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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름 님의 서재입니다.

숙원 홍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서여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9
최근연재일 :
2021.04.12 11:00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215,213
추천수 :
1,167
글자수 :
809,561

작성
20.09.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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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21쪽

숙원 홍씨 58. 무예시합-2

DUMMY

숙원 홍씨 58. 무예시합-2


“뭐라? 세자저하께서 오셨다고?”

장문호가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갑작스레 세자저하께서 오셨단 소리에 대신들은 허둥대며 일어섰다.

용무용은 목검을 고르고 있었다. 용무용은 웅성거리는 곳을 힐끗 보고 목검을 잡았다. 용무용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붉은 무사복을 입은 별감들 사이로 금색 문양이 들어간 무사복을 입은 향이 보였다. 향이 걸어왔다.

용무용은 삽시간에 피가 빠져나간 듯 창백해졌다.

향이 가까워졌다.

속았다. 용무용은 이향에게 제대로 속았다. 용무용의 피가 빠르게 돌면서 심장이 맹렬히 뛰었다. 분노가 하늘을 찌르며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목검을 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승무가 놀라 용무용을 보았다.

향의 눈길이 잠시 용무용에게 닿았다.

향을 본 대신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가가 예를 갖췄다.

장문호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세자저하 납시셨사옵니까! 저하께서 못 오신다는 연통을 받고 소신, 저하께 무슨 일은 생기지 않았나 걱정이 돼 잠을 이루지 못했사옵니다! 이렇게 저하를 뵈오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호판과 예판이 장문호의 과한 아부에 찡그렸다.

향이 웃었다.

“판부사대감께서 이리 준비를 잘 해놓으셨는데 본관이 어찌 안 오겠습니까!”

“저하...망극하옵니다.”

향이 김종서를 보았다.

“형판대감 오셨습니까.”

김종서가 미소 지었다.

“예 세자저하.”

향이 김종서에게 먼저 알은체를 하자 호판은 기분이 상했다.

호판이 서둘러 향에게 인사했다.

“세자저하. 감축드리옵니다. 오늘 무예시합은 야인과의 첫 화친을 경하하는 자리가 아니옵니까!”

예판이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저하. 감축드리옵니다.”

향이 호판과 예판을 보며 말했다.

“야인과의 화친을 반대하셨던 대감들께서 호의를 보여주셔서 전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앞으로 많이들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세자저하!”

향이 진양과 안평을 보며 미소 지었다.

“진양, 안평 잘 왔다!”

“세자저하...”

진양과 안평이 활짝 웃었다.

진양의 시선이 순포를 향했다. 놀란 눈으로 향을 보고 있던 순포가 서둘러 눈길을 거두었다.

용무용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순포가 이향을 보고 있는 걸 진양이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용무용의 가슴은 여전히 맹렬이 뛰고 있었지만 머리는 차가워지고 있었다. 서서히 용무용은 냉정을 되찾았다.

승무의 증오심 가득한 눈이 이향을 향하고 있었다. 용무용이 승무의 시선을 막아서고 무섭게 보았다. 승무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용무용이 목검을 다른 걸로 고르는 척하면서 승무와 호와 결, 석에게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날이 아니다. 허니 숨소리에도 감정을 드러내지 마라. 오늘은 무예시합에만 집중해라. 알겠느냐?”

내금위 별감들 사이에 공두가 있었다. 공두는 언제 어디서 자객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옆에 있는 정 무사의 장검을 빼앗으려 했다.

정 무사의 인내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 무사는 궁에서 나올 때부터 공두 때문에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저하의 호위에 만전을 기울여야 하는데 공두가 옆에서 자꾸만 말을 시켰다. 검을 들고 있기 무겁지 않냐면서 들어주겠다고 했다.

공두가 두리번거리다 무사들을 위해 준비해둔 검에 시선이 갔다. 슬그머니 가서 검을 집으려는데 최 무사가 막아섰다. 최 무사가 가라고 눈짓을 했다.

박 내관은 공두를 보고 있지 않았다. 박 내관은 공두가 별감 옷을 입고 나타나는 바람에 아침부터 끓어올랐다. 내시부 망신을 시킨 죄를 톡톡히 치르게 할 것이다. 허나 박 내관은 지금 공두를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박 내관은 용무용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공두는 박 내관에게도 별감들에게도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돼 있었다. 공두는 자신을 사지로 내몬 단진을 가만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공두는 언제 어느 때 들이닥칠지 모를 자객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다. 향의 뒤에만 있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터였다. 공두는 서둘러 향의 뒤에 가서 자리를 지키고 섰다.

향이 자리에 앉자 대신들이 앉았다.

대신들은 향의 갑작스런 행차가 궁금했지만 감히 세자저하께 왜 나오지 않는다고 해놓고 나왔냐고 물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향은 공식적으로 나오지 않겠다고 말을 전했다. 그 말의 속뜻을 알아챈 사람은 진양과 안평, 김종서뿐이었다.

그리고 단진이었다. 향이 미소 지었다.


“공식적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단진의 눈에서 미처 떨어지지 못한 눈물이 떨어졌다. 단진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저하...허면 공식적으로 나가지 않겠다 전하셔서 그들을 속인 연후에, 저하께서 비공식적으로 나가신다는 말씀이옵니까?”

향은 명민한 단진을 보며 웃었다.

“네 말대로 내금위 별감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되었느냐?”

단진의 촉촉한 눈이 빛났다.

“예 저하! 그리하면 되었사옵니다. 자객들은 저하께서 나오지 않으신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저하께서 나오신 걸 알게 되면, 저하께 자신들의 패를 들킨 게 되기에 앞으로 무모하게 일을 벌이지 못할 것이옵니다....”

단진은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또한 그들은 저하께서 어떤 분이신지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이는 일석삼조의 계책이옵니다. 역당과의 싸움도 전쟁과 같사옵니다. 역시...저하께서는 진법을 편찬하시고 화차도 만드시니, 저하만큼 병법에 통달한 분도 안 계실 것입니다. 저하...이렇듯 이기는 싸움만 하십시오.”

단진은 너무도 좋아하며 향의 손을 잡았다. 향이 단진을 보았다. 단진은 화들짝 놀라 손을 놓고는 활짝 웃었다.


향은 미소 지었다.

문득 새로운 진법 편찬을 계획하고 있고 화차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걸 단진이 어떻게 알았나 하는 생각이 바람처럼 불어왔다.

무예시합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향의 양 옆으로 김종서와 장문호가, 그 옆으로 호판, 예판, 형판, 공판이 앉아 있었다. 대각선에 진양과 안평, 참판들이 앉았고 맞은편에도 다른 대신들이 앉았다. 탁자에는 술과 음식이 잘 차려져 있었다.

호판은 향의 옆자리를 김종서와 장문호가 차지하고, 자신의 자리는 김종서 옆으로 밀려나 있어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장문호가 향에게 예를 갖추고 일어섰다. 장문호는 탁자 위에 고이 모셔둔 상자 안의 장검을 가리켰다.

“오늘 무예시합에서 우승하는 무사에게는 세자저하께서 직접 검을 하사하실 것이다. 또한 이긴 편에게는 금 스무 냥이 주어질 것이다.”

맑은 하늘을 장식한 천이 바람에 나풀나풀 날렸다.

시합에 참여하는 무사들은 각자의 자리에 섰다. 그들의 자리에는 머리에 두른 건과 같은 색의 깃발이 세워져 있었다. 깃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용무용과 승무, 호와 결, 석은 검은색 건을 둘렀고. 진양의 무사들은 회색 건을, 안평의 무사들은 흰색 건을 두르고 있었다. 한성부의 관원들은 분홍색 건을, 군관들은 푸른색을, 겸사복들은 청색 건을 둘렀고 내금위 별감들은 붉은 건을 둘렀다.

장문호가 자리에 앉고 또다시 북이 울렸다.

시합에 참여하는 무사들이 향의 앞으로 나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예를 올렸다.

마지막으로 용무용과 승무, 호와 결, 석의 차례가 됐다. 용무용은 다른 무사들이 인사했던 자리에 섰지만 잠시 있다가 향을 보며 한 걸음 다가섰다.

향의 곁을 지키는 최 무사와 권 무사가 장검에 손을 얹었다. 진양이 날카롭게 용무용을 보았다.

호판이 벌떡 일어나 노여워했다.

“어서 썩 물러서지 못할까! 어찌 야인 따위가 세자저하 앞에 함부로 나서는 것이냐? 형판께선 대체 무얼 가르치신 겝니까? 형판께선 세자저하에 대한 예도 가르치지 않고 이 자리에 보내신 겝니까?”

김종서가 조용히 말했다.

“호판께서 먼저 예를 갖추시지요. 세자저하께서 계십니다!”

호판은 향이 아무 말 없자 조용히 앉았다.

향은 용무용을 보고 있었다.

용무용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무예시합에 참여하는 무사들 말고도 많은 군관들, 십수 명의 내금위 별감들, 십수 명의 겸사복들까지 구경을 하기 위해 몰려와 있었다. 한성부 지붕 위에도 별감들의 모습이 보였다. 또한 이향을 측근에서 호위하는 내금위 별감들은 무예시합에 참여하지 않았다. 딱 봐도 보통 수준의 별감들을 내보냈다.

용무용이 이향을 잘못 읽었다.

최 무사가 용무용에게 다가가려 하자 향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용무용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향은 보고 있었다.

용무용이 향에게 큰절을 올렸다.

“저하...미천한 저희를 조선인으로 받아주시고, 일천한 저희의 실력을 보기 위해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또한 이렇게 귀한 걸음 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저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향이 말했다.

“일어서거라.”

용무용이 일어나 향을 보았다.

향이 용무용을 보았다.

용무용은 향의 깊은 눈을 보았다. 너무 깊어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하나는 깨달았다. 향의 눈 속에는 날카로운 검이 있었다.

이향 이번엔 네가 이겼다. 용무용이 고개를 숙였다.

향이 미소 지었다.

“수련을 열심히 했다 들었다. 네 재주를 마음껏 보이거라.”

“일천하오나, 소신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또다시 묵직한 북소리가 울렸다.


북소리는 한성부 밖까지 울려 퍼졌다. 한성부 앞은 무예시합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세자저하께서 친히 나오셨다는 소식에 버선발로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안을 들여다보려 소란을 피웠다. 결국 관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구경꾼들을 겁박해 멀찍이 물러나게 했다.

백겸과 창이가 장검을 들고 한성부를 보고 있었다. 도화는 백겸과 창이를 살폈다. 차분해 보였지만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러다 저 둘이서 한성부로 쳐들어가는 건 아닌가 싶어 바짝 긴장했다. 삼년은 그들 옆에 서 있었다.

삼년이 말했다.

“서봄은 없었어...”

백겸이 창이를 보며 말했다.

“원빈이가 나왔다면 당연히 봄이도 나왔을 거야. 그런데 왜 안 보였지?”

“나도 못 봤어. 대체...”

삼년이 입이 툭 튀어나와 말했다.

“왜 날 못 믿어? 서봄은 없었다니까!”

창이가 결심한 듯 서둘러 말했다.

“내가 한성부로 들어가 봐야겠어!”

도화가 버럭 소리 질렀다.

“미쳤어?”

도화가 눈을 부릅떴다.

“그러는 순간 네가 자객이 되는 거야! 제발 생각 좀 하고 말해!”

도화가 돈 주머니를 꺼냈다.

“기다려! 나원빈을 불러달라고 해야겠어!”

그때였다. 별감 옷을 입은 공두가 뒷짐을 지고 나타났다.

백겸과 도화 창이가 공두에게 다가가려 했다.

한성부는 입구에 관원들이 일렬로 서 있었고 계단을 올라오면 또 관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철통같이 지키라는 명이 떨어진 터라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관원들이 창으로 막아서며 고함쳤다.

“아까부터 저리 좀 가라니까 대체 왜 여기서 기웃대는 것이냐?”

공두가 관원들을 내려다보며 야단쳤다.

“어허, 안에 세자저하가 계시거늘 어찌 목소리를 높이느냐? 네놈들이 이리 시끄러우니 내금위장인 내가 나선 것이다!”

관원들은 내금위장이란 말에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내금위장 나으리.”

공두의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백겸과 창이 도화가 다가갔지만 공두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와중에 장난을 치고 있는 공두를 보자 백겸과 창이는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창이가 소리쳤다.

“야! 빨리 안 내려와!”

공두가 엄하게 꾸짖었다.

“네 이놈! 감히 내금위장에게 야라 하였느냐? 네놈이 그러고도 살아남길 바라는 것이냐?”

백겸이 말했다.

“장난하지 말고 봄이 어딨어?”

공두는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자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를 떠올리고는 달리듯이 내려왔다. 공두는 다짜고짜 백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야! 서여름! 네 쌍둥이 닭이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 줄 알아?”

“봄이 어딨냐고?”

“어딨긴, 궁에서 아주 편히 주무시고 계시겠지!”

백겸과 창이는 서로를 보았다.

백겸이 공두의 손을 떼어냈다.

“진짜야?”

“그게 물귀신 작전을 써서, 저하...나가시면 아니 되옵니다...밤새 동궁전 앞에 서 있고. 동궁전 망신을 시키더니. 하도 창피하니까 저하께서 안 나간다고 거짓말을 하신 거야. 아침이 돼서 나가려고 하시니까.”

공두가 단진이 흉내를 냈다.

“저하..소인도 한성부에 가게 해주십시오. 저하...제발 부탁이옵니다...”

공두가 향의 흉내를 냈다.

“아니 된다 했다. 너는 궁에 있거라.”

다시 단진의 흉내를 냈다.

“저하...허면 소인 청이 있사옵니다. 장 내관을 데려가십시오. 장 내관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사옵니다. 저하를 안전하게 모실 것입니다.”

공두는 양손을 들고 바르르 떨었다.

“그게...닭대가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뱀대가리였어...저만 살려고 궁에 있고 나만 사지로 몰아넣었다고.”

창이가 서둘러 말했다.

“봄이 궁에 있는 거 확실해?”

“그래! 그래서 내가 지금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 서여름에게 책임을 물으려 한다. 서여름 네놈의 죄는 죽음으로 물어 마땅하다.”

백겸이 재차 확인했다.

“궁에 있는 거 확실하지?”

“이것들이 떼로 닭이 됐나! 몇 번을 말해! 또 모르지, 뱀이 됐으니 기어 나올지. 서여름, 가만 안 두겠어!”

북소리가 또다시 들리자 공두는 이럴 때가 아니지 싶어 서둘러 올라갔다. 들어가다 관원들 옆을 지날 때는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관원들이 인사를 하자 거들먹거리다 잽싸게 달려 들어갔다.

백겸과 창이는 서로를 보았다. 안도감에 절로 숨이 빠져나왔다. 창이는 이제껏 숨을 참고 있던 기분이었다.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깊게 숨을 내뱉었다. 백겸은 어찌나 긴장했는지 입이 바짝 말라있었다. 백겸은 마른세수를 하고는 숨을 내뱉었다.

도화가 정리했다.

“서봄 안 나온 거 확실하네.”

삼년이 투덜거렸다.

“내가 안 나왔다고 했잖아.”

창이는 이향이 나온 이상 안심할 수 없어 백겸에게 말했다.

“너는 서문으로 가. 봄이 혹시 나올지도 모르잖아. 나는 이곳에 있을게.”

백겸이 가려고 하자 삼년이 따라나섰다.

도화가 삼년을 막아섰다.

“넌 여기 있다가 무슨 일 생기면 보고해.”

삼년은 창이와 같이 있는 게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창이는 한성부를 보았다. 창이는 이제부터 나비문신을 잡아야 했다. 창이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분명 이 근처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한성부 마당이 온통 웃음바다가 됐다. 장문호만이 울그락 푸르락이었다.

호판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웃어젖혔다. 향도 김종서도 진양도 안평도 모두가 웃고 있었다. 시합을 구경하고 있던 군관들과 겸사복들은 웃음을 참고 있었다.

시합장에는 석이 목검을 들고 있었고 관원이 엉금엉금 기어서 나가고 있었다. 장문호가 내보낸 관원들은 목검을 들기도 전에 석에게 당했다. 그 모양새가 하도 우스워 대신들은 웃어젖혔다.

시합을 준비하던 관원이 장문호의 눈치를 살폈다.

다음 차례가 된 관원이 시합장으로 나와 향에게 인사를 했다. 관원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기합소리를 내지르며 석에게 달려들었다. 석은 미동도 없이 보고 있다가 관원이 달려들자 슬쩍 몸을 피했다. 관원은 달리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시합장을 벗어나 뛰어갔다.

대신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향과 김종서가 서로를 보며 웃었다.

호판이 박장대소하다가 향에게 말했다.

“저하...판부사께서 저하께 웃음을 드리기 위해 일부러 수하들에게 시킨 듯하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형편없을 수는 없사옵니다.”

장문호가 부들부들 떨었다.

호판이 말을 덧붙였다.

“저하...판부사께서 실로 저하를 생각하는 마음이 큰 듯하옵니다.”

호판은 자신의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복수를 하고 있었다. 장문호가 앉아 있는 그 자리는 당연히 자신의 자리여야 했다. 호판이 또다시 웃어젖혔다.

박 내관과 최 무사를 비롯한 내금위 별감들은 웃지 않았다. 박 내관은 용무용을 주시하고 있었다. 모두가 웃었지만 용무용과 그 일행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박 내관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북소리가 울렸다.

안평의 사병들은 호와 승무에게 패했다. 진양이 배를 잡고 웃었다.

“그냥 서책을 들고 오지 그랬느냐...”

안평은 기분이 상해 고개를 돌렸다. 진양이 안평에게 술잔을 들며 마시자고 했지만 안평은 본 척도 안했다.

향이 그런 진양과 안평을 보며 웃고 있었다. 진양이 향과 눈이 마주쳤다. 진양이 아이처럼 웃었다.

내금위 별감들도, 군관들도, 겸사복들도 모두가 용무용의 무사들을 이기지 못했다. 승무와 호와 결, 석의 검은 사나웠다.

진양의 사병 차례가 됐다.

김가가 먼저 나섰다. 승무가 시합장으로 나왔다. 둘은 향에게 인사를 했다.

김가와 승무는 기싸움 하듯 서로를 보았다. 시작과 함께 목검 부딪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오늘 시합 중 가장 제대로 된 대결이었다. 떠들썩하던 사람들이 시합에 집중했다. 승무가 워낙 빨랐지만 김가도 만만치 않았다. 둘은 거의 비등했지만 승무의 승리로 끝이 났다.

김가가 진양을 보며 면목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진양은 잘했다고 끄덕였다.

순포가 시합장으로 나섰다. 승무가 목검을 들고 나섰다. 순포와 승무가 서로를 보고 인사했다. 둘의 시합은 볼만했다. 순포와 승무는 서로를 위해 져줄 생각이 없었다. 대신들은 탁자 앞으로 몸을 내밀며 빠져들었다. 진검승부였다. 순포가 승무의 손을 내리쳐 검을 떨어뜨렸다. 순포의 승리로 끝이 났다.

승무가 순포를 노려보았다. 순포가 보일 듯 말 듯 웃었다. 둘은 수련할 때 열 번 대련을 하면 순포가 일곱 번을 이겼다.

순포가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사람은 창이 밖에 없었다. 순포는 갑작스레 떠오른 창이 생각에 표정이 사나워졌다.

잠시 쉬는 시간이었다.

승무는 한성부를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거사를 성공시켰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승무는 혹시나 싶어 한성부 밖을 살폈다. 형제들에게 소식을 전하긴 했지만 미처 듣지 못한 형제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아는 얼굴은 없었다. 돌아서는데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어젯밤에 놓친 돼지 수레를 끌던 놈이었다.

삼년은 입을 씰룩이며 걸어갔다. 창이가 백겸에게 가 있으라고 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와 보고하라고 했다. 삼년은 탁구공도 아니고 이리 치고 저리 치고. 그래도 이런 일이라도 할 게 있는 게 다행이었다.

삼년은 한성부를 벗어났다.

승무가 삼년의 뒤를 밟았다. 워낙 발이 빠른 놈이니 섣불리 쫓아선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저놈을 쫓아 형제들을 죽인 놈들을 찾아내야 했다.

창이는 한성부 주변을 빙 둘러봤지만 나비문신은커녕 수상한 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다시 한성부 입구로 왔다. 창이는 안으로 들어가서 살피고 싶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때였다. 방법이 창이에게 다가왔다.


‘쿵’ ‘쿵’ 북이 울렸다.

시합이 진행될수록 뜨거워졌다. 시합의 백미가 남아 있었다.

용무용이 목검을 들고 시합장으로 들어섰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용무용을 보았다.

진양이 일어섰다.

“세자저하.”

향이 보았다.

“마지막 시합에 앞서, 저희 무사들끼리 대련을 시켜, 이긴 무사가 조선에 귀부한 족장과 겨루게 하였으면 하옵니다.”

향이 웃으며 답했다.

“그리 하거라.”

진양이 순포를 가리켰다.

순포가 목검을 들고 시합장으로 들어섰다. 진양이 돌아보며 손짓했다.

순포는 누가 나오든 상관없었다. 자신이 이길 건 자명했다. 순포는 용무용이 돌처럼 굳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순포가 돌아보았다.

용무용은 너무도 놀라 그대로 보고 있었다. 순포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창이가 시합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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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숙원 홍씨 56. 이향, 무예시합에 가지 않기로 하다 +1 20.09.17 2,065 10 17쪽
55 숙원 홍씨 55. 단진의 간절함 +1 20.09.14 2,089 9 21쪽
54 숙원 홍씨 54. 향을 지키려는 단진 +2 20.09.10 2,117 10 18쪽
53 숙원 홍씨 53. 나비문신 +2 20.09.07 2,138 10 19쪽
52 숙원 홍씨 52. 죽이려는 자, 지키려는 자 +1 20.09.03 2,164 11 21쪽
51 숙원 홍씨 51. 단진, 향의 위험을 알아채다 +1 20.08.31 2,189 11 20쪽
50 숙원 홍씨 50. 무예시합 날이 정해지다 +2 20.08.27 2,202 11 22쪽
49 숙원 홍씨 49. 여인 홍단진의 결심 +1 20.08.24 2,228 11 20쪽
48 숙원 홍씨 48. 백겸과 창이, 진양대군을 만나다 +2 20.08.20 2,269 11 21쪽
47 숙원 홍씨 47. 목멱산의 결의 +4 20.08.17 2,300 11 21쪽
46 숙원 홍씨 46. 계유정난을 막아라 +2 20.08.13 2,334 11 20쪽
45 숙원 홍씨 45. 단진의 고백 +2 20.08.10 2,349 11 20쪽
44 숙원 홍씨 44. 홍단진, 주상전하를 만나다 +2 20.08.06 2,364 12 18쪽
43 숙원 홍씨 43. 백겸과 창이 한양 기방에 들다 +1 20.08.03 2,387 11 16쪽
42 숙원 홍씨 42. 비 오는 밤, 사라진 자들 +3 20.07.30 2,401 11 18쪽
41 숙원 홍씨 41. 이향의 마음 +3 20.07.27 2,427 11 16쪽
40 숙원 홍씨 40. 꽃비 그리고 고려 제일 무사 창이, 조선 제일 무사 백겸 +1 20.07.23 2,444 11 20쪽
39 숙원 홍씨 39. 이향, 김종서와 야인을 만나다 +2 20.07.20 2,464 11 19쪽
38 숙원 홍씨 38. 운명적인 만남 +2 20.07.16 2,498 1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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