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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름 님의 서재입니다.

숙원 홍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서여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9
최근연재일 :
2021.04.12 11:00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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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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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09,561

작성
20.09.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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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숙원 홍씨 53. 나비문신

DUMMY

숙원 홍씨 53. 나비문신


백겸과 창이가 오솔길을 내려왔다. 도화는 기방으로 갔고 삼년은 갑자기 사라졌다. 백겸과 창이는 이제껏 왈패들의 소굴 주변을 샅샅이 뒤져가며 장검을 찾았지만 없었다. 놈들이 왈패들의 검을 보고 그들을 찾아냈다, 허면 검에 무슨 표식이 있지 않을까 싶어 희망을 가져봤지만 검은 없었다. 놈들이 가져간 게 분명했다.

하늘의 달만이 보고 있을 뿐 마을은 인기척이 없었다. 모두의 슬픔은 밤이 내리자 공포로 변해갔다. 하루아침에 이웃의 선량한 부부가 무참히 죽자 그들은 문을 꽁꽁 걸어 잠갔다.

백겸과 창이가 초가집 앞에 멈춰섰다. 포도청에서 시신을 거둬가 마당은 아무 흔적도 없었지만 피 냄새는 머물러 있었다. 부부의 죽음에 책임감이 느껴졌고 죽음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농가의 부부는 아무 죄도 없었고 아무 위험도 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죄 없는 부부를 무참히 죽였다. 놈들은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 잔인했다.

백겸과 창이가 민가를 벗어났다. 기방으로 올 때까지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창이는 왈패들의 몸에 베인 상처를 떠올렸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창이가 생각하는 것보다 놈들은 더 뛰어났다. 창이는 단진이 궁 밖으로 나올 거라고 확신했다. 결국 막을 방법은 하나였다.

백겸은 두려웠다. 단진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두려웠다. 백겸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잔인한 놈들에게서 단진을 보호해야 했다. 백겸은 단진이 이향을 보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올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백겸은 이향을 떠올렸다. 방법은 하나였다.

이향을 지켜야 했다.


기방 앞은 수많은 등불로 낮보다 더 훤했다. 술에 취한 손님들이 행여나 넘어질까 싶어 계단마다 등불이 밝히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사대부가의 가노들과 가마꾼들로 북적였다. 술에 취한 주인을 기다리는 가노들과 가마꾼은 가마 옆에 서서 기녀들을 힐끔힐끔 훔쳐봤다. 그들에게 한양 기방의 기녀들은 그야말로 선녀가 따로 없었다. 그런 기녀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주인을 잘 만나 누리는 호사였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사대부가 사내들의 무리가 기방에서 나왔다. 화려한 복색의 기녀들이 사내들을 붙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가노들이 달려가 사내들을 부축했다.

한 가노가 자신의 대감을 잡다가 초련의 저고리 사이로 드러난 살에 스쳤다. 야들야들한 살이 닿자 가노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초련은 가노의 손이 닿은 곳에 오물이라도 묻은 듯 털어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기방 앞에 있던 가마 세 채가 출발했다. 가마꾼들은 능숙하게 가마를 메고 걸었고 가노는 앞서서 제등을 비추었다. 한 사내는 가마에 앉자마자 졸았고, 한 사내는 가마에 앉아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시를 읊었다.

백겸과 창이는 기방 앞에 도착했을 때 더는 고민하지 않았다. 이제 싸울 준비를 해야 했다. 백겸과 창이는 술에 취한 사내들과 기녀들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기가 뭣해 잠시 서 있었다.

흔들거리는 가마 위에서 사내가 큰소리로 시를 읊고 있었다. 백겸은 이곳이 세트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아버지 진호의 얼굴이 바람처럼 왔다 사라졌다.

‘봄이 잘 챙겨!’

백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가하게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한쪽에서 김가와 은가가 서서 백겸과 창이를 보고 있었다. 김가는 단번에 그들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예의주시했지만 창이와 백겸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백겸은 김가의 검에 시선이 갔다.

“우리도 대비해야지. 검을 어디서 구하지...”

“어디서 구하긴, 검 파는 가게에서 구하지!”

“무슨 수로?”

“너!”

백겸이 단호히 말했다.

“그건 안돼! 태희한테 얹혀있는 것도 미안한데, 어떻게 검까지 사달라고 하냐!!”

창이가 어이없어 했다.

“너 언제부터 태희랑 하나였어? 너 너무 쉽게 살려 그런다! 돈 없다고 너무 뻔뻔하다! 태희가 왜 나와 뜬금없이. 너 잘하는 거 있잖아!”

백겸은 어리둥절했다.

창이가 말했다.

“절도!”

백겸은 어이없어 하며 뻔뻔하게 말했다.

“난 훔친 적 없어. 후불이지! 카드도 쓰면 다음 달에 결제하잖아.”

창이가 피식 웃었다. 창이가 다짐하듯 말했다.

“우리 둘이서 봄이 하나 못 지키겠냐? 걱정 마! 아...그냥 세종대왕한테 아들 못나오게 하라고 전화라도 할까?”

“것도 방법이네!”

백겸과 창이는 뒷문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진양이 안평과 기방에서 나왔다. 창이가 진양을 보고 멈춰섰다. 창이가 진양에게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저 방법은 어때?”

백겸이 창이의 시선을 따라갔다.

진양이 나타나자 계단에서 기녀를 잡고 흐느적거리던 사대부가 사내들이 서둘러 비켜섰다. 노란 불빛에 진양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진양은 자신을 보고 있는 창이를 보았다.

백겸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창이가 진양의 앞으로 다가갔다. 창이가 한 걸음 더 다가서자 김가가 날쌔게 와서 검으로 막아섰다.

“네 이놈! 감히 누구 앞을 가로막느냐! 썩 비키지 못할까!”

창이는 여전히 진양을 보고 있었다.

기녀들은 기방 안으로 들어가 얼굴을 내밀고 보고 있었고 가마를 타고 가던 사내가 돌아보고는 가마를 돌리라고 했다. 모두가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보고 있었다. 손님을 배웅하러 나온 도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겸이 창이에게 가려고 하자 도화가 말렸다.

진양과 창이는 서로를 보고 있었다.

안평이 창이를 힐끗 보고 진양에게 물었다.

“형님, 아는 잡니까?”

진양은 창이에게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잘 아는 놈이다. 안평, 먼저 들어가거라. 내일 보자꾸나.”

안평이 가려다 백겸을 보았다. 백겸과 안평의 시선이 잠시 부닥쳤다. 백겸과 안평은 서로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눈빛이 맑다. 안평이 백겸을 스쳐갔다.

진양이 김가에게 물러나라고 손짓했다.

진양이 한 걸음 다가갔다. 창이의 눈빛은 여전히 뜨거웠다.


‘사내가 한 여인을 지키는 것보다 더 대단한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재밌는 놈이구나. 좋다. 아까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냐?’

‘없습니다.’

‘헌데 어찌 길을 가로막았느냐?’

‘제가 가로막은 것이 아니고, 제가 가는 길로 오신 겁니다.’

‘너는 누구냐?’

‘저도 제가 누군지 모릅니다. 역병을 앓고 일어났는데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해서, 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어떠냐? 갈 곳이 없으면 내 집으로 들어오거라!’

‘제가 누군 줄 알고 들이십니까! 역당일 수도, 살수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내가 알아 할 것이다!’

‘저는 여인을 지키며 사는 걸로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 계집이 누군지 궁금하구나...’

‘계집이 아닌 여인입니다.’


진양이 웃었다. 진양은 이 낭만적인 야생마가 마음에 들었다.

“오늘도 네놈이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이 아니라, 네놈이 가는 길로 내가 온 것이냐?”

“아닙니다. 오늘은 할 말이 있습니다.”

“해 보거라!”

창이가 입을 열자 백겸이 말리려고 다가갔다.

“돈을 빌려주십시오!”

진양이 벙 쪄서 보았다.

“뭐라?”

백겸도 도화도 벙 쪄서 그대로 있었다.

창이가 말했다.

“돈이 필요합니다.”

진양은 창이를 잠시 보다가 박장대소했다. 창이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창이는 진양의 웃음 속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역당이 있으니 세자저하를 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자객을 봤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모두가 위험에 처해지게 될 게 자명했다.

뭐라도 말을 해야겠기에 아무 말이나 내뱉은 것이다.

진양이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참으로 뻔뻔한 놈이구나! 네놈이 지난번에 말하지 않았느냐! 역병을 앓고 일어나 기억도 나질 않고,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 네놈 무얼 믿고 돈을 빌려준단 말이냐?”

창이는 감정없이 말했다.

“제가 검을 잘 다루는지 알지 못하고, 누구를 위해 검을 쓰는지도 알지 못한다 했습니다. 또한 역당일 수도, 살수일 수도 있다 했습니다. 헌데 대군께서 그래도 상관없다, 호위무사가 되라 하셨습니다. 갈 곳이 없으면 오라 하셨습니다. 해서 갈 곳은 있으나 돈이 없어 돈 좀 빌려 달라 한 겁니다. 못들은 걸로 하십시오.”

창이가 돌아서는데 진양이 말했다.

“계집 지키는 일보다 더 큰일이 없다 큰소리치던 놈이니, 계집 때문이냐? 네놈 계집이 돈을 벌어오라 앙탈을 부리는 것이냐?”

창이가 서늘하게 진양을 보았다.

“계집이 아닌 여인이라 했습니다!”

진양은 또다시 웃었다.

“돈 빌려달라는 놈이 이토록 당당하니,”

진양이 옷섶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내 창이에게 던졌다. 창이가 얼결에 받았다.

진양이 말했다.

“빌려주는 것이다. 또한 돈은 내 방식대로 받을 것이다! 언제든 내가 찾으면 와야 한다.”

진양이 걸어갔다. 진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김가와 은가가 창이를 노려보고 진양을 뒤따랐다.

창이는 벙 쪄서 비단 주머니를 보고 있었다.


진양과 김가 은가가 함께 걸었다. 하얀 구름 사이로 달이 훤히 비추고 있었다.

김가가 걱정스레 말했다.

“대군마마, 아까 그놈은 예사 놈이 아니옵니다!”

“네가 봐도 그러하냐?”

“가까이 하지 마시옵소서. 위험하옵니다!”

진양이 웃었다.

“위험하다면 더욱 가까이 해야겠구나. 내 곁에 있으면 다른 놈들이 위험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할 게 아니냐!”

“대군마마...”

진양이 김가를 보며 말했다.

“순포는?”

김가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그놈은 갑자기 사라졌다 하옵니다.”

진양이 멈춰섰다.

“미행하지 말라 했다!”

“미행하기도 전에 사라졌사옵니다. 헌데 흥인문을 나섰고, 흥천사에는 오지 않았다 하옵니다.”

진양은 순포의 동선을 알아내기 위해 사대문에 사람을 매복시켜 놨다. 흥천사에도 사람을 심어 놨다.

진양은 잠시 있었다.

“흥천사에 다녀왔다고 하겠구나. 당분간 절대 미행해선 아니 된다. 어차피 그놈의 뒤를 밟는다 해서 밟힐 놈이 아니다, 허니 당분간은 그냥 두거라. 놈이 앞으로 흥천사를 들락거릴 테니, 아마도 그곳에서 소식을 전할 것이다. 그때 잡아야 한다.”

“예 대군마마.”

진양은 걸어가려다 돌아보았다.


도화의 처소에 들어오자마자 백겸은 창이에게 화를 냈다. 백겸과 창이는 왈패들 소굴에서 더렵혀진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백겸은 내내 잔소리를 해댔다.

“늑대 잡자고 호랑이 끌어들여?”

“일단 늑대는 무리고 호랑이는 한 마리잖아. 그리고 아무 말 안했잖아!”

“독고준, 잊었어? 민혁을 죽였어!”

“됐어! 이혼이야! 잔소리 심해서 너랑 못 살겠어. 돈 벌어오라고 등 떠민 게 누군데!”

창이가 돈 주머니를 내밀었다.

도화가 문을 벌컥 열고 발을 확 젖히고 들어와 소리쳤다.

“독고준 너 미쳤어?”

창이가 양손으로 몸을 가리며 말했다.

“나 옷 벗고 있는데.”

도화는 아랑곳 않고 다가왔다.

“너 생각 있어 없어? 수양한테 자객들 나타나서 다 죽였으니, 위험하니까 문종 나오지 말라고 하려 그랬어?”

창이가 놀라운 듯 말했다.

“괜히 전교 1등이 아니야. 어찌 이리 잘 알까?”

“독고준!”

“안했잖아. 내가 짱구야? 내가 여름이야? 나 알고 보면 되게 똑똑해! 나도 모르게 내 발이 나갔어. 발이. 내가 머리는 좋은데 발이 영 안 좋잖아.”

도화는 그제야 둘 다 윗옷을 벗고 있는 걸 알았다. 도화의 눈에 백겸의 몸에 난 상처자국이 들어왔다. 백겸이 옷을 입으며 도화와 시선이 마주쳤다. 도화가 민망해 돌아서는데 창이의 어깨 끝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창이가 윗옷을 걸치자 도화가 다가가 옷을 확 벗겼다.

창이가 물러섰다.

“이러지 마. 너에게 줄 마음 없어. 내 몸도 마음도 여름이 줬어!”

도화는 창이의 나비문신을 뚫어져라 보았다.

“자객들 몸에 이 문신이 있었어!”


도화가 짚단을 다시 시신 위에 덮으려는데 번개가 번쩍였다. 한 시신의 찢겨진 옷 사이로 드러난 어깨 끝에 뭔가가 보였다. 나비문신이었다. 도화는 자객들의 몸을 살폈다. 모두가 같은 자리에 나비문신이 있었다.


백겸과 창이가 놀라 도화를 보았다.

백겸이 말했다.

“이건 준이네 야인 부족 문신이야.”

도화가 서둘러 말했다.

“쟤네 부족 문신이...왜 자객들에게...”

창이가 물었다.

“모두 어깨에 나비문신이 있었다고?”

백겸이 물었다.

“진짜? 확실해?”

도화가 말했다.

“확실해!”


백겸과 도화 창이는 어두운 길을 내달렸다. 둘 중 하나였다. 김종서 집에 있는 야인들이 창이와 같은 부족이거나, 아니라면 창이의 부족이 몰래 한양에 잠입해 이향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백겸과 창이는 김종서 집에 있는 야인들의 몸에서 문신을 확인해야 했다. 지난번에 봤을 때 모두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으나 문신까지 확인하진 못했다. 이들이 문신이 있다면 이들을 막아야 했다. 이들에게 문신이 없다면 놈들을 찾아야 했다.

백겸과 창이, 도화는 김종서의 집 뒤쪽으로 돌아갔다. 야인들이 묵고 있는 별채로 갔지만 어둠만이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도화가 소리 낮춰 말했다.

“내일 오자고 했잖아. 지금 있다고 해도 어떻게 확인을 해! 강제로 옷이라도 벗기게?”

그때였다. 담장너머로 그림자가 스윽하고 나타나 도화를 건드렸다.

도화는 깜짝 놀라 물러서다 뒤뚱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찰나에 백겸이 도화를 잡았다. 도화는 백겸에게서 벗어나지도 않고 뭔가 싶어 어둠 속을 응시했다.

담장 너머로 인옥이 속삭였다.

“나야 태희야. 소이야...”

도화는 짜증을 팍 냈다.

“야! 지금 거기서 뭐하는 거야?”

도화는 그제야 자신이 백겸에게 안겨있는 걸 알고는 서둘러 떨어졌다.

창이가 인옥에게 물었다.

“야인들은 어디 갔어?”

인옥이 소근거렸다.

“낮에 김종서님한테 휴가 달라고 했어. 한성부 무예시합 준비로 애들이 힘들어한다면서, 하루만 바람 쐬고 오겠대! 오늘 안에 온다고 했는데, 아직 안 왔어! 그래서 오늘 여기서 하루 종일 기다렸어. 봄이는? 봄이한테 연락 왔어? 봄이 안 나온대? 봄이에게 꼭 나오라고 전해 줘! 운종가에 봄이랑 갈만한 곳도 알아놨어!”

도화는 어이가 없었다.

“너 혹시 야인들 몸 봤어? 어깨에 문신 있었어?”

도화는 관두자 싶었다.

“됐다, 네가 야인들 문신을 어떻게 봤겠냐.”

인옥이 말했다.

“나 봤어! 야인들 어깨에 문신 없어!”

백겸이 물었다.

“진짜 없어?”

“응. 진짜 진짜 없어!”

도화는 믿지 않았다.

“마님이 무슨 수로...”

백겸과 창이는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함길도에서 자신을 쫓던 놈들을 떠올렸다. 집요했다. 그놈들의 칼이 단진을 향하는 것 같아 가슴이 서늘해졌다.


백겸과 창이, 도화는 삼년을 찾기 위해 국밥집으로 들어섰다. 도화는 내일 야인들 문신을 확인하는데 삼년이 필요했다.

국밥집은 평소와는 다르게 등불이 하나만 밝혀져 있어 꽤 어두웠다. 국밥집의 손님은 평상 위의 다섯 사내가 전부였다. 검은 삿갓을 쓴 사내 둘과 호, 결, 석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검은 삿갓을 쓴 사내들은 담장을 등지고 앉아 있었고 그 앞에 호, 결, 석이 있었다. 호가 도화와 백겸 창이를 힐끗 보고는 술을 마셨다.

도화가 방문을 열었지만 삼년은 없었다. 때마침 퉁퉁한 주모가 다가왔다.

퉁퉁한 주모가 도화에게 친한 척하며 눈짓했다. 도화가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을 보았다. 주모가 소리 낮춰 말했다.

“저것들이 하루 종일 죽치고 있어서 장사 죽 썼어...불도 다 꺼놨는데도 가지도 않고....”

도화가 물었다.

“얘 어디 갔어요?”

“그지 발싸개 아까 아까 오긴 했는데, 오자마자 뒷간으로 내빼듯이 가더니, 빠져 죽었는지. 통 보이질 않네...”

백겸과 창이가 서로를 보았다. 창이는 혹시 몰라 국밥집 뒤쪽으로 갔다.

검은 삿갓을 쓴 승무가 담장을 타고 넘어왔다. 승무는 인기척이 들리자 서둘러 바지를 내리고 볼 일을 봤다. 오줌 줄기가 담장을 적셨다.

창이가 승무의 뒷모습을 보았다. 창이는 어둠 속에서도 삼년이 아님을 알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돌아섰다.

“대체 어딜 간 거야...”

승무가 힐끗 창이를 보았다. 달빛이 창이의 얼굴을 비추었다. 승무가 놀라 창이를 봤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승무는 서둘러 오줌발을 끊으려 했지만 막상 나온 오줌발은 멈추지 않았다. 서둘러 바지춤을 추슬렀지만 지금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갑자기 승무는 헛웃음이 나왔다. 승무는 형제 여섯이 죽은 이후로 예민해져 있었다. 죽은 창이가 살아있을 리가 없었다. 때마침 호가 걸어왔다.

승무가 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용무용이 담장을 넘어왔다.


군관들은 국밥집을 감시하고 있었다. 용무용이 김종서에게 바람을 쐬러 가겠다고 해서 김종서가 허락했다. 김종서는 군관들에게 용무용을 미행하게 했다. 만의 하나라도 수상쩍은 기미가 보이면 보고하라고 했다. 김종서는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한성부 무예시합을 취소할 생각이었다. 김종서는 세자저하의 안위가 걸린 일이라고 부장과 군관들에게 엄하게 지시했다.

군관들은 세 개조로 나눠 용무용 일행을 미행했다. 용무용 일행은 운종가 여기저기를 걷다가 국밥집에 들어가서는 하루 종일 술만 마시고 있었다.

부장과 고참 군관들은 국밥집이 잘 보이는 다른 국밥집에서 보고 있었고. 군관 두 명은 나무 뒤에서 감시하고 있었다. 군관은 하루 종일 서서 한 곳만 보고 있으니 몸이 뻣뻣해지는 것 같았다.

백겸 창이 도화가 걸어갔다. 군관은 목을 움직이며 백겸을 힐끗 보았다.

달빛이 백겸의 얼굴을 비추었다.

군관이 놀라 다시 백겸을 보려는데 옆에 있던 군관이 툭 쳤다.

삿갓을 쓴 용무용과 승무가 국밥집 뒤로 갔다. 군관이 다시 보니 백겸은 가고 없었다.

잠시 후 국밥집 뒤에서 용무용과 승무가 나왔다. 승무가 호와 결, 석에게 손짓했다. 그들이 다가왔다. 용무용은 삿갓을 벗어서 손에 들고 밖으로 나왔다.


달빛이 훤히 비추고 백겸과 창이가 걸어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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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7 cr*****
    작성일
    20.09.07 11:42
    No. 1

    오늘도 흥미진진하네요! 창이와 수양대군도 앞으로 어떻게 얽히게될지 엄청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찬성: 6 | 반대: 0

  • 작성자
    Lv.6 k1******..
    작성일
    20.09.07 13:57
    No. 2

    창이와 수양대군이라니 조합이 너무 좋네요 ㅋㅋㅋ 기대됩니당

    찬성: 4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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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숙원 홍씨 44. 홍단진, 주상전하를 만나다 +2 20.08.06 2,364 12 18쪽
43 숙원 홍씨 43. 백겸과 창이 한양 기방에 들다 +1 20.08.03 2,387 11 16쪽
42 숙원 홍씨 42. 비 오는 밤, 사라진 자들 +3 20.07.30 2,401 11 18쪽
41 숙원 홍씨 41. 이향의 마음 +3 20.07.27 2,427 11 16쪽
40 숙원 홍씨 40. 꽃비 그리고 고려 제일 무사 창이, 조선 제일 무사 백겸 +1 20.07.23 2,444 11 20쪽
39 숙원 홍씨 39. 이향, 김종서와 야인을 만나다 +2 20.07.20 2,464 11 19쪽
38 숙원 홍씨 38. 운명적인 만남 +2 20.07.16 2,498 1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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