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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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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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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0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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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레니아가 선택한 전략은 이전에도 아린을 괴롭힌 적이 있었다. 한 때 우리와 맞섰던 지긋지긋하던 죽음의 군주는 소수 정예인 흑색 기사단의 기동력을 살려서 남부 전체를 휩쓸고 다녔다.


현 상황에서 자유 교역 도시의 주력보다 강한 군대를 모을 방법은 없으니, 아린의 천리안에 대항하려면 기동전이나 농성 밖에 답이 없다. 레니아는 먼저 2만의 병력을 8조각으로 나누었다.


성왕국에 진출해있는 아린의 본대는 총 4만명. 우리의 2배나 되는 병력이긴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들은 대부분이 성왕국 전선에 묶여있는 상태다.


아슬론은 레니아의 전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살짝 불만스런 소리를 냈다.


"안 그래도 적보다 적은 병력을 굳이 또 나눌 필요가 있는건가?"


"적보다 적지 않습니다. 성왕국과 대치중인 병력을 감안하면 우리쪽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으니까요."


레니아는 흔들리는 말 위에서 능숙하게 균형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슬론은 그녀의 대답을 듣고도 납득을 못한 것 같다.


"그러니 2만을 통째로 운영하여 적들을 치면 될 것 아닌가."


"아슬론님. 저희들의 군대를 봐주십시오."


레니아가 양손을 펼치며 기나긴 대형의 앞뒤를 가리켰다. 현재 레니아와 아슬론이 있는 부대의 병력은 자그마치 2천 5백. 총 인원의 8분의 1에 불과한 인원이 움직이는데도 넓은 대로가 꽉 차버렸다.


때문에 레니아는 처음부터 각 부대를 나누어서 행군시켰다. 아슬론은 대로에 득실거리는 사람들을 보고도 무엇이 문제인지를 몰랐다.


"영광스런 알룬님의 정예병들이군. 무슨 문제라도 있나?"


"2천 5백명이 움직이는데도 이 모양 이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2만을 통째로 운용하겠습니까? 길이 막혀서 행군속도가 느려지는건 둘째치고, 2만이나 되는 대군이 마음껏 싸울 수 있을만한 전장도 없습니다."


우리가 있는 남부 지방은 대부분이 평야와 숲으로 이루어진 곳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2만이나 되는 병력을 통째로 투입할만한 전장은 많지 않았다.


적군이 4만이긴 하지만, 적군도 우리와 비슷한 이유로 병력을 나누어둔 상태다. 그러니 이만한 규모의 병력으로도 충분히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제껏 소규모 유격대의 일원으로서 움직이던 아슬론은 혀를 씹으며 찝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보니 레니아의 말이 백번 옳았다.


화신체로 강림해있던 나는 걱정스레 한 마디 했다.


"그런데 우리 행군도 천리안 때문에 다 읽히는거 아닌가? 이러다 각개격파 당하면 큰일나잖아."


"그래서 성왕국의 국경수비대를 각 방면으로 돌려서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로웬 자매님 덕분에 일이 굉장히 편해졌네요."


"아하."


로웬은 성왕국의 시민들에게 걸린 마법을 조작하여 사람들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그쪽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어차피 여기서 우리의 진군로가 차단당하면 성왕국도 끝장이다.


레니아는 옆에 있는 아가르타를 통해서 각 부대의 위치와 현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다. 현대의 군인들도 통신선 구축을 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는걸 감안하면 너무도 편하다.


손쉽게 전황을 파악하고 통신을 할 수 있는건 물론, 강력한 특성 스킬과 기적까지 행사한다. 이러니 외계신들이 토착신들을 밀어내고 주류로 등극할 수 밖에 없다.


며칠간의 행군을 거쳐서 진지를 구축한 레니아는 가장 먼저 상대의 보급선을 끊기 시작했다. 성왕국과 자유 교역 도시의 전쟁이 시작된지도 꽤 된지라, 처음에 가져온 물자는 일찌감치 다 써버렸을 것이다.


여기서 보급선을 끊어버리면 아린의 본대는 천천히 말라죽을 수 밖에 없다. 레니아가 2만의 병력을 무려 8조각으로 나누어버린건 상대의 보급선을 완전히 끊어버리 위해서였다.


아무리 평야와 숲으로 이루어진 남부지방이라고 해도... 8개의 부대가 길목을 차단해버리면 보급이 될 수가 없다. 레니아가 아가르타의 도움을 받아가며 손을 조금 보자, 천리안을 사용해도 빈틈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차단막이 완성됐다.


레니아는 500의 병력을 진지에 남겨두고, 남은 2천을 아슬론에게 맡겼다.


"저는 이곳을 지키고 있을테니, 아슬론님은 2천으로 아린측 본대의 배후를 쳐주세요."


"으음? 여기서 적들이 올때까지 기다리는거 아니었나?"


아슬론은 레니아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이면서도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레니아가 언제나처럼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 방법도 괜찮겠지만, 천리안을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공격권을 넘기는건 조금 껄끄럽네요. 지금 당장 출발하면 아린이 철수 준비를 끝내기 전에 공격을 시작할 수 있을거에요."


"그럼 적군은 성왕국과 우리의 군대를 양쪽에서 상대해야겠구나. 좋다."


적군의 보급선을 끊는데에는 그리 많은 병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500도 좀 넉넉하게 남긴 축에 속한다. 플레이어들과 정찰용 신수를 다수 보유한 우리 진영의 정찰 능력은 굉장히 좋은 편이니까.


곧이어 다른 부대를 맡고있는 카스트로와 로웬, 그리고 다르몬드의 신도들도 레니아의 명에 따라 각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성왕국의 요새는 이곳저곳이 무너져내린데다 새카만 연기까지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함락되지는 않았다. 성벽 앞의 병사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아슬론의 부대를 돌아봤다.


아슬론이 맡은 방면에서는 이제껏 몇 번이고 말머리를 나란히했던 기사 주교가 공성을 지휘하고 있었다. 아린의 교단에서는 애버론 다음가는 실력자였으니, 지금은 저자가 대주교라고 봐도 될 것이다.


곧이어 벌어질 전투에 흥분하던 아슬론은 상대의 정체를 눈치채자 기분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그는 줄곧 쓰던 대검을 놔두고 허리춤에 걸린 마법검, 수다쟁이를 뽑아들었다.


이제껏 어떤 상대와 싸우든 대검을 주로 사용하던 그였지만, 아버지인 카스트로가 수 많은 대련을 통해서 그의 습관을 호되게 질책했다. 때문에 간만에 칼집에서 나온 수다쟁이는 주인의 희망에 따라 장검의 형상을 취했다.


"으음? 네가 웬일이래? 무식하게 대검만 쓰는 용인인 줄 알았더니..."


"다시 집어넣기 전에 닥쳐라."


장검을 든 아슬론이 언덕의 위쪽을 올려다보자, 지휘봉을 쥐고있던 주교도 자신의 장비를 챙겼다. 두 사람은 수 많은 종류의 감정이 담긴 눈으로 서로를 주시했다.


아쉽게도 무언의 대화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아슬론은 이를 악물고 장검을 치켜들더니, 만반의 준비를 갖춘 아군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다. 물론 대열의 최선에 선 것은 아슬론 본인이었다.


아슬론이 탑승한 천마는 그가 상대와 격돌하자마자 곧장 자리를 빠져나왔다. 충성심 없는 말이라고 욕할 수도 없는 것이, 두 사람의 공격반경에는 다른 사람들도 들어가기를 꺼렸다.


서로의 아군을 어설프게 도우려 해봤자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두 사람은 전장 안의 투기장에서 매서운 검격을 나눴다.


노련한 기사는 아슬론의 검을 받아낼 때 마다 온몸이 휘청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도 아린의 주교인 만큼, 결코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전사가 아니었으나... 아슬론은 둘이 이별한 사이에 너무도 강해져있었다.


묵직한 공격을 방패로 받아내던 그는 상대의 빈틈을 찾아내려 노력했으나, 카스트로의 코칭으로 다듬어진 아슬론의 자세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망국의 기사단장은 자신의 아들에게 방패를 상대하는 법 또한 확실히 가르쳐줬다.


'사실 우리 정도 급이 되면 공격을 제대로 받아내는 방패를 찾기도 힘들단 말이지... 그러니까 그냥 방패가 걸레짝이 될때까지 때려버려.'


아슬론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착실히 이행했다. 내가 자유 교역도시에 있던 시절에 만들어준 방패는 장검에 담긴 거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조금씩 찌그러졌다. 아슬론의 정타가 꽂힐 때 마다 금속이 찢겨져나가는 소리로 비명을 지른다.


게다가 이번에는 장검으로 무기가 바뀐 탓에 반격을 가할 수 있는 틈새조차 없다. 그가 대검을 쓸 때에는 이 정도가 아니었다. 아슬론이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몸무게는 고작해야(?) 200kg 근처인지라 무게중심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무게의 균형이 잘 잡힌 장검은 그런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줬다. 아슬론은 수다쟁이를 휘두르면서 상대 몰래 불평했다.


'조금 더 무겁게 만들 수는 없는건가? 이거야 원 나무칼도 아니고...'


'어휴, 이 못되먹은 용인 같으니라고. 나처럼 아리따운 숙녀의 몸무게를 꼭 늘려야겠어? 좋아, 중력 마법을 써줄게.'


시종일관 비명을 내지르던 기사의 방패는 마침내 그 수명을 다했다. 아린의 대주교는 방패가 찢어지자마자 장검을 양손으로 쥐곤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아까전처럼 견제타로 날려보던 공격과는 급이 다르다. 완전히 달라진 아슬론의 스타일에 적응한 그는 눈으로 제대로 쫓기도 힘들만큼 빠르게 검격을 날렸다. 팔방에서 덮쳐드는 공격을 마주하자 아슬론의 튼튼한 자세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기사의 검은 주인의 힘을 버텨주지 못했다. 그가 쥐고있는 장검은 내 작품들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역작이었으나... 죽은 명공의 가장 사랑받는 딸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상대와 1합을 나눌 때 마다 장검의 이가 조금씩 빠져나간다. 간혹가다 아슬론이 강하게 받아치면 가느다란 실금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그 광경에 신음을 흘린 것은 주교가 아니라 아슬론이었다. 그는 이 싸움이 시시한 결말을 맺길 바라지 않는 듯, 가드를 내리고 공격에 집중했다. 그러자 수다쟁이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너 미쳤어? 가만히 있어도 이기는데 뭐하러..."


"조용해."


갑옷을 걸친 두 전사의 몸에 자잘한 상처들이 쌓여간다. 자신에게 날아드는 검격을 상대에게 날리는 검격으로 쳐낸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싸움을 보여주는 두 사내였지만, 그들의 부하들은 그러지 못했다.


아린의 병사들은 연이은 전투로 지쳐있었다. 그들의 숫자는 우리측의 병력과 비슷하긴 했지만, 수성에 몰두하던 성왕국의 병력들이 가세하자 전세가 급격히 기울어졌다.


두 개의 세력에게 앞뒤로 협공당한 그들은 도망칠 곳 조차 찾지 못하고 빠르게 사냥당했다. 그들이 진지를 세워둔 곳은 지대가 높은 언덕이었지만, 고지대라는게 언제나 이점이 되는건 아니었다.


이곳에서 이기는건 커녕, 도망치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병사들은 하나둘씩 투항하기 시작했다. 아린의 대주교는 그런 부하들을 보며 축 처진 어깨에 힘을 불어넣었다.


서로의 몸에 쌓인 상처는 비슷했으나. 이대로 가다가는 재생력이 강한 아슬론을 이길 수 없다. 평소부터 착실하게 쌓아둔 체력도 슬슬 한계다. 하지만 꼴사납게 도망을 치다 죽는 것 보다는 적의 대주교를 베어내서 일발역전을 노리는게 기꺼웠다.


그는 자신의 신에게 속으로 사과한 뒤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기 위하여 몸을 살짝 뺐다. 그런데, 아슬론의 손에 들린 수다쟁이가 갑자기 주욱 늘어나며 그의 어깨를 베어냈다. 아슬론이 처음부터 그의 후퇴를 가정하고 수다쟁이에게 명령을 내려놓은 덕분이었다.


"으윽..."


"흐읍."


아슬론은 수다쟁이를 최대한 크고 길게 만들어서 필살의 일격을 날렸다. 앞서 무리를 해가며 거리를 벌렸던 기사는 그의 공격에 대응하지 못했다. 곧이어 호쾌한 일격이 망가져가던 장검과 상처투성이의 갑옷을 통째로 베어냈다.


상체의 반절 이상이 베여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기사는 부러진 검을 놓지 않았다. 그는 폭포처럼 쏟아져나오는 핏물을 내려다보며 힘 없이 무릎을 꿇었다. 어렵사리 벌린 입술에서 나온 것은 탄식 어린 기도였다.


"아린님. 저의 불충을 용서하십시오..."


아슬론은 꿇어앉은 채로 죽은 기사의 시신을 조심스레 거뒀다. 나는 각지에서 올라온 승전보를 들으면서도 찝찝한 기분을 지우지 못했다.


작가의말


완결을 언제 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완결까지 무료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이 소설을 연재하며, 이미 독자님들을 이래저래 배신한지라 여기서 차마 유료화를 진행하진 못하겠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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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145회 +5 19.03.09 918 4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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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141회 +5 18.04.09 1,235 54 13쪽
140 140회 +3 18.04.08 1,317 51 12쪽
» 139회 +7 18.04.07 1,330 57 12쪽
138 138회 +5 18.04.05 1,280 44 10쪽
137 137회 +6 18.04.02 1,320 51 12쪽
136 136회 +5 18.03.30 1,343 50 12쪽
135 135회 +9 18.03.27 1,376 49 12쪽
134 134회 +5 18.02.13 1,651 54 11쪽
133 133회 +6 18.02.07 1,438 4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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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130회 +9 17.10.17 2,013 6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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