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최근연재일 :
2020.05.02 00:21
연재수 :
154 회
조회수 :
782,315
추천수 :
25,197
글자수 :
786,849

작성
18.04.14 00:19
조회
1,266
추천
53
글자
13쪽

142회

DUMMY

짧은 토론 끝에 내려진 판결은 사형이었다.


교단 끼리의 다툼이 일상인 이 세계에서는 조금 지나친 감이 없긴 하지만, 내 휘하의 참모들이 모두 강력한 처벌을 주장했다. 그도 그럴게 내 동맹들 중에서는 토착신 교단의 대표들도 적잖게 있다.


만약 이번 일을 가볍게 넘어가면 그들이 반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외계신들도 얼씨구나 하며 토착신 사냥에 참여할 것이다. 내가 보여준 새로운 권능은 그들에게 굉장히 매혹적으로 보일테니까.


로웬은 내 결정을 전해듣자마자 지체없이 판결을 집행했다. 판결문의 포고와 동시에 쏘아진 주문이 바들바들 떨던 주교들의 몸을 터뜨려버렸다. 피와 살점이 비산하자 그들의 처벌을 청원했던 아돌레나의 사제들 마저도 처참한 광경에 혀를 내두른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충성을 맹세한 신하보다 남이나 다름없는 토착신을 감싸고 돌다니!"


"알룬님의 깃발을 훔쳐쓰고, 우리가 피흘려 얻은 평화와 화합을 멋대로 해치려 든 놈들이 무엇이 그리도 억울하단 말이냐!"


저들도 조금 억울한 감이 있는 것은 알겟지만... 그렇게 치면 저들에게 사냥당한 토착신들이 훨씬 억울하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로웬의 집행을 지켜봤다.


더 이상 조별과제 메타에 휘둘리는 것은 사양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 거대한 연합을 제대로 이끌어나갈 수가 없다. 로웬은 상대의 주교들만 골라서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했다.


신의 명령대로 목소리를 높여 항의하던 신도들은 주교들이 빠르게 죽어나가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사형의 집행이 끝나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니아는 죽은 외계신의 영지에 사람을 보내서 그곳을 임시로 관리하도록 만들었다. 아돌레나의 사제들은 자신들의 신전을 되찾았고, 이번 일에 대한 감사라며 해마다 공물을 바치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동자에 깃든 감정은 감사 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웠다. 나는 그것이 무척 찝찝했으나, 요정의 숲으로 돌아온 로웬은 마냥 태연한 표정이었다.


"그들의 반응에 마음쓰실 필요따윈 없습니다. 알룬님께서는 만인에게 두려움을 심기 위하여 이번 일을 명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바라신대로 일이 처리됐는데 어찌하여 속상해하십니까."


"그렇다고 그게 기쁘게 느껴지면 안 될 것 같은데."


신성제국도, 자유 교역 도시도 시작과 뜻은 좋았다. 목적을 위해서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면 내가 그들과 다른게 무엇일까. 로웬과 내 대화를 듣고있던 레니아가 조용히 다가와서 말했다.


"알룬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만, 지금 당장은 시작한 일을 마무리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서 신하들을 소집하시지요."


"그래."


당연하지만, 교단 하나를 징벌했다고 해서 외계신들의 토착신 사냥이 끝나진 않을 것이다. 우리가 발견한건 고작 하나인데다 당사자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과연 남들 몰래 행해지고 있는 사냥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다행히 나는 그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기아스를 과신해서는 안 된다. 나나 아슬론, 자유 교역 도시 길드의 간부가 그랬듯이 다른 신의 신성력을 무효화하는 수단은 꽤 있다.


기아스는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 대상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권능들보다 구속력이 아주 강하다. 하지만 해제할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알레디우스의 말에 따르면, 적동용왕이 아슬론에게 걸어놓은 저주도 일시적으로 유예시킬 방법이 있다지 않은가. 물론 이름난 사제이자 모험가인 베아트리체 급의 실력이 필요한지라 현재의 아슬론으로선 꿈도 꾸지 못하지만... 그래도 가능은 하단다.


따라서 나는 기아스의 조건인 '충성'의 정의를 재설정하고, 모두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신하들을 소집했다. 내게 충성을 맹세한 이들은 저마다의 신도들을 요정의 숲과 자유 교역 도시에 남겨놓았는지라 소집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넓은 원형의 공터에 모인 신도들은 저마다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아무래도 내가 소집에 앞서 토착신 사냥을 처벌했다는 정보가 새어나간 것 같다. 형을 집행하던 당시 보는 눈이 보통 많았던게 아니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공터의 중앙에서 아슬론의 호위를 받으며 등장한 레니아는 좌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이번 소집의 목적을 밝혔다.


"오늘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이게 한 것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토착신 사냥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저희는 얼마 전에 변경에서 찾아온 사제들을 맞아..."


어차피 퍼질 이야기라면 우리가 먼저 이야기하고, 이 자리에서 변호와 반박까지 해버리는 것이 낫다. 레니아는 그렇게 생각하고 아돌레나 교단의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불안한 예감이 확신으로 바뀌자, 광장에 모인 신도들은 눈에 띄게 웅성이기 시작했다. 불쾌한 표정의 아슬론이 자신의 대검으로 땅바닥을 한 번 찍자 목소리가 멎었다. 그러나 안절부절 못하는 시선들은 그대로다.


나는 그런 반응을 보며 그들 중 몇몇이 멋대로 주변의 토착신을 사냥했다고 확신했다. 어쩌면 벌써 토착신의 신력을 흡수하여 새로운 권능을 얻은 외계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봤자 적동용왕같은 상급신은 건드리지도 못했겠지만.'


이번에 공격당한 아돌레나는 토착신들 중에서도 굉장히 약한 편에 속한다. 토착신들이라고 모두 그녀와 같은 호구는 아닌 것이다. 만약 이들 중 누군가가 정말로 강력한 상급신을 건드리면 우리 모두 끝장이다.


토착신들은 세계의 법칙과 신들의 맹약에 묶여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활동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영토가 공격받거나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로웬의 말에 따르면, 신들의 맹약에도 그 정도의 융통성은 있다고 한다.


레니아는 나를 위해서 모두의 비난을 받는 역할을 자청했다. 그녀는 더 이상의 토착신 사냥을 금하고, 그것을 어기는 자들에게 기아스로 심판을 내리겠다 선언한다.


당연하지만 소집에 응한 외계신들은 그녀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격렬히 반발했다. 그들로선 우리가 새로운 권능을 독점하려고 하는 것 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결코 양보할 수가 없었다.


토착신들과 외계신들의 언쟁이 점점 격렬해지던 중. 마침내 아돌레나 건의 처벌이 과하지 않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당연하지만 토착신들은 내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열과 성을 다해 반박을 토해낸다.


"이건 독재입니다. 외부의 교단을 공격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다니요."


"이러다간 밥 먹고 잠자는 것도 일일이 허락받아야겠습니다."


"토착신 사냥을 금지하는 것이 어째서 독재란 말입니까!"


"알룬님의 말씀에는 틀린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돌레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자매였다. 힘을 탐해서 우리 토착신들의 동포를 공격한다면, 그대들이 신성제국과 다른게 무엇인가?"


"하지만 저희는 새 주인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 알룬님께 충성을 맹세한 것이 아닙니다."


"그만."


열 받은 아슬론이 다시 한 번 대검을 내리치자 시장 바닥 같던 광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왠지 모르게 자비로운 것으로 유명한 나와는 달리, 아슬론은 난폭하고 성질이 급한 것으로 유명했다. 우리 교단은 무척 드물게도 외계신과 주교의 평가가 정 반대다.


사실 지금의 아슬론은 화를 잘 참고 있는 축에 속했다. 소집에 앞서 레니아가 그에게 주의를 준 보람이 있었나보다. 레니아는 짧은 침묵을 틈타서 모두에게 열변했다.


"알룬님께서는 권능을 독점하기 위하여 토착신 사냥을 금지하신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고요. 지금 여러분들을 보십시오. 벌써부터 서로를 향해 핏대를 세우며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알룬님의 깃발 아래에 모여서 자유 교역 도시로 진격하던 형제자매들은 어디에 있지요?"


레니아의 성량은 아슬론의 절반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슬론보다 훨씬 웅변에 능했다. 좌중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으며, 절박하게 호소하는 어조와 기술이 목소리의 크기를 이겼다.


"이번 건을 유독 강하게 판결했던 것은, 그자가 우리들의 분열을 야기했기 때문입니다. 남부 대륙의 한구석에서는 성왕국이 시시탐탐 우리의 땅을 노리는 중이고, 아린도 변경에서 힘을 길러 복수를 꾀할겁니다. 만약 우리가 이렇게 무너지면 누가 그들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에게 불행히도. 나와 신하들은 마땅한 적수를 잃어버렸다. 성왕국은 아린과의 전쟁에서 엄청난 국력을 소모한지라 당분간 전쟁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하며, 아린은 성왕국보다 피해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현재 우리는 명실상부한 남부 최강의 세력이다. 때문에 내게 충성을 맹세한 외계신들은 당연히 그 과실을 수확하려 들었다. 레니아의 웅변이 아무리 뛰어나고 대의가 우리에게 있다 해도, 그러한 욕망을 통제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때문에 이번 소집은 만족스레 끝나지 못했다. 레니아가 아무리 외부의 위협을 이유로 들며 연합의 필요성을 강조해봤자, 내 아래의 모두가 잘 알고있다. 지금 이대로라면 성왕국과 아린은 우리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소집에 호응한 이들은 저마다 불만스런 표정으로 해산했다. 내가 기아스로 그들의 행동을 제약해두긴 했지만, 그들의 마음까지 조종할 수는 없다. 레니아와 카엘은 벌써부터 싹트기 시작한 불화의 씨앗에 골머리를 앓았다.


고민에 빠진 그녀들을 위한 도움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다가왔다. 소집이 끝난 뒤로 며칠이나 지났을까. 알현실에서 상소를 받던 나는 다급하게 달려온 동맹의 사제들을 맞이하곤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최근들어 성왕국의 기병대가 국경을 넘어 외곽의 영지들을 돌아다니곤 합니다."


"아직까지 인명피해는 없지만, 놈들이 침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알룬님께서는 하루빨리 외곽 지역의 방어를 지원해주십시오."


'성왕국이 갑자기 그런 짓을 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불안에 떠는 이들을 안심시켰다. 만에하나 성왕국이 로웬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냈다 해도, 지금의 그들로선 우리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사제들을 돌려보낸 나는 알현실을 비우게 만들곤 잠시 침묵했다. 내 곁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레니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 당장 아가르타 자매를 시켜서 조사를 해볼까요?"


"아니. 그러지 말고 로웬을 불러줘."


나는 나름대로 짐작가는 구석이 있었는지라 레니아의 제안을 거절하곤 로웬을 불러들였다. 성왕국과 아린에 대한 동향 파악은 최근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일이다.


며칠 전에도 보고를 받았지만, 그 둘은 현재 전쟁을 수행할만한 여력이 조금도 없었다. 전쟁을 치루려면 농민들을 병사로 소집해야하는데, 농번기인데다 전쟁으로 창고가 비어버린 지금 그런 짓을 벌였다간 모두가 굶어죽을 것이다.


성왕국에서 쌀로 된 비가 내리고 땅에서 병사들이 솟아나지 않는 한. 새로운 소식이 의미하는 것은 명확했다. 로웬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알현실에 들어섰다.


그녀가 도착하기 까지 심증을 굳혀둔 나는 길게 묻지 않았다.


"네가 했어?"


"그렇습니다.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알룬님의 통찰에는 감탄할 뿐이네요."


로웬은 어울리지도 않는 공치사를 하며 자신의 혐의를 긍정했다. 역시 이번의 사건은 그녀의 소행이었다.


내 신하들은 로웬이 성왕국의 시민들을 조종할 수 있다는 정보를 모른다. 만약 그게 알려졌다면 내친김에 성왕국까지 정벌해버리자고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의도적으로 숨겼다.


그녀는 성왕국을 새로운 적으로 만들어서 내 신하들을 긴장하게 만든 것이리라. 예로부터 외부의 적은 내부의 결속을 다지도록 만들었다.


로웬이 이런 짓을 벌인 것은 내가 신하들을 잘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마땅한 대안도 없이 그녀를 비난하는 것은 추한 짓이다. 나는 그녀를 탓하기 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성왕국을 적으로 삼는다 해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거야. 분열이 일어날 때 마다 매번 이런 식으로 할 수는 없어. 이 다음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알룬님께 비밀로 하고 멋대로 일을 진행시킨 점, 정말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음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겁니다. 어차피 조만간 둥지에서 잠자고 있던 용족들이 일어날테니까요."


"어째서?"


"용족들은 먼 옛날 인간들에 의해서 고산지대로 쫓겨났으나, 지금 인간들은 전쟁으로 서로의 힘을 깎아먹으며 예전의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껏 인간들이 이토록 약해진 적은 없었으니, 용족들이 옛 영토를 수복하려면 지금이 제일이지요. 아슬론님과 알룬님께서 가지고계신 적동용왕의 마력과 신력도 그들을 끌어들일겁니다."


조금 있으면 용족이라는 새로운 위협이 나타날테니 걱정 말라는 뜻이었다. 나는 설득력 있는 그녀의 말에 침묵하며 머지않아 다가올 위험을 걱정했다.


작가의말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군주의 정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군주의 정오 용어 및 등장인물 소개 +2 20.05.01 3,185 0 -
154 154회 +20 20.05.02 2,729 35 12쪽
153 153회 +10 20.05.01 822 21 13쪽
152 152회 +10 19.03.25 1,908 35 12쪽
151 151회 +14 19.03.17 966 31 13쪽
150 150회 +4 19.03.14 931 29 13쪽
149 149회 +5 19.03.13 841 30 13쪽
148 148회 +5 19.03.12 955 28 12쪽
147 147회 +8 19.03.12 852 30 12쪽
146 146회 +5 19.03.11 920 28 13쪽
145 145회 +5 19.03.09 918 41 13쪽
144 144회 +22 19.03.07 1,153 36 12쪽
143 143회 +8 18.04.25 1,608 55 11쪽
» 142회 +5 18.04.14 1,267 53 13쪽
141 141회 +5 18.04.09 1,235 54 13쪽
140 140회 +3 18.04.08 1,317 51 12쪽
139 139회 +7 18.04.07 1,330 57 12쪽
138 138회 +5 18.04.05 1,280 44 10쪽
137 137회 +6 18.04.02 1,320 51 12쪽
136 136회 +5 18.03.30 1,343 50 12쪽
135 135회 +9 18.03.27 1,376 49 12쪽
134 134회 +5 18.02.13 1,652 54 11쪽
133 133회 +6 18.02.07 1,439 49 10쪽
132 132회 +11 18.02.06 1,496 54 12쪽
131 131회 +17 18.02.04 1,675 57 13쪽
130 130회 +9 17.10.17 2,014 64 12쪽
129 129회 +5 17.10.07 1,799 62 11쪽
128 128회 +8 17.09.24 1,959 75 10쪽
127 127회 +13 17.09.14 2,105 62 10쪽
126 126회 +7 17.09.12 2,006 74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