도 그리 만들어주겠노라 겁박했다.

낮에 공두는 박 내관이 떠오르자 뒷간의 우울증이 싹 날아갔다. 단진을 찾아야 하나 박 내관에게 가야 하나 망설이는데 삼년이 나타났다. 단진이 향을 만나러 갔다고 알려주었다. 공두는 살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옷을 찢고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공두는 이제 은근슬쩍 잘 넘기면 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백겸 창이 도화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향과 단진은 서로를 보며 걷고 있었다. 창이의 세상이 밤하늘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도화가 말했다.

“쫓아가도 소용없어. 다시 대책을 세우자!”

창이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창이는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우리 봄이, 존경하는 문종 만났으니까, 이제 집에 데리고 가자!”

백겸과 창이가 국밥집으로 가려고 돌아서는데 누군가 탁 치고 지나갔다. 백겸과 창이는 몸이 굳어 서로를 보았다. 살기였다. 검은 무사복을 입은 자들이 장검을 차고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피비린내가 났다. 그들이 가는 곳에 단진이 있었다.

창이와 백겸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의 뒤를 쫓았다. 도화는 무슨 일인가 싶어 따라갔다. 삼년이 도화의 뒤를 쫓았다. 삼년은 이곳에서 노비일 뿐만 아니라 노름꾼에 발 빠른 도둑놈이었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들어섰을 때 자객들이 얼굴을 가렸다. 한 자객이 물었다.

“새로 나타난 저것들은 어찌할까요?”

“그것들부터 처리한다!”

자객이 단검을 꺼내 단진을 향해 던지려는 순간 창이가 말했다.

“무슨 처리?”

자객이 돌아본 순간 창이가 손목을 꺾고 단검을 빼앗아 그의 목에 댔다. 남은 다섯 명의 자객들이 서로를 보고는 창이에게 다가왔다. 창이는 단진에게서 멀리 떨어져야겠단 생각으로 자객의 목에 칼을 대고 뒷걸음질 쳤다. 백겸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어두운 곳이라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자객들은 뒤를 힐끗 보고 검을 빼들었다. 창이는 자신에게 덤빌거라 여겼는데 자객들 넷이 갑자기 돌아서 달려갔다. 그들이 단진이 있는 곳을 향했다.

창이는 단검을 달려가는 자객의 목에 던졌다. 자신이 잡고 있던 자객의 검을 빼 그를 베었다.

백겸은 이미 달려가는 그들을 막아섰다. 백겸은 창이에게 일격을 당한 자객의 목에서 단검을 뺐다. 자객이 검을 휘두르자 활처럼 휘어지며 피했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자객의 목에 단검을 꽂았다. 또다시 덤벼드는 자객을 바닥에 떨어져있는 검을 들고 단숨에 베었다.

창이가 백겸에게 달려오는데 뒤에서 자객의 검이 날아들었다. 창이는 순식간에 옆으로 돌며 검으로 막았다. 검이 부닥치는 쇳소리가 두세 번 일더니 잠잠해졌다. 창이가 거침없이 자객을 베었다. 자객의 몸에서 뿌려진 피가 창이의 얼굴에 튀었다.

자객이 쓰러지기 전에 달빛에 비친 창이의 얼굴을 알아보고 입을 뻐끔댔다.

“..창이...네...네놈이...”

남은 한 자객이 문을 딛고 지붕 위로 올라가는데 백겸이 따라갔다. 백겸이 허공을 날 듯이 올라가 자객을 잡아끌고 내려왔다. 백겸과 자객의 칼이 허공에서 부닥쳤다.

자객이 백겸을 알아보고 말했다.

“백겸. 이 죽일 놈...”

다시 검이 부닥쳤다. 백겸이 한 바퀴 돌며 인정사정없이 자객을 베었다. 자객의 피가 뿜어져 나와 백겸의 얼굴을 적셨다.

정적이 찾아왔다. 검에서 피가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모든 걸 보고 있던 도화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도화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백겸과 창이가 바람처럼 움직였다. 순식간에 자객 여섯을 처치했다. 삼년은 주저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백겸과 창이의 정신이 돌아왔다. 창이가 손에서 검을 떨어뜨렸다. 백겸의 손에서도 검이 떨어졌다. 창이의 손에서 백겸의 손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궁으로 들어가던 단진이 돌아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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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7 cr*****
    작성일
    20.07.23 11:32
    No. 1

    설레고 웃기고 슬프고... 진짜 이렇게 다 있어도 되는건가요~ 오늘도 잘 봤습니다~~

    찬성: 6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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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숙원 홍씨 50. 무예시합 날이 정해지다 +2 20.08.27 2,202 11 22쪽
49 숙원 홍씨 49. 여인 홍단진의 결심 +1 20.08.24 2,228 11 20쪽
48 숙원 홍씨 48. 백겸과 창이, 진양대군을 만나다 +2 20.08.20 2,269 11 21쪽
47 숙원 홍씨 47. 목멱산의 결의 +4 20.08.17 2,300 11 21쪽
46 숙원 홍씨 46. 계유정난을 막아라 +2 20.08.13 2,334 11 20쪽
45 숙원 홍씨 45. 단진의 고백 +2 20.08.10 2,349 11 20쪽
44 숙원 홍씨 44. 홍단진, 주상전하를 만나다 +2 20.08.06 2,364 12 18쪽
43 숙원 홍씨 43. 백겸과 창이 한양 기방에 들다 +1 20.08.03 2,387 11 16쪽
42 숙원 홍씨 42. 비 오는 밤, 사라진 자들 +3 20.07.30 2,400 11 18쪽
41 숙원 홍씨 41. 이향의 마음 +3 20.07.27 2,427 11 16쪽
» 숙원 홍씨 40. 꽃비 그리고 고려 제일 무사 창이, 조선 제일 무사 백겸 +1 20.07.23 2,444 11 20쪽
39 숙원 홍씨 39. 이향, 김종서와 야인을 만나다 +2 20.07.20 2,464 11 19쪽
38 숙원 홍씨 38. 운명적인 만남 +2 20.07.16 2,498 1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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