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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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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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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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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회

DUMMY

카스트로 일행이 동부에 위치한 레티르 교단의 본거지로 향하는 사이.

요정의 숲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던 라르고는 그림자 속에서 신입 사제 전원을 일일이 체크했다.


"음... 당장 수상한 놈은 안 보이는구만. 하긴, 첩자 같은 놈들은 죄다 첫 번째 관문에서 걸러졌겠지."

"그런가요? 이제 좀 안심이 되는군요."


숙련된 사기꾼의 보증을 받은 아슬론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라르고가 인상을 찌푸렸다.


"야, 너무 안심하지 말고 너도 좀 감시해봐!"

"세계 제일의 사기꾼이 있는데 제가 뭐하러 직접 봅니까?"

"난 도둑놈이지 사기꾼은 아냐. 안 그러냐?"


라르고가 급히 도움을 청하자 레니아가 왼손 약지의 반지를 숨기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라르고에게서 받은 백작부인의 반지를 아직까지 애용하고 있었다.


나는 신성 창고에서 마룡의 심장을 꺼내서 집무실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완전히 정화된 용의 심장은 아주 방대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


"으음... 마력량만 보면 적동용왕의 것 보다 뛰어나군요."


아슬론이 탐욕에 찬 눈으로 그렇게 중얼거리자 라르고가 그의 손을 때렸다.


"어허. 너 설마 이것까지 먹으려는건 아니지? 네가 지금까지 먹은 용 심장만 3개는 된다며?"

"아, 아니. 언제 제가 먹겠다고 했습니까?"


작게 투덜거리면서도 입맛을 다시는 아슬론.

사실 아슬론이 이걸 먹어봤자 큰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용인족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지만, 여기서 변이를 더 했다간 생식 기능조차 잃어버릴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집무실의 모두가 내 옆에 있던 로웬에게 고개를 돌리자, 마법신의 파편을 깨작대던 그녀가 고개를 젓는다.


"전 이거 소화하느라 바빠요. 만약 이걸 다 먹게 되면 마력량 따윈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질테고..."

"아, 그래? 그럼..."


내 교단에서 가장 큰 전력을 지닌 두 명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하사해야할까.

좌중의 시선은 자연히 힐데와 그녀의 용인족들에게 옮겨졌다.

용인족은 용 심장의 마력을 가장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종족이다.


우리의 시선을 눈치챈 힐데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몸을 떤다.


"설마..."

"일단 은비늘 부족과 신입 사제들 위주로 분배하도록 하자. 이 정도 분량의 마력이라면 부족 전체가 변이 할 수 있을거야."


은비늘 부족의 용인족들은 상당히 허약한 나머지 요정의 숲을 수복할 때에도 변이를 거쳤을 정도다.

그러니 용 심장을 하사하면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힐데가 눈물을 머금고 무릎을 꿇자 그녀의 손에 용 심장이 올라간다.


"이제야 너희들의 충성에 보답 할 수 있게 됐다. 이건 네가 책임지고 잘 분배하도록 하라."

"감사합니다 알룬님. 예나 지금이나 은비늘 부족은 오직 알룬님의 것입니다."

"너무 감격하지 마라. 앞으로 우리가 죽여야 할 용들이 산더미처럼 있으니까."


아슬론이 웃으며 말하자 장내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대충 마무리되자 아슬론을 비롯한 인원들이 하나둘씩 떠난다.

그런데 집무실의 문이 닫히자마자 내 옆에서 파편을 소화시키던 로웬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내며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녀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싶어서 다급히 물었다.


"로웬, 왜 그래!"

"으윽. 역시 이만한 양의 힘은 조금 버겁군요. 하지만 조만간 용족들이 침공할테니 여유를 부릴 수도 없는데..."


곤혹스럽게 중얼거린 로웬은 힘 없이 내 몸에 기댔다.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주며 정화의 신성력까지 사용해본다.


"괜찮아? 내가 뭐 도와 줄 수 있는게 없을까?"

"이 파편에는 데벨론의 사념이 담겨있어서 자꾸만 자아가 불안정해지네요. 되도록 천천히 섭취하고 있긴 하지만... 알룬님께서 협조해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어떻게 해줄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니 다행이긴 하다.

시원스런 대답에 웃어보인 로웬은 소파에 편히 앉은 채 자신의 무릎 위쪽을 두드렸다.

영문모를 제스쳐에 당황한 내가 굳어있자, 그녀는 손수 내 머리를 끌어당겨서 눕힌다.


당황한 내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하자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 같은 손길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눌렀다.

로웬의 감촉과 냄새가 마력과 신성력으로 구성된 화신체를 몹시 당황시켰다.


나는 이쯤 되어서야 내가 속은게 아닌가 싶었다.

로웬은 아까 시름시름 앓던 것 치곤 너무 멀쩡해보인다.


"이게 진짜로 도움이 된다고?"

"그럼요. 정말 치유되는 기분이에요."


나긋한 손놀림을 멈추지 않으며 보란 듯이 파편을 씹는 로웬.

결국 나는 그녀에게 붙잡힌 채 1시간 가량을 느긋하게 쉬어야했다.

비록 잠도 잘 수 없는 몸이지만 정신적인 피로가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다.


마룡의 심장을 하사받은 은비늘 부족은 금방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번에 사제로 서임받은 용인족들이 몇 번이고 변이를 거친다.

특히 아슬론의 옆에서 이것저것 챙겨먹었던 힐데는 키가 20센치미터 정도 커졌다.

레니아는 그들을 중심으로 그리폰 기병을 편성했다.


대부분은 파룡대와 다르몬드의 신도들에게 주어졌지만 아직도 남는게 있었다.

성왕국 출신 기사의 도움을 받아서 그리폰에 오른 아슬론이 흡족함을 표해보였다.


"이건 괜찮군. 덩치에 비해서 아주 고분고분해."

"아, 이 녀석은 대주교님께 겁먹은겁니다. 원래는 흉폭하고 제멋대로인 녀석이죠. 작전 수행 중에도 배가 고프면 아무거나 덮치곤 합니다."

"... 너흰 지금껏 그런 놈들을 써먹은거냐?"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궁정의 안마당에 있던 그리폰들이 저공비행을 시작하자 아슬론의 입가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지금껏 사용하던 신수도 발이 느린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진짜로 날아다니는 녀석에 비할 바는 아니다.

지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건 정말 어마어마한 이점이다.


"좋다. 좀 더 높이 가보자!"

"이 위로 올라가면 용족들에게 들킬겁니다."

"아, 그렇지. 그런데 이 녀석은 용족한테 겁먹지 않는거냐?"

"지가 겁이 나면 어쩌겠습니까. 용족보다 더 무서운 분을 태우고있는데. 이 녀석 이렇게 얌전한건 처음 봅니다."


그리폰에 처음 타본 아슬론도, 녀석을 조종하는 기사도 혀를 내둘렀다.

제법 만족스러운 시승이 끝난지 얼마나 됐을까.

나는 자유 교역 도시 쪽에서 빗발치는 기도를 듣곤 황급히 시야를 돌렸다.


우리 교단의 교리는 '어지간한건 니네가 알아서 좀 해라'로 귀결되는지라 이런 일은 무척 드물다.

과연. 신도들의 기도가 솟아오른 자유 교역 도시에서는 여섯 마리나 되는 용들이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알레디우스가 만든 대형 석궁을 비웃던 놈들이 모두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외친다.


"적룡과 청룡, 흑룡과 녹룡의 일족이 그대들의 멸망을 선포하노라!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 2주 뒤. 100익의 용족 연합군은 너희 종족의 오만을 심판할 것이다!"

"목숨이 아까운 자는 땅을 버리고 달아나라. 이 땅의 끝까지 도망치는 놈들은 쫓지 않겠다. 우리의 자비를 헛되게 만들지 말도록!"


제멋대로 지껄인 놈들은 광풍을 일으키며 지평선의 너머로 멀어져갔다.

그 광경을 지켜본 아슬론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적동룡 나레이드도 그렇고. 저놈들은 왜 꼭 쳐들어오기 전에 떠들어대는거지?"

"그야 저놈들이 치졸하고 오만하기 때문이다."


어느샌가 집무실에 나타난 알레디우스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용족들의 선전포고는 다분히 전략적이다.

보통 저렇게 용들의 경고를 받으면 성 안에 남아나는 병력이 없다.

놈들을 보고 지레 겁을 먹은 사람들이 죄다 도망치기 때문이다.


용족들의 선전포고는 당당함이나 자부심 따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랜 학습의 결과물일 뿐이다.

자신들의 여유를 과시하여 적들의 숫자를 줄이기 위한 책략.

그것을 천천히 풀어서 아슬론에게 설명해준 레니아가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아무튼... 드디어 올 것이 왔군요. 이제 인간들의 다툼은 일단락 됐으니 놈들이 나설 차례라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100익의 용족 연합군이라. 적의 규모는 대충 50마리 정도 되는건가? 조금 부풀렸을 수도 있지만 딱 예상대로다. 적동룡 때 처럼 일족 전체를 데려오지 않는 이상 그 정도가 한계지."


2주일.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역시 50기의 용족은 버겁다.

나는 알레디우스와 레니아의 책략을 기대하며 두 사람에게 기대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알레디우스가 콧방귀를 뀌고, 레니아는 죄스런 표정을 짓는다.


"이제와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괜히 저쪽을 건드려봤자 용왕들이 나설 빌미나 주지 않으면 다행이지."

"지금 당장 대부분의 병력을 자유 교역 도시로 이동시키겠습니다. 비공정과 그리폰 기병은 대기. 카스트로님의 합류를 기다렸다 출발합니다."

"용족이 50기라... 그놈들이 돌아가면서 숨결만 쏴도 우린 끝나는 것 아닌가?"

"숨결이란게 그리 쉽게 쏠 수 있는게 아니다. 정말로 50기씩 온다면 최대한 난전으로 끌고가서 쓰지 못하도록 만들어야지."


레니아와 알레디우스가 자세한 전술을 논의한다.

덕분에 완전히 쓸모가 없어진 나는 그곳에서 벗어나 카스트로 일행을 봤다.

신수를 타고 밤낮없이 달리던 세 사람은 마침내 레티르 교단의 본거지에 도달했다.


동부지방의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대신전은 멀리서도 피냄새를 풀풀 풍겨댔다.

원래는 지역 주민들과 수 많은 사제들의 안식처였으나, 이제는 그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그러나 밤이 되면 끔찍한 비명과 웃음이 아래쪽의 마을까지 들려온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그러한 소식을 들은 엘리자베스는 손바닥에서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카스트로가 그런 그녀의 손등을 때리며 작게 야단친다.


"엄한 손바닥은 왜 쥐어뜯고 난리야?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빨리 해치우러 가자."

"아, 안 됩니다! 저곳은 이름난 모험가분들도 멀찍이 피해가는데다, 이제 곧 해가 저문다고요!"


양심적이면서도 친절한 마을 주민이 그들을 말리자 카스트로가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만큼 유명한 모험가들은 없었을걸?"

"아, 우리 대장님 또 잘난척 하신다."


지팡이를 든 탈리고라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카스트로의 입이 비죽 튀어나온다.

내가 그들의 곁에 화신체로 강림하자 마을 사람들이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나는 대충이나마 예를 취하려는 사람들을 말리며 세 사람에게 말했다.


"방금 전에 용족들에게 선전포고 받았습니다.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야해요."

"걱정 마십시오. 저희 네 명이면 금방 끝나요."

"지금까지 겁이 나서 미루고 있던건 아니잖아. 안 그래?"


카스트로가 엘리자베스의 등을 툭 치며 위로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정화의 신성력을 두 손 가득 머금은 채 신전으로 향하는 비탈길을 올라갔다.

음산한 분위기의 언덕 위에서는 시체와 내장으로 장식된 성채가 우리를 맞이한다.


"아주 타락했다고 광고를 해요."


장검을 뽑아든 카스트로의 실장검법이 성문을 단번에 베어냈다.

자그마한 틈새로 사제들이 달려나오자 엘리자베스가 기겁하며 외친다.


"죽이면 안 됩니다!"

"걱정마라. 내가 설마 네 친구들을 죽이겠냐?"


카스트로가 그녀를 안심시키는 사이, 나는 아슬론과 애버론에게 베여죽은 사제들을 애도하며 정화의 신성력을 뿜어냈다.

신성한 빛이 거세게 작렬하자, 타락한 사제들은 조금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하긴. 그들을 타락시킨 마룡의 심장도 단숨에 정화시킨 힘인데 자기들이 뭐라고 이걸 버틸 수 있겠는가.

바닥에 쓰러진 사제들을 놔두고 신전의 안쪽으로 걸어들어가자 수백은 족해보이는 타락자들이 사방에서 좀비처럼 몰려든다.


"타락한 사제들을 죄다 여기에 모아놨나? 탈리고라, 어떻게 좀 해봐!"


상대가 죽지 않도록 힘조절에 열중하던 카스트로가 외치자 탈리고라가 피식 웃었다.


"저 없으면 어떻게 사실까 몰라. 영원한 정체!"


비탈길을 올라오기 전부터 준비하던 주문이 펼쳐지자 사제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진다.

나는 오른손을 높이 들고 정화의 신성력을 사방팔방으로 난사했다.


작가의말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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