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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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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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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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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싸움이 끝난 뒤, 자유 교역 도시의 사람들은 한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했다.

평원에 내려앉은 용족들의 시체만 20구 이상.

온몸이 금덩이나 다름없는 놈들의 시체를 수습하는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뿐이랴.

비공정의 수리와 부상자 수습 등등. 그 밖에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나와 참모진들은 값진 승리를 축하할 새도 없이 용족 둥지 공략을 준비했다.

레니아의 말에 따르면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위험하단다.


"승기는 이미 알룬님께 넘어왔지만, 용족들이 제대로 된 전략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끝장입니다. 놈들이 탁월한 기동력을 살려서 저희 영지를 타격하면 정말 골치아플테니까요."


내가 성왕국을 받아들인 탓에 안 그래도 넓던 수비 범위가 더더욱 넓어졌다.

덕분에 그리폰 기병을 얻긴 했지만 그걸 써먹어봤자 용족들의 공세를 완벽하게 막아내긴 힘들다.

따라서 내 참모들은 이번 공세를 막아내자마자 용족들의 둥지를 역습할 계획이었다.

놈들을 궁지에 몰아넣어서 반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청룡왕이 비공정을 침몰시킨 탓에 계획이 어그러졌다.

용족들의 둥지는 높은 고산지대에 있는데, 비공정 없이 그곳에 닿는 것은 무척 힘들다고 한다.

그리폰 기병을 쓰면 어찌어찌 될 것 같기도 하지만 용족들과는 체급부터 다르다.

녀석들만 가지곤 용족들의 수비를 뚫기 힘들다.


"그럼 청룡족들부터 공격하도록 하지. 놈들은 이번에 용왕을 잃었으니 쉽게 해치울 수 있을거야."


침묵 속에서 의견을 꺼내든 것은 다름이 아닌 알레디우스였다.

그는 청룡왕이 소멸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애써 담담함을 보였다.


집무실의 사람들은 그것을 살짝 불편하게 여기는 듯 했지만, 애써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데 섣불리 패륜아로 몰아가는 것도 못할 일이다.


'알레디우스는 패륜아 취급 당해도 기뻐 할 것 같긴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이 스치는 사이 회의적인 표정의 카스트로가 반론했다.


"청룡족이 약해졌다곤 해도 비공정이 없으면 대원들이 많이 상할거야. 일단 수리가 끝날 때 까지 가만히 있는게 나을 것 같다."

"비공정의 수리가 끝날 때 까지는 1개월 이상이 걸린다고 했지. 그때까지 용족들이 가만히 있겠나?"

"전쟁 때 제대로 연계도 못하던 놈들이 뭘 어떻게 하겠어?"


카스트로가 코웃음을 치자 알레디우스가 실소한다.


"한 번 이겼다고 오만해지긴. 내 동족들은 치졸하고 음흉한 술수를 짜내고 실행하는데엔 최고다."

"으음..."


알레디우스의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지금 이대로 공격을 실행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결국 우리는 한동안 휴식하기로 결정하곤 뿔뿔이 흩어졌다.

도시의 안팎에서는 장인들과 일꾼들의 망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퍼진다.


나는 이번 전투에서 거둬들인 전리품의 일부를 휘하 영주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용족의 사체는 심한 인플레이션을 일으킬만한 가치를 지녔으나, 당장 전력을 증강시키는게 급하다.

다른 영주들도 생각이 있다면 그걸 팔아먹지는 않으리라.


회의를 끝낸 나는 아린이 사용하던 건물에서 작업 현장을 지켜보다 뒷뜰로 걸음을 옮겼다.

교단 사제들의 생활공간으로 쓰이는 그곳에서는 아가르타와 신입 사제들이 신수들을 돌보고 있었다.


"아이, 자매님. 짹짹이는 좀 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니까요? 걔네가 많이 섬세한 애들이에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단의 막내였던 녀석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사장님 의자에 앉아서 신입 사제들을 호령한다.

새파란 풋내기들은 그녀의 명령에 따라서 땀을 뻘뻘 흘리며 천마의 털을 빗고 새들에게 모이를 줬다.


얼마 전에 성왕국을 먹어치운 이후, 레니아는 정찰의 중요성을 더더욱 강조했다.

우리는 머릿수가 모자란지라 광대한 영토를 안정적으로 지키기가 힘들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방법은 오직 하나. 정찰용 신수를 최대한 활용해서 적들의 접근을 일찌감치 알아채는 것이다.


모처럼 농땡이를 피우고 있던 아가르타는 내가 다가오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사장님 의자를 내게 양보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가볍게 꿀밤을 먹인 뒤 무릎을 꿇으려던 신입 사제들을 만류했다.


"넌 막내 탈출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농땡이야?"

"에이, 알룬님. 그래도 제가 짬이 있는데..."


말년 병장 마냥 대꾸하던 아가르타가 신도들의 기도를 들은 듯, 귀를 쫑긋거린다.

한쪽 눈을 감으며 신수의 시야를 확인해본 녀석이 그것을 내게 전달해주며 말한다.


"저, 잠깐 이쪽을 좀 보셔야겠는데요?"


우리 아가르타가 짬을 아주 헛먹지는 않았구나.

나는 조용히 감탄하며 그녀가 지목해준 신수를 살펴봤다.

용족들의 둥지를 감시하던 신수가 저 멀리, 커다란 그림자를 열심히 쫓고있다.


"놈들이 벌써 움직인건가? 예상보다 훨씬 빨라. 알레디우스의 말대로네."

"지, 지금 당장 수비 병력을 급파할까요?"

"아니. 이제와서 보내봤자 늦을거야. 내가 직접 간다."


허둥대는 아가르타를 안심시킨 뒤에 화신체를 해제했다.

제아무리 정찰병을 뿌려둔다고 해도 날개 달린 놈들을 쫓아가는건 힘들다.

원래는 아슬론과 카스트로, 로웬을 그리폰에 태워서 각 방향에 배치해두려고 했다.

그러나 용족들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머지않아 용족들의 그림자를 놓쳐버린 신수는 다음 타자에게 임무를 넘겼다.

각지에 뿌려둔 신수들이 용족들의 비행경로를 끊임없이 쫓는다.

한참을 날아간 놈들이 도착한 곳은 다름이 아닌 구 신성제국령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얻은 땅이자, 수 많은 신도들과 만났던 곳.

아직까지 성역 취급을 받고있는 영지가 그들의 목적지다.

비교적 후방인데다 나름대로 상징성이 있는 곳이니 몰래 급습하긴 딱이다.


구름 속에서 내려온 용은 총 세 마리.

용족 연합에 참여한 적룡과 흑룡, 녹룡의 일족이 사이 좋게 한 마리씩 섞여있다.

커다란 날개를 펼친 놈들은 경악한 사람들을 보며 크게 웃었다.


"인간 놈들 허둥대는 꼴 좀 보라지. 자, 어서 네놈들의 신을 불러보거라."

"감히 용족들에게 대적하고도 무사 할 줄 알았느냐!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늦었다. 우리들의 충고를 따라서 도망쳤어야지."


빈집털이를 온 주제에 위풍당당하기도 하다.

나는 대량의 신앙점수를 투입해서 화신체를 내려보냈다.

당연하지만 이곳의 사람들이 죽도록 내버려둘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도 없이 이곳에 온 것도 아니다.


"아스트라."


청룡왕에게서 얻은 권능을 사용하자 서슬퍼런 번갯불이 나타났다.

내 신성력을 게걸스럽게 빨아먹은 녀석이 금세 몸집을 불리며 스파크를 튀긴다.

그제서야 나를 목격한 용족들이 주문을 취소하며 눈을 크게 뜬다.


"처, 청룡왕의 권능이 어째서 저놈에게..."

"설마 청룡왕이 일족을 위해서 자신의 권능을 팔아넘긴건가?"


자신들의 등을 지켜줬던 청룡왕을 까대던 놈들은 지체없이 숨결을 준비하려 했다.

그러나 내가 조금 더 빠르다.

아스트라는 사정거리가 워낙 긴지라 놈들이 발견하기 전에, 멀찍이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일단 한 놈만 떨어뜨리면 되겠지.'


슬슬 용족 전문가가 되어가던 나는 가장 꼴사납게 까불어대던 적룡을 노렸다.

곧이어 내 손에서 날아간 번개가 놈의 몸에 직격한다.

녀석은 열심히 날개를 펄럭였으나, 아스트라는 빗나가지 않는다.

단 일격에 비공정을 추락시켰던 번개는 용족의 강건한 몸을 안팎으로 구워버렸다.


"끄흐윽!"


듣기 거북한 비명을 내지르며 추락하던 용은 땅에 닿기도 전에 절명해버렸다.

지진에 버금가는 진동과 소음, 흙먼지가 비산했지만 땅에서는 환호가 울려퍼진다.

용족들의 등장에 겁먹었던 영지민들은 내 이름을 연호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반면, 나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용족을 하나 떨어뜨렸다곤 해도 신앙점수의 소모가 너무 막대하다.

지금처럼 놈들이 쳐들어 올 때 마다 아스트라를 쏴대면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파산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수지가 맞을 필요는 없다.

동족의 죽음을 목격한 용족들은 이미 그림자도 쫓기 힘들 정도로 멀리 달아나버렸다.

놈들은 언제나 본인의 목숨이 최우선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저번 싸움에서 진작 패배했을 것이다.


"알룬님, 저희를 버리지 않으셨군요!"


마을의 촌장이 나를 보자마자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나는 화신체가 완전히 흩어지기 전에 뒷처리를 당부했다.


"내가 왜 버려... 조금 있으면 영주성에서 사람이 올테니까 용의 사체를 잘 간수하라고 전해다오."


어색한 존댓말이 끝나자 신성력이 다 되어서 화신체가 역소환된다.

제법 성공적으로 일을 끝낸 나는 레니아에게 보고하기 위하여 자유 교역 도시를 살폈다.

이번에 살아돌아간 놈들이 아스트라에 대해서 떠들어대면 감히 또 기습을 하려고 들진 못하겠지.


그런데 집무실에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레니아는 제법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신전 건물의 부엌에서 나온 그녀는 뭔가를 들고 내 집무실로 돌아간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녀를 찾고 있던 듯한 아슬론이 의심에 가득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레니아. 아가르타 자매가 용족들의 기습을 알렸다. 이 시급한 와중에 간식거리나 챙기고 있다니..."

"알룬님께서 직접 나서셨는데 시급할 것이 어디있습니까? 이제 곧 그분께서 용족의 수급을 들고 돌아오실겁니다. 청룡왕에게서 얻으신 아스트라를 사용하면 놈들을 쫓아내는건 일도 아니지요. 알룬님의 위용에 겁먹은 용족들은 감히 재차 기습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테고요."


레니아는 우리 교단의 브레인답게 내 행동을 완벽하게 예측했다.

살짝 호들갑을 떨던 아슬론은 갑자기 머쓱해진 나머지 화제를 돌렸다.


"으음, 그런가? 그런데 그 손에 들고 있는건 뭔가?"

"이건 별 것 아닌 간식거리입니다. 대주교님께서 직접 신경쓰실 필요는 없어요."


아슬론의 의심이 깊어지도록, 바구니를 등 뒤로 숨기는 레니아.

하지만 용인족 최고 전사의 감각은 그 정도로 속일 수 없었다.


"뭔가 달콤한 냄새가 나는군. 그런데 향기가 조금 이상하다. 왠지 모르게 잡스런게 섞여있는 것 같은데?"

"자, 잡스러운 냄새요? 도대체 어디가요?"


예상치 못한 지적에 놀란 레니아가 바구니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가 들고있던 것은 다름이 아닌 초콜릿이었다.

여러가지 재료를 모아서 손수 만든 듯, 살짝 어설프지만 정성이 들어간 형태.

아슬론은 그것을 보고 더욱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또 뭐지?"

"초콜릿이란 간식입니다. 알룬님과 같은 외계신들께서 즐겨 드신다고 하더군요. 마침 오늘은 이 초콜릿을 선물로 주는 날이라고 들어서..."


아, 그러고 보니 벌써 발렌타인 데이였나?

용족들과 한창 전쟁하는 와중에 잘도 그런걸 챙기는구나.

레니아의 양해를 얻어서 그것을 집어든 아슬론이 그것을 자세히 분석한다.


"카카오 씨앗을 발효시킨 다음 설탕과 우유를 넣은건가? 요상한 모양이라서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꽤 잘 만들었군."

"원래 그런 모양으로 만드는 음식입니다. 대주교님과는 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아시는군요?"

"내가 살던 숲에도 카카오 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이 요상한 냄새는 뭐지? 뭔가 이상한게 섞여있는거 아닌가?"


아슬론이 아까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인상을 찌푸리자 레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 그건 민트입니다."

"민트? 신전 마당에 피는 잡초 따위를 왜 넣었다는 말인가. 이거 알룬님께 바칠거 아니었나?"

"딱히 알룬님께 바친다고 말씀드린 적은 없는데요..."

"네가 이걸 알룬님께 진상하지, 달리 누구에게 준다고."


그에게 정곡을 찔린 레니아가 미묘한 표정으로 설명을 덧붙인다.


"외계신들께선 민트를 좋아하신다고 합니다. 빙과나 초콜릿 같은 간식에도 자주 섞어서 드신다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알룬님께서 이런 괴식을 즐기실리가 없다."


나는 아슬론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화신강림을 사용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민트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

그러나 레니아는 나를 보자마자 눈을 희번덕거리며 초콜릿을 내밀었다.


"이건 다른 외계신의 주교에게 들은 것이니 확실합니다! 알룬님, 제 선물을 받아주시겠어요?"

"어... 고, 고마워 레니아."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선물을 받았다.

정성이 가득 담겼다는게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니란걸 배울 수 있었다.


작가의말

연재 재개한지 얼마나 됐다고 슬슬 막히네요...


엔딩은 오래 전부터 정해놨는데 과정이 문제입니다.


길어도 180회 이내로 완결 낼 것 같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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