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최근연재일 :
2020.05.02 00:21
연재수 :
154 회
조회수 :
782,305
추천수 :
25,197
글자수 :
786,849

작성
19.03.13 15:11
조회
840
추천
30
글자
13쪽

149회

DUMMY

정화의 신성력에 적중당한 사제들은 힘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엘리자베스는 당장이라도 그들을 부축하고 싶은 듯한 표정이었으나, 열심히 싸우는 우리 때문에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대신전의 앞마당이 대충 정리되자 사제들을 살펴본 탈리고라가 혀를 내둘렀다.


"심하네요. 몸이 성한 사람이 거의 없어요. 자기들끼리도 마구 싸우고 죽여댄건가?"

"아마 그렇겠지. 혼돈신 루그레스의 신성력에 중독된 놈들이니까..."


마룡의 마기도 루그레스로부터 비롯된건가?

하긴, 잘 생각해보니 백룡왕이 지키던 흑마법사 데벨론도 루그레스의 신도였다.

옛날에 로웬을 빼앗아가려 했던 것도 그렇고... 놈은 이래저래 우리와 엮이는 일이 많다.


이빨이 부러지고 손발톱이 깨진 사제들을 지나친 우리는 대신전의 안쪽까지 금세 밀고들어갔다.

용케도 엘리자베스를 알아본 그들이 저주스런 말을 토해내며 그녀에게 달려든다.


"성녀님, 도와주세요! 죽어주세요!"

"네년이 마룡의 뒷처리를 해야한다고 지껄이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레티르 교단의 대역죄인 주제에 잘도 첨탑에서 기어나올 생각을 했군! 너는 영원히 고통받아야 했는데..."


사제들을 향해서 휘둘러지던 카스트로의 방패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비난과 성토를 들으며 대신전을 헤메던 우리는 꼬박 반나절이 지나서야 작업을 완료 할 수 있었다.


마음 고생이 심했던 엘리자베스는 물론이고 강철 같던 카스트로도 숨을 헐떡이고 있자 마침내 정신을 차린 사제들이 다가왔다.

그냥 죽이는 것이었다면 훨씬 쉬웠을텐데, 일일이 제압하느라 훨씬 수고가 들어갔다.


"에, 엘리자베스 자매님? 자매님께서 저희를 깨워주셨습니까?"

"레티르님의 몸종인 우리가 성소에 무슨 짓을..."


회한과 절규가 섞이려던 와중에 엘리자베스가 모두를 한 자리에 모았다.

그녀는 살짝 낯뜨거운 칭찬을 곁들여서 나를 소개한 뒤, 애써 당당하고 편안한 모습을 가장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너무 쇠약해진 탓인지, 레티르는 그들에게 성광을 내려주지 못했다.

아주 힘겹게 엘리자베스의 몸을 빌린 그녀가 신도들을 위로하곤 내게로 몸을 돌린다.


"알룬님, 제 아이들을 치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루그레스에게 유폐된 상태에서도 엘리자베스와 알룬님의 활약은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아뇨. 저야말로 엘리자베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내가 대충 인사치레를 하자 여신의 얼굴이 조금 더 어두워진다.


"저... 무척 죄송하지만 당분간 제 아이들을 맡아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그 동안 너무 약해져서 신도들을 돌볼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곧 있으면 용족들과의 전쟁이 벌어질테니, 거기서 제 아이들을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이제 곧 엘리자베스와 헤어지게 된다는 생각을 하고있던 나는 의외의 제안에 귀를 세웠다.

레티르의 말은 자신의 교단을 내게 빌려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안 그래도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전력이 절실하던 나로선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다.


"하지만 레티르님과 교단을 전쟁에 끌어들이는건..."

"어차피 이번 전쟁에서 패배하면 인간의 시대가 끝나게 됩니다. 저와 제 아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몸이니 아낌없이 써주십시오. 알룬님의 곁에서 인간들을 위해 싸우는 것은 최고의 속죄가 될겁니다."


레티르의 말이 끝나자 주변의 사제들도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나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레티르의 사제들을 합류시켰다.


카스트로 일행이 자잘한 지파들까지 모조리 정리하는 사이, 용족들이 약속한 2주일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선전포고를 받은 자유 교역 도시의 사람들은 한참 전부터 벌벌 떨었으나 의외로 도망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뭐야, 왜 이렇게 많이 남은거지?"


나는 마악 자유 교역 도시에 도착한 레니아의 곁에 강림하며 살짝 미안한 소리를 했다.

그러자 레니아가 피식 웃으며 대꾸한다.


"사람들이 도망치셨으면 좋겠습니까? 하긴, 겁쟁이들이 남아있어봤자 별 도움도 안 되겠지요."

"이곳 남부는 오랜 시간 동안 전란에 시달렸습니다. 이젠 사람들도 끝 없이 도망치는 것에 질렸겠지요."


옆에 있던 카엘이 조금 더 진지한 대답을 내놓았다.

나는 도시에 남아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아슬론을 찾았다.

그리폰 기병들을 데리고 도착한 그는 가장 먼저 애버론의 무덤을 찾아서 대악마의 심장을 올려놓았다.

혹시나 싶어서 미리 정화를 마쳐둔 물건이다.


"너무 오래 걸려서 죄송합니다. 금방 다시 오겠습니다."


짧게 묵념을 마친 그가 그리폰 기병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도시의 위, 구름의 안쪽에는 파룡대의 비공정이 숨을 죽이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이미 용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 약속된 시간이 찾아오자, 마침내 지평선 너머에서 커다란 그림자들이 솟아올랐다.

본인들의 위용을 과시하듯, 몸체를 길게 늘어뜨린 채 비행하는 용족들의 숫자는 대략 50 정도.

환하던 하늘이 놈들의 그림자로 가득 채워지자 도시의 사람들이 안색을 굳혔다.

놈들은 우리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 일부러 태양이 있는 쪽에서 접근한 것이다.


"하여간 좀스런 재주에만 도가 텄군. 다행히 용왕급은 없는 것 같다."


불쾌하다는 듯 읊조린 알레디우스가 본체를 드러내며 하늘로 치솟자 로웬이 자신의 지팡이를 쓰다듬는다.

레니아는 머릿속으로 자신의 계획을 점검하는 눈치.

나는 그 즈음에서 화신체를 해제한 다음 대량의 신앙점수를 소모해서 대축복을 난사했다.


성벽에 적당히 접근한 놈들이 무어라 지껄이려 하자, 구름 속에서 파룡대의 포격이 시작됐다.

비공정의 옆구리에서 포탄과 주문이 거세게 날아든다.

마법 왕국의 마지막 유물은 아무리 용족들이라 해도 쉽게 여길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적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50여마리의 용족들 중 포격에 적중당한 것은 고작 셋 정도.

그마저도 화력이 집중되지 않아서 치명상은 없다.

넓은 호숫가에 돌을 던지는 듯한 느낌이다.


"비공정이다! 저것만 떨어뜨리면 끝나는거나 다름없어!"

"마법 왕국의 유물을 부수는건 아깝지만..."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포성에 용족들이 흥분한다.

자나깨나 파룡대의 비공정을 경계하고 있던 놈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쪽으로 달려들었다.

숫자는 대략 20.

그와 동시에 일부의 용족들이 숨결을 사용하기 위하여 마력을 끌어올린다.


압도적인 물량에 금방이라도 추락 할 것 같던 비공정은 반대편 구름에 숨어있던 지원군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아슬론이 탑승한 그리폰에서 마력과 검광이 솟구치며 용족들의 날개를 베어냈다.

생각지도 못한 기습을 받게 된 용족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흩어졌다.


"이, 이놈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썩 꺼져라 하등한 놈들!"

"이 버러지들이 왜 도망치지 않는거지?"


우리가 그리폰 기병을 차지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용족들은 요정의 숲을 예의주시 하고 있었으니 그것을 눈치챘을 법도 하다.

레니아는 그걸 알면서도 무척 대담한 기습작전을 준비했다.


"용족들은 그리폰들을 경계하지 않을겁니다. 아무리 훈련이 잘 된 그리폰이라 해도, 놈들의 공포스런 존재감을 느끼면 금세 달아날테니까요."

"그럼 이놈들을 써먹지 못한다는건가?"


아슬론이 살짝 불만스레 대꾸하자 레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슬론님께서 우두머리에게 탑승해주시면 그럭저럭 통솔이 되겠죠.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불안하니, 알룬님께서 그리폰 전기에게 대축복을 걸어주셔야겠습니다."

"신앙 점수 소모가 장난 아니겠네."


하지만 대축복 덕분에 용기백배한 그리폰들은 용족들의 존재감을 잘 견뎌냈다.

30여기의 그리폰들과 100여명의 기병들이 비공정을 호위하자 아무리 용족들이라도 섣불리 접근 할 수가 없었다.

그리폰 자체는 별 것 아니지만 위쪽의 기병들은 파룡대와 교단에서 고르고 고른 정예병들이다.


비공정 쪽의 전황이 썩 좋지 않게 흘러가는 것을 느낀 용족들은 용의 숨결을 이용해서 도시를 초토화 시키려 했다.

그러나 공중전에 참여하지 않고 있던 알레디우스와 로웬이 잽싸게 움직였다.

데벨론이 가지고 있던 파편을 완전히 흡수한 로웬은 손짓 한 번 만으로 용들의 숨결을 취소시켰다.


"차라리 남은 놈들이 모두 숨결을 준비했다면 나았을텐데... 숨결끼리 상쇄될까봐 힘을 아낀건가?"

"우리에겐 잘 된 일이지. 사격 준비 명령을 내려라. 슬슬 내려올 때다."

"궁수 전원 사격 준비!"


레니아의 외침이 떨어지자 성벽 위가 한층 분주해졌다.

비공정과 그리폰 기병들에게 쫓겨서 내려온 용족들은 알레디우스의 작품을 보곤 뒤늦게 위기감을 느꼈다.

용족들을 잡기 위해서 고안된 대형 쇠뇌.

높이서 봤을 때에는 그저 우스울 뿐이었지만 화살이 닿는 거리까지 내려오자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가 없다.


"사격!"


성벽에서 철의 폭풍이 솟아올랐다.

통나무만한 크기의 화살이 몸체에 박히자 아무리 강건한 용족들이라 해도 힘 없이 땅에 떨어진다.

레니아는 황급히 성문을 열어서 기병을 출격시키며 놈들을 마무리하라고 시켰다.

어차피 날개 달린 놈들에게 성문 따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순식간에 십여기 이상을 잃어버린 용족들은 당혹감을 드러내며 거리를 벌렸다.

아직 전투를 완전히 포기 한 것은 아니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몸을 사리기 시작한다.

한 순간에 전력의 2할 이상이 날아갔으니 꼭 그들을 탓할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정신이 박혀있는 놈들이라면 일단 사리고 보는게 당연하다.


파룡대와 그리폰 기병들은 그 사이에 숨을 추스르고 다시 고도를 높였다.

멀찍이서 날아오는 주문들은 로웬이 요격하고, 가끔은 쇠사슬을 만들어내서 한 놈씩 끌어내린다.

이제 그녀에게 주문을 사용하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되어버렸다.

겨우 대열을 정비한 용족들이 자기들끼리 떠들어댄다.


"안 되겠다. 최대 사거리에서 숨결을 사용해야겠어."

"녹룡족의 숨결은 저렇게 멀리까지 안 나간다고!"

"청룡족의 아이들이 너무 당했군. 우린 상처를 치료하러 돌아가겠다."

"잠깐. 어딜 멋대로 빠져나가는거냐!"


용족들의 의리와 신의는 언제 봐도 즐거웠다.

잠시 쑥덕거리던 그들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준비해온 패를 꺼내든다.

지평선의 저편, 풀숲의 끄트머리에서 기괴한 모습의 군대가 나타났다.


큼지막한 거인과 골렘, 시체가 된 마법사와 이름모를 괴수들이 일제히 전진한다.

알레디우스는 그들의 우정에 기가 차서 중얼거렸다.


"둥지를 지키던 가디언들까지 데려온건가?"

"어찌보면 당연하지요. 가디언 제작도 하청 맡기던 놈들이 힘든 전투를 직접 치룰리가."

"기병대 철수. 성문 닫고 수성전 준비! 대형 쇠뇌 재장전을 서둘러라!"


바쁘게 지휘를 내리던 레니아가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인영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기껏 고도를 올렸던 그리폰에서 내린 아슬론이 수다쟁이를 들고 성문의 앞에 내려앉았다.

나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의 그녀를 위로했다.


"왜 그래? 이제 익숙하잖아."

"뭐, 그렇긴 하죠."


깊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어렵지 않게 적의 군세를 물리쳤다.

용족들이 직접 덤벼도 버텨냈던 요새인데, 놈들의 가디언이 뚫어낼 수 있을리가 없다.

그새 체력을 회복한 용족들이 다시금 다가와서 숨결을 준비한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허무하게 당하지 않겠다는 듯, 20기 가량의 용들이 일제히 아가리를 벌린다.

나머지는 그들의 주변을 맴돌며 호위.

로웬이 해제의 저주를 사용해봤지만 절반 정도를 취소시키는게 고작이다.


위쪽에서 비공정을 조종하고 있던 탈리고라가 카스트로에게 외쳤다.


"대장, 어떻게 하죠?"

"들이박아."

"네? 미쳤어요?"

"넌 명색이 파룡대 부대장이면서 아직도 용족을 잘 모르네. 그리폰 전기 돌진! 저 새끼들은 호위 임무를 수행 할 수 있는 종족이 아냐!"


다소 무모하게 돌진하던 비공정은 뱃머리에 장착되어있던 대형 작살을 발사했다.

용 숨결을 준비하던 동족들을 보호하던 놈들은 그것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흩어진다.

자기 몸을 바쳐서 동족을 지키겠다는 놈은 단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숨결을 준비하다 작살에 꿰뚫린 용족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씨..."

"전탄 발사! 탄약고에 뭐라도 남아있으면 다 뒤질 줄 알아!"


카스트로의 호령과 함께 용족들의 대열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알레디우스는 아직도 걱정이 남아있는 듯, 신중한 표정으로 지평선을 주시했다.


작가의말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군주의 정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군주의 정오 용어 및 등장인물 소개 +2 20.05.01 3,185 0 -
154 154회 +20 20.05.02 2,729 35 12쪽
153 153회 +10 20.05.01 821 21 13쪽
152 152회 +10 19.03.25 1,907 35 12쪽
151 151회 +14 19.03.17 966 31 13쪽
150 150회 +4 19.03.14 930 29 13쪽
» 149회 +5 19.03.13 841 30 13쪽
148 148회 +5 19.03.12 955 28 12쪽
147 147회 +8 19.03.12 851 30 12쪽
146 146회 +5 19.03.11 920 28 13쪽
145 145회 +5 19.03.09 918 41 13쪽
144 144회 +22 19.03.07 1,153 36 12쪽
143 143회 +8 18.04.25 1,608 55 11쪽
142 142회 +5 18.04.14 1,266 53 13쪽
141 141회 +5 18.04.09 1,235 54 13쪽
140 140회 +3 18.04.08 1,317 51 12쪽
139 139회 +7 18.04.07 1,330 57 12쪽
138 138회 +5 18.04.05 1,280 44 10쪽
137 137회 +6 18.04.02 1,320 51 12쪽
136 136회 +5 18.03.30 1,343 50 12쪽
135 135회 +9 18.03.27 1,376 49 12쪽
134 134회 +5 18.02.13 1,652 54 11쪽
133 133회 +6 18.02.07 1,438 49 10쪽
132 132회 +11 18.02.06 1,496 54 12쪽
131 131회 +17 18.02.04 1,674 57 13쪽
130 130회 +9 17.10.17 2,014 64 12쪽
129 129회 +5 17.10.07 1,798 62 11쪽
128 128회 +8 17.09.24 1,958 75 10쪽
127 127회 +13 17.09.14 2,104 62 10쪽
126 126회 +7 17.09.12 2,006 74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