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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최근연재일 :
2020.05.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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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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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회

DUMMY

모든 사람들이 도시의 재건을 위하여 힘쓰는 동안, 로웬은 내 방에서 노닥거리며 광부들이 열심히 캐온 정령석을 섭취했다. 아슬론은 그 느긋한 모습을 보고 배가 아파진 듯 책상 위에 쌓여있던 정령석들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 돌맹이가 사실은 마력 덩어리라 이거지..."


은근슬쩍 로웬을 따라하던 그는 한참동안 낑낑대다 정령석을 도로 놓아버렸다. 소파에 눕듯이 널브러져있던 로웬은 그것을 보고 킥킥거린다.


"정령 친화력이 있어야 한다니까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 없어요."


"그럼 너도 정령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는건가?"


아슬론이 샐쭉한 목소리로 묻자 로웬이 의외로 당당히 긍정했다.


"당연하지요. 저는 마법신의 신좌에서 분리된 존재인 만큼, 어지간한 적성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정령을 사역하는 것도 가능하지요."


"뭐라고? 그럼 왜 안 하는데?"


이번에는 내쪽에서 놀랄 차례였다. 로웬은 내 물음에 곧바로 자세를 고치더니, 사근사근함까지 곁들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제가 정령술의 적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법을 쓰는 것 보다는 못합니다. 기왕 마력이 있으면 그걸로 마법을 쓰는게 몇 배는 효율적이에요."


하긴. 내가 로웬의 주문 사용을 자세히 분석해봤는데, 그녀의 솜씨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주문의 모든 공정이 극도로 효율적인 것은 물론이고 대기중에 흩어진 마력까지 재활용해버린다.


때문에 그녀는 비교적 적은 양의 마력을 가지고도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줄 수 있었다. 정령석의 마력을 흡수하여 마력량을 늘린다면 이전보다 더 굉장해지겠지.


아슬론은 그 즈음에서 정령석의 마력을 흡수하는걸 포기하곤 시무룩한 뒷모습을 보이며 집무실을 나섰다. 그는 당분간 변이도 최대한 피해야하는 처지인 만큼, 멈춰버린 성장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으리라.


한편. 우리가 취해야할 다음 행동에 대하여 토론하던 레니아와 카엘은 좀처럼 적당한 방침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당장 요정의 숲에서 할 수 있는건 죄다 하고 있지만... 그것 만으로는 아린에게서 살아남지 못할게 분명하다.


그녀들은 아가르타가 물어온 정보들을 늘어놓고 담론을 벌였다. 나는 대충 이야기가 정리된 것 같자 냉큼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어디, 새 소식이라도 있어?"


"자유 교역 도시가 성왕국으로 진군하기 시작했습니다. 행군 경로에 있는 영지들은 지원군 모집이라는 명목하에 차례차례 점령되는 중이고요."


"이제 진짜 막 나가네... 구 신성제국령의 영주들은 어떻게 대처하고있어?"


"대부분은 영지를 떠나려고 하는데, 영지민들이 잘 따르지 않는 모양입니다."


영지민들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통치자가 바뀌는 것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여차하면 징병될 수도 있겠지만, 자유 교역 도시는 이미 충분한 숫자의 정예병들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은 농번기이니 징집병을 늘리기보다는 이대로 농사를 진행시키겠지. 지금의 영주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한. 영지민들은 그들을 따라 나서려 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아린에게 짓밟힐 뿐. 영주들은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고, 덕분에 자유 교역 도시군은 파죽지세로 구 신성제국령을 점령할 수 있었다.


한동안 다른 이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기로 결정했던 나였지만,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동요할 수 밖에 없었다. 로웬은 우리의 회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몇 마디 했다.


"너무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배가 고프고 목이 타는 상황이지만, 적어도 몸을 뉘일 곳은 확보해뒀습니다. 다른 이들은 지금 우리보다 더 급하겠지요."


"글쎄... 그렇다고 우리가 마냥 강 건너 불구경 할만한 상황은 아니잖아."


"왜 아닙니까? 우리가 강을 건너서 불을 꺼준다 한들,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까요? 지금은 불난 쪽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손을 뻗길 기다려야합니다."


흡사 선문답 같은 답변이었지만 대충 이해는 됐다. 아니나 다를까. 로웬이 옳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진짜로 급한건 우리가 아니라 그쪽이었다.


자유 교역 도시의 침공에 불안해진 사람들은 우리가 요정의 숲을 차지했다는걸 전해듣곤, 앞다투어 이곳을 방문했다. 개중에는 구 신성제국령의 영주들은 물론이고 이곳저곳에 흩어져있던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어쩌면 자유 교역 도시의 세력에 버금가는 연합을 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큰 기대를 품고 가장 먼저 방문한 이들을 맞이했다. 우리의 첫 손님은 예전의 이웃인 구 신성제국령의 플레이어였다.


비록 교단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첫 단추를 잘 끼워야 그 다음도 수월히 들어가는 법이다. 방문객은 신도의 입을 빌려서 내게 인사했다.


"자비로우신 외계신, 알룬님을 뵙습니다. 오늘 제가 신도들을 이끌고 찾아온 것은 알룬님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말해보십시오."


상대가 공손히 나오자 레니아의 목소리도 평소보다 부드러웠다. 하지만 우리는 곧 공손한 것이라고 다 좋은건 아니라는걸 알게됐다.


그의 '부탁'을 모두 들은 레니아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며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난민들이나 다름없는 신도들을 이곳에서 맡아달라고요? 종교의 자유와 생존권을 보장하면서. 다른 세력과의 싸움에도 동원하지 말고?"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무엇인가요? 아, 틈틈이 선교 활동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전쟁에도 동원하지 말아달라고 하셨으니, 그 선교활동이란 다름이 아니라 알룬님의 백성들에게 대한 것이겠군요."


레니아의 말투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신랄하게 들렸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차마 제지할 수 없었다.


저놈은 내 신도들이 피땀을 흘려가며 탈환한 땅을, 무슨 탁아소 마냥 취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슬론은 예의 손님들을 당장이라도 베어죽일 듯한 기세로 몰아냈다.


그가 찾아왔을 때,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이던 로웬은 애써 내 기운을 북돋아준다.


"괜찮습니다. 저토록 멍청한 놈이니 앞뒤 가리지도 않고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겠지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 쓸만한 동맹이 나타날겁니다."


"... 그렇겠지?"


나는 불안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나... 아쉽게도 뒤이어 나타난 손님들 또한 처음과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그들 중 대부분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내 주교들의 보호를 받길 원했으며, 간혹 제시되는 보상들도 시원찮은 것들 뿐이었다.


그뿐이랴. 몇몇은 아예 나를 협박하려 들기도 했다.


"제 주인께서는 신계에서 큰 영향력을 지니고 계십니다. 알룬님께서 자유 교역 도시 길드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신 지금. 제 주인께서 한 마디만 하시면..."


"해 봐."


내가 퉁명스레 대답하자, 아슬론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뻔뻔히 지껄이던 놈의 목을 벴다. 역시 아린의 저택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정보 통제가 확실히 되고있는 모양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내가 그녀의 집에서 탈출했다고 여겼겠지.


다음 손님은 화신강림 특성을 사용해가며 직접 이야기했는데, 말투가 어지간히도 이상한 듯 번역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일본인이 분명한 그는 괴상망측한 목소리로 절규하듯 이야기한다.


"와타시의 신도들을 맡아주시는 데샤아앗!"


"여기 탁아소 아니라고..."


로웬이 손가락을 퉁기자 그의 화신체가 터지며 역소환됐다. 저 정도면 현실의 몸에도 피드백이 갔으리라. 하지만 방금 그의 괴성을 떠올리자 도저히 그녀를 탓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왠지 모르게 혐오감이 느껴져서..."


"아냐. 잘 했어."


나는 로웬의 사과를 넘기며 다음 손님을 받았다. 원래 플레이어들은 연합하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지만... 나는 혼자서도 기본 특성들을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동맹의 필요성이 덜하다. 그래서 배짱을 부리기도 편했다.


하루종일 손님들을 맞이했던 나는 집무실 겸 침실로 돌아가서 투덜댔다. 외계신이 신도들의 앞에서 위엄없는 모습을 보이는건 피해야할 일이었으나, 이번에는 레니아도 나를 나무라지 않는다.


"아무리 첫날이라 그래도 온갖 병신들이 다 꼬여드네... 지금이라도 아린에게 투항하러 갈까? 아직은 받아줄 것 같은데."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뱉자 로웬이 쩔쩔메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동맹 후보들의 수준이 저리도 엉망일 줄은..."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그나저나 진짜로 적응 안 되네."


내가 이제껏 보조를 맞춰봤던 플레이어들은 대부분이 자유 교역 도시 길드의 길드원들이었다. 그 외에는 서부 지역의 패자인 다르몬드 정도?


물론 그들도 낮의 방문객들과 똑같은 플레이어들이지만... 같은 플레이어라도 격이 다른 존재들이다. 풀 포켓몬으로 치면 이상해씨와 치코리타 정도? 솔직히 말해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다.


아린은 이제껏 저런 놈들을 어르고 달래며 연합을 이끌어온 것일까? 그렇다면 애버론의 사후에 그녀가 급격히 흑화한 것도 이해가 된다. 나는 갑자기 그녀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나와 신도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쓸만한 동맹이 나타날 때 까지 기다렸다.




작가의말

슬슬 쌓아놓은 플롯이 바닥나니까 전개가 막막해지네요... 좀 있으면 예비군 훈련도 있고. 연재가 좀 느려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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