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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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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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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0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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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아가르타의 말대로, 초대받지 못한 방문자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단순히 머릿수가 많은 것 뿐만이 아니다. 꽤 유력한 길드에 소속된 플레이어들 또한 얼굴을 비추는가 하면, 아예 길드 전체가 통째로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이전에 영입을 시도했을 때에는 답장조차 없던 이들도 마침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이리라. 이제 아린은 멈추지 않는다. 지금 당장 그녀를 막지 못하면 다음에는 그들이 짓밟힌다.


간단한 사실을 깨닫는데에 꽤 많은 시간과 수고가 들어갔다. 아린이 평소에 쌓아온 이미지가 그만큼 좋았던 것이리라. 레니아를 비롯한 참모진들은 예기치 않은 호재를 써먹기 위하여 머리를 쥐어짜냈다.


"지금 당장이라도 성왕국 쪽으로 지원을 갈까요? 이만한 병력이 있으면 아린의 본대라도..."


"차라리 본진인 자유 교역 도시를 치는게 어떻습니까."


"아린측이 바보도 아니고. 이미 병력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나름대로의 대비책을 세워놓았을 것 같은데요. 그쪽을 상대로 한 번 써먹은 전략을 다시 한 번 쓰는게 현명한 생각일까요?"


"어차피 외계신들의 세계쪽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또다시 와해될겁니다."


이전에 비하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크게 늘어나긴 했지만, 그 때문에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다. 나는 참모진을 잠시 내버려두고 영지를 살폈다.


우리 진영에 새롭게 합류한 청룡, 알레디우스는 파룡대와 제법 잘 어울렸다. 그는 용족의 입장에서 비공정의 무장에 대해 조언해주거나 용들의 습성을 상세히 알려줬다.


아가르타에게서 신성력을 배우고 있던 아슬론은 내 화신체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알레디우스는 괜찮은 것 같아?"


"당장 뒤통수를 치거나 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파룡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기네 종족을 정말로 싫어하는 것 같아요."


외부인이라면 일단 적대하고 보는 아슬론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로 괜찮은 것이리라. 그는 살짝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였으나, 내 눈치를 살피느라 무어라 말을 하지 못했다.


"왜 그래? 말하고 싶은게 있으면 해봐."


"저 밖에 몰려온 놈들은 어떻게 하실겁니까?"


아슬론은 지금 요새 안의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는 건을 질문했다. 숲으로 찾아온 사람들은 나날이 늘어나서, 텅텅 비어있던 도시가 반 이상 차버릴 정도였다. 내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아슬론이 간언을 올렸다.


"저희가 손이 많이 부족하다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받아들이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지. 얼마 전에 우르르 몰려갔다가 순식간에 와해돼버렸으니까."


레니아는 내가 이 기회에 길드를 설립하길 바라는 듯 했으나... 과연 그게 마음대로 될까? 나는 지구쪽의 몸을 포기해버린지라 길드원들의 본체쪽에 아무런 케어도 해줄 수 없다.


이제와서 길드를 만든다고 해봤자 아린을 뛰어넘을 자신도 없다. 내 리더십과 역량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고있다. 나는 내 신도들을 다스리는 것도 벅차다.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아가르타가 침음을 삼키곤 제안한다.


"그럼 저번에 새로이 얻으신 권능을 써보시는게 어떨까요?"


"기아스? 그야 뭐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엄밀히 말하자면, 기아스는 상대의 행동을 제약하는 권능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금지된 행동에 대한 처벌을 내리는 것에 가깝다. 만약 내가 길드를 설립해서 동맹의 신도들에게 기아스를 건다면 전력 상승과 안전장치의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챙길 수 있겠지.


하지만 동등한 관계인 길드원들의 신도들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리가 없다. 현재 내가 아린보다 유일하게 앞서고 있는게 바로 평판과 신뢰다.


지금 요새에 모여든 동맹 후보들이 기아스 같은걸 무턱대고 좋아할리가 있나. 이건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해봐야할 문제다. 나는 두 사람을 앉혀두고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내가 지금 당장 길드를 만들어봤자 아린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당연합니다. 알룬님의 지혜와 명성이라면 자유 교역 도시 따위는..."


"힘들겠죠."


아가르타는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슬론의 말을 끊으며 단언했다. 그녀는 한때 자유 교역 도시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지라 상대의 저력을 잘 알고있다.


기분이 상한 아슬론이 그녀를 살짝 째려봤으나, 아가르타는 되레 당당히 말했다.


"대주교님도 잘 알고 계시잖아요. 아린이 몇 년에 걸쳐 엄선해서 뽑은 정예들과,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급급히 모여든 쭉정이들이 상대가 될리 있나요?"


"그래도 알룬님의 앞이잖냐."


"아슬론. 괜히 내 비위를 맞춰줄 필요는 없어. 솔직하게 말해봐."


내가 드물게도 명령하듯 말하자 그가 냉큼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이 짜둔 견적을 털어놓는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만약 지금의 동맹 후보들이 알룬님을 제대로 돕는다면 아린 따위는 문젯거리도 되지 않을겁니다."


레니아도 똑같이 말했다. 그들이 내 수족처럼 움직이면 아린과 성왕국을 꺾는 것 뿐만이 아니라 대륙 통일도 노려볼 수 있다고.


하지만 나로서는 그들을 온전히 다룰 수가 없다. 아슬론은 하지만, 이라고 덧붙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동맹 후보들은 알룬님에 비해서 격이 많이 떨어지지요."


"요는 그 사람들을 얼마나 잘 써먹을 수 있느냐네."


언뜻 보기에는 길드를 만드는 것이 최선책 같지만... 자유 교역 도시 같은 길드는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나는 길드 마스터로서의 경험도 거의 없다.


아가르타는 깊은 고민에 빠진 나를 보고 격려하듯 말한다.


"꼭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알룬님께는 알룬님만의 장점이 있으니까요."


말이야 좋지만, 지금 겸토하고 있는 방법으론 어림도 없으니 새로운 방식을 떠올려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몸을 살짝 돌려서 다시금 내성으로 향했다.


내성의 창문으로 바깥쪽을 살피자, 성문의 앞에서 알현을 원하는 동맹 후보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앞서 몇 사람을 만나봤지만 그들은 대부분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걸고 있었다.


내 집무실에서 진행되고 있던 회의는 잠시 멈춘 모양이었다. 테이블의 한 자리를 차지한 카엘은 평소처럼 무표정하게 서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건 또 뭐야?"


"이번에 찾아온 플레이어들의 신상명세입니다. 진명과 주요 신도들, 세력 규모, 본거지, 특성 스킬까지 가능한한 모두 정리해두고 있습니다."


"고생이 많네... 잠깐, 특성 스킬?"


나는 카엘의 말을 듣곤 순간적으로 생각을 멈췄다. 특성 스킬은 말 그대로 플레이어 고유의 특성. 가디언 소울의 시스템이 인정해준 개성이나 다름없다.


아린과 신성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특성에 맞춰서 플레이 스타일을 정해왔다. 조금 지나치게 익숙해져서 까먹고 있었지만... 내 특성 스킬은 5대 기본 특성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혼자서도 잘해요'다.


보통 플레이어들은 서로의 특성 스킬을 활용하기 위하여 동맹을 맺고, 그것이 길드가 된다. 하지만 내 것은 혼자 있어야 제대로 빛을 발하는 특성이다. 이제와서 길드 따위를 만든다는건 내 장점을 내버리는 꼴이나 다름없다.


"역시 혼자서 다 해먹는게 낫겠어."


"네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참모진들이 내 말에 반응하여 귀를 세웠다. 나는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계획으로 만들었다.


다행히, 참모들이 보기에도 내 방식이 그리 나쁘진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그들도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내 성질 때문에 제대로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던 것이었으리라.


나는 길드 마스터가 아니라 군주로서 아린을 넘어서고자 마음먹었다. 다른 외계신들과 동맹을 맺어서 조력을 받는게 아니라, 그들의 복종을 받아야한다. 일단 맹세를 받기만 하면 기아스를 이용해서 배신을 방지할 수 있다.


아슬론은 내 설명을 듣곤 무척 기뻐했으나, 카엘은 조금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른 외계신들이 그걸 쉽게 받아들일까요?"


"아니. 하지만 몇 사람만 먼저 움직여주면 그 뒤는 쉬울거야."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아린의 화를 피하기 위해서 급급히 달려온 것이다. 그러니 그럴싸한 활로가 보이면 냉큼 뛰어들겠지.


나는 영주성의 알현실을 단장하고, 의장을 정비한 뒤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기다림에 지친 이들은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너나할 것 없이 알현실로 들어온다.


그 넓던 알현실이 가득 채워질 정도의 인파. 나는 수백의 시선 앞에서 마음을 다잡곤 옥좌에서 일어났다. 레니아는 살짝 얼어버린 나를 대신하여 큰 소리로 말했다.


"멀리서부터 이곳까지 모여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아린의 횡포는 점점 더 거칠게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시체나 노예가 되겠지요. 아린의 천리안에서는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레니아의 말에 여기저기서 동조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 목소리들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잦아들어버렸다. 우리는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희는 길드를 만들지 않을겁니다. 급조된 길드로는 아린과 자유 교역 도시에게 대항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도 동맹들과 함께 원정을 다녀왔지만, 결국은 실패했었지요. 물론 그렇다고 저항을 포기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이쯤에서 레니아를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원래 외계신이 직접 나서는건 좋은 선택이 아니지만, 이번 만큼은 스스로의 입으로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아린과 맞서기 위해서는 동맹이나 친구가 아니라 부하가 필요합니다. 제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을 보호해드릴 수 없습니다. 신도와 재산, 땅과 명예... 제가 필요하는 모든 것들을 제공하겠다 맹세하고 충의를 바치십시오. 그럼 저도 마땅히 보답하겠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헛소리란..."


"웃기지 마시오! 그럼 아린이 아니라 댁의 노예가 될 뿐이 아닌가."


"노예라니요? 알룬님께서는 항상 충의에 보답하셨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블랙우드 가문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레니아가 말하자 옥좌의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던 블랙우드 가주와 에이라가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이들은 나름대로 초반에 합류한 덕분에 성 내의 일부분을 뚝 떼어받았다.


큰 소리를 낸 이들과는 별개로, 이 자리에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이들이 잔뜩 있다. 모두가 결정을 진지하게 망설이던 찰나. 살짝 익숙한 얼굴의 주교 하나가 앞으로 나서서 무릎을 꿇었다.


"저희 교단을 대표하여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이제부터 알룬님은 레테른님의 군주이십니다."


"그대는 내가 부르면 지체없이 달려오고, 변함없는 충성을 바칠 것을 맹세하는가?"


내가 기아스를 발동시키며 묻자 그가 지체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맹세하겠습니다."


예전에 위험한 초대장 특성 사건에서 보았던 얼굴. 이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내 사촌인 레테른의 신도다. 녀석은 주교의 눈을 빌려서 내게 눈을 깜빡여보였다. 나도 피식 웃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한 명이 시범을 보이자,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쉬웠다. 알현실 내의 사람들은 빈 자리가 없어질까 겁내는 듯 황급히 줄을 섰다.


아직은 내 기아스를 무슨 특별한 퍼포먼스 정도로 생각하는 듯 했지만... 그거야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한 명 한 명의 충성 맹세를 몸소 받으며 그들을 축복했다.


작가의말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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