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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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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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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0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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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요정의 숲에서 신도들의 훈련에 힘쓰던 아슬론은 새로운 사건에 대한 소식을 듣자마자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회의실로 달려갔다. 그는 마악 회의를 시작하려던 레니아에게 외치듯 요청한다.


"지금 당장 나를 보내다오! 감히 알룬님의 이름을 더럽힌 놈들을 다 찢어버리고 오겠다."


"절대 안 됩니다."


레니아는 단칼에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 잔뜩 성이 난 아슬론은 한 마디 더 하려다가 다른 신도들과 내 시선을 받곤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카스트로가 그런 아슬론을 조용히 꾸중했다.


"이 자식아, 도대체 언제쯤 철이 들거냐. 넌 이제 대륙 남부의 대부분을 집어삼킨 거대 교단의 수장이다."


"그러니 더더욱 이번 사건을 철저히 처벌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처벌 안 한대? 엄한 놈 족쳐서 비웃음 당하지 않으려면 일단 제대로 알아야지."


회의에 참석해있던 고블린 도둑, 라르고가 핀잔을 주자 아슬론이 끄응 하고 작게 신음했다. 레니아는 두 선배들에게 감사의 눈짓을 하곤 그제서야 회의를 시작했다.


나는 먼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가정을 제시했다.


"혹시 변경으로 도망간 아린이 저지른걸까?"


"그건 아닐겁니다."


레니아는 나를 안심시키는 말부터 하곤 차근차근 근거를 제시했다.


"확실히 아린쪽은 동기도 있고, 능력도 있지만... 그쪽은 지금 자기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테지요. 저희에 대한 중상모략을 행할 처지가 아닙니다."


"그렇지? 만약 아린의 소행이라면 일처리가 훨씬 깔끔했을거야."


사실 나는 아린을 당분간 놔둘 생각이었다. 그녀가 도망친 변경까지 군대를 몰고가려면 비용이 꽤 많이 드는데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도 있다.


어차피 자유 교역 도시를 잃은 그녀는 더 이상 내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 그녀가 보유한 천리안은 신앙점수를 먹어치우는 괴물인지라 이 상태로는 제대로 써먹을 수도 없다.


그러니 그쪽에서 괜히 가만히 있는 우리를 쑤셔댈 이유가 없다. 아슬론은 정보가 너무 부족해서 지지부진한 회의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말했다.


"그냥 조사대를 파견해서 직접 조사해보면 될 것이 아닌가."


"아슬론님. 알룬님의 앞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추태를 보이지 말아야지."


엘리자베스의 말에도 불구하고, 흥분한 아슬론은 점잖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나는 모두를 위해서 그에게 쓴소리를 했다.


"아슬론, 잠시 나가있어라."


"..."


다른사람들의 말을 들은체도 하지 않던 아슬론은 총이라도 맞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회의실에서 천천히 걸어나갔다. 레니아는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한탄하듯 말했다.


"일단 아슬론님은 조사대에서 무조건 제외입니다. 지금 이대로 보냈다간 사고칠게 뻔하네요."


"애초에 대주교가 이런 일에 일일이 나선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죠."


"그럼 누구를 보내시려고요?"


드물게도 딱딱한 표정을 지은 로웬이 레니아에게 강렬한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레니아는 그녀의 기세에 질리면서도 천천히 인원을 꼽아본다.


"일단은 로웬님이 가시는게 가장 좋겠네요. 뛰어난 마법사가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테니까... 다르몬드님의 신도들 중 몇몇을 호위로 붙여드리겠습니다. 교단의 사제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 아가르타 자매님도 동행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내 허가를 받은 신도들은 즉시 말 위에 올라서 요정의 숲을 떠났다. 마음 같아서는 근처에 있는 신하들을 시켜서 알아보고 싶었지만, 원주민 교단을 멸망 직전으로 몰고간 이들인 만큼 직접 조사해보지 않고는 안심할 수가 없었다.


조사대는 내가 새로이 만든 신수들을 타고 빠르게 움직였다.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안 그래도 넉넉하던 신앙점수가 넘칠 정도로 쌓여서 탄생시킨 녀석들이었다.


회의실에서 쫓겨난 아슬론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뒤뜰에 있다가 나를 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룬님..."


"아슬론. 왜 그렇게 급해? 우리 교단에서 네 충심을 의심할 사람이 어디있다고?"


"죄송합니다."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사죄했다. 카스트로는 시무룩해진 아들을 데리고 다시금 대련을 시작했다. 서로의 힘을 동일하게 제안하고 겨루는 대련은 이제 아슬론의 일과가 되었다.


아슬론도 용족들 중에서는 나름대로 기교파에 통했으나, 그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체격과 몸무게로 싸워온 아버지에겐 비할바가 아니다.


아까의 회의 이후로 찝찝한 기색을 보이던 레니아는 오래지 않아 아슬론을 불러들였다. 그녀는 내게서 받은 자료들을 건네주며 그를 북돋기 위해 말했다.


"교단의 운영을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신앙 점수를 습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슬론님은 실력이 뛰어난 신도들을 이끌고 교단의 영역 안쪽에 있는 재앙의 씨앗들을 사냥해주십시오."


"알겠다. 심심하던 차에 잘 됐군."


"그리고 적동용왕의 저주를 완전히 제어할 수 있을 때 까지는 장거리 원정을 피하셔야합니다."


"그, 그쪽은 노력해보지."


아슬론이 재앙의 씨앗을 사냥하고 신성력을 수련하는 사이. 로웬을 비롯한 조사대는 아돌레나의 사제들과 함께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로웬은 풍비박산이 나버린 신전 건물의 잔해를 보곤 당혹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변방이라길래 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가깝네요. 이곳은 우리 영역권 근처인데..."


말에서 내린 아가르타는 잿더미 주변의 핏자국을 손으로 훑어보곤 남몰래 혀를 내둘렀다. 아슬론을 따라다니며 별의 별 참상을 다 봐온 그녀였지만, 사건 현장은 우리의 예상 이상으로 참혹했다.


이 정도면 아돌레나의 사제들이 굉장히 점잖게 증언한 것이다. 로웬은 현장을 오래 훑지 않고 가장 가까운 영지로 향했다.


"이만한 소동이 있었는데 주변의 외계신이 눈치채지 못했을리가 없습니다. 우선 그쪽으로 가서 사정을 들어보지요."


불안한 심정으로 말을 몰아가던 로웬은 오래지 않아 말문이 막혀버렸다. 내게 충성을 맹세한 플레이어의 성벽 위에는 플레이어 본인의 성표 외에도 익숙한 모양새의 깃발이 하나 보였다.


아가르타가 살짝 멍한 목소리로 어이가 없다는 듯 내뱉었다.


"왜 우리 교단의 깃발이 저기에 걸려있는거죠?"


"글쎄요..."


사정을 대충 짐작한 로웬은 분노한 표정으로 자신의 도착을 알렸다. 성문의 위에는 성표가 휘날리고 있건만. 정작 조사대의 일원들은 그 누구도 깃발을 들고있지 않았다.


내 교단의 사제들은 갖가지 임무들을 수행하는 동안 여행용 망토를 걸쳐서 정체를 숨긴다. 잘 다려진 옷을 입는 보통 사제들과 달리, 잦은 고생으로 인하여 해진 옷을 입고 지친 표정으로 다닌다.


때문에 내 영지민들은 사제들을 존경하고 경의를 표할지언정, 그들을 부러워하지는 않았다. 성문 앞의 경비들은 아돌레나의 사제들과 내 신도들을 비웃다가 뒤늦게 정체를 깨닫곤 부리나케 달려갔다.


이윽고 영주성 쪽에서 영주의 주교들이 버선발로 뛰쳐나와 로웬 일행을 맞았다. 로웬은 아주 딱딱한 말투로 자신의 용무를 밝히곤 추궁하듯 물었다.


"그런데... 왜 저희 교단의 성표가 이곳에 걸려있는 것입니까?"


"그, 그야 저희가 알룬님의 충성스런 신하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지요. 아시다시피 이런 변방에는 불한당과 사기꾼 놈들이 많이 꼬여들어서... 알룬님의 위엄을 빌려 그들을 겁주고자 했습니다."


하긴. 내 깃발을 보면 아무리 용감한 도적이라도 자신의 계획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리라. 나는 영주의 말을 들으며 이걸 기뻐해야하나 고민했다. 잔뜩 뿔이 난 로웬은 카엘과 레니아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런 때에는 어떻게 해야하죠?'


'저희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은건 좀 괘씸하지만... 명색이 신하인데 깃발을 빌려쓴다고 뭐라 하긴 좀 그렇네요.'


'지금 그걸 가지고 처벌하는건 힘들 것 같습니다.'


"... 좋습니다. 그럼 이 앞에 있던 토착신, 아돌레나의 신전에 대해서 아시는게 있으십니까?"


땀을 뻘뻘 흘리는 신도가 대답하기도 전에. 뒤쪽에 있던 아돌레나의 사제들이 성벽 근처의 영지병들을 가리키며 답했다.


"이자들입니다! 저희들의 신전을 허물고 사제들을 해친건 이자들이에요!"


"뭐라고요? 확실합니까?"


"아돌레나님의 이름에 맹세코!"


"저 얼굴을 잊을리가 없습니다."


나는 갑자기 신성력과 마력으로 이루어진 뒤통수가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로웬은 이제 대놓고 도끼눈을 뜨며 영주의 사람들을 추궁했다.


"이자들의 말이 사실입니까? 정직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불충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내 기아스에 걸린 주교들이 로웬을 말을 듣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은 양손을 다소곳하게 모은 채 자초지총을 털어놓는다.


"그, 그렇습니다. 건방진 토착신의 사제들이 변방의 주민들을 망령되이 현혹시킨다는 보고가 들어와서 혼쭐을..."


"영지 주변의 토착신 교단을 공격하는데, 군주이신 알룬님께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것입니까?"


"저희 영역권 안쪽의 일이었습니다!"


어린아이를 꾸중하는 듯한 로웬의 말투에 화가난 신도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박했으나, 그것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확실히 영주는 자신의 영지 안에서는 왕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그들의 군주인 나라고 해도 그들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한, 함부로 참견해선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경우가 조금 달랐다.


로웬은 이제 쩌렁쩌렁 소리를 지르며 대꾸했다. 그 기세가 어찌나 매서운지, 그녀의 뒤쪽에 선 신도들의 얼굴도 새파랗게 질려버릴 정도다.


"그렇다고 다른 세력을 멋대로 건드리면 어떻게 합니까! 알룬님의 동맹과 신하들 중에는 토착신들도 적잖게 있습니다. 그들이 이번 일을 전해듣고 등을 돌리면 어떻게 책임을 질 생각이에요!"


"하, 하지만 저쪽에서 먼저 포교활동을 했잖습니까? 토착신이고 자시고 저희 영역에서..."


"알룬님의 위광을 빌리려고 깃발을 내건 주제에 무슨 소리입니까! 말 같은 소리를 좀 하십시오. 힘은 빌리되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것인가!"


만약 이들이 정말로 자신들의 영역을 보호할 뿐이었다면, 내 성표를 빌리진 않았겠지. 이들은 아돌레나의 신도들을 내쫓아서 자신들의 영역을 은근슬쩍 확장할 속셈이었으리라.


로웬의 세찬 다그침을 묵묵히 듣고있던 신도 하나가 용기를 내서 힘 없는 목소리로 반박했다.


"아, 알룬님도 다른 토착신의 신성을 빼앗아 자신의 힘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저희는 왜 안 된다는겁니까?"


"무슨 헛소리를!"


"잠깐만."


나는 공격 주문을 쏟아내려는 로웬을 제지하며 기아스를 떠올렸다. 이번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이 권능은 적동용왕의 신력을 흡수한 결과물이다.


이들이 그 기원을 알고있다는게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잘 생각해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적동용왕이 찾아왔던 당시. 요정의 숲 성벽 앞에서 벌어졌던 사단을 기억하지 못하는 병사들은 없으리라. 나는 그때 신도들의 입을 따로 단속하지 않았으니, 그러한 소문이 퍼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


토착신의 힘을 흡수하면 가디언 소울의 시스템이 새로운 권능을 내려준다. 이들은 처음부터 그것을 노리고 아돌레나의 신도들을 공격한 것이었다.


사실 나는 적동용왕의 파편을 직접 흡수한게 아니라 아슬론이 바친 신성으로 기아스를 얻은 것이지만... 어쨌든간에 원리 자체는 비슷하다. 로웬은 골이 땡긴다는 듯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솔직히 털어놓았다.


"알룬님께서는 새로운 권능을 얻겠답시고 멀쩡한 토착신의 교단을 공격한 적이 없다. 적동용왕은 본인의 의지대로 알룬님께 신성을 바쳤지. 하찮은 변명은 그게 전부인가? 알룬님의 위광을 멋대로 훔쳐쓰고, 그것도 모자라서 감히 누명을 씌우다니."


"요, 용서해주십시오. 저희는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저희가 멍청해서 저지른 실수입니다. 결코 알룬님을 탓한 것은 아닙니다!"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은 신도들은 너나할 것 없이 무릎을 꿇고 자비를 구했다. 아니, 논리에서 밀렸기 때문이 아니라 로웬의 화가 마침내 폭발할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리라.


로웬은 자신의 지팡이를 치켜든 채 옥좌의 방에 있는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잠시 침묵한 뒤에 참모들의 조언을 들어보고 판결을 내렸다.


작가의말

제가 1회를 올릴 때 마다 후원금을 보내주시는 희미한 잔영님,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셀프 유료화를 당해서 기쁘긴 한데 좀 부담스럽네요.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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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139회 +7 18.04.07 1,330 57 12쪽
138 138회 +5 18.04.05 1,281 44 10쪽
137 137회 +6 18.04.02 1,320 51 12쪽
136 136회 +5 18.03.30 1,343 50 12쪽
135 135회 +9 18.03.27 1,376 49 12쪽
134 134회 +5 18.02.13 1,652 54 11쪽
133 133회 +6 18.02.07 1,439 49 10쪽
132 132회 +11 18.02.06 1,496 54 12쪽
131 131회 +17 18.02.04 1,675 57 13쪽
130 130회 +9 17.10.17 2,014 64 12쪽
129 129회 +5 17.10.07 1,799 62 11쪽
128 128회 +8 17.09.24 1,959 75 10쪽
127 127회 +13 17.09.14 2,105 6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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