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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최근연재일 :
2020.05.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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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0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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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원주민 신의 사제들은 우리 교단에 비하면 아주 답답해보이는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지닌 성표들이 전부 똑같지는 않다. 아무래도 자기들끼리 먼저 회의를 거쳐서 사절단을 구성한 것이겠지.


그들은 자신들이 동부의 원주민 신들 전체를 대표한다며 확언하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자신들을 몰아낸 세력에게 하는 것 치곤 많이 정중한 태도였다.


레니아가 나 대신 그들에게 화답하는 중. 엘리자베스가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며 신성통신으로 전했다.


"알룬님. 부디 조심하십시오. 이 자리에 모인 교단들은 각별히 경계해야할 대상입니다."


"... 혹시 따로 아는거라도 있으십니까?"


대검을 짚고있던 아슬론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엘리자베스는 원래 원주민 신의 사람이었으니 저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으리라.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며 대꾸한다.


"원래부터 아주 건전한 교단들은 아닙니다. 제가 몸담고 있던 레티르 교단의 타락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안심해선 안 되겠지요."


"음..."


엘리자베스가 있던 레티르 교단은 마룡의 마기에 오염당하여 타락한 것이지만... 다른 원주민 신들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특히 이들은 외계신들에 의해 외곽으로 내몰려서 근근히 연명하는 상태였으니 더더욱 타락하기 쉬웠으리라.


하지만 그러한 것과는 별개로, 사절단이 제시한 조건은 우리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들은 아린을 몰아내기 위하여 전폭적인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뿐입니다. 알룬님과 함께라면 원주민 신들과 외계신들의 화합도 헛된 꿈이 아니겠지요."


"..."


비록 남부에서 쫓겨난 잔당들이라곤 해도, 각 교단이 최후까지 남겨둔 병력인 만큼 그럭저럭 도움은 될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다른 동맹 후보들과 달리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사실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있으니 거주지 따위를 요구할 필요가 없기도 하고...


다만 엘리자베스는 그들의 타락 가능성이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모양. 회담을 주도하고있던 레니아는 의외로 긍정적인 의견을 냈다.


"이들이 타락했든, 그렇지 않든. 이쪽은 모을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모아야합니다. 알룬님. 저들과 동맹을 맺는걸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십시오."


"어, 어째서인가요? 무턱대고 동맹을 맺기에는 너무 위험합니다."


엘리자베스가 화들짝 놀라며 항의했으나 레니아의 뜻은 꺾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설령 악신과 손을 잡게 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아니. 악신들은 세간의 시선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할테니 오히려 이쪽이 주도권을 쥘 수 있어요."


"그건 악신들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소리입니다!"


"그럼 달리 저희의 힘이 되어줄 선신들을 찾으실 수 있으십니까? 아니. 애시당초 저들이 타락했다는 보장이라도 있나요? 엘리자베스님. 자신의 과거에 사로잡혀서 거사를 그르치지 말아주십시오."


"..."


엘리자베스는 레니아의 말에 잠시 고개를 숙였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정보를 얻을만한 곳이 무척 제한되는지라, 자신의 경험이나 오랜 전통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런 사회의 일원 치고는 굉장히 시원스레 자신의 오류를 인정했다. 그녀가 레니아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로웬이 주문을 사용하며 사절단을 훑었다.


"일단 저들에게서 오염의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선별해서 보냈을수도 있으니 안심은 금물이에요."


"... 그럼 동맹 요청을 받아들이자. 우리쪽은 전력이 너무 부족하니까."


내가 한 번 결정을 내리자 그 뒤로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모든 신도들이 조금의 이견도 꺼내지 않는 탓에, 결정권자인 내가 되레 무서워질 정도였다.


그대로 그들을 돌려보낸 우리는 모두에게서 약속받은 지원병력을 확인해봤다. 예전에 비하여 전력이 확 늘었긴 했지만 아직은 아린측에 비하여 손색이 좀 있다. 레니아와 카엘이 침음을 삼키며 아린에게 대적하는데 필요한 최소치를 가늠해봤다.


"이 정도면 파룡대의 합류를 가정해도 듬직한 동맹이 한 곳 정도는 더 있어야겠어요."


그뿐이랴. 그들을 먹여살릴 돈도 준비해야한다. 이제껏 금전적인 문제로 시달려본적이 없는 우리였으나, 이제는 조금 고민할 필요가 생겼다.


아슬론은 파룡대의 합류라는 말에 인상을 찌푸렸으나, 레니아는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파룡대는 아버지가 이끄는 사람들이지, 내가 이끄는 이들이 아니다."


"그래도 아들이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겠어요?"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있는 줄도 몰랐던 아버지다. 괜히 내 가정사정까지 끌어들이지 말았으면 하는데..."


최소한의 예의를 어렵사리 지키던 아슬론이 눈을 부릅뜨며 말한다. 만약 애버론 같은 사람이 도움을 건넸다면 감사히 받아들였겠지만... 아직은 카스트로에 대한 감정이 많이 복잡한 모양.


레니아는 그의 말에 되레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비록 같은 교단 소속이라곤 하지만 그와 같은 전사가 자신을 노려보는데 저토록 태연한 반응이라니. 그녀도 그새 간이 많이 커진 듯 하다.


하지만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본 나는 그녀의 반응을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가정사정을 끌어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저는 알룬님의 땅에서 아버지와 언니를 추방했고, 아가르타 자매님은 아예 동생들까지 데리고 입교했습니다. 알룬님께 모든걸 바치기로 맹세하신지 오래면서 도대체 뭘 망설이시는겁니까?"


"..."


아슬론은 그녀의 반문에 잠시 침묵했다. 물론 그의 헌신 자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카스트로에게 도움을 청하는건 그의 자존심과 관계가 있는 문제다.


나는 그 즈음에서 두 사람을 중재하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만해. 나도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고 싶지는 않아."


"... 제 생각이 짧았네요. 추태를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레니아가 순순히 물러나자 아슬론도 빠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얼굴이 어둡다. 단순히 레니아가 밉다기 보다는 자책을 하는 모양새에 가깝다.


카엘은 그 즈음에서 해산을 제의하여 나를 조금이나마 편하게 만들어줬다. 회의가 끝날 즈음에는 이미 깊은 밤이 되어있었다. 모두가 잠에 들기 위하여 방으로 가던 때. 나는 멍하니 집무실에 앉아서 느릿하게 잡무들을 처리했다.


이놈의 화신체는 잠도 오지 않는 몸이라서 침대에 누워봤자 지루할 뿐이다.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것도 같았는데, 직접 해보니까 몇주가 지나도 멀쩡하다.


그렇게 레니아와 카엘의 업무를 병아리 눈물 만큼이라도 줄여주려고 애쓰던 중. 돌연 집무실 밖에서 자그마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허락을 표하자 닫혀있던 문이 조용히 열리며 촛대를 든 로웬이 들어온다.


어두운 조명이 그녀의 몸을 어렴풋하게 비춘다. 나는 이 예기치 못한 방문에 살짝 가슴이 들뜰 수 밖에 없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도 그럴게 한밤중에 여자가 내게 찾아올만한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 생각해보니 로웬이 내게 단순한 충성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 것도 같다.


내가 떨리는 심정으로 멍청한 목소리를 내기 직전. 고맙게도 로웬이 먼저 입을 열어줬다. 그녀는 평소처럼 요사스럽게 웃으면서도 진지한 눈을 보였다.


"알룬님. 제가 펼쳐둔 감지 주문이 침입자를 포착했습니다."


"... 아, 그래?"


역시 섣불리 행동하지 않기를 잘했다.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추태를 보일 뻔 하지 않았는가. 상대는 별 생각이 없는데 내쪽에서 오해하는 것 만큼 꼴사나운 일도 잘 없다.


나는 재빨리 외계신으로서의 근엄함을 회복하곤 그녀에게 물었다. 침입자들이 평범한 놈들이라면 로웬이 내게 직접 보고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린의 성왕국 침공 이후, 이 근처에 돌아다니는 떠돌이들이 좀 많은가?


"특이사항은?"


"놈들은 숲의 외곽에서 저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지 주문도 실수로 걸렸다기 보다는 일부러 걸렸다는 느낌이고요."


"음... 그럼 아슬론을 데리고 가보자."


이게 설령 함정이라고 해도, 그래봤자 우리의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여차하면 금세 도망칠 수 있는지라 내 고민은 무척 짧았다. 로웬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집무실 밖에 미리 대기시켜놓은 아슬론에게 신호를 줬다.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먼저 깨워버리다니. 나는 속으로 한탄하며 두 사람과 함께 영주성을 나섰다. 아슬론과 로웬 정도 되면 다른 전력들이 동행해봤자 걸림돌이 될 뿐이다. 이 둘을 데려가는건 내 교단의 모든 전력을 대동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대로 숲의 외곽을 향하여 얼마나 달렸을까. 로웬과 아슬론이 내 앞으로 나서며 서로의 시선을 교환했다. 이 앞에 예의 불청객이 숨어있다는 것이리라. 상대는 우리가 말들을 멈추자마자 나무 뒤에서 슬쩍 튀어나왔다.


"금방 오셨군. 여차하면 직접 찾아가려고 했는데."


"... 네놈이 왜 여기있냐."


나무들 사이로 스며든 달빛이 비춘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전쟁의 기사였다. 북부에서 한 번 도움을 받긴 했지만, 아슬론의 표정에는 경계와 짜증밖에 묻어나지 않는다. 나는 그의 의중을 가늠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 동맹에 한 자리가 비긴 했지만, 하필이면 이놈이 오다니. 전쟁의 기사는 우리가 질겁하는 기색을 읽곤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말을 불러들였다.


"내 주인님의 선물을 가져왔다. 요새 열심히 일 벌리느라 군자금이 좀 필요할텐데 감사히 받아라."


그의 말 등 위에 메여져 있던 것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가방이었다. 아슬론은 대검을 섬세하게 놀려서 그것을 받아들인 뒤, 황당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가방의 안쪽에는 묵직한 금괴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 이걸 주려고 그 먼길을 온건가?"


"당연히 아니지. 지금 준건 급한 불을 끄기 위한 것 뿐이다. 우리와 손을 잡는다면 더욱 많은 재화와 인력을 제공하지. 물론 모든 일은 우민들의 눈을 피해서 이루어질거다."


구 신성제국과 손을 잡으면 세간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터. 전쟁의 기사는 그런 점 까지 배려해주겠다고 단언했다. 나는 황급히 레니아와 카엘을 깨우며 참모들의 의견을 구했다.


작가의말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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