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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최근연재일 :
2020.05.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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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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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회

DUMMY


아린의 사절단은 의외로 소박했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인원으로 구성하여 급히 보냈다는 느낌. 하기사 나는 그쪽의 사정을 훤히 알고있는데다, 우리는 얼마전에 전투까지 벌일 뻔 했다.


그러니 성대한 사절단을 꾸려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긴장감으로 인하여 굳은 몸을 풀려고 애쓰던 나는 왕좌에 앉아서 사절단을 맞이하게 됐다. 사절단의 주축이 되는 여인은 내가 전혀 얼굴을 모르는 인물이다.


물론 자유 교역 도시는 여러 방면에서 넓은 인재풀을 확보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린의 측근인데 너무 생소한 느낌. 20대 초반 정도 되어보이는 그녀는 공손히 무릎을 꿇고 천장을 봤다.


"아린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잠깐. 인사도 올리기 전에 무엇을 하는거냐."


내 옆을 지키고 서있던 아슬론이 불만스레 묻자 잠시 눈을 감았던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기도를 마친 그녀는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처럼 보인다.


"뭐야. 좋은 의자네. 이야, 그새 성표도 바꿨어? 하긴. 원래 성표가 많이 구리긴 했지."


내게 거리낌 없이 농을 건네는 여인. 나는 발끈하는 아슬론을 제지하며 그녀의 정체를 짐작했다. 얼굴은 달라도, 그녀의 어조와 행동은 모두 아린의 것이다.


"... 무슨 빙의 같은건가? 기적 상점에 그런건 안 파는 걸로 알고있었는데."


이게 플레이어의 특성 스킬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지만... 아린의 특성 스킬이 무엇인지는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있다. 아린은 너무 긴장하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내가 아니라 이 아이의 능력이야. 얘는 신앙심 깊은 성직자 겸 영매거든. 그럼 이제 회의를 해볼까?"


상대가 나와 대등한 만큼, 아슬론은 애써 성질을 죽였다. 나는 그녀에게 의자를 가져다주라고 명하며 딱딱하게 물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며칠 전까지 한솥밥 먹던 사이인데 매정하기도 해라."


"저를 여기까지 몰아붙이신게 누군데..."


그녀에게 이끌려가지 않도록 애써 냉랭히 대답하자 아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선심이라도 쓰듯,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래. 나도 네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어. 너무 섣불리 일을 진행하려 했던건 좀 미안하게 됐네."


나는 아린의 사과에 들뜬 기색을 보이지 않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녀가 말하는걸 잘 들어보면, 일을 저지른 것 자체를 후회한다기 보다는 지나치게 서두른 것을 후회하는 것 같다.


그녀는 의외로 딱딱한 반응에 놀란 듯, 곧장 너스레를 떤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심하지 않았어? 내가 그 일을 수습한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아무렴. 아린의 저택은 크고 넓은데다 제대로 폐쇄되어있으니 투신 사건 자체를 숨기는건 어렵지 않았겠지만... 길드 간부들의 동요를 가라앉히는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카엘과 레니아의 기도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여기서 친한 척 잡담해봤자 아린이 우리를 치려고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만약 로웬이 성왕국의 국경수비대를 동원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왕좌에 앉아있는 것은 아린이었으리라. 나는 우리가 그 일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똑똑히 밝혔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죠. 다짜고짜 이쪽을 침공하셔놓고 무슨 소리십니까."


"아니. 신기하잖아. 성왕국의 국민들을 조종할 수 있냐고 물으니까 투신한 주제에, 정작 본인이 똑같은 짓을 하다니. 역시 사람들은 궁지에 몰리면 다 똑같아진다니까."


역시나 가장 아픈 부분을 찔러오는 아린. 그러자 아슬론의 옆에 있던 로웬이 격식을 갖춰 답했다. 정중한 태도이긴 하지만, 아린은 그녀의 몸에 폭탄을 설치했던 장본인이라 그런지 목소리에 날이 서있다.


"성왕국의 국경수비대를 동원한 것은 제 독단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한 주제에 서로의 떳떳함을 따지는건 우습지 않은가요?"


"그래. 서로의 얼굴에 침 뱉는건 그만두자. 어차피 우리쪽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어보이니까... 알룬. 나는 당분간 휴전 협정을 맺고싶어."


"휴전 협정?"


"우리가 성왕국을 먹을 때 까지는 이쪽을 건드리지 말아줘. 대신 우리도 그쪽을 건드리지 않을테니까... 성왕국과의 싸움이 끝나면 뭘 하든 상관없어."


아린의 제안에 카엘이 남들 몰래 불만을 표해보였다.


"말도 안 됩니다. 현재 성왕국의 백성들은 알룬님의 장기말이나 다름없어요. 자유 교역 도시 길드는 자기들이 우리의 장기말을 다 없앨 때 까지 가만히 있으란겁니다."


"... 하지만 그쪽을 대놓고 움직일 수도 없어."


만약 그런 짓을 저질렀다간 우리가 제 2의 신성제국처럼 취급받을 수도 있다. 그럼 기껏 아린에게 적대적으로 형성된 여론들도 등을 돌리겠지. 레니아는 카엘과 반대로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휴전 협정이라. 아주 나쁘지는 않습니다. 지금 알룬님께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시간이니까요."


성왕국과의 전쟁은 아무리 서둘러도 몇개월 가량이 걸릴 것이다. 아린이 노리는 것은 성왕국을 완전히 점령하는 것. 이제껏 애버론과 아슬론이 수행했던 임무와는 완전히 다르다.


신성제국과 치뤘던 전쟁은 전면전 치곤 굉장히 빨리 끝나긴 했지만, 그 뒷처리를 하는데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전쟁이 얼마나 귀찮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인지는 우리도 아주 잘 알고있다.


아린으로서는 그러한 대형 행사를 치루는 동안 우리의 방해를 받고싶지 않으리라. 나는 점점 더 협정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성왕국을 움직여서 자유 교역 도시를 몰아낼 수 있으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의 분열된 성왕국은 아린을 막아서기 역부족이다. 우리가 참전해본들 그들이 쓰러지는건 시간문제겠지.


정복전쟁을 치루면 치룰수록, 아린과 자유 교역 도시의 이미지는 나빠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지역 영주들의 도움을 기대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마음 속으로 결정을 대충 내리곤 아린에게 물었다.


"그쪽의 말을 어떻게 믿죠? 당장 얼마 전에만 해도 저희쪽을 멋대로 침공하셨으면서."


"믿기 싫으면 믿지마. 하지만 이건 우리 양쪽에게 모두 이득이 되는 제안이야. 한 번 협정을 맺으면 굳이 깰 필요가 없지."


"... 좋아요. 단, 이번 협정의 결과를 주변에 공표해주세요."


"그 정도야 쉽지."


우리는 즉석에서 협정을 체결하곤 사절단을 떠나보냈다. 영매의 몸에 빙의해있던 아린은 나를 보고 무어라 말하려 하다가, 뒤늦게 아무것도 아닌 척 몸을 돌리곤 빙의를 풀어버린다.


사절단은 아슬론이 도끼날 같은 시선을 받으며 숲에서 물러갔다. 카엘은 자신의 의견이 반려됐음에도 불구하고 서운한 기색조차 없이 회의에 참여한다.


물론 그녀도 레니아가 좀 더 옳았다는 것은 잘 알고있겠지만... 사적인 감정을 접어둔다는게 아주 쉽기만한 일은 아니다.


"일단 시간을 벌었으니 그동안 최대한 준비를 갖춰야합니다. 자유 교역 도시의 성왕국 정벌을 늦출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요."


"당분간은 상황을 보고싶은데... 다른 영주들이 자유 교역 도시의 전쟁을 어떻게 볼지도 잘 모르겠고."


동맹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린과 같이 거대한 적 앞에서는 그러한 동맹이 쉽게 와해될 것이다. 신성제국과의 전쟁 당시 연합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자유 교역 도시라는 구심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이 사단이 난 것은 아린이 그러한 동맹에 환멸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거는 것은 금물. 우선은 우리의 힘을 키워야한다.


나는 먼저 도시의 상황을 보고받았다.


"도시 기반시설들의 복구는 얼마나 진행됐어?"


"마법 부여소나 대장간 같은 생산시설들은 전문 인력이 모자라서 조금 느립니다. 자유 교역 도시에 연수를 다녀온 인재들이 있으니 어찌어찌 돌릴 수는 있을 것 같지만..."


"그쪽은 좀 느려도 괜찮아. 뭣하면 내가 밤새서 성물제작 돌리지 뭐. 것보다 정령석 채굴장은?"


"블랙우드의 영지에서 온 광부들 덕분에 오늘내일 중으로 작업을 재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로웬님은 이걸 어디다 쓰시려고 하시나요?"


원래 정령석 채굴장은 복구작업의 후순위로 밀려있었으나, 로웬의 강력한 요청에 의하여 최우선 순위가 되었다. 로웬은 레니아의 물음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이 숲 안에서 가장 가치있는 시설을 놀려둔다는게 말이 되나요?"


"우리가 당장 정령석을 써먹을 수 있는 곳이 있나?"


가만히 있던 아슬론이 한 마디 거들자 로웬이 한숨을 내쉰다.


"정령석은 원래 정령들에게 먹이라고 있는거지만... 꼭 그렇게 써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왜 정령들은 물론이고 마수들도 정령석을 좋아하는지 아시나요?"


"... 로웬님은 아셔요?"


아가르타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카엘도 갈피를 잡지 못한다. 로웬은 어깨를 으쓱하며 간단하게 말한다.


"저는 이래봬도 원주민 신의 파편이니까 그들의 지혜 또한 가지고 있지요. 정령석은 타차원의 생물체에게 맞도록 정제된 마력 덩어리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돌맹이나 다름없겠지만, 저 같은 최고위 마법사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지요."


"그러니까, 그걸 먹어서 본인의 마력량을 늘리시겠다?"


라르고가 알아듣기 쉽도록 요약하자 로웬이 조금 정정한다.


"저 뿐만이 아니라 정령 친화력을 가진 이들이라면 모두 써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정령사는 요정족의 숲에서도 대가 끊겨버린 만큼, 그러한 사람들이 흔하지는 않을테죠."


결국 정령석은 자연스레 로웬이 독식하게 되어버릴 것 같다. 아슬론은 그녀가 우쭐대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내게 조용히 말했다.


"알룬님. 혹시 신수창조 특성으로 정령을 만들 수는 없는겁니까?"


"신수랑 정령은 좀 많이 다를걸... 아니, 것보다 로웬이 강해지면 좋잖아? 근데 반응이 왜들 이래?"


나는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에 부담감을 표했다. 아슬론은 조금 부끄럽다는 듯, 내 앞에서 고해한다.


"아니. 제가 명색이 대주교인데 로웬에게 밀리면 좀 창피해서요."


"뭐 그런걸 가지고... 너무 조급해하지 마."


이 작은 교단 내에서 알력 싸움이 일어나면 답도 없다. 나는 최대한 아슬론을 달래며 로웬이 정령석을 사용하는걸 허가했다.




작가의말

분량대로 잘라서 그런지 이번회는 너무 내용이 없네요...


좀 염치없지만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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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133회 +6 18.02.07 1,439 4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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